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38화 (138/363)

138화 거버넌스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해 온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널드 말고도 적지 않은 정치인들과 유대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유진은 여전히 여유 있게 대답했다. 데이비드 코크나 찰스 코크가 아니더라도, 유진이 다수의 정치인에게 이런저런 방식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유진 자신이 지금까지의 행보를 누군가에게 감춘 적도 없고, 때로는 아주 노골적으로 스카우트해 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러 외부에 알리기 위한 모습이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난 외부인입니다. 그리고 미국 경제의 중심지에서 아주 큰 행운을 얻은 외부인이지요.”

유진의 말에 데이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언젠가는 나도 시민권을 받고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행사할 겁니다. 하지만 그때 가서도 여전히 아웃사이더라는 점만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유진의 말에 데이비드는 잠시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뿐이더군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좀 더 영향력 있는 친구가 많다면 좋겠지요.”

“좋아요. 그렇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유진은 정치적인 영향력은 갖고 싶지만, 그걸 행사할 생각은 없다는 거라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런 위험한 행동은 별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무리가 있을까요?”

“정확히 어떤 관심사인지 밝혀주시면, 답변을 드리지요.”

“사업에서의 최대한의 자유와 최소한의 세금, 그리고 국경 없는 무역, 궁극적으로는 거버넌스의 민간 이전이 되겠죠.”

우파 자유주의자들의 이상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 활동에 해가 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하며, 그걸 넘어 정부의 의미조차 없어지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SF에서나 보는 기업이 정부를 소유하는 상태까지도 원하는 것이다.

“멋진 이상이로군요. 물론 그렇게까지 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기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겠군요.”

물론 소수의 기업가를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굳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맞아요. 인간의 완벽한 자유를 위해서는 그런 길로 나아가야 하지요.”

데이비드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우리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군요.”

데이비드가 손을 내밀었다. 유진도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유진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렇게 유진은 미국의 정관계에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두 형제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유진은 그렇게 머지않은 미래에 데이비드가 자신이 그리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길어봐야 2년, 혹은 3년일 것이다.

더군다나 트럼프를 통해 코크 형제가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도 또한 잘 알고 있다.

데이비드 코크와 찰스 코크의 예상은 이번에만은 완전하게 빗나간다.

그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명확한 비전 따위 없는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막무가내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다루는 방법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신보다 눈에 띄는 사람이라면 아주 질색인 사람이다.

편협함과 유능함이 합쳐지면 재앙을 만들게 된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과 긴장을 유도해 백악관을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부하 직원이라해도 라이벌로 간주한다.

그로 인해 과격한 사상을 지니고 있지만, 나름 유능하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해고당한다. 그중 상당수는 코크 형제의 영향력 아래 있던 사람들이다.

코크 형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놀이나 할 것이라 간주했지만, 도널드는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재선을 위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코크 형제가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자유무역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어 버리는 행동도 있다. 코크 형제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는 사태이다.

결과적으로 길어야 2년 내로 트럼프와 코크 형제 사이는 완벽하게 갈라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유진은 코크 형제가 생각하는 그런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업이 행정부를 장악하는 세상은 SF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유진이 겪어보지 못한 먼 미래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진이 알기로는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유토피아에 불과했다.

코크 형제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해 놓은 많은 투자는 그들이 바라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딱히 어느 방면으로도 세상을 이롭게 만들지 못한다.

그저 수많은 비이성주의자들을 양산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그러니 유진이 코크 형제와 손을 잡은 것은 어디까지나 귀찮은 일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는 방편에 불과했다.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다. 괜히 돈 많고 영향력 있는 노인들의 성미를 건드려 위험을 자처할 생각은 없다.

차라리 손을 잡아 주고, 그들이 가진 영향력을 흡수하는 편을 택한다.

물론 유진은 그 두 형제가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미국의 많은 백인들이 그러하듯, 코크 형제에게 유진은 그저 돈이 많은 황인일 뿐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돈이다. 그것 때문에 데이비드와 찰스가 유진에게 먼저 손을 내밀도록 만들었음은 따져 볼 필요도 없다.

그들로서도 유진과 문제를 만들기보다, 트럼프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문젯거리를 만들지 않고, 조금이나마 자신들이 그리는 미래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행동일 터이다.

그러니 양측 모두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그러하듯, 상대는 믿지 않지만 상대가 지닌 영향력을 믿고 언제라도 깨어질 수 있는 동반자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것이다.

* * *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어째서인지 유진의 일거리가 많아졌다.

데이비드를 만나고 며칠 뒤 페이팔의 창업자이며, 지금은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의 주인인 피터 틸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제법 무게감 있는 친구들을 대동했다.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회원들이 만장일치로 유진과 함께 미래를 그려 보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피터 틸이 찾아왔을 때는 유진의 암호화폐 사업에 동참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었다.

유진은 대신 페이팔 마피아들의 사업들에 충분한 투자를 원한다는 요구를 했다.

당시에는 고민해 보겠다고 하더니, 그동안 꽤 고심한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지금으로서도 유진은 그 각 기업의 주식을 적지 않게 보유하고 있는데, 거래가 성사되면 유진은 페이팔 출신 벤처인들의 사업에 창업자들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페이팔 마피아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유진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인 모양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점이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피터 틸은 어떤 이유에서 유진의 요구를 받아들였는지 감추지 않았다. 사실 감출 이유도 없다.

“아무래도 올해부터는 암호화폐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활성화가 될 것 같더군요.”

역시 뛰어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다.

유진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미 대통령과의 친분을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암호화폐 활성화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유진으로서는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이해 하반기부터 암호화폐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된 협상을 해 보죠.”

“좋습니다. 서로에게 크게 도움이 될 협상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피터 틸은 유진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협상에 참여했다.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들 말입니다.”

“개인정보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암호화폐라든지, 암호화폐 기반의 투자 프로그램이나, 대출 시스템 같은 것을 말하는 거겠죠?”

“네. 우리 회원들 모두가 새로운 금융 시장이 열리는 것에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새로운, 그리고 기존의 금융 시장을 대체할 만한 시장이지요. 그러니 그 분야를 선점한다면, 언제고 월스트리트를 넘어서는 거대한 규모의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더군요.”

창업자들은 늘 커다란 꿈을 꾸며 살아간다. 유진은 피터 틸의 말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미 유진의 개입으로 세상은 점차 변해 가고 있다. 어쩌면 때 이르게 페이팔 마피아들이 암호화폐에 뛰어드는 것으로 다시 한번 커다란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멋진 계획들을 갖고 있겠군요.”

“예. 하지만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역시 시장의 활성화, 그리고 우리가 거래소에 참여하는 거겠죠.”

암호화폐 사업에서 가장 먼저 활성화를 맞이한 분야는 채굴 산업이다. 먼저 채굴 사업에 뛰어든 선구자들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부를 손에 넣게 된다.

그다음은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한번 암호화폐 시장이 활성화되면, 암호화폐 가격의 등락에 상관없이 거래소는 아주 꾸준하고,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한국의 경우라면 한 개의 거래소가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될 정도이고, 세계적으로 보면 포브스 선정 10대 부호가 탄생할 정도이다.

여전히 피터 틸은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그쪽은 제 동생과 협의를 해야겠군요.”

“알겠습니다.”

한동안 유진과 유성 형제, 그리고 피터 틸과 페이팔 마피아들 사이에 줄다리기 협상이 진행되었다.

무척이나 많은 주체들이 참여한 이 다자간 협상에서 유진은 페이팔 마피아들의 사업 지분을 획득하는 대가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페이팔 마피아들은 유성의 암호화폐 거래소에 참여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다.

유성은 자신이 구축한 암호화폐 거래소 생태계에 대한 지분을 결코 헐값으로 넘길 생각은 없었다.

이미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다.

결과적으로 유진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페이팔 마피아를 거쳐 유성에게로 갔다가, 도로 유진에게 돌아온다.

그 대가로 유진은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수십 개에 달하는 유망한 IT기업에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는 자금 부족으로 힘들어하면서도 기어이 끼어든 일론 머스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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