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47화 (147/363)

147화 검은 머리 외국인

“미국 시민권?”

“그렇다고 합니다.”

“아직 영주권도 획득하지 못한 걸로 아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상당히 친밀한 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뭔가 특별 조치가 있을 듯 보입니다. 더군다나 공식적으로 세계 제일의 부자이니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반발은 없는 모양입니다.”

자리에 모인 정치인들 사이에 약간의 웅성거림이 생겨난다.

“아니, 그럼 우리 국익은 어떻게 하고?”

“사실 우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재산도 전부 미국에서 벌어들인 거고, 당사자가 원한다면 말릴 수도 없구요.”

“한국 국적은 포기한다는 거지?”

“한국의 국적법상 어쩔 수 없습니다. 해외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으니까요.”

대화를 나누던 이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렇게 되면 곤란한데?”

“곤란하지요. 하지만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야. 어떻게든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해. 그자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이 뉴스를 타면 반발이 심할 거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방법을 찾아보게.”

정치권, 특히 여당에서는 유진의 미국 국적 취득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갔다.

월스트리트의 세계적인 부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상징성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유진이 계속 실적을 쌓아 주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유진이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적지 않은 반발이 나올 것이 명백했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내국인이 국적을 포기하는 것에 민감하다. 올림픽 대표로 나서기 위해 국적을 바꾸는 것에도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 흔한 일이다.

그리고 여당의 대책이 논의되고 있던 그 순간, 언론사들은 벌써 유진의 미국 시민권 획득에 대해 보도를 시작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유진이 외국인이 되어 버리고 한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필이면 500조 원의 투자에 대해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상당히 있었다. 유진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장소가 미국인 만큼 당연히 미국 국적을 보유하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의견이나, 미국에서 돈을 벌어 한국 경제에 투자하고 있으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애국자라는 소리들이다.

하지만 당장은 그런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국적을 포기하는 것이 불쾌하다는 의견이 상당수였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

“그게 무슨 뜻인가요?”

유진이 자신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내뱉은 단어를 들은 요안나가 물어 왔다.

“외국 국적을 지니고 한국에서 경제적 이득을 누리는 한국계 혈통을 부르는 멸칭이야.”

“외국 국적을 지닌 한국계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멸칭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지도 않아. 외국 국적을 지니고 외국에서 활동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니까. 외국 국적을 지니고 한국에 있으면서 외국인으로서의 특혜는 받고, 지불해야 할 비용은 내지 않으니 문제가 되는 거야. 한국에서 살면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거나, 외국인으로서 감세 혜택을 받으면서 한국의 의료보험 혜택도 받는 경우도 꽤 있지.”

한국의 경우 고액 소득자의 소득세는 최대 45%에 이르지만, 외국인이라면 19%의 단일 세율로 납부하는 특례까지 받는다.

5년 한정이라고 하지만 명백하게 내국인에 비해 훨씬 더 큰 혜택을 받는 것이다.

“확실히 그런 경우라면 문제가 되겠네요. 하지만 보스는 그런 경우와는 다르잖아요? 한국에서 혜택을 받는 것도 없는데.”

“다분히 감정적인 문제이니까. 자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을 좋아하는 나라는 거의 없으니까.”

“그렇기는 하죠.”

“더군다나 내가 한국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아무래도 보스의 이미지가 적지 않게 훼손되겠군요.”

요안나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유진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어요?”

요안나는 유진이 한국에 꽤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유진은 딱히 한국에서의 그러한 여론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세종 홍보 측을 동원해 다양한 여론전을 펼쳤을 것이다.

한국의 언론에 갖고 있는 영향력이라면 지금의 여론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때로는 아무 대책도 없는 편이 최선일 때도 있지.”

요안나는 유진의 그러한 태도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대해 무언가 이견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그가 다른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할 때는 늘 무언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곤란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의 일을 도맡고 있는 김환이 연례 보고의 끝에 그렇게 하소연을 해 왔다.

“보스의 국적 포기가 이렇게까지 논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들 진짜냐고 한마디씩 물어보고는 합니다.”

김환이 말한 다들이란 한국의 SS파트너스와 SS벤처스에서 투자한 수많은 기업들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유진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적지 않은 어드벤티지를 얻고 있었다.

유진이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이 쏠리고,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유진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비난 전화가 종일 끊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몇몇 곳은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 하더군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꽤 많기는 하지.”

“단순하게 할 일 없는 사람이라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아요. 아무래도 세력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적이 꽤 많은 모양이야.”

사실 작금의 유진에 대한 비난은 도를 지나치고 있었다. 한국에서 경영 활동을 이어가는 외국계 한국인은 적지 않다.

대기업 사주 일가 중에도 이중국적을 지닌 사람은 상당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이중국적자나 한국계 외국인의 영리 활동에 대해 문제 삼는 경우는 군대 문제를 제외하고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독 유진에게만 아주 날카로운 잣대로 비난에 나선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개중에는 일반 시민들은 물론, 사회단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한테 투자받은 기업들의 리스트를 게시판 같은 곳에 올리고, 항의 전화를 촉구하는 글들이 꽤 많습니다. 명백하게 기업 활동에 대한 억압입니다. 우리 변호사가 이 정도면 업무 방해로 고소해도 될 정도라 하더군요.”

“법적 조치가 필요한가?”

“그렇다고 당장 그럴 수만도 없는 것이, 오히려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 같단 말이지요.”

“그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 하하.”

유진은 김환의 하소연을 들으면서도 여유를 버리지 않았다.

“관계사들에게는 적당히 다독거려 주도록 해. 어차피 오래 가지 않을 테니까.”

“무슨 수를 쓰신 건가요?”

“아니. 우리가 그럴 필요야 없지. 나보다 더 다급한 쪽은 따로 있을 테니까.”

“네? 아! 하기는 제일과 다산 쪽이 오히려 문제겠군요.”

그리고 정말로 언론에서는 오히려 유진을 옹호하는 기사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체로 미국에서 벌어들인 거액을 한국에 투자하는 것으로 한국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주를 이뤘다.

한국 언론이 대체로 대기업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런 기사들이 올라오는 배경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몇몇 방송국에서는 강유진의 시민권 획득에 대해 특별 프로그램까지 편성했다.

“이렇게 무책임한 비난으로 강유진 회장을 자극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무책임하다니요?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혜택만 누리고, 제대로 된 의무는 다하지 않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강 회장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군대도 다녀왔고, 한국에서 사는 동안은 대기업에 다니면서 세금도 전부 납부했는데요.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딱지를 붙여 놓고 하지도 않은 행위로 비난을 하는 것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토론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논쟁에 참여한 패널 구성을 유진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의 경우는 교수나 경제인들로 채워 놓고 반대 의견을 내는 쪽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섭외해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한국인도 아니면서 그렇게 큰돈을 투자한다면, 결국 한국 경제가 외국인에게 종속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제일전자 주주의 과반이 외국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글로벌 경제에서 주주의 국적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제대로 이해는 하고 계시는 건가요? 주주의 국적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 합니다. 당장 강 회장이 한국 기업에 수백 조에 달하는 투자를 계획한 것만으로 주가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년 동안 계획대로 투자가 유치된다면 한국의 GDP가 얼마나 오를지 알고 있습니까? 그런데 혜택이요? 무슨 혜택을 받는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한국 경제가 이대로 강유진 한 사람에게 종속되는 것을 두고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옹호 측 패널은 이젠 답답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강 회장이 세계 금융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한국 경제에 투자하는 것이 그의 국적과 관계가 있는 일입니까?”

“그건…… 여하튼 결과적으로 보아 한국 경제가 미국 월가 투기 세력에 완전하게 종속되어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국 주식은 외국인이 사지 못하게 막으면 되겠군요. 제일전자 주식도 한국 사람만 사고팔고 하면 될까요?”

감정적으로 유진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패널들은 합리적인 명분과 명백한 수치를 들고 나오는 반대 패널의 의견에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했다.

“만일 이렇게 과도하고 무의미한 비난으로 강 회장이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당장 한국 주식 시장에 패닉이 올 겁니다. 그리고 한국 경제가 영향을 받게 되겠지요. 한편으로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 또한 한국 주식에 대한 투자를 줄일 거고요.”

방점을 찍은 것은 유진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협박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그가 공급하기로 한 500조 원의 투자가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명백한 협박이었다. 한국 GDP의 50%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의 투자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말은 그날로 대다수 언론이 받아 실었다.

“이래서야 꼭 내가 협박이라도 한 거 같잖아.”

유진도 그 프로그램은 지켜보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달리 대단한 이벤트가 없어, 한국의 특별 프로그램을 볼 여유는 있었다.

“그러게요.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 아닌가요?”

그동안의 학습으로 요안나는 한국 프로그램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외부의 비난이 있건 없건, 한국 경제에 대한 투자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이런 비난이 계속되었다면 어떠한 조치를 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유진이 약속한 500조 원은 그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먼저 겁을 먹도록 만들었다.

유진이 단 한 번의 연락도 넣지 않았지만, 언론에서는 벌써 자기 검열에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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