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70화 (170/363)

170화 프로젝트 A

“벨에어의 강 회장님 저택이 엄청나다고 하더니, 진짜 대단하네. 무슨 저택이 아니라 궁궐 같잖아?”

한류 스타 강동우는 유진의 저택에서 맞이하는 첫날 밤부터 그 격이 다른 화려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의 연예계에서 미남의 대명사로 군림해 온 강동우는 그 명성에 걸맞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펜트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 그가 어지간한 저택쯤으로 놀랄 이유는 없지만, 유진의 벨에어 저택은 그 규모나 화려함의 차원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화려한 저택을 개인이 사용하면 지탄받을 테니까. 그런데 침실보다 욕실이 더 많은 것은 아무래도 파티를 즐기기 위해서겠지? 여하튼 굉장하다.”

함께 초청된 한류 스타 장유라도 유엔빌리지의 멋진 자택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확실히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할리우드 스타쯤 되면 이런 저택에 살 수 있는 걸까?”

“뭐. 대 스타라면 어지간한 저택에 사는 게 가능하겠지. 그렇다 쳐도 이 집은 좀 논외라고 보지만.”

“근데 강 회장님은 정말 우리가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다고 보시는 걸까?”

“글쎄? 지금까지 강 회장님이 손을 대서 실패한 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지? 아시아 사람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거야.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다고…….”

두 사람이 유진의 초청으로 이곳 할리우드로 날아온 것은 물론 이곳에서의 입지를 넓히고, 궁극적으로 이곳에서 성공적인 배우로 자리 잡겠다는 목적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당사자들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미국인들한테 아시아 사람들은 그냥 이방인에 불과하니까.”

결국은 미국인들이 아직 아시아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난제였다.

미국인들의 심리적 허용 범위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배우 자신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지. 할리우드에서 자리 잡은 아시아 배우가 누가 있었어. 겨우 성룡이 십여 년 동안 노력해서 몇 번 주연으로 나온 게 전부 아니야?”

“주윤발이나 이소룡도 있잖아.”

장유라가 웃으며 덧붙였다. 성룡이나 주윤발이나 나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할리우드 배우로 인정받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냉정하게 보면 기껏해야 무술이나 아크로바틱한 몸놀림을 특이한 장기 정도로 받아들인 게 전부이지.”

“그런데 우린 하다못해 그런 무술 재능도 없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강 회장님은 그런 원숭이 짓 안 하고도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하셨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진의 초청이었기에 큰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큰물에서 이름을 날려 보고 싶은 야망이 있었기 때문에 초청을 거절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데 다른 배우들처럼 처음부터 에이전시를 통해 작품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일단 여기서 마음 편히 지내라고 하시니 조금 그러네?”

“뭐,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강동우 역시 유진의 말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작품에 참여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고, 우선은 여기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분을 쌓고 파티를 즐기며 마음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게다가 필요한 비용은 전부 마케팅 회사에서 제공하기로 한단다.

대신 가끔 인터뷰나 행사 같은 것에 참여하면 추가로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받기로 되어 있다.

강동우나 장유라뿐 아니라 적지 않은 한국의 배우와 가수들에게 비슷한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중에는 이 두 사람처럼 이미 큰 인지도를 얻은 한류 스타도 있었지만, 때로는 아직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이 행사를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팀에서는 그들의 보스가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중구난방처럼 다양한 배우와 가수들을 선택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보스의 취향이겠거니 하고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LA로 불러들이고 있을 뿐이다.

적지 않은 연예인들이 그렇게 할리우드로 찾아와 하루 이틀 정도 유진의 저택에 머무르다가, 새로 구해 주는 할리우드의 저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쉴 새 없이 수많은 할리우드 인사들의 초대를 받아 파티에 참여하거나 다양한 종류의 행사에 불려 나가고 있었다.

“여하튼 편하게 지내면서 나름의 수익도 올릴 수 있으니 좋기는 한데…… 괜한 시간 낭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

“그러게 말이야.”

유진의 호화스러운 자택에서 보내는 첫날 밤. 두 스타는 기대와 함께 앞날의 불안을 함께 느끼며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장유라는 바로 옆방의 강동우를 찾아왔다.

두 사람의 심정은 서로가 비슷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다독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있는 위스키들은 마음대로 따도 되는 거겠지?”

강동우가 손님용 방 한쪽에 놓여 있는 장식장 가득한 위스키를 보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냐?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세계 제일의 부자 강 회장님 집인데, 위스키 몇 병 땄다고 뭐라 하겠어?”

“그지? 근데 이건…… 막 따긴 좀 그렇다.”

“뭔데?”

“글렌모린지 1978년…… 한국에서 한 2,000만 원쯤 할걸?”

“와! 역시 부자는 다르네.”

장유라가 강동우의 손에 들린 위스키 병을 빼앗아 가서 뚜껑을 따며 말했다.

“야야! 그걸 그렇게 그냥 따면…….”

“뭐 어때? 강 회장님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술을 네 방에 두셨겠냐? 틀림없이 먹으라고 하신 걸 거야. 그러니까 마셔 주는 게 예의라고.”

“나 원…….”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위스키에 꽂혀 있었다.

소문의 그 전설적인 위스키를 공짜로 마실 기회는 그처럼 톱스타에게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잠깐만 있어. 냉장고에서 얼음이랑 뭐 안줏거리 좀 가져올게.”

1,000만 원이든 2,000만 원이든 이미 뚜껑은 따 버렸다. 그렇다면 제대로 즐겨 줘야 하는 게 비싼 술에 대한 예의다.

“아로마가 엄청 나다.”

강동우가 술자리를 세팅하는 동안, 장유라는 그 비싼 술의 향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리고 곧 한국에서 온 두 톱스타 남녀 배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병을 비워 가기 시작했다.

“잠자리는 편했어요?”

다음날 느지막한 시간에 눈을 뜬 두 사람은 유진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LA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내려가 함께 때늦은 조찬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네. 아주 푹 잤습니다. 역시 시차를 맞추는 데는 위스키만 한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게스트룸에 그런 위스키가 가득한 걸 보면, 역시 강 회장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이네요. 강동우 씨가 스코티시 위스키를 즐기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 얘기해 놓았습니다.”

“그러셨군요. 세심한 배려 감사드립니다.”

강동우와 장유라는 결국 전날 밤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우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파티에서 이미 적지 않은 술을 마신 뒤라 두 사람이 섭취한 알콜은 정말 대단한 양이었다.

“역시 마시라고 가져놓으신 거 맞네요. 따기를 잘했어요. 호호”

장유라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두 분이 함께 늦게까지 술자리를 하신 것 같군요.”

“네. 뭐 우리가 제법 친한 사이기는 한데,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못했거든요. 덕분에 오랜만에 이 친구랑 좋은 시간 보냈어요.”

“한국에 있으면 아무래도 친구 사이라 해도 이성이라면 편히 만나기 쉽지 않아서요. 조금만 잘못하면 금세 이상한 소문이 나잖아요.”

강동우와 장유라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커리어에서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때에 엉뚱한 소문이라도 한 번 터지면 둘 다 꽤 곤욕스러울 것이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지 않는 이상, 한국의 배우나 가수들은 이성 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천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군요. 두 분 꽤 잘 어울리시는데 안타깝네요.”

“아니,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장유라가 두 손을 마구 흔들며 유진의 말을 부인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태도나 강동우의 표정을 보면 아직은 정말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유진은 그 두 사람이 언젠가는 결혼 발표를 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백년해로할 사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동안 둘이 굉장히 뜨겁게 서로를 사랑했다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밤에 둘이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요.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에요.”

“강 회장님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걱정은 되더라고요.”

“아시아 출신이 갖는 페널티 같은 걸 과연 우리 둘이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미국이 다문화 국가라고는 해도 여전히 인종차별적 태도가 남아 있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아시아계 배우가 맡아온 역할이란 것도 대개 찌질한 조연 아니면 악역이 전부였고요. 적어도 저희 둘은 그런 역할로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알리고 싶지는 않아요.”

“맞는 말이에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도 두 분이 악역이나 웃기는 조역 따위를 맡기를 원하지 않아요. 두 분 모두 아주 섹시한 배역만을 맡았으면 좋겠어요. 악역이나 시종 노릇은 이미 100년 동안 충분히 해 왔으니까요.”

“그렇고 말고요. 하야카와 셋슈도 결국은 일본군 장교 역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 수 있었고, 안나 메이는 대지의 여주인공 대신 첩의 역할을 제안받고 말았잖아요.”

장유라가 얼굴에 힘을 주며 열변을 토했다.

“그렇죠. 여태껏 아시아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이란 거기까지였으니까요.”

지금까지 아시아 혈통의 배우가 한 번도 할리우드 톱스타의 자리에 다다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남자배우라면 일본계인 하야카와 셋슈(早川雪洲)가 무성영화 시대의 섹시 심볼로 자리 잡았었고, 여자 배우로는 애나 메이 웡(Anna May Wong)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의 미국 사회가 지금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인종차별적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두 배우의 인기는 놀랄 만하다.

하나 그럼에도 하야카와 셋슈와 애나 메이 웡 모두 아시아 인종의 스테레오 타입만을 강요하는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적 분위기에 낙심해서 활동 무대를 유럽으로 옮기고 말았다.

“그 뒤 이소룡과 성룡, 주윤발 이후로 대단한 아시아계 배우가 나오지는 않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단발적인 시도로는 다시 실패로 끝나고 말 겁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플랜이 필요한 거예요. 두 분뿐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 쇼, 뮤직비디오 같은 다양한 매체에 등장해 차분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얼굴을 보여 주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소모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 섹시하고!”

유진은 다시 한번 ‘섹시’를 강조하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스마트하고, 쿨하고, 사랑스럽고, 고저스한 이미지로 등장해야 합니다. 미국의 여자들이 강동우 씨에게 판타지를 갖고 남자들이 유라 씨를 원하게 만들어야 하지요.”

유진이 선택한 사람들은 대개가 그런 이미지의 배우나 가수들이다. 어떤 면에서건 섹시 어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미국 연예 시장에 잔뜩 풀어놓을 생각이다.

유진은 그렇게 자신이 계획 중인 프로젝트 A(Artist)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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