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초석
후지타와 미셸 커플의 백악관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미국의 미디어 매체들에서는 차기 일본을 이끌어 갈 지도자로 손꼽히는 후지타가 미국을 방문한 데 대해 예외적으로 크게 보도했다.
일본의 유력 신문사와 방송사들에서도 후지타의 백악관 방문 기사를 하루에도 몇 꼭지나 실어 가며 후지타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후지타의 부친이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언론에서 후지타를 띄워 준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일본의 미디어 매체들은 항상 국내 정치보다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에 관해 훨씬 더 자세하게, 자주 보도해 왔다.
일본의 정치권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외부에 돌리려고 언론에 압박을 넣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인들도 자국 내 상황보다는 미국, 한국에 관해 더 큰 호기심을 품고 있는 이유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늘 한국의 정치인이나 연예인, 그리고 미 대통령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여 왔다.
그런 상황에서 자국의 미남 정치인이 미국 내에서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하니, 일본 언론이든 일본인들이든 후지타에 관한 기사에 열을 올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재미있네요. 미국 언론들은 열 살이나 많은, 한물 간 배우 미셸이 일본의 젊은 정치인과 사귄다는 사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후지타가 국제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어요.”
일본과 미국 언론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모니카가 웃으면서 결과를 알려 준다.
“후지타의 부친은 일본에서 6년 동안이나 수상을 역임하며 국민들에게 아주 큰 사랑을 받아왔으니까. 그의 아들에 대해 좋지 못한 기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거야.”
“민주주의 국가의 언론으로서는 빵점이에요. 대체 그게 무슨 짓인가요?”
“일본의 언론인들에게는 몇 가지 금기가 있지. 일본 왕실, 일본 경찰, 야쿠자, 종교 단체, 그리고 몇몇 정치인들에 대한 보도는 극도로 신경 써야 한다고 하더군.”
모니카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 관해 보도할 때는 최대한 비판하는 어조를 피해야 후환이 없다더라. 만일 금기를 어기면 적지 않은 보복이 돌아오는 모양이야. 그러니 차라리 안전하게 해외 기사나 연예인에 관한 기사를 주로 올리는 거지. 외국인이나 연예인들이 언론인에게 보복할 방법은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미국과는 다르네요. 미국 언론인들은 그런 보복 따위 신경 쓰지 않는데요.”
모니카가 여전히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물론 일본에도 한때는 그런 언론인들이 있었지.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언론인들은 하나씩 축출되고,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언론계의 요직을 휘어잡은 모양이야.”
“바보 같아요.”
“하지만 그만큼 일하기는 편하지.”
“하긴, 편하긴 했어요. 우리가 넘겨 주는 자료를 그대로 읽어 주더라고요. 미국 기자들이 알면 기를 쓰고 물어뜯을 일도 그냥 쿨하게 넘기고요. 하하!”
사실 후지타가 미국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부터가 거의 모니카의 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후지타와 미셸이 다정하게 플라자 호텔을 나서는 순간에 플래쉬를 터트린 연예 기자도 모니카가 부른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애정 전선에 관한 근거 자료들도 모니카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들로 선별해서 뉴욕의 몇 개 신문사와 방송사에 넘겼다.
그 뒤를 이어, 미 정계의 유력 인사들을 만나는 후지타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언론사에 배포되었다. 그가 워싱턴으로 넘어가 백악관에서 쿠슈너와 이방카 두 사람을 만나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사진 또한 의도된 연출에 가까웠다.
일본 유수 언론사의 뉴욕 특파원들에게 전해진 자료도 비슷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언론이 두 사람에 관해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미국 언론은 어디까지나 흔한 연예, 가십 기사 정도로 여겼지만, 일본은 후지타를 유력한 국제적 정치인으로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미국인인 미셸이 배우라는 사실과 일본인인 후지타가 정치인이라는 사실도 양국 언론의 온도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일본 언론들은 과하리만치 후지타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내지 않고 있었다.
이는 일본 언론에 그만큼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오늘 일본 야후 검색어는 거의 후지타와 미셸에 관련된 것뿐이네요. 심지어 미셸이 10년 전에 출연한 독립 영화까지도 검색 순위에 올랐어요.”
“미셸이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여배우가 되는 날도 얼마 안 남았군.”
“다행이에요. 왜 보스가 한물간 배우를 캐스팅하자고 주장했는지 이제 알겠네요.”
영화 제작에 좀처럼 관여하지 않던 유진이 이번에는 미셸을 캐스팅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 요청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제작사와 감독은 물론이고 유진의 측근들조차 의아해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셸의 이름이 미국과 일본 양국에서 잔뜩 거론되기 시작한 상황에서는 제작사도 감독도 유진의 제안을 반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난 미셸에게 아직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하긴……. 아무리 보스라고 해도 데뷔한 지 오래되고, 이제 중년을 넘어선 여배우가 하룻밤 만에 일본 유력 정치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라 예상하진 못했겠죠.”
모니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면 보스는 단순히 통찰력만 있는 게 아니라 운도 좋은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이번 영화도 성공할 테고, 거기다 일본의 유력 정치인의 마음도 손에 넣은 셈이 됐잖아요.”
유진의 곁을 가장 오랜 시간 지켜 온 모니카라 해도, 유진이 의도적으로 미셸과 후지타를 붙여 두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누가 보아도 그럴 것이다. 남자 쪽이 10살이나 많고, 훨씬 더 우위에 서 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저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눈이 맞았다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두 사람……. 앞으로도 잘될 수 있을까요?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미스터 후지타의 집안에서 크게 반대할 것 같던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후지타는 다른 건 몰라도 사랑에 관해서는 뚝심 있는 남자이니, 집안의 반대도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거야.”
“그러려나요…….”
“후지타가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데 미셸이 도움이 된다면 그쪽 집안에서도 심하게 반대하지는 않을 거야. 부친의 뒤를 이어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는 것이 그 집안의 가장 큰 야망이니까.”
“결국 두 사람이 잘되려면 미셸이 일본인들에게 사랑받아야 하겠군요.”
“우선은 미국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지. 그리고 미셸이 출연하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야 하고.”
두 사람은 후지타와 미셸이 결혼에 성공하는 길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후지타가 일본 수상이 되면 꽤 도움이 되겠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요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일본 시장에서는 성과가 미미한 편이니까.”
“일본 시장도 확실히 중요하지요. 중국이 대두된 이후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잖아요. 그런 것에 비하면 확실히 우리도 일본 시장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아요.”
지금까지 요안나가 이끄는 자산 관리 회사는 일본에 그리 많은 자산을 할애하지 않는 기조였다.
“소니, 키엔스, 화낙 같은 몇몇 기술 기업과 프리퍼드 네트웍스, 스마트 뉴스 같은 스타트업들, 그리고 노무라 증권 정도 말고는 큰 투자처가 없잖아요.”
“당장은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유진이 원하는 회사는 키엔스·화낙·SMC·레이저텍 같은 원천 기술을 지닌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그 외의 일본 기업들은 지난 삶에서 크게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이 시기에 미국이나 중국의 기업들에 비해 주목할 만한 부분도 딱히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 투자에 많은 자산을 할애하기 어려웠다.
2010년 이후로 일본에서는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처럼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미 안정적인 경제 구조로 굳어지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벤처 기업에 대한 내부적인 투자도 세계적인 추세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일본의 국민들이 새로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컸다.
“키엔스, 화낙 같은 전통적인 기술주에 대한 투자는 계속 이어 가도록 해.”
유진이 일본 시장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한결같았다.
세계적인 공작 기계와 로봇 제작 업체인 화낙, 그리고 제어 계측 장비 분야의 1위인 키엔스, 산업 자동화 업체인 SMC 같은 기업의 주식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일본 산업 사회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곳은 역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기술 기반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이 지닌 경쟁력은 한국이나 중국 유수의 대기업들조차 좀처럼 따라잡기 어려울 터였다.
“시장에 풀린 건 가능하면 최대한 매입하고 있어요. 거품이 꽤 낀 것 같지만…….”
요안나는 조금 걱정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의 다른 투자와는 다르게 일본의 기술 기업들에 대해서는 수익성을 돌아보지 않는 맹목적인 투자를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상관없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업체들이니까.”
유진은 앞으로 2~3년 내로 그 기업들의 가치가 폭등할 것임을 알았다.
그때 가서 주식을 처분해 수익을 낼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때 가서 비싼 값에 주식을 매입하는 건 별로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알겠어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죠?”
요안나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스가 그런 말을 할 때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진은 화낙, 키엔스 같은 기업에 대한 투자가 요안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장기적인 계획의 일환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유진은 궁극적으로 일본의 기술 업체들을 완벽하게 지배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단계에 이르려면 단순히 지분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 내부에서도 기술 관련 기업이 일본의 중추라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해외 자본으로부터의 간섭이나 관여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결국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단순한 투자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번에 후지타를 부르고, 미셸을 엮어 주고, 백악관에 보낸 것도 그러한 장기적인 계획의 일환이었다.
일본에서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하는 투자였기에, 유진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올해도 주식 시장은 순항입니다. 상반기 주식의 투자 수익만 2,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요안나가 투자 성과 보고를 올렸다.
유진은 자산 중 반 이상을 주식, 그중에서도 미국의 선도적 기업에 투자해 두었다.
앞으로 3년 동안은 세계 증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특히 미국 증시가 압도적으로 성장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FAANG. 즉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구글, 그리고 넷플릭스 같은 IT 대형주에 투자된 자산은 이미 1조 달러를 넘어서고 있었다.
실제 유진의 자산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큰 이유는, 다른 대형 투자 은행들을 통해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보다 몇 배나 많은 레버리지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내 100대 기업의 지분은 모두 2조 달러에 달했다.
이제 유진이 투자에 할애하는 시간은 많이 줄어들었다.
대략적인 방향을 제시하면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전문가들에게 돈을 버는 일을 위임하고, 유진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