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2년 전의 선물
2017년 10월, 비트코인 가격은 2만 달러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유진이 기억하고 있는 12월 정점이 두 달이나 먼저 찾아온 것은 그의 개입 때문이 확실할 것이다.
“지금까지 70만 개가량 팔았어. 평균 매각 가격은 16,200달러이니까 100억 달러가 조금 넘어. 이더리움은 1,000만 개 정도 팔았어. 1,000달러 선에서 정리했으니 여기서 100억 달러가 들어온 셈이야. 그리고 라이트코인은 300만 개를 300달러 수준으로 팔았고, 리플은 100억 개를 1.3달러에 매각했어.”
유성이 그동안 매도해서 확보한 액수를 알려 주었다.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던 코인의 절반 정도를 매도했고, 아직도 그만큼 남아 있다.
지금까지 현금화한 액수만 4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었고, 남아 있는 암호화폐의 가격은 그보다 훨씬 더 높다.
그 외에도 다양한 코인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모두 합해도 주력인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리플 네 가지 중 한 종목에도 미치지 않았다.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으니, 지금까지 팔아 버린 것이 아쉬울 정도야. 조금 더 늦게 팔았으면 나았을까?”
“그거야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
“맞는 말이야. 우리가 지금까지 시장에 공급한 수량이 전체 발행량의 5% 수준이잖아? 그만큼 공급한 것이 가격 상승에 도움이 된 건지, 아니면 더디게 만들었는지 파악할 도리가 없어.”
유진의 개입이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량화할 방법 따위는 없다.
다만 적지 않은 유동성을 공급하고, 또 세계 각국의 거부들을 끌어들여 수요도 늘린 건 사실이다.
“정말 10만 달러까지 갈까?”
“나도 모르겠다. 정말로.”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장 참여자들 모두가 언제고 버블이 끝날 것이라 느끼고 있었다.
“너희 쪽에서는 어때?”
“샘스 캐피탈 쪽에서는 10만 달러는 무리라도 5만 달러 선에서 정체할 거라 보고 있어.”
페이팔 마피아들은 유진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독점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 멋진 시장에 끼어들기를 원했다.
각기 서로 다른 기업들을 운영하고 있던 그들은 이번에도 각기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무려 200여 명에 달하는 기업가들이 페이팔 마피아라는 이름 아래 친교를 맺으며 서로의 사업을 밀고 끌어 주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들은 각기 암호화폐에 관련된 여러 종류의 사업을 구상해 끈끈한 유대감과 특유의 번뜩이는 지성으로 착실하게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
그중 링크드 인을 창업한 리드 호프만은 자신의 다양한 인맥을 무기로 이번에도 놀라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암호화폐의 가치를 분석해서 가치 투자를 진행하는 스타트업인 샘스 캐피탈을 설립한 것인데, 그의 인맥 덕분인지 벌써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받아 다양한 암호화폐에 투자 중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여기에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고 있는 금융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고, 이들은 벌써 투자한 자금의 세 배가량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샘스 캐피탈의 성공 신화는 곧 많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관심을 샀고, 덕분에 대륙의 서쪽에서도 암호화폐의 투자를 금융공학적 관점으로 진행하는 스타트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유성이 말했듯이 샘스 캐피탈에서는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해 무척이나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매일 발간되는 보고서에서는 각 암호화폐의 근시일 내 최대가와 최저가를 제시하고 있는데, 사실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훨씬 더 많지만 그들의 지금까지 이루어 낸 실적 때문에 사람들은 샘스 캐피탈의 예측을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샘스 캐피탈의 실적이라 해도 그저 암호화폐 시장의 비정상적인 폭등에 기인한 것이 전부이지만, 사람들은 이 실체 없는 가상 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기댈 것이 필요했으니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은 지금부터라도 암호화폐 폭락에 대비해야 한다는 쪽이고.”
다니엘 라이트만은 유성이 고용한 금융 전문가로, 대형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서 리스크 관리를 하던 중역 출신이다.
유성은 다니엘에게 암호화폐 시장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예측할 것을 요청했고, 다니엘은 멀지 않은 시기에 지금의 폭등이 무너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
“길어야 석 달, 짧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붕괴가 시작될 수 있다고 하더군.”
예측이란 것은 그에 필요한 충분한 자료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암호화폐 시장의 장기 예측에 필요한 자료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참고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겨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나, 동인도 회사 사태 정도이니, 결과적으로 터무니없이 오른 자산은 언제고 당연히 붕괴한다는 말 외에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다니엘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번 붕괴로 암호화폐 시장이 회복 불능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아마도 암호화폐의 폭등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은 여기 있는 두 형제일 것이다.
그렇기에 유성은 오히려 가장 비관적인 관점을 지닌 다니엘을 거액을 주고 스카웃해 왔다.
잘 나가고 있을 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유진의 지론이었고, 유성은 형의 말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다 믿고 있었다.
“물론 튤립 파동과 달리 이번에는 아직 암호화폐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한두 번의 붕괴는 오히려 다음번 폭등이 가능하게 해 줄 거라는 관점도 있어.”
“그건 다행이네.”
“그렇지. 확실히 형이 말한 대로야. 물건을 직접 파는 사람보다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을 지배하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거 말이야. 암호화폐 시장이 완전히 붕괴해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만 아니라면, 암호화폐 가격의 폭락이나 폭등은 우리 수익에 도움이 될 뿐이지.”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것으로 확실한 이익을 볼 방법 따위는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거래소를 손아귀에 쥐고 있으면 시장 가격의 변동에 상관없이 꾸준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더군다나 그런 거래소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기대 수익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이다.
“한국에서만 하루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이 나오고 있어. 얼라이언스 전체로 보면 2억 달러 수준이야.”
최근 일 거래량이 수십억 달러에서 최대 백억 달러 이상까지 늘어나면서, 수수료 수익도 눈더미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서버 유지를 위한 비용 외에는 크게 지출이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50% 이상의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이니, 이보다 더 수익률이 높은 분야는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더군다나 유성은 얼라이언스라는 독점 체계를 지배하고 있다. 유진 형제 두 사람이 암호화폐 거래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수익을 독차지한다는 의미이다.
“다니엘의 예측 중 긍정적인 부분이 맞는다면 암호화폐 시장의 붕괴 이후로도 투자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신규 진입은 오히려 늘어날 거라고 하네. 그렇다면 주식 시장 다음으로 중요한 투자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더라고.”
“좋은 일이네. 그러면 그쪽 방향으로 계획을 잘 세워야겠어.”
“그렇지 않아도 신규 투자자들의 유치를 위한 다양한 기획을 마련하는 중이야.”
“그리고 2년 전 선물은?”
유성이 미소지으며 물었다. 2년 전에 놓아 두었던 포석을 이제 활용할 시간이 되었다.
“전부 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보내 두었어.”
유성도 형과 비슷한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2년 전의 포석이 얼마나 훌륭한 계획이었는지는 지금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비트코인이 2만 달러가 될 무렵, 유성은 그동안 잊고 있었을 사람들에게 연락을 주기 시작했다.
- 2년 전에 드렸던 작은 기념품이 지금 제법 쓸 만한 상품이 되었습니다. 혹시 잊고 계셨다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2년 전 유성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각국의 유력 인사들에게 암호화폐를 선물로 보내 두었다.
당시 가격으로 대략 100달러에서 많아야 1,000달러가 넘지 않는 가격에 해당하는 암호화폐들이다.
각국의 법률상으로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은 특정 금액 이상의 선물을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철저하게 현지의 법률에 맞춰 해당 액수의 암호화폐를 선물했다.
예를 들어 미국 상원의원들의 경우는 100달러까지만 받을 수 있으니, 99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를 선물하는 식이었다.
물론 국가에 따라서는 특별히 액수에 구애받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유진의 사업지가 미국인만큼 외국의 정치인에게 과도한 선물을 하는 것이 후일 책임 소재를 물어올 수 있기에 아무리 많아도 1,000달러는 넘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작은 선물은 대략 1,000배 이상의 가치로 훌쩍 올라 버렸다.
“대략 80% 정도가 아직까지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더라고.”
암호화폐 선물은 유성이 운영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의 계정을 통해 보내졌다.
그러니 언제라도 그들이 보유하고 있을 암호화폐에 대해 확인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그들 대부분은 겨우 수백 달러에 불과한 선물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유성의 연락을 받은 수많은 정계와 관계의 인사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메일을 확인해 보고 깜짝 놀랐다.
겨우 수백 달러 정도의 선물이라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의 시장 가격은 수십만 달러를 오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자산이 생긴 셈이다.
더군다나 암호화폐 가격은 계속해서 오를 전망이라고 했다.
유진에게 메시지를 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지금 이걸 팔면 생각지도 못했던 거액의 용돈이 생긴다. 하지만 언론 보도로 보면 어쩌면 다시 두 배나 열 배 정도 오를 수도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그런 연락을 받은 대부분의 인사들은 각국에서 금융 당국에 종사하고 있거나, 혹은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암호화폐 가격의 비정상적인 상승은 각국 금융 당국으로 하여금 새로운 규제를 시작해야 하지 않냐는 본질적인 문제를 던져 주고 있었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금융 당국의 당직자들과 정치인들은 암호화폐에 대해 규제를 하는 것으로 암호화폐 가격 상승을 잡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산 가치를 위협하는 일이된다.
지금은 겨우 수십만 달러 수준이지만, 앞으로 1년 뒤에 열 배정도 오른다면 수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자금이 생기는 일이다.
과연 이런 딜레마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목에 줄을 채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지금 암호화폐 시장의 과열로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과잉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암호화폐는 철저하게 실체가 없는 가짜 자산입니다. 여기 투자되는 자금은 언제라도 제로의 가치에 수렴하게 될 겁니다. 이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국회와 행정부에서도 최근의 사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 국세청, 경찰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으로 구성된 암호화폐 태스크포스가 벌써 1년 전부터 검토를 해 왔을 정도로, 한국은 암호화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