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80화 (180/363)

180화 대폭락의 와중에

[지난 21일,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전일보다 30%나 폭락하며 투자자들을 나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지난달 초의 35,000달러에 비하면 약 1/3 미만까지 떨어졌습니다. 또한, 4초 신속결제를 가장 큰 장점으로 삼아 지난 1년여간 1,000배 이상의 상승을 기록한 리플은 이미 최고점 대비 10%까지 떨어져 고점에 물린 투자자들의 자산을 휴짓조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이미 한강 다리를 거론하는 비관론자들이 당국의 방관을 성토하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열기가 과열되는 것을 수수방관해 온 정권이 이 사태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붕괴가 새롭게 정권을 잡은 신정부의 능력을 시험하는 첫 번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볼 수 있습니다.]

2018년 한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든 것은 바로 암호화폐의 폭등과 폭락이었다.

2017년 초반부터 그해 말까지 적어도 10배에서 많게는 수천 배까지 상승한 다양한 암호화폐가 2018년 초로 들어서며 드라마틱한 폭락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모두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 30년 동안 모은 돈을 전부 리플에 넣었습니다. 이젠 어쩌죠?

- 한강 정모합니다. 같이 가실 분 구해요.

- 나도 더는 못 버티겠다. 대출받은 돈이 2억인데, 이걸 무슨 수로 갚나? 한강 정모나 참여해야겠다.

- 지난 학기 등록금까지 털어 넣었는데 이제 방법이 없다. 미래도 없다.

겨우 한 달 전만 해도 암호화폐 투자로 얼마를 벌었느니, 앞으로 얼마까지 오를 거라느니 하는 소리가 가득했는데, 분위기는 완전하게 바뀌어 버렸다.

다들 그동안 본 손해가 얼마인지 인증하고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 놓고 있다.

한편에서는 암호화폐 시장의 붕괴가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백만도 넘는 투자자들을 좌절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었다.

- 정부는 뭐 하는 거야? 단체로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관심을 갖을 건가?

- 정부가 뭘? 정부가 투자하라고 등이라도 떠밀었음?

- 지가 투자해 놓고 그걸 왜 정부한테 책임지래?

- 투기가 과열되고 있는 걸 보고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음? 정부에도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

- 투기가 과열되니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이 내내 경고할 때는 뭐 했음?

물론 정부 책임론은 그다지 힘을 얻지 못했다. 그보단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훨씬 더 많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투자자가 크든 작든 손해를 입는 가운데, 암호화폐 가격은 점점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었다.

- 이제 가망 없음? 이대로 끝나면 안 되는데?

- 하! 이혼해야겠다. 마누라 알면 당장 도장 찍자고 할 텐데.

- 포기하셈. 튤립 버블도 하룻밤 사이에 꺼져 버렸는데, 코인이라고 다를까?

대체로 이제 암호화폐 시장은 끝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대중의 의견이었다.

대장격인 비트코인이 1/3을 넘어 1/4까지 하락하고, 다른 암호화폐들은 고점의 20%에서 10%, 때로는 겨우 1%에도 이르지 못하는 가격까지 곤두박질쳤으니,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주류였다.

“이제 슬슬 1만 달러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1천 달러를 내다보고 경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CEO도 많아.”

정례적인 대화에서 유성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분위기를 전해 왔다.

암호화폐 폭락의 규모가 생각보다 더 급격해서, 유성이 지배하고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단체 소속의 각 거래소 운영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최근 1년 동안의 유례 없는 활황으로 전 세계의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놀라울 만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거래소라고는 하지만 일개 증권사에 비해서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투자만으로 엄청난 거금을 벌어들인 거래소들은 지난 1년 동안의 수익만으로도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폭등이 겨우 1년 만에 끝나 앞으로 수익이 줄어들 것에 대비해 그동안 늘려 왔던 서버나 보안에 대한 투자를 줄일 생각인 곳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 폭락의 여파가 적지 않을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고, 심지어 이 한 번의 화려한 폭등과 폭락으로 암호화폐 시장은 황혼기로 들어갈 것으로 보는 예측이 컸다.

“그건 사람들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근시안적인 관점에 불과할 뿐이야.”

하지만 유진은 암호화폐 시장의 미래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암호화폐 시장의 폭등과 폭락은 짧은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승자와 패자를 남겼어. 1년 동안 무려 수천 배에 달하는 이득을 본 사람도 있고, 같은 시간 사이에 전 재산을 날려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빚까지 잔뜩 지고 만 사람들도 잔뜩이지.”

“그렇지. 인터넷 게시글만 봐도 매일 그런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아 더욱 중요한 것은 암호화폐를 통해 너무도 많은 사람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대중들이 알게 되었단 거야. 누구나 다른 사람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을 알면 배가 아파지잖아? 그리고 난 왜 그 기회를 놓쳤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유진은 평소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이 동생인 유성을 통해 암호화폐 거래소를 거쳐 결과적으로는 암호화폐 시장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거야 누구라도 마찬가지지. 젊은 사람 중에 벌써 몇 년 전에 코인 이야기를 듣고도 투자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말이야. 폭락했다고는 해도, 작년 초에 비하면 여전히 10배 정도 오른 가격이잖아.”

“그렇긴 하지. 사실 그것 때문에 더욱 속이 쓰리니까 말이야. 아! 그렇구나. 폭락하는 것을 오히려 기회라고 삼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말이지?”

유성이 대답하던 도중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하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 상황에서 암호화폐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소수에 불과할 거야. 하지만 코인 시장 자체에 관심을 둔 사람의 수는 전보다 훨씬 더 늘었어. 지난해 초에 코인에 관심 있던 사람이 겨우 수십만 명이었다면, 지금 한국에서 코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그렇게 보면 적어도 100배는 늘어난 셈이네.”

유성이 형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시장의 규모는 열 배가량 상승했고, 관심도는 100배가 늘었지. 그리고 관심을 가진 사람 중에서 겨우 10%만 투자에 뛰어들어도 투자자는 지난해보다 열 배 이상으로 늘어날 거야.”

유진의 생각은 단지 그가 과거로 돌아오이 전 겪었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한번 이 시간을 겪어 보니, 세상의 흐름이 훨씬 더 섬세하게 이해된다.

벌써 한국에서는 시골 마을의 마을 회관에서까지 암호화폐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할 정도로 암호화폐 투자가 점점 일반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드는 중이다.

겨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암호화폐가 뭔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이제 각기 암호화폐 전문가가 되어 리플과 이더리움의 미래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을 정도이고, 노인들이 쌈짓돈을 깨서 내년에 만 배로 오른다는 수상쩍은 암호화폐에 앞다투어 투자하고 있었다.

“맞는 말이기는 해. 벌써 한 달 동안 폭락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가입자는 늘어나고 있으니까. 지금의 광풍이 일시적인 상황이고, 암호화폐는 결국 틈새시장으로 만족해야 할 거라고 한 애널리트스들도 있기는 하지만, 형의 말을 들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네.”

“물론 그런 비관론자들의 말은 항상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해.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어. 그러니까 늘 반대의 상황이 닥쳐올 것에도 충분한 준비를 해 둬야 해. 그런 의미에서 비관론자들이야말로 경영자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이들이지.”

“알았어. 비관적인 상황에는 대비를 해야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성장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지?”

“어. 폭락이 어디에서 멈추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동안에도 계속 투자자들은 늘어날 거고, 단 하루라도 서버가 멈추거나 해킹이 일어나면 그 거래소는 회생 불가 상태에 이르게 될 테니까.”

유성의 준비 덕분에 그가 운영 중인 얼라이언스에 속한 백여 개의 거래소들은 그간 언제나 투자자들에게 쾌적한 접속 환경을 보장해 왔고, 아직 단 한 건의 해킹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같은 기간 얼라이언스에 소속되지 않은 많은 거래소가 이런저런 사고에 휩싸이며 회원들을 잃는 동안, 얼라이언스의 거래소가 그들을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서 테더에 대한 조사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더구나.”

아주 다양한 커넥션을 가진 유진은 동생이 접하기 어려운 정보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어때? 긍정적인 거야?”

“아무래도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예정인 모양이야. 우선은 테더가 정말로 정상적으로 패깅이 되어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밝히지 않으면 적어도 미국 내에서 테더를 사용하는 것은 막을 모양이야.”

“그럼 문제가 크겠네. 테더를 이용하는 거래소들은 곡소리가 나겠어.”

유쾌하게 웃으며 유성이 말했다.

테더는 미국 달러와 1대1로 고정되어 많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기준 화폐처럼 사용되는 화폐이다.

적지 않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실물 화폐 입출금 시스템을 따로 만들지 않고, 이 테더를 사용해 다른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있다.

원래였다면 지금쯤 테더 사태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에 큰 충격이 왔어야 하지만, 유성이 이끄는 얼라이언스에서는 테더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얼라이언스 코인이라는 기준 화폐를 따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테더와 달리 얼라이언스 코인은 대형 투자 은행에 해당하는 액수가 정상적으로 입금되어 있음을 투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얼라이언스 코인의 투명성이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연합인 얼라이언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투자자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얼라이언스 코인의 가치 하락에 대한 두려움 없이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지금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많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는 테더와 얼라이언스 코인 중 하나를 선택해 거래의 기준으로 삼으려 하고 있고, 테더는 어떤 의미에서 얼라이언스의 가장 큰 경쟁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결정으로 테더는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10억 달러가 넘어가는 테더 발행량에 해당하는 현금을 발행사가 진짜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다면 테더의 가치는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될 터이고, 그걸 사용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 또한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에서 그냥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니겠지?”

유성은 이미 형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암호화폐 거래 시장에 있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얼라이언스에게 이번 테더 사태가 더욱 큰 호재가 될 것은 명백했다.

“정당한 규정대로 내린 결정이겠지.”

유진도 웃으며 대답했다. 테더의 몰락과 얼라이언스 코인의 독점은 얼라이언스의 수익성에도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 물량이 늘어날 것은 눈에 보듯 훤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얼라이언스 코인을 독점 발행하는 것에서 얻는 이득은 절대 적지 않다.

적어도 5년 내로 얼라이언스 코인의 발행량은 적어도 1천억 달러에 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엄청난 액수의 화폐를 발행하고, 은행에 유치해서 얻는 수익만으로도 매년 수십억 달러 이상이다.

암호화폐 투자 시장은 외부에 유용한 생산적 가치를 유발하지 않는 제로섬 게임이다.

주식의 경우라면 해당 기업이 다양한 경제 활동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고, 채권이나 다른 상품 투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오로지 투자자들의 심리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비생산적 투기 활동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돈을 벌었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그만한 액수의 자산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직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제로섬 게임의 가장 큰 승자는 초기에 암호화폐에 투자해서 일확천금을 벌어들인 소수의 투자자들이 아니라, 바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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