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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48화 (148/363)

148화 절대적 영향력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은 보스에 대해 기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소동을 지켜본 모니카가 소감을 말했다.

“보스가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길 원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보스가 마음이 돌아서지 않을지 두려워하는 거로군요.”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언론 등을 통해 대기업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기에 대기업에 불리한 정책이나 법적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자신들의 삶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강요받아 왔기 때문이지.”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대기업 집단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진다는 점에서는 사실 비슷한데, 유독 한국의 경우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대기업 총수에 대해 관대한 것은 사실이에요.”

“한국의 경우 보수언론의 비중이 훨씬 더 높고, 경제지가 일반 언론 만큼이나 비중을 지니고 있어 대기업에 관대한 기사를 많이 싣기 때문이기도 해.”

수십 년 전의 언론들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양산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고, 군부 독재가 끝난 뒤로는 주로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들을 싣는 것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바꾸어 왔다.

그리고 지금의 언론들은 유진이 지닌 부의 크기 때문에 유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알아서 노력하고 있었다.

이는 유진과 손을 잡은 제일 그룹과 다산 그룹의 영향도 있겠지만, 유진이 한국에서 투자 중인 백여 개의 기업들의 홍보를 위해 막대한 홍보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언론은 철저하게 광고비로 수지를 맞추기 때문에, 더 많은 홍보비를 사용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싣는 것이 당연했다.

더군다나 유진이 5,000억 달러라는 터무니없는 투자액을 말했으니, 앞으로 유진이 한국 경제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될 것인지는 계산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이미 한국 언론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제일 그룹과 다산 그룹이 한 해에 사용하는 마케팅 비용은 이미 지난해에 14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유진의 투자로 이 두 그룹이 매년 집행하게 될 홍보비는 더욱 커질 것이 틀림없다.

언론사들로서는 국내 광고비의 절대적 지분을 가진 두 대기업과 한 명의 세계적 부호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생존이 위험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진은 작금의 사태에서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언론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이제 유진이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는 문제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거론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유진이 투자하기로 한 5,000억 달러가 한국 경제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관해서만 보도하고 있을 뿐이다.

“보스의 인기가 연예인 못지않네요. 하기는 당연하겠죠. 개인이 한 국가에 5,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이겠어요? 단기간에 GDP를 50%나 올리겠다고 공언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나 같아도 지지하겠어요.”

연예인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시대이다.

딱히 한국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자국 출신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에 대해 열광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물며 유진처럼 단순한 명성 이상의, 세계 제일의 부호라는 자리를 차지한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굉장한 자부심을 주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유진이 한국의 국적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에 그렇게나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기도 하다.

유진이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다는 소식은 그가 더 이상은 한국인의 자부심이 아니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5,00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은 그런 비난의 목소리를 한순간에 가라앉힐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 왔다.

“그런데 강 회장이 꼭 한국 국적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유진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자신에 대한 논란을 남의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유진의 국적 문제로 아주 격렬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복수 국적이 허용되지 않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특별귀화자 같은 경우가 그에 해당합니다.”

“특별귀화자라는 게 뭐요?”

모든 국회의원이 법률에 대해 정통한 것은 아니다. 특히 국적법 같은 경우 대개는 관심도 없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접하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국가유공자의 후손이라든지, 한국인을 위해 특별한 공헌을 한 외국인, 혹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등 특정 능력을 보유하고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 예를 들어 운동선수나 과학자 등에게는 예외적으로 복수 국적을 허용합니다.”

“특별한 재능이나 기술을 가진 운동선수나 과학자는 이해가 가지만, 강유진이 그런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 외국인에는 경제인이나 경영인도 포함됩니다. 특히 강 회장처럼 투자기관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현격한 실적을 낸 사람이라면 문제없이 국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고 지금까지 3명이 한국 국적을 수여 받았습니다.”

한 국회의원이 그럴듯한 의견을 내어놓았으나, 곧바로 반발이 이어졌다.

“그거, 외국인의 경우이지? 하지만 강 회장은 한국인이었다가 미국인이 되는 경우인데?”

“사실 이 경우 법적으로는 5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강 회장이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2년쯤 뒤에 신청하면 한국 국적을 회복하게 됩니다.”

“에이! 그건 아니지. 지금 당장이 문제인데, 2년 뒤에나 신청할 수 있는 게 무슨 소용이야?”

“차라리 우리 당에서 강유진에게 복수 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을 발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진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것에 열심인 것은 야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유진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방법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강유진의 투자 계획으로 여당에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또 대선에서도 여당에게 밀리게 될 것이 확정적이다.

유진에게야 그저 언제고 거쳐 가야 할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야당으로서는 유진의 미 시민권 획득이 절호의 기회였다.

“한 사람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든다는 게 제정신입니까?”

당연히 당내에서 반발도 나온다.

“단순히 한 사람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문제요? 오 의원님 고견으로는 강 회장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게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오?”

“당연한 거 아니에요? 강 회장이 한국인으로 남아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국격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데? 특별법이 아니라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한국인으로 남게 만들어야지!”

상식적인 발언을 꺼낸 초선 의원은 주위 다른 의원들의 득달같은 비난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유진 한 사람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심각하게 고려되는 기상천외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 * *

“특별법? 제정신이야?”

한국의 야당에서 온 연락을 받은 유진은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현지에서 자신의 국적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인 논란이 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법을 제정하면서까지 국적 포기를 막으려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일이네요. 그만큼 보스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말이겠네요.”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특별법은 너무 나간 거 같네.”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받아들이실 거예요? 뭐, 미국 측에서야 아무 문제도 되지 않고요.”

미국은 시민권자의 복수 국적에 대해 크게 관여치 않는 사회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사실 미국인 대부분이 두어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민자 출신이고, 또 근간이 되는 유럽의 경우에도 복수 국적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니 더욱 그러하다.

유진이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면서 동시에 원래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해서 트집 잡을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과 미국 복수 국적을 갖는 거야 상관은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특별법까지 제정해서 남아 있는 건 곤란하지.”

유진은 야당의 제안이 마땅치 않았다. 유진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말은 그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의미이다.

지금 당장이야 별문제 없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상적이지 않은 특혜는 언제고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래도 거절해야겠어.”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유진은 바로 야당 측에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다 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괜히 특혜 시비에 휘말릴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현행법에 따라 2년쯤 뒤에 국적 회복을 시도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저희 당에서 강 회장님의 국적 회복 절차에 문제가 없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저도 감사하겠습니다. 언제고 뉴욕에 들러 주시면 이번 사태에 도움을 주신 것에 관해 인사라도 드리고 싶군요.”

유진은 상대의 배려에 대한 치하를 잊지 않았다.

유진에게는 큰 의미 없는 해프닝이지만, 야당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절박한 사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저희 당 대표께서 한미 의원 회담 건으로 방미 계획이 있습니다. 그때 뉴욕에 찾아뵈어도 될까요?”

유진에게 연락을 준 의원은 유진의 인사치레에 대뜸 약속부터 잡으려 했다.

“물론이지요. 언제라도 방문해 주시면 환영하겠습니다. 의원님께서도 함께 오시지요.”

유진은 상대가 꽤 영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말로 의원 회담 따위가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체면 따위는 밀어놓은 채 실리를 찾는 모습을 보면 꽤 장래가 기대되는 사람이다.

5,000억 달러의 투자 계획이 발표된 이후로 유진의 영향력은 이제 한국에서 절대적이었다.

이런 때에 유진과 만나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가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은 계산할 필요도 없다.

* * *

“당장에 방미 계획을 잡으셔야겠습니다.”

유진에게 연락을 넣은 의원은 야당의 2선급 의원으로, 야당 대표의 계파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유진이 환담하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대표에게 연락을 넣어 미국으로 가자고 종용했다.

“특별법 발의가 무산된 건 아쉬운데.”

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는 대표로서는 유진의 국적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는 성과가 필요했다.

특별법을 발의하면 표결을 통과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다. 야당이 발의했다 해도 여당 측에서 반대할 이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먼저 발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작은 일로 당장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면서까지 그런 일을 추진할 수야 없다.

“그래도 방미 도중 강 회장과 회담에서 무언가 성과를 얻어 내면 특별법 따위보다 훨씬 더 나을 겁니다.”

“하긴 그렇지. 그 사람 아직 젊은데도 아주 영악해. 우릴 부른 걸 보면 뭐라도 챙겨 줄 생각이 있는 모양이야.”

정치권에서의 유진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야당의 대표는 벌써 유진에게 받을 선물을 상상하며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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