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50화 (150/363)

150화 귀저우 마오타이와 바이트댄스

“반갑습니다. 유진입니다.”

이방카 트럼프와 만나고 며칠 뒤, 유진은 중국에서 날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장시웨이(张锡维)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먼저 인사를 한 사람은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쉬양톈(许仰天)입니다. 제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이렇게 초대해 주신 것도요.”

“장이밍(张一鸣)입니다. 명성이 자자한 강 회장님을 볼 수 있게 되어 영광이군요.”

뒤를 이어 다른 두 사람 모두 정중하게 초대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처음 인사한 장시웨이가 정중하면서도 어딘지 조금은 딱딱한 태도였던데 반해 둘은 훨씬 더 격식을 차린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 모두 30대 초반에 큰 성공을 거둔 젊은 기업가들이지만, 중국 정부에 아주 큰 배경을 지닌 장시웨이와는 달리 다른 두 사람은 특별한 배경 없이 자수성가 중인 벤처 사업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중국인들의 인식상 정권에 관련된 사람과 함께할 때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이 창업한 회사들은 모두 유진의 자금을 적지 않게 받아들여, 유진이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저야말로 중국 경제의 미래를 이끌 훌륭하신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 무척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세 분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유진은 세 사람을 위해 아주 화려한 만찬의 자리를 마련했다.

중국인들에게 식사 초대는 단순한 친목 이상의 의미가 있다.

차려진 음식이 화려하고 비싼 것일수록 초대 당사자의 체면이 살고, 초대받은 당사자의 면목이 선다.

그 때문에 공식적인 만남은 대개 화려하기 그지없는, 때로는 맛보다는 그 재료와 음식의 가격이 훨씬 더 중요한 망측한 상차림이 차려지기도 한다.

중국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그토록 다양하고 희귀한 것이 많은 것은 중국인들이 진미를 즐기는 태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남들은 구하기 어려운 비싼 재료를 사용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려는 목적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진이 두 사람을 위해 준비한 것은 그런 중국의 요리가 아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요리들이었다.

“굉장한 만찬이로군요. 하이난 지판은 싱가포르 대표 음식이고, 인도네시아의 른당에, 일본의 초밥, 꼬꼬뱅, 마살라…… 미국은 역시 치킨인가요? 재미있는 요리상이로군요.”

장시웨이가 먼저 차려진 상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세 사람이 앉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식탁에 수십 가지가 넘는 음식들이 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만한전석(滿漢全席)을 최고의 연회 요리라고 하더군요. 저도 한 번 흉내를 내 봤습니다. 원래라면 며칠 동안 이어져야 하겠지만, 바쁘신 분들을 모셨으니 이 정도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한전석이라. 과연 현대식으로 한다면 이야말로 만한전석의 정신을 계승한 거겠군요.”

만한전석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황제가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를 함께 내는 연회상을 의미했다.

비록 황족과 귀족은 만주족이 차지하고 있지만, 피지배자인 한족과의 화합을 바란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유진이 차린 상은 각국의 최고의 요리를 모은 것은 아니지만, 각국 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요리만을 하나씩 모아 놓았다.

“세 분의 사업이 중국을 넘어서 세계 각국의 수십억 시민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중국과 세계의 가교가 되어 주실 분들이라 생각하며 자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우선 가볍게 한 잔씩 하시지요.”

“1945년산 로마네콩티입니다.”

유진이 말을 마치자, 대기하고 있던 소믈리에가 병을 들어 손님들에게 보여 주고 뚜껑을 열었다.

“전설적인 로마네콩티를 직접 마실 수 있다니, 이거 오늘 오지 않았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네요.”

소믈리에가 따라 주는 와인을 바라보며 장시웨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지금 잔에 따라지는 양만으로도 어지간한 월스트리트의 딜러 1년 연봉은 충분할 정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소더비에 나온 로마네콩티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듣기로 장 총경리께서 와인에 조예가 깊으시다고 하더군요. 마침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준비해 보았습니다.”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이제 와인에도 눈을 돌려 전 세계 값비싼 와인의 태반은 중국 사람들이 소비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비단 와인뿐 아니라, 가방 하나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들도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거침없는 성장을 하고 있다.

샤넬 가격이 매년 오르는 이유가 전부 중국인들 때문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와인을 즐기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와인은 아직 나도 마셔 보지 못했습니다.”

소믈리에가 따라 준 와인 잔을 들고, 담겨 있는 붉은 액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장시웨이가 대답했다.

현 중국 주석의 숨은 복심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는 벤처기업의 대표인 장시웨이지만, 45년산 로마네콩티를 손에 넣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물론 돈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중국인들이 명주에 쏟는 애정은 대단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술은 백 년된 와인이나 위스키가 아니라 겨우 30년짜리 마오타이 술일 정도이다.

중국의 사치품 시장은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다.

상품의 가치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그걸 살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이들이 아낌없이 돈을 푼다.

일반 서민이 애용하는 담배라면 겨우 몇백 원이면 살 수 있지만, 비싼 담배는 몇만 원을 호가한다.

담배의 풍미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게 비싼 담배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를 자랑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다.

마오타이 술의 경우는 가장 저렴한 것도 수십만 원에서, 때로는 100만 원을 넘어가기도 한다.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는 대략 몇만 원 수준이었지만, 사람들이 비쌀수록 더 사들인다는 사실을 파악한 경영진이 가격을 계속 올려, 이제는 수십 년 된 고가 와인을 넘어설 정도이다.

그로 인해 마오타이 술을 생산하는 주류업체인 귀저우 마오타이는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해 앞으로 몇 년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주류회사가 되고, 심지어는 중국 기업체 시가 총액 1위에 오르기까지 한다.

유진도 이미 귀저우 마오타이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해 놓았다. 이미 지난해부터 꾸준히 주식을 매수해 오고 있는데, 몇 년만 지나면 적어도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째서 종업원 2만 명에 불과한 주류회사가 한때 제일전자를 제칠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인지는 여전히 유진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큼 중국인들의 과시욕은 끝을 모른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두 분도 드시지요. 혹시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마오타이도 준비했습니다.”

음식은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요리들이지만, 곁들인 술만은 최고의 것들로만 준비해 놓았다.

“멋진 자리로군요. 이렇게까지 환대를 받으니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군요.”

“로마네콩티는 정말 멋진 술이지요. 특히 이렇게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술이라면 마다할 수 없겠군요.”

세 사람 모두 경제적으로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인지라, 한 병에 몇억 원짜리 대접에 기쁨을 표시하면서도 큰 부담은 가지지 않고 잔을 비웠다.

한동안 유진은 초대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음식과 술을 권하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주로 주빈에 가까운 장시웨이에 말을 거는 편이었다.

다른 두 사람도 그가 정권과 가까운 사람임을 알기에 최대한 장시웨이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장시웨이의 신분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미래의 유진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다.

유진이 뉴욕의 글로벌 그룹에 오랜 시간 근무하기는 했지만, 중국 정권의 핵심 인사들에 관련된 비사를 알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현 주석과 혈연으로 얽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가 맡고 있는 퍼시픽 인터내셔널이라는 모호한 이름을 가진 글로벌 투자회사가 중국 정부의 핵심 인사들의 자금을 상당수 굴리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종종 중국 정치계의 중심인 종난하이로 불려 간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요즈음 더우인의 기세가 아주 눈이 부실 정도이더군요.”

한동안 장시웨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엔 다른 두 사람에게도 기회를 준다.

유진이 초대한 세 사람 중 하나인 장이밍은 지난해에 출시한 SNS 어플리케이션을 세상에 알리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기대하기는 했었지만, 이 정도로 큰 인기를 얻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표현이지만, 장이밍의 얼굴에는 뚜렷한 자부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장이밍이 지난 2012년 창업한 바이트댄스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뉴스 큐레이션 사업으로 명성을 쌓아 오다가, 작년에 더우인(抖音)이라는 동영상에 최적화된 SNS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후일 틱톡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10대와 20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되는 바로 그 숏폼 동영상 플랫폼이다.

전성기에는 전 세계의 수십억 인구가 이 재미있는 동영상 SNS로 수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던 SNS 시장을 반분하는 위력적인 상품으로, 장이밍은 이 한 번의 커다란 성공으로 중국 2위의 부호 자리에 오르게 되기까지 한다.

“올해는 중국 시장에서의 성과로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의 공략에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출시한 지 아직 1년도 안 된 더우인은 그 폭발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중국 내부 사정을 고려해 보면, 중국 시장의 점유율이 사상누각과 같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많은 독재국가가 그러하듯, 중국 정부도 SNS 같은 새로운 매체가 국민들에 널리 퍼지는 것에 대해서는 늘 주시하고 있다.

대개 새로운 통신 수단이라는 것은 국민들의 민의를 모으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랍권의 민주화 열기를 이끌어 낸 자스민 혁명도 트위터 같은 SNS의 역할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아예 해외의 SNS가 중국 내에서 영업하는 것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중국 인민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미국의 SNS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행위로 간주되어 자칫하면 실형을 살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한 SNS에 대한 탄압은 자국에서 개발된 제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SNS를 서비스하는 기업들은 자사에서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오고 가는 모든 대화를 검열하고, 불순한 내용이 발견될 경우 즉시 당국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혹시라도 불순한 내용이 다수가 발견되면 언제라도 서비스 자체를 폐쇄해야 하는 위기에 닥칠 수 있는 것이 중국의 실정이다.

때문에 바이트댄스의 새로운 상품이 중국에서 성공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늘 정부 당국의 눈치를 보다가 자칫 비위에 거슬리거나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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