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선물의 대가
한국에서는 결국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일절 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난 모양이다.
직접적인 규제에 나설 권력을 지닌 행정부의 관료들도, 또 규제 법안을 입안할 입법부에서도 괜한 짓으로 자신들의 자산 가치를 하락시키고 강유진이라는 거인의 눈 밖에 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도를 해야만 할 언론들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었다.
암호화폐의 미래와 문제점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보도 기사는 적지 않았지만, 강유진의 동생인 유성이 2년 전 한국의 여러 인사들에게 선물한 암호화폐가 그동안 폭등해서 각기 1억 원 이상의 거액을 증여한 것과 동일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보도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윤 기자.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 오랜만에 한잔할까?”
재민일보 사회부 강 기자가 경제부 윤 기자에게 말을 걸어 왔다.
“안 돼. 나 요즘 술 안 마셔. 술 취했다가 팔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
“하긴 그렇기는 해. 코인은 그게 문제야. 주식처럼 딱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말야. 하루 종일 신경을 써야 하잖아.”
한국의 기자들 사이에도 요즈음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 또한 2년 전 받은 작은 선물이 지금은 엄청난 자산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성의 선물은 한국의 정계 인사와 재계 인사에게만 뿌려진 것이 아니다.
한국 10대 일간지와 4대 경제지, 그리고 방송국 기자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메일을 통해 선물을 받았다.
당시에는 겨우 200달러에 해당하는 가벼운 선물이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각기 경기도에서 아파트 한 채를 살 만한 거액이 되어 있었다.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들과 달리 기자들의 경제 수준은 훨씬 더 열악한 것이 사실이니, 그들에게 주어진 선물은 지금에 와서 훨씬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또 코인 이야기야?”
지나가던 경제부장이 한마디 하며 끼어들었다.
“아! 네, 뭐. 기획 기사 하나 고민하는 게 있어서요.”
“기획 기사는 무슨. 다들 오늘은 얼마나 올랐는지 그 이야기들 하고 있었잖아?”
“아닙니다.”
“어후! 죽겠어. 다들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으면 어떻게 해? 이러다가 코인이 한 열 배 오르면 아주 단체로 퇴사라도 하겠다야.”
“하하. 설마 그렇기야 하려고요.”
윤 기자의 말에도 경제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얼마 전에 민국일보 기자 하나가 코인으로 30억을 벌었다고 사표 냈다더라.”
“아!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민국일보에 확인해 보니 진짜더라고요.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사들이고 있었는데, 올해 들어와서 엄청나게 오르면서 한 재산 만들었다더라고요.”
“그지? 윤 기자는 어때? 자네도 작년부터 투자하고 있다고 했잖아? 참 선견지명이 있어.”
“재작년에 메일 받은 거 있지 않습니까? 그거 보낸 사람을 확인해 보니 강유진 동생이더라고요. 그럼 딱 촉이 오지 않습니까? 뭔가 있다! 그래서 저도 조금 사 놓았죠. 한 2백만 원 넣었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새어 나오는 웃음기를 숨길 수 없는 윤 기자의 말에 경제부장이 탄성을 터트렸다.
“2백? 그럼 엄청 올랐겠네?”
“전 그냥 비트코인 샀어요. 100배도 안 올랐습니다. 그때 메일로 받은 리플이나 이더리움을 샀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아쉽겠네. 그래도 그게 어디야?”
“하하. 뭐, 그래서 요즘 고민 중입니다.”
“회사 그만두려고?”
“아뇨. 이제 슬슬 정리하고 아파트나 사 놓을까 합니다.”
그 말대로 윤 기자는 슬슬 청산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경제부장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아니. 왜? 앞으로 열 배도 더 오른다는데?”
“그게 말이 쉽지, 열 배라니요.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그거 때문에 가슴 졸이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저 같은 소심한 사람은 확실히 투자는 맞지 않나 봅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정리하고 집 하나 사 놓으면 평생 큰 걱정은 없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일에 집중도 할 수 있고요.”
“맞는 말이야. 그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가 기자지 무슨 투자자도 아니고.”
경제부장이 금세 일리가 있다는 듯 태도를 바꾸자, 강 기자가 끼어든다.
“아니야. 그랬다가 정말 10배 오르면 땅을 치고 후회할걸?”
“그것도 그래서 말이야. 우리 집사람이 지금은 홀드할 때라네.”
“하…… 참. 난제네. 나도 고민이 많단 말이야.”
경제부장은 일반 기자들보다 훨씬 더 큰 액수를 받았다. 그래 봤자 겨우 350달러 수준이지만, 지금은 무려 4억 원에 가깝다.
매일매일 코인 가격의 상승에 자산의 가치가 늘어나고 있었기에, 그 또한 밤이 깊도록 가격을 확인하는 것이 일과였다.
“근데 좀 우려가 되기는 합니다. 이래서야 언론이 제 구실을 못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야말로 제대로 된 비평을 내놓아야 하는데…….”
기자들 또한 자신들의 자산 가치를 지키는 것과 공익의 의무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정치인이나 관료들에 비해서는 조금이나마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분야가 언론이다.
사람들에게 기레기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거침없이 비판의 기사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직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자산과 관련이 되고 보니,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노력들은 해 보자고. 우리만 잘 먹고 살자고 외면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코인이란 것이 언제까지고 영원히 이런 가격을 유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언제고 닥쳐올 붕괴에 대해 대비는 해야지요.”
“그거야 그렇지…….”
방금 전까지 기자의 사명을 거론하던 경제부장은 정작 기사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 없게 대답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한 분과 대담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분 말씀이 코인 시장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거라더군요. 어쩌면 튤립 버블 이상이 될 거랍니다. 그리고 한국 경제의 모멘텀에도 커다란 충격이 될 수 있답니다.”
“그래? 그런데 그 교수 입장만 실을 건 아니지?”
“물론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은 유지해야지요. 같은 서울대 교수 중에 블록체인 전문가 한 분과도 약속을 잡아 놓았습니다.”
“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제대로 작성해서 올려 봐.”
블록체인 전문가라는 말에 경제부장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블록체인 관련자라면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할 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당분간 규제를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회부 강 기자가 말했다.
“그러겠지. 그쪽도 다들 가지고 있는 양이 적지 않으니 말이야.”
경제부장도 유성 형제의 선물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뿌려졌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정계, 관계는 물론이고 언론에까지 뿌려진 이 선물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걸 밝혀야 할 기자들마저 자신들이 대상이 되어 버리니 기사로 싣기 쉽지 않다.
한국의 언론사들이 가장 꺼리는 취재 대상은 다름 아닌 언론사 바로 그 자체이다.
다른 분야의 비리와 문제점은 콩알만 한 부분까지도 들춰내는 것이 일이지만, 언론사 종사자들의 행동은 아주 큰 문제가 있다 해도 좀처럼 세심하게 보도하지 않는다.
기자들과 관련된 사고는 꽤 있는 편이지만, 철저하게 단신으로 처리되고 만다.
심지어 기자가 연관된 살인사건마저도 기사를 올리는 곳이 드물 정도였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몇몇 기자가 아니라 대부분의 메이저 신문사와 방송사 종사자들에 관련된 일이다.
기사를 올릴 기자조차 그 선물을 받았고, 지금에 와서는 평생을 모아온 재산보다 커져 있었다. 당연히 모두들 그 사실을 기사화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달 기자는 있어도, 자기 목에 스스로 목줄을 맬 기자는 없는 법이다.
* * *
“중국 정부에서 암호화폐 관련 규제를 고려 중이라고 하던데요?”
“최근 들어 너무나 많은 인민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 몇 년 동안 중국 증시가 그다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유휴자본의 암호화폐 유입이 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 중국도 피해갈 수는 없는 모양이군요.”
“암호화폐는 탈중앙화를 기치로 걸고 있기 때문에 정부 당국의 통제가 쉽지 않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암호화폐가 위안화 보다 훨씬 더 커질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위안화를 달러에 이은 제2의 기축통화로 격상시키려는 중국 정부로서는 방임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중국 정부에서 어떤 대응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로군요?”
새로 올라온 보고에 유진이 반응했다. 각국 정부의 동향은 항시 면밀한 정보 수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 전에 투자 중인 코인을 전부 외국의 거래소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코인의 이전도 문제이지만, 암호화폐 시장에의 영향도 고려를 해 봐야 할 거 같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그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중국 인민들뿐 아니라 많은 고위 인사들이 자산을 코인 형태로 바꾸어서 해외에 숨겨 놓은 것이 많으니, 규제라고 해도 제한적일 테니까요.”
“하지만 사실상 세계에서 암호화폐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꽤 파급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손을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위쪽의 판단입니다.”
한국 정부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에 나서는 것에 미적거리고 있는 사이, 중국 정부에서는 벌써 규제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유진이 알기로 최고위 계층에서 암호화폐로 보유 중인 자산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가 미치는 영향력이 정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한 정부는 슬슬 규제에 드라이브를 걸 생각인 모양이다.
이건 유진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미래이다.
지난 삶에서 2017년 말 암호화폐 폭등을 진정시킨 데는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에서 규제에 나선 것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12월 초 한국 정부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다양한 규제 방안을 발표하며 쇼크가 찾아왔고, 뒤를 이어 중국 정부에서 암호화폐 금지 정책을 발표하는 것으로 치명타를 입혔다.
처음 한국 정부의 규제는 암호화폐 시장에 일시적인 충격을 주었을 뿐 곧 시장 가격은 회복했지만, 중국 정부의 발표는 결정적이었다.
그만큼 암호화폐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과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삶에서는 한국 정부의 규제는 없었지만, 중국 정부는 규제에 발을 벗고 나설 모양이다.
그것도 원래보다 몇 달이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만큼 암호화폐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암호화폐에 대한 완전한 금지를 말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신규 암호화폐의 ICO 전면 금지를 포함한 다양한 규제 정책과 함께 암호화폐 자체는 오히려 합법화하기로 정했다.
아마도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암호화폐의 가치를 고려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실명화가 강조되며 고위 관료들이 보유 중인 암호화폐는 다른 거래소로 이전하겠다고 했고, 그를 위해 장시웨이에게 유성이 보유 중인 조세피난처의 거래소 한 곳을 넘겨주었다.
이제 그곳은 아마도 가장 많은 암호화폐가 거래되는 거래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유성이 이끄는 얼라이언스는 여전히 해당 거래소의 지분을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고, 유진은 남아 있던 코인들을 털어 버릴 시점에 대해 힌트를 얻었다.
이제 러시아의 반응만 확인하면 확실해진다.
“러시아 중앙은행에서 규제 정책을 발표할 겁니다. 대략 내년 초 정도가 되겠군요.”
알렉세이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요구를 해 왔다.
러시아에서도 통치자의 암호화폐는 지키면서 내부의 규제는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내년 2월 전까지 보유하고 있는 암호화폐는 대부분 처리하면 되겠어.”
형제는 이제 남아 있는 화폐도 전부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규제가 시행되면, 암호화폐 가격의 상승 드라이브가 멈추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충격이 클까?”
“물론이지. 그리고 사실 충격이 크지 않아도 상관은 없고.”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은 자산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돈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벌 수 있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유진이 얻게 된 영향력은 그 몇 배의 돈으로도 얻어 낼 수 없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상당수 국가들에 형제가 뿌린 선물은 지난 2년여 동안 활짝 꽃을 피웠다.
적어도 수만에 달하는 각국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유진 형제의 선물로 가산을 부풀렸다.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건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식으로든 선물의 대가를 조금이나마 고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