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Shein, 오래된 친구
장이밍의 고민은 거기 있었다. 자신이 개발한 더우인이 내국에서 인기를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같은 글로벌 서비스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내수 시장 공략과 글로벌 시장 공략의 난이도에는 무척 커다란 격차가 있다.
“더우인이 중국 시장은 확실하게 장악할 것 같고, 이제 미국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아야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미국 시장은 역시 뮤지컬리가 자리를 잡은 것 같지요? 바인이 무너졌으니, 당분간은 뮤지컬리의 독주가 이어지겠네요.”
더우인은 완전하게 장이밍의 창조물은 아니다. 비슷한 서비스로 이미 몇 년 전에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선배들이 있다.
트위터에서 서비스하다가 얼마 전 폐쇄한 바인과 지금 미국에서 대세인 뮤지컬리가 그것으로, 더우인은 그 두 서비스의 장점을 잘 버무려 놓은 후계자 격이다.
“예. 글로벌 시장 공략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뮤지컬리를 인수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유진이 슬쩍 운을 띄워 본다. 뮤지컬리도 중국의 기업에서 만든 SNS로, 벌써 미국에서만 1억 명에 달하는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그런 뮤지컬리와 경쟁하는 것보다 차라리 삼켜 버리는 쪽이 여러모로 나을 수 있다.
“흠……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지만…….”
유진의 말에 장이밍이 살짝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진은 이해 말에 바이트댄스가 정말 뮤지컬리를 인수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바이트댄스 경영진이 그걸 고려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장이밍의 얼굴을 보니 조금 놀란 표정이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지요. 필요하다면 자금은 지원하겠습니다.”
유진이 장이밍을 부른 이유 중 하나가 이걸 위해서였다.
원래였다면 바이트댄스의 지분과 현금으로 뮤지컬리를 인수하게 되지만, 유진은 전액 현금으로 지불하도록 유도하고, 그만큼의 지분을 자신이 가져올 생각이다.
“그쪽에서 원하는 가격이 얼마든 상관없습니다. 더우인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부담하지요.”
뮤지컬리에 지불해야 하는 가격만큼 바이트댄스의 지분을 받아낼 생각이니,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말씀드리지요.”
유진의 제안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 모양인지, 장이밍은 큰 고민 없이 대답했다.
“쉬양텐 씨도 요즘 무척 바쁘신 모양이더군요.”
이번에는 다른 한 사람의 손님에게 주제를 돌렸다.
“회사가 성장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글로벌 패션 기업 쉬인의 대표인 쉬양톈은 점잖게 대답했다.
중국 남부의 경제 중심지이며, 중국 의류 산업의 핵심 지역인 광저우에서 웨딩드레스를 판매하던 쉬양텐이 창업한 쉬인은 최근 몇 년 동안 아주 눈부신 성장을 이룬 패션 업체이다.
유진이 처음 투자를 결정한 이후 2년 동안 벌써 네 배에 가까운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유진이 알기로 이런 급성장은 해를 거듭하면서 세를 늘려만 가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쉬인이 중국은 물론이고 몇 년 뒤에는 미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20년이 넘어서면서 미국의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패션 쇼핑 어플리케이션의 자리를 쉬인이 차지하게 될 것이고, 한때는 아마존을 넘어서는 다운로드를 기록하기도 한다.
이러한 쉬인 인기의 비결은 다름 아닌 패스트 패션의 본질을 가장 잘 구현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SPA라 불리는 패스트 패션은 디자인에서 상품의 생산, 그리고 유통에서 소비자에게 판매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극도로 짧은 패션 브랜드를 의미한다.
기존 패션 브랜드가 디자인에서 판매까지 적어도 두 시즌, 그러니까 6개월까지의 오랜 시간이 필요한 데 반해,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길어야 한 달, 짧으면 2주일 만에 모든 프로세스가 끝난다.
생산에서 판매까지의 시간이 짧은 것에는 아주 많은 이점이 있다.
시즌이 한창일 때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추어 원하는 디자인의 상품을 바로바로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고, 처음 시장에 내놓는 상품은 소량으로 내놓고 반응을 보며 생산량을 늘릴 수 있어 재고 부담이 획기적으로 준다는 점 또한 기존의 패션 업체에 비해 엄청난 장점이다.
쉬인은 디자인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을 3일에서 5일로 단축시키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이루어 낸다.
이를 통해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패스트 패션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매일 수백 종의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한 시즌에 수천 가지, 때로는 만여 개의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쉬인을 통해 매일 수많은 새로운 디자인의 의류를 접하게 되니 매일 방문해도 새로운 옷이나 신발, 악세사리를 발견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쉬인에서 판매하는 의류의 가격은 겨우 10달러에서 비싸도 30달러 선에 불과해 아주 높은 가격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여러모로 쉬인은 중국 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을 만한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한편 쉬양톈은 회사의 이름을 자신의 성인 쉬라는 것을 살리면서도, 영어권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SheIn 이라 지어 중국의 색을 완전하게 빼 버렸다.
그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이 쉬인이 중국 브랜드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쉬인의 제품들을 구매했다.
여러모로 능력 있는 경영인이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유진도 쉬양텐이 창업한 기업에는 일찌감치 투자를 이어 왔다.
지미 탕이 이끄는 싱가폴의 벤처 캐피털을 통해 38%에 달하는 쉬인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현시점에서 쉬인의 시장가치는 15억 달러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5년 뒤에는 2,000억 달러, 그리고 다시 몇 년 뒤에는 최하 5,000억 달러 이상의 시장가치를 평가받게 될 회사이다.
이곳 한 곳만으로도 적어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이방카 트럼프 사업이 굉장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더군요.”
이번엔 쉬양톈이 오히려 유진의 또 다른 사업에 대해 거론했다.
“먼 미래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이방카 트럼프 패션이 중국 시장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나도 기쁘겠군요. 아! 물론 이방카 본인도 기뻐할 겁니다.”
“하지만 가격 정책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한계는 뚜렷해 보입니다. 가격을 조금만 낮춘다면 아마 유니클로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사업가로서 쉬양톈은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의 약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가격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이 최선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지금도 충분히 저가이니까요.”
쉬양톈이 눈치챈 것을 유진이 모를 리 없다. 이방카 트럼프 패션의 제품 가격은 한국 시장에서라면 저가이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중고가에 가깝다.
쉬양텐이 말한 것처럼 가격을 낮춘다면 지금의 기세로 보아 정말로 유니클로 이상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이방카 트럼프 패션 차이나가 너무 크게 성장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적당히 그 가족의 욕심을 만족시켜 주다가, 그들이 퇴장할 때에는 스러져야 했다.
“물론 그렇겠지요. 사실 중국 인민들이 생각하는 미 대통령의 이미지라면 싼 게 맞기는 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쉬양텐은 아쉬워하는 눈초리였다. 만일 자신이었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유진이 확실하게 선을 그어 놓으니,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중국의 인민으로서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 관련된 일에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는 편이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 뒤로도 유진은 두 기업가에게 근황을 물어 보고, 두 사람의 사업 전개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알려달라 말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네 사람의 연회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되어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만일 퍼시픽 인터내셔널에서 투자를 하시겠다면, 우리 쪽보다 조금 전 두 사람의 기업에 투자하는 쪽을 권해드리고 싶군요.”
자리가 끝나고 난 뒤, 유진은 장시웨이와 둘만의 자리를 가졌다.
“이방카 트럼프 패션 그룹 차이나에 투자는 받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장시웨이가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중국 권력자의 측근인 그는 중국에서 사업 중인 이방카 트럼프 패션에 투자하겠다고 나섰고, 당사자인 유아라는 감히 중국 권력자와 연결된 사람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기에 유진의 도움을 요청해 온 상태였다.
“조금 전 쉬양톈 총경리가 말했듯이 이방카 트럼프 패션 그룹에는 명백하게 한계가 있습니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하고 요청드린 것입니다.”
장시웨이가 요청한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중국 정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경제적인 교차점을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 삶에서는 이방카 트럼프가 아닌 그녀의 남편 소유인 맨해튼 빌딩에 대한 투자를 추진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진이 해당 빌딩에 투자하는 것으로 재러드 쿠슈너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방카 트럼프 패션에 투자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다.
“그리고 정치적 부담이라는 점도 있지요. 난 도널드 트럼프를 돕고 싶지, 정치적인 논쟁으로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진은 장시웨이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흐음…… 아쉬운 일이로군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었는데 말입니다.”
장시웨이는 선선히 유진의 설명에 납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대통령에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압박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이트댄스와 쉬인은 잠재력이 큰 기업들입니다. 두 곳에 투자하는 것이 귀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 회장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틀림없을 듯하군요.”
유진에게 회장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한국인들뿐이다. 장시웨이의 태도를 보니 유진에게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던 듯했다.
“지금까지 강 회장이 투자한 기업들은 모두 짧은 시간 동안 아주 놀라운 성과를 나타낸 곳들뿐이었지요?”
“최근에 투자한 곳을 제외하고는 그렇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중국의 기업들에 투자한 것은 많은 편은 아니더군요.”
“앞으로 더 늘릴 계획은 있습니다.”
“그러시다면 앞으로 관심 있는 기업이 생기시면 제게도 언질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시웨이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겠군요. 저도 분명 서로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유진이 유쾌한 표정으로 흔쾌히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강 회장을 제 오랜 친구로 믿겠습니다.”
장시웨이도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정말로 오랜 친구가 된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군요.”
유진도 손을 내밀어 장시웨이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장시웨이가 말한 오랜 친구(老朋友)는 그저 평범한 수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중국인들에게는 꽌시(关系)라는 관행이 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관계(關系)가 되는데, 물론 의미는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꽌시는 서로 주고받는 개념을 의미한다. 내가 받은 것이 있다면 네게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챙겨 주겠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꽤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한번 이러한 꽌시를 맺은 사람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챙겨 주는 것이 중국인들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부침을 겪으며 중국인들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무정한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리고 한 번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해 서로 돕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인들에게 인의나 예절은 만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항상 가족과 친구, 의형제처럼 꽌시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상호 호의로 베푸는 것이 당연했다.
장시웨이가 말한 오랜 친구(老朋友)는 당신과 좋은 꽌시, 일반적인 친구 정도를 넘어서는 깊은 관계를 맺자는 의미이다.
유진에게 무언가 도움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한편으로 자신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도움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유진으로서야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중국에서 받아 낼 것이 넉넉히 있으니까.
하지만 유진은 중국인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의 의도가 어떻든, 그들의 관행이 어떻든 반드시 지켜야 할 맹약 따위를 한 것도 아니다.
유진에게는 그저 필요에 의해 맺은 관계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