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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34화 (134/363)

134화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

“이래서야 대양을 집어삼킨다고 해도, 껍데기뿐이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지.”

“이거 참. 그 개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지?”

“무슨 방법은 있고?”

“없어요, 진짜. 경호원을 무슨 부대로 데리고 다니는 모양이더라고요. 대통령을 암살하는 게 더 쉽겠어요.”

류성규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물리적으로 어떻게 해 볼 생각은 안 하는 게 나을 거야.”

“그건 이미 예전에 포기했어요.”

“그래. 잘했어.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물리력이라는 게, 쓸 데 안 쓸 데를 잘 구별해야 하더라고.”

“그렇죠.”

성규가 씩 웃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서, 오 비서실장은 어때요?”

“아무래도 두 형제한테 시달린 탓에 생각이 조금 바뀐 모양이야.”

“결정을 못 했다는 말이지요?”

“쉬운 결정이 아니니 그러겠지.”

“아직 그렇게 늙지도 않았는데, 굼뜨기는.”

성규의 비아냥에도 류 비서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래도 우습게 볼 사람은 아니야. 워낙 꿍꿍이가 많은 사람이니까.”

“그거야 내가 더 잘 알죠. 삼촌보다야 훨씬 오래 봤다고요.”

“하긴. 그렇지.”

류 비서도 웃으며 자기 술잔을 비웠다.

“그 양반이 결정을 내려야 일을 진척시킬 텐데 말이에요.”

“조금 더 푸쉬를 해 봐야겠어.”

“그래야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용건을 끝낸 두 사람은 잠시동안 잡담을 나누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와 달리 류 비서는 꽤 오랜 시간을 나이 많은 조카와 보내며, 술잔을 여럿 비웠다.

“오늘은 그냥 들어가지 말아요. 호텔로 가요. 내가 아주 괜찮은 여자로 넣어 줄 테니까.”

“그럴까? 매번 거절만 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

“그럼 잠깐만요.”

성규는 곧바로 여자들을 불렀다. 이내 어지간한 연예인 뺨을 칠 법한 여자들이 방으로 와 웃음을 팔며 어울려 주었다.

다시 한번 질펀한 자리가 펼쳐졌다.

비슷한 나이의 조카와 삼촌은 연거푸 술잔을 비우고, 여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류 비서가 먼저 술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여자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리로 모시고 가.”

술자리가 파하자 얼큰하게 취한 성규가 남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중요한 분이니까 잘 모셔. 알지? 너 하는 거 봐서 MTV 신작 드라마에 꽂아 줄 테니까.”

류 비서 옆에서 시중을 들어 주던 여자에게는 한 뭉치의 지폐 다발을 주며 따라 보냈다.

직원이 류 비서를 부축하고, 여자가 촐랑거리며 뒤를 따라 나가고 난 뒤. 정장 차림의 사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넌 나가 봐.”

조금 전까지 제법 취한 모습을 보이던 성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직 방에 남아 있던 여자에게 말했다.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요.”

“아니. 그럴 거 없어. 이제 돌아가도 돼.”

성규가 그녀에게도 현금을 넉넉히 챙겨 주었다.

“저…… 약속하신 건…….”

여자의 목적은 돈만이 아닌 모양이다.

“너희 사장한테 말해 놓았으니 걱정할 거 없어.”

“감사합니다.”

여자는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다가 성규의 눈빛이 차가운 것을 보고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정장 사내는 그녀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차에다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당분간 계속 붙어 다녀. 어디를 다니고, 누굴 만나는지 전부 기록하고, 사진 찍어 놔.”

“알겠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기록해야 해. 쓸데없는 생각할 필요 없어. 전부라고. 전부.”

“네. 확실히 하겠습니다.”

사내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갔다. 성규는 그제야 허리를 쭉 펴고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 앉았다.

“후우…… 진짜 하나같이 속 썩이는 인간들뿐이군.”

잠시 그렇게 휴식을 취하는가 싶던 성규는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끄응…….”

두 명의 사내들에 업히다시피 해서 호텔에 도착한 류 비서는 자신을 데려온 사내들이 돌아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으세요?”

류 비서를 따라온 여자가 물었다.

“으응…… 아, 아직 안 갔어요?”

류 비서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사장님이…….”

“그냥 가 봐요. 오늘 너무 취한 거 같네. 도저히 안 되겠어. 아무래도 못 볼 꼴 볼 거 같으니까.”

“힘드시면 도와드릴게요.”

“아니야. 그냥 혼자 둬요. 쉬어야겠어.”

류 비서는 남아서 도와주겠다는 여인을 억지로 쫓아 보냈다.

여자는 마지막까지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남겠다고 고수했지만, 당사자의 의사를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여자가 낙심한 표정으로 호텔 방을 나서고 나서야, 류 비서는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류 비서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침대로 돌아와 주독을 몰아냈다.

다음 날 아침, 류 비서는 호텔을 나서 택시를 타고 다른 호텔로 이동했다. 이번엔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호텔 사우나에 들어간다.

평일의 이른 시간 호텔 사우나에는 그리 사람이 많지 않다.

류 비서는 대충 몸을 차갑게 식히고 뜨거운 공기가 가득한 건식 사우나로 들어갔다.

사우나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자네 왔는가?”

선객은 아무래도 류 비서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다리시게 해 죄송합니다. 비서실장님.”

“아니야. 죄송할 거 없지. 오랜만에 땀 좀 빼니 좋은걸. 그런데 오래 있지는 못할 거 같아. 너무 오래 있었더니 슬슬 머리가 찡해지려고 하네.”

“그러시면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듣고 있어.”

류 비서관은 차분하게 비서실장과의 만남을 요청한 이유를 밝혔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인 5선 의원의 보좌관 중 가장 선임인 비서실장은 묵묵히 땀을 흘려 가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그 친구가 류 회장의 자식이라는 건 확실한 건가?”

국회부의장이라는 제법 의젓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 의원이 자신의 비서관이 물고 온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라면 역시 국회의장이다.

국가 의전 서열 2위로 대통령 다음가는 위상을 지닌 국회의장은 권한과 의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국회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자리이다.

하지만 국회의장을 역임하면 관례상 다음 회기에서는 은퇴를 하기 때문에 실속은 없는 명예직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2등 자리인 국회부의장은 회기 내내 딱히 책임도 권한도 없지만, 혜택은 많은 자리이다.

국회부의장 자리에서 명예를 얻으며 지역구 관리에 몰두해도 된다는 이유에서, 4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이 잠시 여유를 갖기 위해 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만큼 당 내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현 의원이 그랬다. 검사 출신에 수십 년 동안 한 당만 밀어주는 든든한 지역구를 차지하고, 당내 역학 관계에서 중요한 요직을 담당하며 나름 계파까지 이끌고 있다.

큰 의미는 없지만 대선 주자로도 2번이나 나서 보았다.

여전히 다음 대선에서도 야당의 후보로 뽑힐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원하기에 따라서는 자신이 킹메이커로 나설 정도의 영향력은 충분히 갖고 있다.

당연히 당내에서뿐 아니라 재계나 관계에 까지도 고른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한편으로는 여당에도 두루두루 인맥을 가지고 있는 유연한 사내이기도 하다.

그런 현 부의장에게 이번 건수가 넘어온 것은 역시 그가 가지고 있는 인맥 때문일 것이다.

워낙에 큰 건수이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세력이 필요했고, 그런 교통정리를 위해서는 거물급 정치인이 끼어 있어야 했다.

현 부의장은 그 거물급 정치인 소리를 듣기에 모자람 없는 이였다.

“네. 틀림없습니다. 이미 유전자 검사도 끝냈습니다.”

비서관이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혹시라도 그 류 비서라는 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히 국회부의장을 상대로 사기를 칠 생각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에게 류 비서관을 연결해 준 당사자가 다름 아닌 대양 그룹 류 회장의 심복이니 더욱 신뢰가 갔다.

“그래. 그래서 이제 법정으로 끌고만 가면 된다는 거지?”

“맞습니다.”

“류 회장은 정신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는 게 확실하고?”

“네. 주치의 말로는 이제 숨넘어갈 날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가 유류분청구를 하게 될 거고.”

“그 친구까지 형제가 모두 다섯입니다. 유언장 여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류 회장 재산의 10%는 받아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10%의 재산은 아님이 명확하다.

“그럼 이제 유언장을 가지고 있는 오 변호사가 문제로군.”

“네. 오 변호사도 꼭 들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검찰을 압박해서 그 세 형제 중 적어도 둘 이상은 반드시 구속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알겠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한 번 지켜보세.”

현 의원이 국회부의장이라는 자리를 거저 얻어 낸 사람은 아니다.

아주 작은 행보 하나하나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기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고, 다시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물론 그가 원하는 자리는 회기 내내 욕만 먹어야 하는 국회의장 정도가 아니다.

“대양자동차 류근호 사장을 구속시키라고요?”

대양 그룹 관련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 함범규 검사가 놀란 표정으로 물어 보았다.

“뭘 그렇게 놀래? 이 정도면 솔직히 구속시켜도 될 사안 아니야?”

특수1부장이 여유 있는 얼굴로 되물었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아직 구속까지 가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미진한 부분을 빨리 해결하라는 거 아냐? 얼마 전에 압수수색 하면서 자료 전부 가져오지 않았어?”

“미국 쪽 자료들이 아직 부족합니다.”

“꼭 미국 쪽 자료가 있어야 해? 지금 있는 걸로 우선 구속부터 시키고 보라고.”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라인을 타고 살살 가자고 이야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 무시해. 이번에는 제일 위에서 내려온 거니까.”

특수1부장이 손가락을 위로 올려 쿡쿡 찌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 함 검사는 자신의 상사가 가리키는 제일 위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인지, 아니면 총장인지, 그도 아니라면 더 위쪽인지.

하지만 그걸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다.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최선만으론 안 되는 거 알지?”

특수1부장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재차 당부했다.

“알겠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함 검사는 어쩐지 이번 일이 자신의 장래를 결정짓는 엄청난 기회가 되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특수1부장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단순히 중앙지검 수준의 오더는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최소 총장, 그도 아니면 VIP다.

이건 굉장한 기회다. 재벌그룹 총수에 버금가는 거물을 수감시킬 기회를 손에 넣은 검사가 얼마나 될까?

대양자동차 사장을 구속하면 10대 일간지 전체에 자신의 얼굴이 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것만으로도 지역구 한자리는 보장된다. 더군다나 일만 제대로 처리해서 그 제일 윗분을 만족시키면 앞으로도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았다.

“그래. 이번 일 끝나면 자네 앞날이 환하게 피는 거야. 알지?”

상사도 그걸 잘 알고 있다는 듯 직접적으로 희망을 보여 준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대양전자 사장도 집어넣는 거야.”

오더는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오더를 듣는 순간 함 검사는 얼굴이 굳어졌다.

“대양을 버리는 겁니까?”

대양의 두 축인 자동차와 전자 사장을 둘 다 집어넣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재계 인사가 아니라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무래도 그렇게 결정이 난 모양이야.”

“이거…… 후폭풍이 장난 아니겠네요.”

평소라면 묵묵히 ‘알겠습니다’ 하고 끝났을 터이지만, 이번에는 그리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대기업 총수급 한 명을 넣는 것과 대기업 해체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함 검사는 어쩌면 자신이 대양 그룹 해체 과정에서 피를 보게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하고 말았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자넨 그저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돼. 그러면 알아서 자넬 스타 검사로 만들어 줄 테니까. 하하.”

특수1부장이 다시 한번 함 검사를 북돋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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