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경제수석과 정무수석의 입장은
“언론에서도 지금 당장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잖아? 이대로 손을 놓고 있자는 말이야?”
“그게…… 언론도 사실 상당히 논조가 갈려 있습니다. 무조건 정부의 규제만으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때로는 시장의 자정작용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오히려 다수입니다.”
“그래서? 그냥 두고 보자고?”
“사실 한국에서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의견이 높습니다. 우선 당분간은 지켜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오 수석비서관은 요사이 경제수석실에서 수장인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당장 바로 밑의 비서관들이나 선임행정관 중에서 암호화폐를 지니지 않은 사람은 기껏해야 몇 되지 않았다.
경제수석실 전체 직원 중 대다수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보고서를 통해 파악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한둘이라면 문제도 되지 않지만, 대다수가 그렇다면 모두들 한통속이라 보아야 한다.
그날도 한바탕 소속 직원들과 폭풍 같은 논쟁을 벌인 오 수석비서관은 퇴근 시간을 지나서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오 수석.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아? 한 수석님. 퇴근하시는 길이신가요?”
불편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던 오 수석비서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님을 맞이했다.
“나도 아직 퇴근할 시간 아닌데, 혹시 오 수석 퇴근하셨나 싶어 와 봤어요.”
“아직 일이 남아서 조금 있다 나가려고 합니다. 잠깐 앉으시죠.”
오 수석비서관은 자신을 찾아온 정무수석비서관을 소파로 안내했다. 그가 난데없이 찾아온 것이 뭔가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요즘 많이 힘들다면서요? 그 암호화폐인지 뭐시긴지 때문에.”
정무수석은 언제나처럼 허허 웃으며 화두를 건넸다.
“문제는 문제이니까요. 잠깐의 열풍이라고 하기에는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요즘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은 하지 않고, 일확천금의 꿈에 빠져 암호화폐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하니, 걱정되지 않을 수 있나요.”
“참 문제는 문제다. 그렇죠?”
“진짜 문제는 이걸 해결해야 할 공무원들조차 다들 암호화폐에 빠져있다는 겁니다. 그 강유진이라는 사람이 진짜 문제에요.”
“아! 강 회장? 참 대단한 사람이죠? 어떻게 손을 대는 것마다 이렇게 대박을 터트리는 건지. 우리 쪽에서 알아 보니 암호화폐 활황으로 벌써 재산이 두 배는 늘었을 거라 보더라고요.”
“그게 참 그렇습니다. 이렇게 국가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어서 그 사람 재산만 불리는 게 말이 됩니까?”
“그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오 경제수석은 정무수석이 강 회장을 대놓고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무수석이 제일 그룹과 꽤 큰 친분이 있다고 했었던가?
대통령 비서실의 실세로 꼽히는 정무수석비서관은 주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주로 국회에 관련된 행사를 입안하거나, 여론 파악을 하고 다양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데 아주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지금의 한 정무수석은 대통령이 아직 국회의원이던 시기에도 그의 계파의 핵심 의원 중 하나로 운명을 같이하던 사람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오 경제수석은 정무수석의 방문이 어쩌면 더 위에서의 의사를 알리려 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규제라. 그게 참 필요하기도 하고, 또 쉽게 해서도 안 되는 거죠. 어찌 보면 필요악이라고 할까?”
다른 수석비서관들이 대개 관료나 학자 출신인데 비해, 정무수석은 철저하게 정치인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말은 언제나 두리뭉실한 데가 있었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중요한 것이 숨겨져 있기도 했다.
“대통령님께서도 항상 과도한 규체를 철폐해야 한다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규제가 경제를 망친다. 잘못된 규제 하나가 산업을 무너트린다고 강조하신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암호화폐를 산업이라 볼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오히려 암호화폐가 경제를 망치고 있는 현실에서 말입니다.”
“암호화폐가 경제를 망치고 있었던가요?”
한 정무수석이 여전한 웃음을 띠며 물어 왔다.
“아직까지는 투입된 자금이 그렇게까지 위험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언제고 한국 경제를 위협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훤합니다. 암호화폐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폰지 사기와 다름없습니다. 나중에 들어간 사람이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을 보장하는 거지요.”
암호화폐 시장을 바라보는 오 경제수석의 시선은 확고했다.
“지금은 수만 명에서 수십만에 불과하지만, 뛰어드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수익률은 낮아질 겁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 사람까지 투자에 참여하면 붕괴가 시작되겠죠. 그때 가서는 어떤 대책도 무의미합니다. 그 붕괴가 시작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유의미한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오 경제수석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며 자신의 지론을 설파했다.
“그래요? 폰지 사기라…… 그렇다면 한국에서 규제하면 암호화폐 열기를 가라앉힐 수는 있어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열풍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가장 크게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분 상승 욕구가 가장 큰 사람들이 한국인 아닙니까? 하지만 사회가 점차 안정되어가며 신분 상승이 불가능해지는 지금, 암호화폐로 대박이 난 사람들을 보며 너도나도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지요.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자칫하면 20년 전 알바니아에서처럼 국가 경제가 무너져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1997년 알바니아에서는 다단계 피라미드 회사들이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 경제 체제 아래에서 살아오며 자본주의를 모르던 국민들은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넘어가 모든 재산을 이 피라미드 회사에 투자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60%가 다단계에 투자하고 나자 이 희대의 경제적 사기는 파국을 일으켰다.
전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 국민들은 분노했고, 시위와 폭동을 거쳐 내전 상황에까지 돌입하고 말았다.
오 경제수석은 이번 암호화폐 열풍이 그런 상황까지 불러올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암호화폐로 커다란 수익을 보았다는 것을 지켜보면 누구라도 투자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금융 상품과 달리, 암호화폐의 가치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의 추가 투자를 통해서만 보장된다.
본질적으로는 폰지 사기와 다름없다는 오 비서실장의 의견은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지지받고 있었다.
“오 수석 부인께서 호성 그룹 선대 회장님 장녀이셨죠?”
그런데 한 수석이 뜬금없이 경제수석의 아내를 거론했다. 그 순간 오 수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맞습니다. 저의 집사람이 김 회장님의 장녀가 맞습니다. 한데 그건 왜……?”
“요즘 호성 그룹을 비롯한 여러 재벌가에서 연합을 구성했다고 하던데요? 제일과 다산을 제외한 대여섯 개 재벌그룹이 말이지요.”
이어지는 한 수석의 말에 오 수석은 점점 더 불편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이야기가 들리기는 하더군요. 제일과 다산이 요사이 너무 무리하게 외연을 확장하려 하는 게 사실 아닌가요?”
“무리하게 확장이라.”
“그렇지 않습니까? 거의 모든 경제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다른 기업들의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 나라가 어디 제일과 다산 두 재벌 기업의 소유는 아니지 않습니까? 상도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 수석은 자신도 모르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제일과 다산의 소유가 아니라면, 나머지 그룹까지 10대 그룹이 짬짜미로 나눠 먹어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그건……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습니까? 일국의 경제가 소수의 기업에 지배되는 상황이 우려된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10대 그룹에 의해 종속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설마 이 나라의 경제 주체가 그 10개 기업 집단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겁니까? 이거 아주 위험하네요. 대한민국의 경제를 통괄하는 경제수석께서 그렇게 편협한 생각을 지니고 계셨다니 말이에요.”
정무수석은 무척이나 신랄하게 비난하며 나섰다.
“솔직히 말해 제일과 다산 뒤에 숨어 있는 그 강유진이라는 인간이 제일 문제입니다. 그자가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려는 속셈이 빤히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강 회장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주장한다는 거로군요?”
“네? 그게 어째서 그렇게 됩니까?”
“처가의 가업을 위해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관료가 사적인 감정을 담아 정책을 결정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경제수석은 수십 년을 경제, 재무 부처에서 몸담으며 수많은 엘리트들과 경쟁하며 다양한 논쟁을 벌여 왔지만, 정치인들의 수사에는 당해 낼 수 없었다.
“당신!”
모욕감을 느낀 경제수석은 그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아아. 조금 진정하시고요. 이건 내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알게 되면 그렇게 보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능구렁이 같은 정무수석은 금세 말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경제수석은 자신이 궁지에 몰렸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 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될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재벌가의 장녀를 아내로 둔 것이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재계에서 제일, 다산 그룹과 다른 그룹 사이의 분란이 시작되며 오 수석의 입지는 점차 위협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님께서 조금 우려하고 계십니다. 혹시 경제수석께서 조금이나마 실수를 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고요.”
“네?”
끝내 가장 위의 사람까지 거론되자, 오 수석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여러 기업이 경쟁하며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경쟁이 너무 과열되지 않도록 해야겠죠?”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이 나라 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 금액을 투자하겠다는 것을 막아서는 것도 옳지만은 않지 않을까요?”
한 수석의 말에 오 수석은 이미 저울의 추가 한쪽으로 완전하게 기울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무수석은 대통령뿐 아니라 여당에서마저도 강 회장을 지지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진이 5년 동안 500조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하겠다 밝힌 것만으로 벌써 경제에 활력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부흥은 집권 여당의 지지도를 높여 준다. 당연하게도 여당으로서는 강유진의 계획에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시점에서 강유진의 행보에 어떠한 종류의 부정적인 행동을 취해 500조의 투자에 대해 취소한다는 발언이라도 나온다면 당장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암호화폐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대통령과 여당이 등을 돌려 버린다면, 무슨 대책도 나올 수 없다.
“대책은 물론 마련해야죠. 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대책을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다른 나라들에서 어떤 규제를 내놓는지 보고, 거기에 발을 맞춰 가면 될 거 아닙니까? 괜히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명백하게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강유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차근차근합시다, 우리. 오 수석도 언제까지 부인 눈치만 보고 살겠어요? 길지 않은 인생 즐기면서 살아야죠. 하하.”
정무수석의 말에 경제수석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결코 상대의 말이 와닿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