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인사 담당
- 이제부터 미국에 취업하는 게 쉬워지겠는걸.
- 나도 오늘부터 영어 공부한다.
- 구로 디지털단지에서 근무하고 있음. 요즘 다들 뒤숭숭한 분위기임. 강 회장님이 미국 취업을 위한 코스 만들면 다들 거기 등록한다고 함.
- 나도 판교에서 일하는데, 분위기 장난 아님.
- 한국에서 머슴 노릇 더는 안 해도 되는 구나.
폭탄처럼 던져진 유진의 계획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인터뷰가 나가고 하루 만에 거의 모든 언론사가 유진의 계획을 대서특필하며 나섰다.
지금까지도 미국에 취업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여러가지 이유에서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기반을 버리고 해외로 취업을 나간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 탓이 컸다.
한창 성장기의 한국 경제에서는 해외 취업을 나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독일에 탄광 노동자로 가거나, 일본으로 밀항을 해서라도 해외 취업을 해서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돈을 벌어들이겠다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그때는 해외에서 받는 월급이 한국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기에 많은 이들이 해외 진출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고도화되며, 일본에서 받는 월급과 한국에서 받는 월급이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게 되었고, 미국과 비교해도 예전처럼 두 배씩이나 차이 나지는 않으니 지금까지의 기반을 버리고 해외로 진출하려는 욕구는 줄어드는 것이 당연했다.
그건 비단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경제가 발전하면 따라오는 일이다.
- 개발자로 5년 일했는데 아직도 최저임금보다 쪼금 더 받는다. 시간이 지나도 형편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아. 대기업에 취업한 게 아닌 이상 아마 평생 이대로일 거 같다. 나도 천조국 간다.
- 우리 회사는 그래도 급여는 괜찮지만, 점점 관료주의와 파벌 때문에 지쳐 가고 있었는데, 차라리 구글이나 마소에 갈 수 있다면 좋겠어.
- 지금 경영진에서 난리가 났다고 함. 이러다가 핵심 개발자까지 흔들리면 큰일이라고.
물론 모든 개발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 집단 중 단 10%만 흔들려도 주위에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유진의 계획이 발표되고 바로 다음 날부터 그 여파는 크게 나타나고 있었다.
- 근데 트럼프가 외국 인력 입국 막는다고 했잖아? 정말 강 회장 계획처럼 될까?
- 강 회장이 트럼프 측근 아니야? 당연히 뭔가 계획이 있겠지.
- 우린 그냥 강 회장만 믿으면 된다고.
지금은 사람들의 심리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유진에 대한 믿음이 훨씬 더 컸다.
- 우리 회사는 주로 대기업 하청 하는데, 절반 이상이 강 회장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음.
- 당연한 거 아니야? 이 나라는 전부 하청에 하청으로 내려오면서 결국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쥐꼬리 같은 월급만 받고 일하잖아.
- 미국은 하청 없는지 암?
- 그래도 미국은 아웃소싱보다 자체 개발을 훨씬 더 선호함. 더군다나 한국처럼 하청에 재하청, 3차 하청 따윈 없음.
- 하긴 한국은 그게 문제야. 중간에 다리만 놓고 월급 떼어 가는 놈들이 너무 많아.
어느 사회에나 다양한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지금 한국 사회의 경우엔 원청과 하청, 그리고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합리한 구조가 늘 불공정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불공정을 혁파하고자 하는 사람은 적었고, 그런 일자리나마 원하는 사람이 많기에 이런 구조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이득을 안겨 주며 계속 이어져 오는 실정이었다.
당장 하청 기업이 아니라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판국에 그에 대한 비판이 큰 의미를 지니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유진의 계획이 발표되며 적어도 IT업계에서는 새로운 대안이 생겨 났고, 당연히 아래에서부터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그 인간이 미국 취업을 쉽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야?”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벌써 아웃소싱 인력들이 들썩이고 있답니다.”
“골치 아프네…… 이러다가 일할 사람도 찾지 못하는 거 아냐?”
“그렇게 될 리야 있겠습니까만…… 아무래도 정말 그 계획대로 된다면 당장 인건비 상승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단 10%만 빠져나간다고 해도, 적어도 20% 이상의 임금 인상 요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뜬금없이 미국 취업은 뭔 말이야? 그냥 하던 대로 투자인지 투기인지 그거나 하지 말이야!”
그리고 당연하게도 각 대기업 IT 관련 계열사들은 비상이 걸려 있었다.
한국의 대그룹들은 저마다 IT 관련 계열사를 몇 개씩 가지고 있으며, 그룹 내부 IT 업무를 계열사에게 하청을 주었다.
그러면 그 계열사들은 다시 중소 개발사에 아웃소싱을 주고 인건비를 떼어 먹는 식으로 지금껏 업계가 돌아갔다.
물론 IT 계통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분에서 대기업들은 아주 다양한 하청 계약으로 상당한 인력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복잡한 하청의 구조에서 중간에 걸쳐 있는 아웃소싱 업체들의 주인이 대개는 대기업 사주 일가와 관련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1차 하청을 맡은 기업은 대기업 사주의 사촌이고, 2차 하청은 조금 촌수가 먼 친척, 그리고 3차 하청은 그룹 계열사 임원 출신,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하청 업체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급여를 아주 알뜰하게 뜯어먹고 있다.
처음 원청에서 내려올 때 책정되는 임금은 일당 30만 원 선으로, 사실 절대 적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하청의 하청 시스템을 통해 실제로 일하는 사람 손에 쥐어지는 것은 겨우 10만 원을 간신히 넘어가거나, 때로는 10만 원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간에 끼어 있는 업체들이 인력 관리의 명목으로 60%나 70%를 떼어 가고, 근로자는 간신히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연히 하청이나 파견 근무로 일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래? 왜 갑자기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건데?”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정치권에서 나서 줘야 할 거 같습니다.”
이번 계획의 발표로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던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사회단체에서 벌이는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테지만, 상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유진이다.
“근데 진짜로 되겠어? 구글이나 마소 같은데 취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그 강 회장이 구글이나 마소 같은 데 영향력이 꽤 있다더군요. 듣기로는 구글의 대주주라고 하던데…….”
“미치겠네. 개발자들 어떻게든 다독거려 보라고 해. 그리고 구글 마소가 무슨 개나 소나 가는 데인 줄 알아? 뭣도 없는 개발자들이 그런데 어떻게 가겠어?”
유진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났다. 벌써 여기저기에서 온갖 논란이 불거지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쪽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혀 왔습니다. 페이스북이나 아마존도 마찬가지이고요.”
유진의 인터뷰는 단순하게 구상 중인 계획을 슬며시 언급한 수준이 아니다.
이미 그의 구상을 실현할 팀을 구성하고, 다방면으로 진행하는 중이었다.
우선은 글로벌 IT업체들에 대해 약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부터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오는 이력서에 대해 조금 더 신경을 쓰겠다고 합니다.”
단순히 립서비스는 아니다. 이미 유진은 그런 업체들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IT 업체의 지분은 상당한 양에 달한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등의 지분은 유진의 자산 전부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준이다.
여러 투자은행들을 통해 적지 않은 레버리지를 사용하여 자산의 5배 이상의 지분을 보유 중이기 때문이다.
처음 주식에 투자를 시작한 이래로 이들 업체에 대한 지분은 한 번도 매도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지분을 꾸준하게 늘려 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유진이 이들 대형 IT업체의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적어도 앞으로 3년가량은 이러한 대형 IT업체에 대한 지분을 유지할 생각이다.
2021년 하반기에 주가가 무너질 때까지 적어도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려 줄 것이다.
“다음 달에는 월스트리트의 자산관리 회사에 적어도 수천 명 수준의 신규 채용을 발표할 겁니다. 물론 그중 한국계가 적지 않겠지요.”
요안나도 벌써 유진의 계획에 맞춰 신규 인력을 한국계로 충원할 계획을 세워 놓았다.
요안나와 윌리엄이 담당하고 있는 두 개의 자산운용사는 그동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메이저 투자 회사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해 왔다.
이미 두 회사가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는 미국의 5대 투자은행과 9대 메이저 투자 회사, 소위 벌지 브래킷이라 불리는 업체들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 사이에 그 정도의 규모로 성장한 금융업체는 지금껏 전무했다.
물론 유진으로서야 이미 미래의 일들을 잘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외부에서 바라보기에는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전설적이라 느껴질 정도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두 자산운용사가 고용하는 인원은 점점 늘어나고만 있었고, 최근에 와서는 월스트리트의 인재 풀을 전부 끌어들이고 있다는 주변의 불만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최고의 인재들만 받아들일 겁니다. 보스의 옛 고국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나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요.”
요안나가 딱 잘라서 말했다.
“당연하지. 자선 사업이 아니라고.”
유진에게도 당연한 일이다. 유진의 투자 회사에 근무한다는 것은 세계 금융업계의 최첨단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일반 직원이 하루 1억 달러짜리 거래를 진행하는 일도 적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든 글로벌 IT업계가 신규 직원을 채용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채용 담당 업무에 필요한 직원만 1,000명을 새로 고용했어요. 그리고 계속 늘려 갈 생각이고요. 아마 몇 년 안으로 적어도 채용과 교육 담당자만으로 3,000명 이상을 채울 것 같아요.”
미국의 경우 한국과 달리 인사와 채용 분야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이고, 해당 업무 담당자들의 권한이 상당하다.
한국의 경우라면 작은 기업에서는 인사를 다른 업무와 병행하기도 하고, 조금 큰 기업이라도 아주 소수의 인원이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꽤 차이가 있었다.
그건 미국의 취업 시장이 쉽게 이직하고, 해고하는 문화여서 그런 것도 있다.
한국처럼 한 번 고용하면 어지간해선 자르지 않는다면 1년에 한두 번 채용할 때에나 업무가 늘어날 터이지만, 이곳에서는 수시로 사람을 자르고, 해당 업무를 당장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느라 적지 않은 자산을 투자해야 했다.
어떤 면에서는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라 볼 수 있지만, 최고의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회사로서는 아주 당연한 부분이었다.
또한, 요안나가 밝힌 인사 담당자는 단순히 두 개의 자산운용사에서 일할 인재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유진이 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내 기업의 수만 수십 개를 넘어서고 있다.
그 숫자는 앞으로도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미래에 어떤 기업들이 해당 분야를 선도할지 알고 있는 유진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행보다.
그리고 그런 기업들 상당수는 이제 겨우 규모를 키워 가고 있는 수준이니, 아주 많은 유능한 인재를 필요로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런 신규 업체가 제대로 된 채용 담당자를 보유하고 있기란 어려운 일이고, 그럴 때 요안나가 말한 인사팀의 역량이 필요했다.
물론 그 와중에 적지 않은 한국계 인사들이 새로이 채용될 것이고, 미국에 와서 유진의 도움으로 취업하고 성장할 수많은 인재들이 유진에게 갖게 될 호감과 충성도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