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푸드트럭 배틀
“이러다가 강 회장을 섬기는 종교라도 나타나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벌써 무속인 가운데는 강 회장을 신으로 모시는 무당들도 있다나 봐.”
“아니, 살아 있는 사람을 무슨 귀신으로 만든대요?”
“그거야 그쪽 사람들한테는 나름 마케팅 포인트인 모양이지.”
“나 참. 여하튼 김 기자, 엉뚱한 생각 하지 마. 지금 강 회장에 대해 엄한 기사 올렸다가는 여럿한테 피해가 갈 테니까.”
편집장과 티카티카 말을 주고받던 고참 기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를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 강 회장이 이번에 투자한 액수가 좀 커? 그리고 그 대부분이 대기업으로 흘러 들어갔지? 그럼 그중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풀리는 액수가 얼마겠어?”
“마케팅이요?”
“당연한 거 아니야? 그만한 투자를 받았으면 결국 새로운 상품을 내놓든, 서비스를 내놓든 할 거 아냐? 대충 매출의 10%만 마케팅 비용으로 잡아도 10조 원이야. 1년에 10조 원이 마케팅 비용으로 풀린다고! 그럼 그게 다 어디로 가겠어?”
고참 기자의 말에 김 기자는 잠시 말이 없다.
설마 그 정도의 금액이 전부 마케팅 비용으로 풀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가 신문사나 방송국으로 흘러들어올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어디 언론뿐인가?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금액이 마구 흘러 들어갈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낙수 효과, 낙수 효과 그러는데, 이거야말로 진짜 낙수 효과가 생기는 거란 말이야. 우리나라 국민 중에 이번 투자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그런데 우리 신문사가 거기 초를 친다고? 뒷감당을 누가 하라고? 당장 대기업들부터 우리한테 광고를 주겠어? 아니면 독자들이 반기기를 하겠어?”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의무를 방치해서야…….”
“그렇게 언론의 의무가 중요하다면, 차라리 나가서 언론사 차려. 자네도 강 회장한테 그거 받았을 거 아냐? 그걸 팔면 조그맣게나마 독립 언론 차릴 돈 생기겠네.”
고참 기자가 김 기자의 약점을 건드렸다. 메이저 언론 기자치고 지금 유진 형제에게 코인 선물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
지난 2년 동안 새로 뽑은 신입 기자 몇몇이 그런 경우이다. 하지만 김 기자는 나름 경력 10년의 중견 언론인이고, 그 또한 암호화폐 거래소 계좌에 3억 원에 달하는 코인을 보유하고 있었다.
“언론의 신성한 의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당장이라도 그걸 반납하든지, 하다못해 기부라도 하고 강 회장 비판 기사를 쓰든 말든 하라고.”
고참 기자의 쓴소리에 기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 * *
이런 일들은 언론사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졌고, 한편 제일과 다산 그룹이 아닌 다른 주요 재벌 기업과 긴밀하게 연관된 언론사에서는 조금 다른 이유로 논란과 분쟁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번이야말로 한 번 제대로 비판하고 나서야 할 때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죠.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라…….”
“한일과 우리 성진은 운명 공동체 아닙니까? 이제 와 다른 생각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한일경제신문의 사주인 한 사장은 처조카 사위인 성진 그룹 주 이사의 요구에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일경제신문이 성장해 온 것은 사돈인 성진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한일경제신문 또한 늘 성진 그룹의 입장을 옹호하는 기사로 그 대가를 치러 왔기에 어느 정도는 대등한 입장이라 말할 수 있지만, 언론과 대기업의 관계에서는 진실로 대등한 입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한일경제신문의 광고 매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성진 그룹 계열사였고, 또 한일경제신문의 지분 또한 적지 않게 그쪽에 있다.
그 때문에 한 사장은 처조카이자 자신보다 열 살 넘게 어린 주 이사에게 아주 극진하게 존칭을 써 가며 상황을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일개 기업인이 이 나라의 대통령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는데, 그걸 지적하는 언론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특히 한일경제신문은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이건 취재고 뭐고 필요 없지 않습니까? 강유진의 시커먼 속셈을 1면에 실어서 까발려야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솔직히 지금 상황에 강유진의 투자를 비판하고 살아남을 언론은…… 아마도 이 나라에서 보기 어려울 겁니다.”
“아니. 그게 말이 돼요? 언론이 정권도 아니고 일개 외국 기업인의 눈치나 본다는 게?”
“강 회장이 문제가 아니라…… 강 회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워낙 광범위하고, 거의 신드롬에 가깝습니다. 자칫 강 회장을 비난하고 나섰다가는 테러라도 당할지 모릅니다.”
이제는 거의 애원에 가깝게 설명하는 한 사장의 말에도 주 이사는 그저 콧방귀를 뀌었다.
“흥! 테러라니? 이 대한민국에서 무슨 테러란 말입니까?”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껏 강 회장처럼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하고, 그 성과를 고국에 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유진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지에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미국 땅에서의 성공이다.
말하자면 시골 사람이 고향의 동량이 서울에 가서 큰 성공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과 비슷하다 해야 할까?
단순히 스포츠 선수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기만 해도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르는 시대이다.
한데 유진의 성공은 그저 단순한 스포츠 스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사실 한 사장이 밝히지 못한 숨겨진 이유가 따로 있었다.
기자고 논설위원이고 유진에 관한 비판적 기사를 집필할 사람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한 사장 또한 자기 신문사 사람들이 유진에게 선물로 받은 암호화폐가 벌써 몇억씩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 신문사 기자들이라 그런지 이제 슬슬 암호화폐의 버블이 터질 때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얼마씩이라도 현금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대부분의 기자들이 유진에게 받은 선물로 얻어 낸 자산이 적어도 억대는 넘어선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의 성원을 받고 있는 영웅을 상대로 한 비판 기사 작성은 쉽지 않은데,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된다.
편집부에서 슬쩍 요구를 해 봐도 차라리 신문사를 그만두면 그만두지 그런 기사 못 올린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있었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렇게 유진에 대한 찬양 일색인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든 반골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유진 형제의 선물을 받지 못한 기자가 훨씬 더 많다.
한국의 언론사는 등록된 곳만 무려 1만 5천 개가 넘는다.
그중 상당수는 대부분 들어보지도 못한 인터넷 신문사들이지만, 일간신문으로 등록된 곳만도 300여 곳, 그리고 주간신문사도 1,200곳에 달한다.
당연히 유진 형제의 선물들이 그런 군소 언론에게까지 닿을 수는 없었으니, 유진에 대한 부담도 없다.
더군다나 이럴 때일수록 남과 다른 기사를 올려 어떻게든 눈에 띄어 보자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실제로 유진의 투자에 관한 비판 기사나 논쟁적인 사설 따위를 올리는 곳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실질적인 독자들에게 닿지도 않았고, 간혹 눈에 띄는 일이 있어도 유진을 옹호하는 수많은 이들의 비난 세례만 끌어올 뿐이었다.
2017년 하반기로 들어서며 유진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은 확실히 말해 그 어느 정치인도 감히 비견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국의 푸드트럭이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거 먹히겠는데요?”
그러는 와중, 미국에서 새롭게 방영을 시작한 TV쇼 하나가 다시 한국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어디서 방영하는 거라고?”
“푸드 네트워크라고 하더군요.”
“아! 푸드 네트워크면 그쪽으로는 제일 큰 방송국이지?”
“예. 시청자 수가 1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안건을 올린 이의 보고에 편집장이 다소 놀란 반응을 보인다.
“그런 곳에서 한국 푸드트럭에 대한 쇼를 만들었다고? 대단하네?”
“지금 미국 전역의 대도시에는 어지간하면 한국 음식을 어레인지한 푸드트럭이 영업 중이라고 하더군요. 과거에 일본 음식이 미국 사회에 스며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한국 음식이 그 차례인 듯합니다.”
“반응은 어떤데?”
“나쁘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한국식 푸드트럭은 제법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푸드 네트워크에서도 미국인들이 각자의 도시에서 그런 한국식 푸드트럭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의미로 만든 모양이에요.”
잠시 고민하던 편집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기사 올려. 자리 하나 만들어 보지.”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뭔데?”
“그 한국 푸드트럭의 흥행에 강 회장이 관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강 회장? 그 강 회장?”
“물론이죠. 그 강 회장이요.”
이제 한국에서는 강 회장이라는 단어는 어떤 고유 명사처럼 굳어져 가고 있었다.
“흠…… 강 회장이 그런 일까지 한다고? 크게 돈이 될 것도 같지 않은데?”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뭐, 그 정도 되는 사람이 꼭 돈이 되는 일만 하겠어요?”
“그건 그렇지.”
“벌써 16년부터 진행해 온 일이라더군요. 미국 전역의 한인 교포들이 식당이나 푸드트럭 사업을 하는 데에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답니다. 그쪽 방면의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있어서, 아이디어 하나만 갖고 컨택을 하면, 프로세싱에서 파이낸싱까지 전부 맞춤형으로 제공해 준답니다. 더군다나 비전이 보이면 창업 자금도 적지 않게 지원해 주고요.”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이란 말에 편집장이 흥미를 보인다.
“그렇게까지?”
“말하자면 미국에 한국 음식 붐을 일으키기 위한 벤처라고 해야 하나요? 여하튼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받아 식당을 차리거나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와! 그거 대단한데! 그리고 벌써 성과가 나오고 있단 말이지?”
“네. 어지간한 도시에서라면 중심가에서 그런 푸드트럭 한두 개 찾는 건 일도 아니라더군요. 또 한국 식당도 쉽게 찾을 수 있고요.”
“잘된 일이네. 그러면 미국 내 한국에 대한 이미지 재고에 도움이 되려나?”
편집장의 물음에는 은근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거야 모르지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문화가 알려지는 것이 나쁠 수야 없지요. 그런데 말을 들어 보니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더군요. 넷플릭스에서 지금 한국식 푸드트럭을 대상으로 하는 배틀 쇼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배틀 쇼?”
“푸드트럭 주인들이 나와서 주제를 갖고 각자의 요리를 선보이는 거죠. 그걸 가지고 평가를 하고, 시식회를 한다네요.”
“그것도 역시 강 회장이?”
“강 회장이 넷플릭스 최대 주주잖아요.”
유진에 관한 것. 특히 성공에 관한 것은 하나하나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정보가 넘쳐나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 그랬었지. 넷플릭스 주식이 최근에 꽤 많이 올랐지?”
“그러니까 말이에요. 얼마나 부러워요? 투자해서 돈도 벌고, 대주주니까 원하는 방송도 만들라고 시키고.”
“난 사람이네. 난 사람이야. 여하튼 그럼 기사 한 꼭지로는 안 되겠다.”
“그렇죠? 기획 기사로 내보겠습니다.”
“아니다. 아예 한 번 건너갔다 와. 가서 제대로 취재하고 연재 기사로 내보내자고. 이 정도면 반응이 좋겠어.”
편집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미국 출장을 결정했다.
유진에 관한 기사라면 무얼 써도 먹히는 시기였다. 하물며 미국에서 한국 음식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라면 대박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