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37화 (137/363)

137화 티 파티

“앞을 내다보는 눈을 지닌 사람은 아주 드물죠. 그리고 유진은 그런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데이비드는 얼굴에 새겨놓은 듯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유진을 극찬했다.

“전부터 두 분 형제를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었습니다. 미래를 보는 안목이라는 점에서 두 분의 혜안은 아메리카 제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늘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두 분처럼 5년, 10년 뒤의 일까지 내다보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더군요.”

유진도 데이비드 코크 못지않게 상대의 면목을 살려 주는 것에 능숙했다.

그리고 사실 코크 형제의 능력에 대해서라면, 없는 말도 아니다. 유진이 한 극찬으로도 모자랄 만큼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코크 형제는 빌 게이츠나 래리 엘리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대단한 기업인이다.

처음 부친에게 물려받았을 때의 코크 인더스트리즈는 연간 매출이 2,000만 달러 수준의 평범한 원유 정제 회사에 불과했다.

형제는 수십 년에 걸쳐 주력인 정유 회사는 물론이고 원자재 거래, 섬유, 비료, 펄프, 화학, 건축 자재, 목장, 금융, 전자 부품, 식품 등에 이르는 아주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을 인수해 덩치를 키워 왔다.

그리고 현재는 60여 개의 계열사에 10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미 몇 년 전 코크 인더스트리즈의 매출은 무려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비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실적을 발표하지 않는 코크 인더스트리즈의 정확한 가치를 외부에서 측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단지 매출만으로 볼 때 코크인더스트리즈는 형제가 물려받았을 당시에 비해 무려 5,000배에 가까운 성장을 이루어 냈다.

이런 성장의 대부분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에 성장 가능성 높은 분야에 끊임없이 진출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코크 형제는 종종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렌 버핏과 비교되고는 한다.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워렌 버핏 버금간다는 평가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무척이나 기분이 좋군요. 하하하.”

데이비드는 사람 좋은 얼굴로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형제가 50년 가까이 힘들게 만들어 낸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을 겨우 3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이루어 내었다는 것을 보면,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솔직히 유진이 트럼프와 절친한 사이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 정도입니다.”

데이비드가 유진을 만나고자 한 이유야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그렇게 지지를 하고 계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코크 형제가 이번 선거에서 지지한 사람은 테드 크루즈였다. 하지만 공화당 후보로 트럼프가 선출되자 마지 못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이들이라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혹은 자신이 소외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의 배후에는 오바마 행정부 내내 반대 운동을 펼쳐온 티 파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강경한 보수적 시민운동인 티 파티는 오바마의 의료 정책에 반대하면서 나타났고, 오바마의 모든 정책을 사회주의, 혹은 더 나아가 공산주의라 비난하며 맞서 왔다.

수년에 걸친 티 파티의 정치적 운동은 자신들이 소외당하고 있다 생각하는 백인 남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결국은 그들을 결집시켜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티 파티의 배후에는 바로 코크 형제가 있었다.

“도널드는…… 솔직히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바마만큼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데이비드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스스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트럼프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는 사업가이지 결코 제대로 된 정치인은 아닙니다. 사실 나라를 운영하는 데에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있지요.”

데이비드 코크는 노골적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무시했다.

사실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런 그가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려면, 아주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트럼프 주위에는 그럴 만한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지요. 하하!”

데이비드는 아주 상쾌하게 웃었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이미 도널드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 중 상당수는 코크 형제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당장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부터가 그렇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공화당 내에서는 진보적인 인사이며 민주당의 텃밭인 뉴저지 주의 주지사를 역임한 크리스 크리스티를 러닝 메이트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정치 공학적인 문제로, 트럼프는 티 파티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며 오랜 시간 동안 코크 형제의 후원을 받아 온 마이크 펜스를 자신의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

물론 여러 가지 타당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실질적인 이유라면 코크 형제의 압력 때문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뿐 아니다. 도널드가 대통령이 되고 6대 CIA 국장으로 지명한 마이크 폼페이오 또한 공공연하게 코크 가문의 사람이라 불리고 있다.

이외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크 형제의 지원을 받아 정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코크 행정부라 불러도 그리 틀리지 않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실력자들이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는 게 전부였어요. 그러니 그자가 대통령 놀이를 마음껏 하게 해 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데이비드는 이미 자신이 트럼프 행정부를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움직일 수 있다 믿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정치계에서 코크 형제처럼 기업인이면서 정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세기의 거부라 불린 록펠러도, 미국의 금융은 물론이고 경제계를 손에 쥐고 흔들었던 존 피어몬트 모건도 정계에 가진 영향력은 지금의 코크 형제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루스벨트 이후 80여 년간 대통령의 정책을 자문해 왔고, 재무장관은 물론이고 예산관리청(OMB)장 등 경제 부처의 요직을 독식하고 있는 골드만삭스도 역시 지금의 코크 형제의 위세에는 미치지 못한다.

골드만삭스가 단순히 재무 관련 인재를 공급하는 데에 비해, 코크 형제는 오랜 시간 동안 공화당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공을 들여 왔고, 이번 트럼프의 당선으로 그 꿈을 거의 이루게 되었다.

코크 형제의 행보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 대선의 진정한 승자는 코크 형제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을 정도이다.

“앞으로 아주 많은 일을 해야 할 겁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저지른 어리석은 정책들을 고쳐나가려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니까.”

데이비드 코크는 신념으로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데이비드 코크와 찰스 코크 형제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정치적인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노력과 자금을 아끼지 않은 이념가이기도 하다.

두 형제는 최소한의 정부와 개인의 재산권, 신체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자유지상주의를 실현하고, 미국에 뿌리내리기를 원해 왔다.

형제는 국가가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고, 서민들에게 복지를 베푸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국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가능하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동성 결혼이나 낙태, 성매매 합법화를 지지하고, 미국의 해외 파병을 반대한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보수주의와는 꽤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다.

하나 결과적으로는 기업이나 부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서민들에 대한 지원을 줄여 그들이 최저한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점에서는 많은 나라의 보수정당 이념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코크 형제는 단순하게 그러한 정치적 사상을 밝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을 미국에 펼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해 왔다.

주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자금을 사용해서다.

수십 년 전부터 학자들에게 많은 자금을 지원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도출하도록 유도했고, 다양한 시민 단체와 정치인들에 대해 엄청난 액수를 지원해 왔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티 파티는 사상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다른 사회 운동과는 비교되지 않을 파괴력을 지니고, 저학력 미국인들의 사고를 잠식해 갔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다시 엄청난 자금을 사용해 수천 명에 달하는 조직을 만들어 전국에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활동을 펼쳤다.

만일 티 파티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트럼프의 힘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도 후보 유세 기간부터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기 전부터 코크 형제의 환심을 사려 노력했었지만, 코크 형제는 애초에 트럼프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보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상을 지닌 테드 크루즈나 부시 가문의 새로운 희망인 잽 부시를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널드는 코크 형제와는 달리 아무런 사상적 기반 따위 갖고 있지 않은 남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승리뿐이고, 그걸 위해서라면 사상 따위는 얼마든지 갈아입을 수 있는 패션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가 한때는 민주당원이었고, 16년 전에는 개혁당 후보로 나서려 하다가 승산이 없다는 계산에 포기했으며,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승리를 위해서는 역시 공화당이라는 생각에 당적을 옮긴 것을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상적 기반이 없으니, 행동에도 중심이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는 것은 그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업가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니 이제 중요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유진 바로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늘 10년 앞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두 형제는 이제 유진이야말로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라 생각하는 듯했다.

“제가 어떤 문제가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데이비드와 찰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유진은 짐짓 모르는 체하며 되물었다.

“당신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듣고 싶었어요.”

만나고 나서부터 단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데이비드가 물어 왔다.

“평범한 기업가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많은 돈을 벌자. 그리고 가능하면 세금은 적게 내면 좋겠군요.”

“흠…… 유진은 본인이 그저 평범한 기업가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요?”

“뭐. 운이 무척 좋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렇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아직 외부인의 신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고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금의 행보가 너무나 정치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데이비드가 서서히 본심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