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54화 (154/363)

154화 금고지기

2017년의 한국은 온통 강유진이라는 한 사내에 관한 이야기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단순하게 한국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제일의 거부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일인데, 강유진과 관련된 일들은 그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했다.

당장 그가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만 해도 거액의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거대 재벌 그룹인 대양과의 분쟁, 그리고 약혼녀를 둘러싼 추잡한 이야기들부터였다.

뒤를 이어 대양 그룹의 해체,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유진과 그가 보유하고 있다는 1조 달러에 대한 진위 여부, 그리고 약속한 5,000억 달러의 투자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고 나면 언제나 유진에 대한 새로운 뉴스가 터져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 들어간 지 2년 가까이 되고 있는데도 명백하게 강유진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인사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유진이 도널드 트럼프의 호의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을 때,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국적을 포기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던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축하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며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불편하리라는 것에 대한 이해와 미국에서 벌어들인 거액을 한국 경제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5월의 어느 날, 뉴욕 맨해튼 섬의 중심부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 연회장에는 적지 않은 인사들이 모여 사교 행사를 즐기고 있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인 개츠비가 뉴욕의 저명인사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던 바로 그 장소이며, 지금까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 곳이기도 한 이 플라자 호텔 연회장은 그 명성에 걸맞게 1세기가 넘어가는 역사 속에서도 가장 화려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사교 행사를 개최한 사람은 플라자 호텔의 주인인 유진이었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이나, 맨해튼의 유지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진짜 부자들이었다.

처음 맨해튼에 입성해 트럼프 타워에서 주말마다 열던 연회는 이제 그 규모를 키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플라자 호텔의 연회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사람들을 초대해 사교를 도모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드디어 미국 시민이 되셨군요. 축하드려야 할까요?”

얼마 전 뉴욕으로 찾아와 계속해서 머무르고 있던 퍼시픽 인터내셔널의 장시웨이가 위스키 잔을 들어 올리며 물어 왔다.

이날은 하필이면 유진이 시민권을 받은 날이라 어쩌다 보니 그를 기념하는 것 같은 행사가 되어 버렸다.

“축하해 주시면 감사하지요.”

유진은 알콜이 아주 조금 들어간 칵테일 잔을 들어 올려 가볍게 인사하며 대답했다.

“강 회장님은 조국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일로 조국의 국적을 포기해야 하니 무척이나 아쉽겠습니다.”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국가관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서양인들에게 국가는 선택 가능한 집단이기 쉽지만, 동양에서는 국적을 바꾸는 행위는 배신에 가깝게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한중일 삼국은 이중국적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중국 국가 주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장시웨이는 유진의 미국 국적 취득에 대해 조금은 의아해하는 모양이다.

“뭐. 사실 그런 면이 없지는 않군요.”

“그래도 한국 국민들이 이해를 해 주는 모양이니 다행입니다. 듣자 하니 조만간 다시 한국 국적도 회복하실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유진조차 얼마 전에야 한국 정치권에서 그런 논의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사실을 거침없이 꺼내놓는 것을 보면 장시웨이는 단순히 중국 정계 인사들의 자금 관리만을 맡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존 오웬 브레넌을 통해 장시웨이가 관리하는 자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부로 알려진 퍼시픽 인터내셔널의 운용 자금은 수백억 달러 수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수 배에서 열 배 이상에 달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맨해튼의 거대 투자 은행에 버금가는 엄청난 돈을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연회에 모여 있는 많은 부자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거물일 것이다.

중국 정계의 지도자들이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자금을 해외에서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사실 비밀도 아니다.

중앙 지도자가 아니라 현급 서기가 수조 원 대의 비자금을 집안에 감춰 두고 있다는 사실이 뉴스에 오르기도 하는데, 중앙 정부의 거물들이 지난 수십 년의 경제 활황 시기에 모아 둔 자금은 얼마나 클 것인가?

“강 회장의 말씀대로 적지 않은 자금을 가상화폐에 투자 중입니다.”

장시웨이는 맨해튼에 머무르는 동안 벌써 몇 번이나 유진과 만나 투자 전략에 대해 물어 왔고, 유진은 올해는 아마도 암호화폐가 가장 유력할 것 같다는 말을 해 주었다.

“저와 마찬가지네요. 유진이 아니었다면 암호화폐 따위에 자금을 넣을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이자, 한동안 유진과 연인 관계를 유지해 왔던 사라 델비안의 부친인 아서 델비안이 슬쩍 끼어들었다.

유진이 암호화폐에 대해 조언을 준 사람들은 장시웨이뿐이 아니다. 아주 많은 사람에게 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두 번씩은 넌지시 지나가는 말로 권유해 보고는 했다.

어차피 암호화폐의 붐은 이제 시간문제이다. 원래대로라면 이해 하반기로 들어서며 수많은 사람들이 코인에 관심을 두고, 뛰어들며 광풍을 일으킬 예정이다.

그리고 이해 들어서며 그러한 광풍의 전조는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한동안 1,000달러를 오가던 비트코인의 가격이 4월 중순을 넘어서며 1,500달러를 넘어서고는 급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5월에 들어와서는 2,000달러를 넘보기 시작하더니, 중순을 지나며 기어이 2,500달러도 넘어 버렸다.

이더리움의 경우는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처음 발행 이후로 한동안 10달러 선을 지켜 오던 이더리움은 2017년에 들어서며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하다가 3월 들어서는 20달러를 넘어섰고, 4월에는 40달러를 오가다가 5월에 들어서서 90달러를 넘었다.

이제 100달러가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암호화폐의 움직임은 소수의 선행투자자뿐 아니라 차츰 일반인들에게도 전파되고 있었다.

포브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앞을 다투어 암호화폐에 관한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과연 이 실체도 없는 암호화폐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투자 상품인지에 대한 논의와 암호화폐 열풍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체에 따라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장밋빛 관측을 내어놓았다.

이렇게 다양하게 갈리는 의견이 점차 다양한 매체에 실리고 있는 사이, 일반인들의 관심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상품이 그러하듯 사람들의 관심은 상품의 가치에 직결되기 마련이다.

100명이 상품을 접하고 그중 한 명만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충분하다.

한 명 한 명 투자자들이 늘어나면 유한한 수량을 지닌 암호화폐의 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유진은 이 시점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 보았다.

물론 그걸 통해 자신이 보유 중인 자산의 가치를 확정하는 것도 목적이다.

현재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의 수량은 대략 200만 개 정도로, 지금까지 발행된 총 수량의 10%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의 가치로는 대략 50억 달러 정도에 달한다.

그 외에도 이더리움이 1,500만 개로 15억 달러 수준, 기타 다양한 암호화폐의 청산 가치까지 생각하면 대략 100억 달러에 미치지 않는다.

사실 유진의 총자산에 비교한다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해 말까지 이어질 광풍의 와중에 벌어들일 자금과 암호화폐 거래소를 지배하는 것에서 얻어질 이득을 생각한다면 결코 우습게 생각할 정도가 아니다.

“유진이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으니 당연하게 우리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지금까지 유진이 투자한 상품 중에서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수익이 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비관적으로 생각할 때, 유진은 반대에 배팅하고 거기서 아주 큰 이익을 얻어 왔으니까요.”

영국 여왕의 자금을 운영하고 있는 아서 델비안은 최근 들어 자신의 투자 회사에서 적지 않은 자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투자를 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확신할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투자 권유에 앞서 항상 붙이는 말이 있다. ‘틀림없이 오를 겁니다.’가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꽤 있어 보입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그렇게 모호한 말에는 크게 움직이지 않을 테지만, 유진이 말한다면 다르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암호화폐라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기보다는 전적으로 투자 심리에 의존하는 버블에 불과하니까요. 최대한으로 보아도 튤립 버블 이상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버블은 언제고 터지기 마련이지요.”

장시웨이도 암호화폐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에요. 버블은 언제고 터지기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그 시점까지 최대한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번에는 아부다비투자청 헤드 디렉터인 알 카심이 끼어들었다. 그 또한 유진의 조언으로 몇 가지 암호화폐에 포트폴리오를 늘려 가고 있다고 했다.

유진의 주변에는 그렇게 각국 정계 실력자들의 비밀 자금을 운용하는 대리인들이 몇 명이나 모여 있었다.

각자가 모두 수십억 달러에서 수백억 달러라는 엄청난 수준의 자금을 운용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다.

물론 그만큼 실수를 한다면 아주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자리들이기도 하다.

“강 회장님께서는 이번 암호화폐의 버블이 어느 수준이 될 거로 예견하십니까?”

모여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정중한 것은 장시웨이였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장시웨이는 유진과 좀 더 가까워지기를 원했다.

그는 만일 이번에 유진의 조언으로 투자에 좋은 성과를 보인다면, 정말 큰 액수를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존 브레넌에게서 받은 정보를 취합해 본다면 중국 지도부가 움직일 수 있는 비자금의 크기는 이미 유진의 자산 규모를 훌쩍 벗어나고 있다.

외부에 알려지기로야 유진이 세계 제일의 부호이지만, 실질적으로 진짜 부자들은 여기 모여 있는 금고지기들이 충성을 다하고 있는 국가 지도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 지도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그렇게나 커다란 부를 지니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장시웨이의 경우처럼 유진의 도움으로 성과를 거둘수록 그들이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는 커져 갈 것이고, 궁극적으로 그들 대부분은 유진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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