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프로젝트 B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길어야 5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의 문화가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유진은 어차피 찾아올 한류의 세계화에 그렇게 슬쩍 발을 걸쳐 놓았다.
지금부터 이러한 작업을 해 놓으면, 그때 가서는 사람들이 한류의 세계화에 유진의 공로가 크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여전히 시작에 불과합니다. 전 한국의 문화뿐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세계로 나아갈 때라 생각합니다.”
“또 어떤 것을 준비하고 계시나요?”
“여기 와서 지내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스마트하고, 또 향상심이 높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지더군요.”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장점에 대한 칭찬을 먼저 꺼내는 것은 그 어떤 때라도 결코 손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말을 꺼내 놓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 왔고, 또 경쟁을 즐기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과거에 한국이 아직 개도국의 문턱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국의 기술자들이 세계 기술 올림픽 등을 휩쓸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네. 올해 아쉽게도 중국에게 1위 자리를 빼앗겼다 들었습니다. 거의 10년 만인가 그랬었죠?”
“기술 분야뿐 아니라 다른 어느 분야에서도 한국인의 경쟁력은 아주 높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하긴. 한국처럼 고등 교육 진학률이 높은 나라도 거의 없지요. 요즈음은 어지간하면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고등 교육을 받고도 9급 공무원이나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는 나라이기도 하지요.”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유쾌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현실이 어딘지 어이없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훌륭한 인재들이 제대로 된 자리를 구하지 못해 자신이 배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어떤 사람이라도 조금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미국에 온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유진이 하려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기자는 이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뭔가 또 대단한 기획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한국 남성들은 2년간의 군대 생활을 통해 매우 다양한 문제를 접하고 그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췄고, 또 사회활동의 적응능력이 뛰어나지요. 아! 이 부분은 굳이 기사에 넣지 않아도 됩니다.”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기자도 그가 말하려는 의미를 알아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군대를 다녀온 것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요즈음은 그걸 호의적으로 말하는 것마저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들이 받은 교육과 재능을 펼칠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가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눈을 조금 돌려 보면 여기 새로운 기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솔직히 여러 가지 제약과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언어 문제가 크겠죠.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도 한몫할 테고요. 그리고 기댈 곳 없는 다른 나라에서 취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게 현실이죠.”
“하지만 같은 업무 분야라면 여러 난관을 뚫고 미국에서 근무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평균적으로 한국에 비해 약 80% 이상의 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도전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월스트리트의 투자 딜러들 정도가 아니라, 일반적인 개발자라 해도 한국과 비교해 미국이 월등한 급여를 받는 것은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확실히 그렇지만, 그런 용기를 내는 게 힘들겠죠.”
“그래서 그런 인재들을 위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 역시…….”
“네. 한국의 인재들이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약간의 전문적인 교육과 용기뿐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재능 있는 인재들을 도와주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요.”
“체계적인 시스템이면, 역시 교육기관이겠군요.”
“일종의 그러한 종류가 되겠지요.”
물론 지금도 다양한 종류의 지원 사업이나 교육기관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주체가 단순히 자신의 수익을 원하는 기관이나 단체인가, 혹은 세계적인 명성과 자산을 지닌 누구인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IT분야 위주겠군요?”
“물론 그쪽 분야가 가장 한국의 인재들에게 적당한 것은 맞습니다. 사실 비자도 그쪽에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고 경쟁률도 낮은 편이고요.”
“확실히 미국의 대형 IT업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은 편이지요. 하지만 정작 미국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상당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 더 용기를 내어 본다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을 위해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서포트를 해 드릴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유진이 실리콘밸리는 물론이고, 미국 각지의 다양한 IT 기업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장님의 구상이 알려지면 한국의 IT 업체들이 무척 긴장하겠네요. 그러다가 핵심 인재들이 빠져나가면 곤란하겠어요.”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많은 한국 개발자들이 마치 용역 노동자들처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가혹한 업무에 갈려 나가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기업의 IT 업무는 대개 하청을 통해 이루어지고, 실질적으로 작업을 하는 개발자들은 형편없는 대접 속에 그다지 밝지 못한 미래를 내다보면서도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
“핵심 인재들이 나가는 것이 걱정된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걸맞은 대우라. 하하, 개발자들이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좋은 인재들이 있다면 꼭 한국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요. 오히려 그런 인재들이 글로벌 기업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고, 또 언젠가 그에 맞는 위치에 오른다면 그게 더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먼 곳을 내다보고 계시는군요.”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서는 인도인들의 진출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내 인도인들은 미국인의 1%에 불과하지만, 실리콘밸리의 경우 거의 6%에 달한다는군요.”
“네. 인도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에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최고 경영진에도 적지 않다고 하더군요.”
“순다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산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도인이 실리콘밸리의 주요 경영자로 있습니다.”
“굉장한 일이네요. 그리고 좀 부럽기도 하고요.”
“한국 출신이라고 해서 그렇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지요. 물론 하루아침에 그런 일을 이루어 낼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꾸준하게 도전을 한다면 실리콘밸리의 중요한 자리에 한국 출신 인사를 보게 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겁니다.”
유진이 말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현시점에서 실리콘밸리의 가장 중요한 투자자가 바로 유진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위치에 있다면 경영진을 뽑는 시기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또 그런 주요 IT 기업의 주 경영진이 한국 출신으로 있는 것은 유진에게도 나쁠 것이 없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만한 힘을 행사할 권한이 있는 것이고, 그런 당사자에게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유진에게 어떤 면에서 필수적인 일이기도 하다.
당장 그가 한국 출신의 인사들로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들의 경영진을 채울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 모자란 데도 단지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런 자리를 줄 생각도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한국 출신의 인재들에게 능력에 합당한 자리에 오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여전히 인맥은 성공의 아주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같은 학교, 같은 인종, 어떤 것이든 자신과 공통점을 가진 사람에게 작은 호의라도 베푸는 것은 미국도 다를 바 없다.
혹은 사회생활을 통해 가까워지는 것 또한 이런 인맥을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는 이를 흔히 네트워킹이라 표현한다.
주말이면 흔하게 열리는 작은 규모의 파티나 다양한 사교 행사에 참여해 인맥을 넓혀나가는 것.
주로 시시콜콜한 스몰 토킹으로 시작해서 새로운 이와 가까워지는 것은 미국에서도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능력 중 하나이다.
아쉽게도 한국인들은 이상하게도 미국에서는 그런 능력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한국에서라면 무척 사교적일 사람들이 어째서인지 미국에서는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네트워킹을 쌓지 못하면 능력이 출중해도 위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인도인들은 조금 뻔뻔한 면이 있어, 능청스럽게 어디든 잘 어울린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의 성공 요인이 여기에도 있는 것일지 모른다.
유진은 그런 사소한 문화적인 것부터 교육할 생각이었다.
“회장님의 구상대로 이루어진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되겠어요.”
“네. 그리고 꼭 IT 기업만으로 한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과 분야뿐 아니라 문과도 경쟁력은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이나 컨설팅, 투자은행 같은 분야에서도 미국은 매년 적지 않은 비자를 내주며 외국의 인재들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경영하는 몇 개의 업체에서도 해외의 인력을 꽤 많이 확충할 생각입니다.”
유진은 그의 투자 회사들은 물론이고, 투자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인력을 한국 출신으로 영입할 계획이다.
물론 그저 한국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동향 출신 인재가 회사에 적정 수준으로 분포하게 되면 여러모로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사람들처럼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아주 드문 편이지요.”
“그렇지요. 게임만 해도 지는 걸 정말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많은 시간을 노동하는 것도 꺼리지 않고요. 그러면서도 높은 교육을 받은 경우는 정말 찾기 힘들어요. 우리 회사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한국 출신 인재가 들어오면 환영할 거라 생각합니다.”
유진은 그렇게 자신의 두 번째 계획인 프로젝트 B(Business)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출신의 인재들이 자리를 잡고, 유대인이나 인도인들 못지않게 하나의 이너서클을 형성하는 것이 유진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유진은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늘 체감하고 있었다.
상류층에 진출한 한국인 자체도 그리 많다 할 수 있는 편은 아니고, 서로 간의 끈끈한 유대도 부족하다.
하지만 유진이라는 구심점이 생기고, 위로 올라간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틀림없이 유대인이나 인도인들 못지않은 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 밝힐 생각은 없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어디까지나 그 스스로만이 알고 있는 먼 훗날의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