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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88화 (188/363)

188화 날카로운 흉기

성규와 그의 부친 사이에 오고 간 환담은 사실 그 가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대양 그룹 회장이 자신의 보유 지분을 계열사에 출연하겠다는 것이나 해외 자산에 대한 내용들도 물론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보다는 금고 안에 들어 있다는 기록물들의 파괴력이 훨씬 더 강했다.

그의 유산이야 겨우 몇조 원대에 불과하니, 유진에게야 그다지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일이다.

만일 대양 그룹에 관련된 일이 아니었다면, 그걸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해도 귀찮아서라도 관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물만은 다르다.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한국의 정치계, 관계, 사법계, 언론계의 주요 인사들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무기이고, 그걸 그대로 터트린다면 한국을 통째로 혼돈으로 밀어 넣을 폭탄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정보가 손에 들어온 이상 유진이 대양 그룹 회장의 금고를 손에 넣을 생각을 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온 존 브레넌은 보스가 필요로 하는 해법 또한 제시한다.

“ABC에서 처리하시거나, 교섭하시거나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제게 맡겨 주시면 사흘 안으로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유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수단이 쓰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존 브레넌은 진중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는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조직에 속해 있었고, 몇 년 동안은 그 조직을 직접 통제했던 장본인이다.

당연히 그 조직은 세계의 그 어떤 정보 기관 못지않게 폭력이나 그보다 훨씬 더한 행위도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존 브레넌에게 맡긴다면 가장 빠르게 그걸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면 충분해요, 존. 이 일은 데이비드에게 맡기도록 하지요.”

“그쪽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요즘 상당한 궁지에 몰려 있는 것 같으니, 적절한 당근만 제시한다면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유진은 존 브레넌 대신 데이비드를 통해 교섭하는 쪽을 선택했다.

존의 방법을 시행하다가 단 한 사람의 사상자라도 생기는 것은 유진이 절대 원하지 않는 방향이다.

물론 그의 아래에 아주 대단한 전문가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어떤 프로젝트라도 사고는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데이비드는 마침 한국에 있으니,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유진은 바로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금고 안의 유언장과 서류를 둘러싼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기 조금 전, 비밀번호를 알아낸 성규가 아직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있을 시점이었다.

기업 간 인수 합병 전문가 데이비드는 한동안 대양 그룹에 대한 일을 맡고 있었다.

주로 대양 그룹 회장의 부인과 연락을 취하며 대양 그룹 내부의 분란을 조장하는 일이었다.

회장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그 아들들과 손자들 사이에 분란을 만드는 것은 그녀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그런 일들의 배후에는 데이비드가 있었다.

유진의 지시를 받은 데이비드는 미망인에게 그가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금고 안의 유언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 전했다.

회장의 미망인에게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데이비드와 협력해서 금고를 열고 그 내용물을 넘기거나, 당장이라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해 모든 것을 날려 버리거나 양자택일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금고의 외부에 강한 충격을 주면,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서류가 훼손될 겁니다.”

물론 그렇게 호락호락한 여자는 아니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금고를 열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그녀에게도 나름의 한 수는 남아 있었다.

“원하는 대가를 말해 보시죠. 들어 드리겠습니다.”

대양 그룹 회장 미망인이 원하는 것은 당연히 아들의 안위가 1순위였다.

그 망나니 아들이 일생을 편안하게 보내고, 그녀 자신 또한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다.

“원래 당신이 받아야 했을 해외 자산을 넘겨주는 정도면 될 거 같군요.”

금고 안에는 네 개의 서류 뭉치가 존재하고,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그중 한 개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 정도를 넘겨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두 번째 조건이 문제이군요.”

미망인이 제시한 두 번째 조건은 뉴욕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옛 연인의 복수였다.

그녀는 그 사건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사실과, 그 배후에 남편의 아들들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범인은 성규입니다. 당신의 의붓아들들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어요.”

데이비드는 뉴욕에서 모은 증거들을 꺼내 놓았다.

성규가 가지고 있는 미국 내 히스패닉 갱들과의 커넥션과 자금이 오고 간 증거들 따위는 잠시 억누르고 있던 미망인의 복수심을 다시 불타오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성규가 비밀번호를 가지고 날아오고 있습니다. 그걸로 금고를 열면 두 사람이 나누어 가져야겠죠? 더군다나 성규는 그걸 배경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을 테고요.”

데이비드는 문득 자신이 악마처럼 속삭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새끼가…… 좋아요. 그 녀석을 파멸시켜 줘요.”

미망인은 자신의 복수 대상이 완벽한 파멸을 맞이하길 원했다.

“물론 죄를 지은 사람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죠.”

“좋아요. 내 몫의 해외 자산. 그리고 성규의 목. 두 개를 약속하면 열어 주겠어요.”

이번 거래에서 가장 큰 득을 본 것은 물론 유진이지만, 회장의 미망인 또한 나름의 실속을 차렸다.

그녀는 아들의 안위와 연인에 대한 복수 모두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늦은 밤, 데이비드는 급히 한국으로 날아온 존 브레넌과 ABC 한국 지사의 팀원들과 함께 저택으로 들어가 금고를 열었다.

금고 안에 들어 있는 많은 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해서 중요한 자료들을 빼돌리고, 회장이 남겨 둔 해외 자산 중 하나를 통째로 미망인에게 넘겼다.

남은 세 개의 서류를 다시 넷으로 분리하는 것은 그날의 일 중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봉인된 서류들은 조심스럽게 존 브레넌이 직접 챙겨 미군 기지에서 군용기를 통해 안전하게 유진에게 배송되었다.

그것이 지금 현재 유진이 서류를 손에 넣은 전말이었다.

“상당히 위험한 자료들이더군요. 이걸 열면 한국이 터져 나갈 겁니다. 위험한 사람 손에 들어가기 전에 회수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자료가 들어 있는 상자의 봉인을 풀어 살펴본 존 브레넌이 말했다.

그 또한 현재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위험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전직 CIA 국장이며 지금도 세계 각국의 정세를 분석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니, 아마도 가장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유진의 등장 덕분에 어렵지 않게 대선에 승리했지만, 그의 야심은 아직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시 한번 수고가 많았어요, 존.”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은 서류가 정작 그 대통령보다 더 위험한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유진은 현 대통령과 달리 정치적인 부담 따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이 무서운 흉기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남자였다.

며칠간 편하게 쉬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김환이 다음날 바로 보고를 올렸다.

- 오늘 청와대에서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청와대에서? 무슨 일로?”

- 대양 그룹 유언장 훼손 사건을 막고, 해외의 은닉 자산을 찾아낸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너무 뜬금없군.”

그건 어디까지나 검찰의 역할이지, 청와대에서 사의를 표할 것까지는 아니다.

물론 이번 사건으로 청와대와 정부 당국이 국민들의 큰 지지를 얻어 낸 것은 사실이다.

검찰은 대양 그룹 회장의 유족 일가가 회장의 유언장을 훼손해 그룹에 돌려주려던 5조 원대의 유산을 착복하려던 것을 막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3조 원대에 달하는 해외 은닉 재산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무려 8조 원이라는 거액의 자산이 불법적으로 대양 그룹 회장 일가에게 승계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국가에서도 적지 않은 범죄 수익을 추징할 수 있었으며, 두 개로 분리된 대양 그룹도 호재를 얻어 전 계열사의 주가가 수직 상승해 특히 주력 계열사들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대양 그룹 일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즐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한 검찰과 행정부, 그리고 나아가서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또한 높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청와대에서 고맙다는 말을 해 오는 것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이번 사건에 결정적인 제보를 한 것은 여당의 중진인 양 의원이었고, 그의 뒤에 SS파트너스가 있다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을 터이다.

-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양 그룹 류 회장이 금고에 꽤 위험한 자료들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필하더군요. 그리고 그 자료들에 연관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요.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그 서류들은 완전히 봉인되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아무래도 류 회장의 서류를 자신들이 활용할 생각은 없는 듯싶습니다.

그쪽에서 SS파트너스의 주인이 유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유진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처리해 적어도 30년 동안은 봉인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봉인하겠다는 말을 굳이 제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김환은 왜인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야 정국의 안정을 위해 그걸 열어 쓸데없는 풍파를 만들지 않겠다는 거 아니겠어? 현명한 처사지.”

- 그 사람들이 그럴 사람들인가요? 필요하다면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자기 손에 들어온 완벽한 무기를 버린다는 말이잖아요?

“그 위험한 칼을 휘두른다면, 누군가가 반드시 다치고 말 테니 그러겠지. 더군다나 자칫하면 오히려 자신도 다칠 수 있고 말이야.”

- 맞아요. 자기들도 위험해지지 않는 이상 그 좋은 무기를 봉인할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그 무기를 손에 넣은 것은 그쪽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김환은 벌써 눈치를 챈 듯한 말투였다.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에서 그런 더러운 돈이 오간 출처가 오직 대양뿐이겠어? 틀림없이 다른 곳에도 그런 무기야 얼마든지 있겠지.”

대양 그룹 회장의 비밀 서류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김환까지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 그러게 말입니다. 다행이네요. 그런 위험한 게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되어서 말이지요.

유진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김환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쪽에서 엄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 같으니 다행이네.”

물론 유진은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 한데…… 이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더군요.

“어떤?”

- 제가 발이 좀 넓은 것은 아시잖아요?

“그래. 여기저기 좋은 친구들이 많지.”

- 국정원에도 친구 하나가 있어요. 그쪽에서 정보 분석관으로 일하고 있는 녀석인데요. 요즘 거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모양이에요.

김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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