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수상의 아들
유진의 투자가 모든 한국인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낙수 효과를 기대했던 많은 기업은 막상 자신들이 투자에서 소외되고, 오히려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그런 기업들에 대해 그리 많은 지원을 할애할 생각은 없었다.
수백조 원의 투자라고 해도, 그걸 너무 많은 기업에 지원하면 낭비되는 자원이 많을 것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투자에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효율성과 집중이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의 투자라면 그보다는 분배 과정에서의 공정성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진은 정부도 아니고, 단순히 기부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투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그리는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유진은 투자에 소외되었다거나 오히려 불이익이라는 따위의 불만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저임금이 겨우 6,500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대다수 직원에게 최저임금만을 지불하는 수많은 기업주의 형편을 신경 써 주어야 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와중에 기업들 스스로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의 급여를 상향하는 것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많은 인재들을 끌어와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은 틀림없이 취업 전선에 나서는 사람들을 빨아들일 것이고, 기업들은 그에 발맞춘 대응책을 스스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주로 코딩과 영어 학습 위주가 되겠군요? 그렇다면 한국이 인도에 이어 실리콘밸리에 코더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요?”
“물론 코딩도 중요하겠지요. 그런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코딩 교육기관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포함한 전반적인 IT 교육과 창의적인 교육을 통해 소프트웨어 제작 전반에 관련된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는 기관이 될 것이고, 오직 취업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업무에 익숙해지고 창업까지 가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김환의 발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직업의 교육이 훨씬 더 많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패션 디자인 분야도 역량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세계 3대 패션 스쿨인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벨기에 왕립학교, 그리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와 협력해 세계적인 디자인 교육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게 할 예정입니다. 물론 말씀드린 교육기관들과의 협의는 이미 마쳤습니다.”
“그러면 3대 패션 스쿨의 분교가 들어오는 셈인가요?”
세 학교의 이름을 거론하자, 기자들의 반응이 곧바로 강하게 튀어나왔다.
한국의 많은 교육 분야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유독 디자인과 패션 분야에서는 김환이 거론한 학교들은커녕 일본의 패션 스쿨과의 비교도 어려운 수준이다.
이런 학교들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유학도 가지 않고 받을 수 있다면 많은 관심이 쏠릴 것이 당연하다.
“분교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어디까지나 협력입니다. 하지만 해당 교육기관의 수준 높은 교수들의 수업을 직접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외에도 경영이나 재무, 세무, 회계 관련 교육도 있고, 간호나 재활 등, 다양한 의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커리큘럼이나 심지어 용접이나 배관 같은 기술직 교육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
“분교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어디까지나 협력입니다. 하지만 해당 교육기관의 수준 높은 교수들의 수업을 직접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외에도 경영이나 재무, 세무, 회계 관련 교육도 있고, 간호나 재활 등, 다양한 의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커리큘럼이나 심지어 용접이나 배관 같은 기술직 교육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기술직까지 지원한다는 말에 다시 한번 장내의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간호직도 그렇지만 용접이나 배관 같은 기술직은 한국에서는 그다지 선호되는 직업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서구 국가에서는 이런 기술직이 어지간한 화이트칼라 이상의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죠.”
“그런 기술직까지도 해외로 유출되면 정말 한국에는 남아 있을 사람이 없겠군요.”
여전히 기자들 가운데에는 해외 인력 유출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 있었다.
그런 인력들이 해외로 나가면, 한국에서의 서비스 비용이 높아질 것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일주일에 열 몇 시간씩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다 해외에 진출해 개척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단지 10%만 되어도 한국의 인력 시장엔 연쇄 작용이 일어나 임금 수준의 상승이 올 것은 누구나 예측 가능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한국의 급여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인생을 개척하겠다는 분들이 참여하실 겁니다. 여전히 한국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마 훨씬 더 많을 테고요.”
“이런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역시 전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 막냇동생이 내년에 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한국 기업에 취업할지, 아니면 새로 생기는 교육기관에 들어갈지 고민하더군요. 그 녀석이 해외에 취업하는 것도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한가요?”
김환이 웃으며 물었다.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지 않습니까? 강 회장님께서 만드시는 교육기관이라면 솔직히 대학보다 훨씬 더 나을 텐데, 대학의 입장에서는 너무 불리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국내의 수많은 대학들이 신입생의 경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방금 기자분께서도 말씀하셨네요. 대학보다 낫다고요.”
김환의 대답에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대학보다 나은지는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교육기관보다 못한 수준의 수업을 하고 있는 대학이 있다면…….”
김환이 기자를 넌지시 바라보며 잠시 숨을 멈추었다.
“정말로 그런 대학이 있다면, 교육 장사는 그만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 의미도 없는 졸업장 장사를 하는 곳을 정말로 진리의 전당이라 부를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김환의 말에 기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하지 못하는 대학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설혹 있다면 저희가 신경을 써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김환을 통해 교육기관 설립에 대한 발표가 있고 나서, 유진의 인기는 다시 한층 높아졌다.
사람들은 유진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가 정치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당장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야 한다고. 아무런 공직 생활도 안 하고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순 없으니까 잠깐이라도 의원 활동을 하다가 대선에 나가면 됨.
- 강 회장은 미국 사람인데?
- 뭔 상관임? 한국 사람보다 더 애국하는데?
- 국적 회복 가능함. 원래는 몇 년 뒤에 가능한데, 국회에서 법을 바꾸면 당장이라도 가능함.
- 국적 회복해도 이중국적이라 안 됨.
- 그것도 법을 바꾸면 됨.
- 헌법도 바꿔야 하는데?
- 헌법도 바꾸면 됨.
- 강 회장을 청와대로!
물론 유진의 인기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로 그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정치권은 더러운 곳이었다. 유진 같은 애국자가 갈 곳은 못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후지타 상. 반갑습니다.”
그즈음 뉴욕의 유진은 일본의 정계 인사들과 활발한 접촉을 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강 회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디에서 제대로 배운 한국어로 허리를 깊숙하게 숙이며 인사를 해 오는 40대의 잘생긴 남자에게 유진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회장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는 말씀을 듣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렇게까지 환대를 해 주시니 정말로 감격스럽습니다.”
이날 특별한 자리를 만든 후지타 유아야는 2선의 중의원이다.
이제 겨우 갓 마흔을 넘긴 이 잘생긴 남자가 벌써 2선이나 할 수 있던 것은 물론 그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선거구 덕분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정치계는 혈통으로 인한 세습이 당연시되고 있다.
부친의 선거구는 자식이 물려받고, 부친이 당의 중진이라면 자식도 언젠가는 그만한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후지타 유아야의 부친은 지역에서 무려 7선을 역임한 의원이었고, 말년에는 수상까지 역임했으니 일본 정계에서는 그야말로 금수저 중의 금수저라 할 만한 사람이다.
일본의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 선거에 나서기 전 후치타 유아야는 모델로 그리고 배우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둔 연예인이었다.
키가 180을 훌쩍 넘고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구형 마스크를 가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의 배경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웃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인 장신의 남자가 국가 원수의 아들이라는 배경까지 가지고 있으니, 일본의 여자들이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 부친의 선거구를 물려받지 않고 경쟁이 치열한 도쿄에서 출마했어도 무난하게 당선되었으리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미남이시군요.”
유진은 정치인을 상대로 하는 인사치레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야! 감사합니다. 제가 평생 잘 생겼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 왔지만, 이렇게 강 회장님께 그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후지타는 유쾌하게 웃어 재끼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머리를 쓸어올렸다.
저 모습에 반해 유세장에서 주저앉는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일화를 떠올린 유진은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듣던 대로 후지타는 자신의 외모를 칭찬받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르시스트. 특히 외모에 대해서는 큰 자부심이 있다는 후지타에 대한 보고서를 유진은 기억하고 있다.
“강 회장님도 굉장히 미남이시네요. 하하.”
후지타는 그렇게 누가 들어도 마음에 없어 보이는 인사를 해 왔다.
사교 능력이 뛰어나서 누구와도 잘 사귄다.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소리를 주로 하지만, 외모 덕분인지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높다.
유진은 다시 한번 그에 대한 보고서가 한치도 틀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고서의 작성자는 존 브레넌이 신뢰한다는 일본 담당이다.
일본의 정계와 행정부에 적지 않은 커넥션이 있다고 하며, 외부에는 발표되지 않은 국가 기관의 정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입수한다고 하니, 그저 평범한 의원 한 명의 정보야 틀릴 것도 없으리라.
“후지타 상이 좋아하신다고 해서 마련해 보았습니다.”
유진은 손님을 맞이할 때면 언제나 플라자 호텔의 가장 호화로운 방을 준비해, 상대가 원하는 요리와 술을 충분하게 차려 놓는다.
그리고 이날은 평범하게 화려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후지타는 외모와 달리 그리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은 따로 있다.
“참. 오늘 회동에 함께 할 손님을 한 분 초대했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손님이요? 아…… 물론 상관…… 없습니다.”
순발력도, 외교 능력도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닌 후지타다. 예기치 못한 말에는 쉽게 당황하고 말을 더듬는다.
“할리우드의 미셸 양이 마침 뉴욕에 와 있다고 하더군요. 마침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기에 실례임을 알면서도 초대했습니다.”
“미셸? 미셸이라면…….”
후지타가 기대에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미셸 루비나 양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아시고 계시는지…….”
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지타의 얼굴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