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75화 (175/363)

175화 예견된 폭락

2017년의 대통령 선거의 승리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현 집권당의 후보에게 돌아갔다.

유진은 새로 당선된 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고, 당선인은 유진의 메시지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서 슬쩍 펼쳐 보였다.

전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이어지고 있는 유진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의도였다.

“이번 선거는 강 회장님의 조력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유진은 대통령 당선인의 지시로 한국에서 조용히 날아온 특사를 맞이했다.

“뭐,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이로군요.”

유진은 그가 선거에 한 손 거들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겸양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반대의 경우가 있는데 지금은 명백하게 후자의 상황이었다.

“내년 2월에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에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당선인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당분간은 한국에 들어갈 여력이 없군요. 대신 한국 법인의 대표라도 괜찮으시다면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시다면 그러셔야지요. 괜찮습니다, 하하.”

단칼에 거절하는 유진에게,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는 한 마디 서운함도 표현하지 못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가장 큰 변수는 유진이었고, 앞으로 새 정권이 일해 나갈 때도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앞으로 4년 동안 무려 400조 원에 달하는 거액의 투자를 약속한 큰손이 마음을 바꾸기라도 한다면, 부풀어 오른 국민들은 그 실망감을 정치권으로 돌릴 것이 명백했다.

“앞으로 강 회장님께서 하시는 일에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바로 말씀 주십시오.”

승리에 대한 대가를 치를 의사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앞으로도 유진이 한국 경제계에 대해 투자를 지속할 것을 기대하기에 나오는 말이다.

이번 정권의 성패는 전적으로 유진의 행보에 달려 있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새 정부와 유진은 한배를 탔다고 해도 무방했다.

“대양 그룹 문제는 새 정부가 들어서는 대로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거야 순리대로 흘러가겠지요. 법과 원리 원칙대로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진은 그 이상은 대양 그룹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훨씬 더 심각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물론이지요. 당연히 법과 원칙에 따라 합당한 처분이 있을 겁니다.”

새 정부라고 해서 결코 사법부에게 마음대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새로운 대통령의 눈치를 조금도 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 특사는 유진의 환대를 받으며 며칠간 편안한 휴식을 취하다가 돌아갔다.

특사의 호언장담과 달리 대양 그룹에 대한 처리는 그리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장 대양 그룹 사주 일가에 대한 재판부터가 끝이 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에서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양자동차 류근호 사장의 제7차 공판이 열렸습니다. 변호인단은 검찰 측의 기소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이어 갔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대양자동차 회계 담당자는 자사 사장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며, 책임 소재는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유진과 대양 그룹 사이의 갈등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의 부친이 운영하던 회사와 대양중공업 사이의 납품에서 비롯된 문제라든지, 유진의 전 약혼녀와 대양 그룹 3세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파렴치한 사건들은 한때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어떤 대단한 사건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기 마련이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양 그룹의 부실 사태나 유진의 승승장구 때문에 이 문제는 여태껏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제는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에 큰 애정을 보여 주고 있는 유진과 부실을 넘어 각종 부도덕한 경영으로 마침내 그룹이 두 조각 나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해체 위기에 이른 한때 한국 3위였던 재벌 그룹 사이의 관계는 아직도 언론에 거론될 때마다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정권의 의도와는 별개로 대양 그룹 사주 일가에 대한 재판은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었다. 벌써 1년이 넘도록 1심조차 끝이 나지 않고 있다.

정권에서는 빠르게 매듭을 짓고, 대양 그룹 해체의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지만, 대양 그룹 사주 일가의 변호인들은 아주 능숙하게 재판 기일을 늘리고 있었다.

대양자동차 사장의 변호를 맡은 곳은 한국 최고의 로펌이라는 KCK로, 검찰과 법원마저 그들의 변론을 참고할 정도라는 말을 듣고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재벌 관련 송사를 담당해 왔고, 아무리 중한 죄라 해도 집행유예 이상으로 끝내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또 KCK의 승리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며 논쟁을 벌였다.

한편, 그런 와중에 유진은 또 한 차례의 대형 이벤트를 맞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18년 1월로 들어서자 암호화폐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

비트코인이 3만 달러라는 유례없는 가격을 형성했고, 이더리움과 리플 등 알트코인의 시세 또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3만 달러를 넘어섰으니, 다른 유력 코인들도 그 뒤를 따를 것으로 생각하고 쌈짓돈을 풀어서라도 매수에 나서고 있었다.

아무도 지금 들어가는 게 상투를 잡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결국 2월 17일 최고가 3만 5,000달러를 찍은 다음 날, 곧바로 5,000달러나 떨어져 2만 9,500달러 선을 오가는 일이 벌어졌다.

“비트코인 시세가 좀 위험해 보이는데?”

“그렇더구나. 어제는 3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지?”

“어. 거의 보름 만이야.”

하필이면 역대 최고가를 찍은 상황에서 중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가 거의 동시에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 치명타였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자국의 국민에 대해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접근을 금지할 예정이라 밝혔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 정부 또한 중국 내 비트코인 채굴을 억제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미국, 일본과 함께 암호화폐 시장의 가장 중요한 국가들이던 이 두 나라의 규제 발표는 바로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낙폭이 너무 커. 하루 사이에 15%나 떨어지니 시장이 패닉이 오는 모양이야.”

“아마 맞을 거야. 조금 있으면 더 무섭게 떨어질 것 같아.”

“아아…… 그럴까? 뭐, 어차피 보유하던 코인은 거의 매도해 버렸으니 큰 상관은 없지만 말야.”

유성은 보유하고 있던 암호화폐를 알뜰하게도 팔아치웠다. 이제 수중에 남은 암호화폐는 한창때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장기간에 걸쳐 차분하게 팔아치웠기에 시장에 큰 충격도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은 거의 전량 매도했어. 대략 80만 개 정도에 평균 매각 가격은 29,000달러이니까 230억 달러가 조금 넘어. 이더리움은 800만 개 정도 팔았어. 평균 3,200달러 선에서 팔아 250억 달러. 그리고 라이트코인은 600만 개를 800달러 수준으로 팔았고, 리플은 100억 개를 4.3달러에 매각했어.”

지난번에 팔았던 것까지 합하면 모두 1,4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챙길 수 있었다.

코인 투자만으로 세계 1위 자산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본래라면 2만 달러 선에서 상승을 멈추었던 원래의 비트코인 가격이 35,000달러까지 치솟으며, 다른 암호화폐들 또한 원래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올랐다.

덕분에 유진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만족스러운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게 전부 유진이 직접 암호화폐 거래 시장을 장악하고, 몇몇 거부들을 끌어들인 덕분이다.

하지만 지금 올린 수익은 여전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진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암호화폐 시장은 몇 번이고 등락을 거듭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추가로 얻어 낼 수익은 물론 거래 수수료 수익도 엄청나게 모을 수 있다.

“당분간은 다들 매도하기에 바쁠 테니 준비하고 있어.”

원래도 이맘때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폭락했던 것을 기억하던 유진으로서는 올 게 왔다는 생각뿐이다.

“그래. 심리가 얼어 버리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런데 낙폭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글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

“그러게 말이야. 다들 말이 틀리니까. 우리 쪽에서도 어제의 폭락은 재상승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 줄 거라고 분석하는 사람이 절반이 넘어.”

“그래. 정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장이니까.”

그리고 그날 오후, 비트코인 가격은 다시 3,000달러나 떨어져 내렸다. 시장은 더 깊은 패닉에 빠져들어 갔다.

“3만 달러를 도로 회복했네. 나 참. 알 수가 없다니까. 정말로.”

사흘 뒤에는 어째서인지 가격이 급등해 다시 3만 달러를 넘어섰고, 매매 수량도 엄청났다.

전날 2만 달러 초반까지 가격이 내려가자 그동안 지켜보던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매수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절반 가까이 떨어진 코인을 주워 들이기 급급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제대로 예측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거야 원…….”

유성은 적지 않은 급여를 받는 투자 전문가들을 잔뜩 데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암호화폐의 가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시장의 흐름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국은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최선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무리 코인 전문가라고 해도, 결국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급급할 뿐이니까.”

“그렇다고 정말 거시적으로 예측이 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코인뿐이겠어? 주식이든 채권이든, 아니면 현물 시장이든 모두 마찬가지잖아. 그래도 나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고.”

“확실히 어려운 일이야. 어쨌든 애널리스트들의 보고를 기초로 장기적인 계획을 여러 가지 세워 놓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는 수밖에 없겠지. 여하튼 난 절대 암호화폐나 주식 같은 곳에 투자는 못 할 거 같아. 도통 미래를 예측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여. 사실상 동전 앞뒤를 맞추는 거 같아.”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해 본 입장에서 유성은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유성의 소회처럼 암호화폐 시장은 이후 정말 한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기가 이어졌다.

하루 사이에 10% 20%가 오르내리는 것은 예사였고, 심지어 한 시간 동안 수천 달러가 빠졌다가 오르기도 했다.

시장은 패닉이면서 동시에 활황인 아이러니한 상태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카오스 상황은 유진이나 유성에게는 하등 나쁠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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