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31화 (131/363)

131화 슈퍼 화요일

그날 저녁 유진의 자택에서는 한정훈 부사장을 위한 작은 연회가 열렸다.

초대된 손님들은 대부분 영화계에서, 혹은 음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슈퍼스타들이다.

늘 세간의 관심에 목이 말라 있는 이 스타들은 유진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고, 한국 제일의 부자 가문의 후계자가 와 있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보였다.

예전과 달리 유진의 이름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며, 한국에 대한 위상도 꽤 변해 있었다.

세계 제일의 부자 소리를 듣는 유진의 고국인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라니, 과연 어떤 사람일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떻습니까?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유진은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 한 부사장을 한국의 절친이라 소개했다.

덕분에 유진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스타들이 한 부사장에게도 호의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유진이 말을 걸기 전까지 한 부사장은 최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한 여배우와 무척 다정한 모습으로 술잔을 나누고 있었으니, 아마도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이지요. 미 서부에 방문한 것이 적지 않지만, 지금까지는 대개 재계 인사들이나 현지 한인들과의 시간을 보냈었죠. 지금처럼 할리우드 스타들과 시간을 보낸 일은 없어요.”

한국 재계의 황태자인 한 부사장은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제약도 적지 않게 따랐다.

한국의 부자들은 너무 나대면 안 된다. 그들이 지닌 부만큼의 원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재벌 총수들이라면 당연하게도 국산 승용차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하겠는가?

개별적으로 연예인을 만나서 조용하게 즐기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날처럼 공개적이고 떠들썩한 자리에서 외국의 스타들과 파티를 벌인다면 귀국한 뒤에 공격을 당하기 딱 좋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정훈 부사장은 공식적으로 비즈니스를 위해 유진을 찾아왔고, 유진은 한국 재벌들처럼 조용하게 사치를 즐겨야 하는 압박 따윈 받고 있지 않다.

유진이 할리우드의 초호화 저택에서 항상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들을 초대해 파티를 즐기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에서야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한국인들도 미국에서 돈을 번 유진의 그러한 행위에 대해 비난하지 못한다.

그러니 한 부사장도 이날은 마음 편히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정말로 즐거운 시간입니다. 오랜만에 부담 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군요.”

한 부사장이 유쾌하게 대답했다.

단순히 사람들을 만나 즐겁다는 의미가 아닌 것을 유진도 잘 알고 있다.

그가 조금 전 예비 스타와 아주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은 것을 보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그날의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한정훈 부사장은 유진과의 협상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냈다고 여기는 것 같았고, 누군가와도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한 부사장은 유진의 자택에서 이틀 정도 더 머물다가 돌아갔다.

시간이 더 있으면 좀 더 머무르고 싶다 하기에, 언제든 LA에 찾아오면 유진이 없어도 자택을 편히 사용하라고 해 주었다.

한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운 얼굴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가서 부친에게 인정을 받아낼 것을 생각하면 기쁜 모양이다.

유진도 그곳에서 약간의 휴가를 보내다가 뉴욕으로 돌아갔다.

이제 세기의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2016년 11월 8일은 미국에서 슈퍼 화요일이라 부르는 대통령 선거의 날이었다.

개표가 시작되고 한동안은 힐러리의 당선이 유력하게 보였다. 하지만 새벽 1시를 지나면서 트럼프의 득표율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11월 9일 새벽 3시 33분, 도널드 트럼프가 27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당선을 확정지었다.

해가 밝을 때까지 이어진 개표 결과 도널드 트럼프는 45.98%의 득표율을 획득했음이 알려졌다. 48.08%를 획득한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2%나 낮은 득표율을 획득했지만, 미국 특유의 선거제도 때문에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선거 결과였다.

브렉시트의 충격으로 하락했다가 겨우 정상을 회복한 각국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세계 경제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특히 남북 문제에 관심이 없음을 드러냈고, 미국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트럼프의 성향으로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 여긴 한국에서는 더욱 큰 하락이 있었다.

“대양 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양중공업과 대양자동차 등 주력 계열사는 10% 이상 올랐습니다.”

요안나가 웃음을 참으며 보고했다.

“뜬금없이 대양 그룹 계열사 주가가 왜 오르는 건데? 트럼프가 대양 그룹 뒤에 있다는 소문이라도 퍼진 거야?”

유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반대에요. 보스가 도널드와 가까운 인사라는 사실 때문이지요. 이제 미국의 대통령을 뒤에 업은 보스가 대양 그룹에 대해 무언가 액션을 취할 거라는 분석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어느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이 한국에 끼칠 영향에 대해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아 의견을 보도한 모양이다.

그중 어떤 미국 정치 전문가가 트럼프는 강유진의 후원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앞으로 한국 문제에 있어서는 강유진의 의견을 따를 것이라는 발언을 한 모양이다.

뒤를 이어 경제 전문가가 강유진이 대양 그룹에 대해 적대적 인수를 노리고 있다는 측근의 정보를 알렸고, 그 순간부터 거의 모든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 드디어 강유진이 대양 그룹을 삼킨다는 소리가 퍼진 모양이다.

대양 그룹을 적대적 인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분이 필요하다.

지금 엉망이 되어 버린 대양 그룹을 강유진이 인수하면 세계적인 그룹으로 커 갈 것이다.

어느 쪽이든 대양 그룹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결코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대략 이러한 논리의 흐름으로 대양 그룹 모든 계열사 주가가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다.

“보스와 대양 그룹 사이의 문제는 이제 한국에서 주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수와 같아요. 보스가 대양 그룹을 인수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인수하느냐가 중요할 뿐이지요.”

“재미있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가짜 정보에 얼마나 쉽게 휘말리는지는 유진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소동의 근거가 된 일들에는 딱히 거짓이랄 것이 없다.

유진과 도널드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유진이 대양 그룹에 적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번 사태는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대양 그룹의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할까요?”

“아니. 그냥 놔둬.”

하지만 유진은 대양 그룹에 관련된 사태를 방관하기로 했다.

차라리 지금 들어간 사람들이 제대로 혼을 나 보아야 다시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분간 투자 방향은 미 증시에 최대한의 레버리지를 넣는 것으로 하지.”

한동안은 특별한 경제적인 이벤트는 없을 예정이다. 그러니 가장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미 증시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나서 1년 동안 미 증시는 적어도 20% 이상 상승하게 된다.

단순히 3배의 레버리지로 주가지수에만 투자해도 1년 동안 60%에 달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최대한의 레버리지라는 말씀이지요?”

요안나가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의욕이 넘치는 모양이다.

“어. 적어도 앞으로 2년 동안은 증시가 활활 타오를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방향으로 집중하겠습니다.”

이제 요안나에게는 유진의 지시에 대한 한 점의 의혹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진이 방향을 제시하면 그걸 토대로 최대한의 수익을 얻어 내기 위해 매진할 뿐이다.

그러면 충분하다.

요안나가 이끄는 팀은 월가에서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이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를 알고 5,000억 달러가 넘는 현금을 굴리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도널드에게 축전을 보냈습니다. 그쪽에서는 언제 방문할 것인지 물어보더군요.”

홍보와 의전을 담당하는 모니카가 보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인사하려는 사람으로 가득할 테니, 도널드에게 여유가 있을 때 알려 달라고 해.”

지금 찾아가 보았자 어차피 아부쟁이들로 둘러싸여 있을 도널드의 오만한 모습이나 잠깐 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월리 아데예모가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참 빠르게도 연락이 온다.

월리 아데예모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남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유진은 그에게 만일 다음 정권에서 누군가 불러 주지 않는다면 자신과 함께 일을 해 보자는 제안을 했었다.

그때 월리 아데예모는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 고위 인사들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월리 아데예모는 만일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아마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도널드가 당선되며, 월리 아데예모는 더 이상 백악관에 머무를 수 없게되었고, 유진의 제안을 떠올린 모양이다.

“바로 연결해 봐.”

전부터 다수의 정관계 인사들의 포섭을 이어 가고 있었던 유진으로서는 월리 아데예모를 손에 넣을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안타깝게 되었군요.”

우선은 이번 대선에서 경악할 만한 패배를 한 민주당에 대한 위로를 전한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당신 말대로 블랙 피플 다음에 우먼 파워는 무리였어요. 적어도 한 번은 쉬어 주어야 했던 모양이에요.

이번 선거 결과는 상당히 독특한 양상을 보였다. 미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지역인 워싱턴 D.C에서 힐러리는 무려 90%가 넘는 득표를 했다.

소위 배우고 깨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지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한편으로는 백인 남성의 대부분은 트럼프를 선택했다는 결과도 있다.

백인 남성들 대부분이 흑인에 이어 여성에게 권력의 헤게모니를 넘겨 주는 것을 꺼린다는 의미이다.

- 이번에는 좌절하지만, 역사의 반동이 언제까지나 승리하지는 못할 겁니다.

엘리트 흑인 정치인인 아데예모는 도널드의 승리를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다음번에 좋은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는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앞으로 두 달이나 남아 있는데 너무 성급한 제안 같지만, 그만큼 내가 월리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유진은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라도 아부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아낄 생각이 없다.

월리 아데예모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유진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원하는 곳이 잔뜩 있을 것이다. 당장 유진이 알고 있기로도 블랙록에서 스카웃하기 위해 벼르고 있을 것이다.

- 그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안은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물론이죠. 언제든 생각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 그건 그렇고, 유진이 우리 보스를 위해 일하던 사람들을 잔뜩 데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요사이 화제가 되고 있어요.

아데예모의 연락은 어쩐지 다른 의도가 있는 모양이다.

“백악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면 어디서든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렇게 생각하시면 다행이군요. 오바마가 유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군요. 언제고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으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월리의 전화는 아마도 오바마의 의사를 알리기 위해서인 모양이다.

“하하. 저도 미스터 프레지던트와 꼭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었습니다.”

유진은 대충 이해가 갔다. 오바마의 파트너인 바이든을 위해 거액을 약속한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 그럼 백악관을 비워 주기 전에 한 번 초대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미스터 프레지던트에게 부담만 되지 않는다면 상관없습니다.”

아무래도 트럼프의 취임식이 있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백악관을 들르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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