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지금까지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사실 국무부에서는 유진의 한국 경제에 대한 독과점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사라 그린은 국무부 내부의 정보를 쓸쩍 흘려 준다.
그리고 유진으로서는 기쁜 마음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 국무부 산하의 정보기관인 정보조사국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해외 공관에서 수집하는 풍부한 자료를 기반으로 상당히 정확성 높은 정보 자료를 생산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각국의 언론 기관 등에서 시행하는 여론조사보다 정보조사국이 자체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훨씬 더 높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이다.
이러한 정보는 단순한 각국 유력인사들에 대한 자료에서부터 여론조사를 통해 얻어 낸 시민 사회의 동향, 그리고 경제 예측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런 정보들은 국무부 내부뿐 아니라 행정부 각 기관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주요 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신뢰도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04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 정보기관 중 유일하게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보고를 올렸다거나, 베트남전에서도 가장 정확한 정보와 분석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국무부에서 유진과 한국 경제의 동향과 미래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내놓은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우리 쪽 분석으론 4년 뒤에 한국 경제가 완전히 유진에게 종속될 가능성이 78%나 되더군요.”
“나머지 22%는 뭔가요?”
유진으로서는 그게 더욱 궁금했다.
“시민 사회의 저항으로 제일 그룹과 다산 그룹이 손을 들고 한국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 거더군요.”
“그럴 가능성이 22%나 된다는 말이군요.”
“한국 경제뿐 아니라 정치계, 시민 사회 전부가 혼란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요.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결과가 되겠지요. 우리 미국으로서도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들어서는 정권이라면 틀림없이 유진 당신은 물론이고 미국에 대해서도 적대적이 될 테니까요.”
“그렇게까지나요?”
유진은 언제나처럼 마치 남의 일이라는 태도로 싱글거리며 물었다.
“솔직히 국무부에서도 유진이 어떤 의도에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국무부의 정보기관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 훨씬 더 정통하다.
사실 어느 정보기관이라 해도 유진의 마음속까지는 읽지 못할 테니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 유진의 투자 성향으로 보아서는 한국 경제에 아주 커다란 전환점이 다가올 것을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했다고 보고 있기는 해요. 하지만 한국 경제 상황을 분석해 보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음…….”
“그런 면에서 유진의 이번 선택이 더욱 눈길을 끌고 있죠. 지금까지 브렉시트나 중국 증시에 투자했던 것처럼 이번 투자에서도 성공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성과를 거둘 테니까요.”
사라 그린 개인으로서는 몰라도, 국무부의 정보기관에서는 유진의 행보를 투자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5년 동안 5,000억 달러의 투자라고 발표했으니, 외면으로 본다면 적어도 10년짜리 투자라고 받아들여야겠죠? 유진의 투자 성향과는 조금 다르지만, 운용하는 자산의 규모로 본다면 지금쯤은 장기 투자에 힘을 싣는 게 맞을 테고요.”
“정확하게 보고 있군요. 단기 투자는 특별한 이벤트가 예상될 때에나 가능할 뿐이지요.”
유진은 선선히 사라 그린의 말에 수긍했다.
“그렇다면 세계 10대 경제권이 한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는 거예요. 국무부에서 긴장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다행히 난 미국 시민이 되었군요.”
“맞아요. 유진이 미국 시민이 되었다는 사실이 미국에 있어서나, 유진 당신에게 있어서나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만일 여전히 유진이 외국인이라면 당신은 2단계 위험인물이 되었을 거예요.”
“2단계?”
“국익에 위험이 되는 정도에 따라 나뉘는 분류가 있어요. 1단계는 러시아, 이란, 중국 이런 정도이고요. 2단계는 북한이나 쿠바 같은 나라들이지요.”
유진은 조금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물었다.
“내가 국가 수준의 위험이란 말인가요?”
“당연하지 않아요? 지금 유진이 움직이는 단기 자금의 규모를 생각해 봐요. 당장이라도 한 나라 경제를 휘청일 수 있다고요. 그것도 중간 규모의 국가가 아니라 10대 경제 대국을 말이에요.”
“흠.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맞겠네요.”
“솔직히 유진이 대통령과 친한 사이라는 점도 문제이기는 해요. 그것도 너무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건 마이너스인가요? 플러스인가요?”
“모순이죠. 사실 국무부 내부에서는 대통령에 대해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꽤 있으니, 대통령 자신이야말로 최대 위험 요소라 판단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사라 그린의 말에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로 정확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여하튼 무슨 일을 획책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이상이 없는 한 유진의 생각대로 되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좋은 정보로군요.”
“그리고 알렉세이 표도르프에 대해서는 조금 거리를 두는 편이 나을 거예요.”
처음 유진이 사라 그린에게 접근한 것은 장래가 유망한 그녀가 위험한 남자와 인연을 맺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오히려 그녀가 유진에게 경고를 해 주고 있다.
“알렉세이 표도르프는 FSB 출신으로 다수의 범죄에 연관이 되어 있다고 간주되고 있어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는 일이에요.”
사실 독재 정권에서 독재자의 숨겨진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알렉세이가 만남을 제의해 오기 전에도 유진은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이고, 각국 정치인들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 상당수는 독재자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유지하고 있는 치안 집단이나 정보 집단에서 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독재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대개가 그런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과의 인연을 끊는 것이 현명한 처사는 아니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유진이 꼭 러시아 대통령의 자금 관리인과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지 않나요?”
“아! 알렉세이가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가요? 난 조금 위험한 일을 하다가 지금은 평범한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유진의 말에 사라 그린이 눈썹을 살짝 치켜뜬다.
“당신이 나보다 낫군요.”
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유진이 단 한 번도 알렉세이가 러시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도, 그걸 알고 있다 말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맞아요. 알렉세이는 러시아 출신의 투자운용사 대표이지요. 표면적으로는 말이에요. 하지만 실상은 러시아 대통령의 비자금 중 상당 부분을 운용하고 있지요.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적어도 500억 달러는 러시아 대통령의 자금이에요. 알렉세이가 운용 중인 자금 중 절반 이상이지요.”
“굉장하군요. 500억 달러라니.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너무 큰 액수 아닌가요?”
유진이 짐짓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지만, 사라 그린도 유진이 사실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이 500억 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가 러시아나 중국쯤 되는 국가의 수장이 아니라면 말이다.
러시아의 짜르는 실질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세계 1위의 부자로 거론되는 사람은 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대개는 독재 국가의 수장들이 그러한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왕가나 아랍에미리트 토후국의 아부다비 왕가, 그리고 태국의 짜끄리 왕가 등이 각각 1조 달러에서 수천억 달러까지의 부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산되고 있다.
이는 이런 독재 왕족들의 재산이 외부에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심지어 이런 왕가의 자산에 비해 다른 독재자들의 자산은 더욱 파악하기 어렵다.
대부분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측근의 재산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대통령의 재산 또한 그런 의미에서 크게는 1조 달러, 작게는 적어도 2,000억 달러 상당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 시점에서 이러한 왕가와 독재자들의 자산 규모에 대해 그나마 가장 폭넓게 접근하고 있는 사람은 유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혹 알렉세이와 동업을 하거나 그럴 예정에 있나요?”
사라는 전날 유진이 알렉세이에게 했던 말들을 기억해 내고 물었다.
“많은 친구들에게 몇 가지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해 주고 있지요. 특히 요즈음에는 암호화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답니다.”
“재무부 쪽에서 유진과 암호화폐에 대해 조사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무래도 사라 그린은 국무부뿐 아니라 행정부 여러 곳에 친구들이 있는 모양이다.
“유진이 암호화폐에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는 정보는 이미 2년 전부터 들어와 있던 모양이더군요. 그리고 거래소 문제도요.”
“불법적인 행위는 없을 텐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아주 깨끗하다더군요. 최근의 암호화폐 폭등에도 그다지 관여하지 않는 것 같고요.”
“아까도 말했지만, 무엇보다도 안전을 추구하고 있으니까요.”
사라는 이에 관한 것은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듯 다시 본래의 용건으로 돌아왔다.
“그래요. 알렉세이와도 암호화폐에 대해 동업을 한다는 말이지요?”
“아마 그럴 가능성이 커요. 러시아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건이지요.”
“흠…… 알았어요. 더 이상은 묻지 않을게요. 여하튼 알렉세이와 너무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다는 걱정을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 알렉세이를 소개해 준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인가요?”
“그러니까 그게 제일 문제란 말이에요. 하하…….”
사라 그린뿐 아니라 국무부,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미국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지난 세기까지 미국의 가장 큰 적수는 소비에트 연방이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러시아는 늘 가상 적국으로 분류된다.
한데 지금의 대통령과 그 아들은 러시아 대통령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사람과 친분이 깊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자기 지인들에게도 소개해 주며 미국 내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키워 주고 있었다.
심지어 러시아가 이번 대선에 크게 개입했다는 논란을 자처해 놓고도, 제대로 수습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 물증이 계속해서 드러나며, 상원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통과시켰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미국 국내뿐 아니라 후일 러시아가 다른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만다.
러시아로서는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트럼프를 지원해 주었는데 돌아온 것은 경제 제재라는 악재였고, 이를 타결하기 위해서라도 아주 많은 무리한 행동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