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96화 (196/363)

196화 좋은 결말을 맺는 방법

“회사를 매각하기에 좋은 시점은 아닌 듯합니다. 적어도 1년 뒤에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와 백악관의 거물 앞에서 열심히 브리핑하고 난 다음 날, 난데없이 회사를 넘기겠다는 말을 들은 유아라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아라는 남편인 이현욱과 함께 중국 시장을 개척하고, 이방카 트럼프 패션 그룹을 안착시키기 위해 잠을 설칠 정도로 노력해 왔다.

유아라의 중국 패션 시장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다양한 생산 거점을 연결하는 능력, 그리고 뛰어난 디자이너인 이현욱의 센스 덕분에 이방카 트럼프 패션 그룹은 이제 유니클로, 자라와 함께 중국 내 패스트 패션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진이 이방카 트럼프 패션 그룹을 중국의 기업에 인수시킬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하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이방카 트럼프 패션 그룹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할 것 같아요.”

“물론 중국 시장에서 외국계 기업의 한계는 틀림없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 의류 시장에 대해 다방면의 노력을 해 왔습니다.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물론 두 사람의 노력이나 역량을 무시하기 때문은 아니에요. 두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중국 시장에서도 더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두 분이 아니라 외부에 있어요.”

“외부라고요?”

어떻게든 유진을 설득해 보기 위해 그간의 성과를 피력하던 유아라가 순간 멈칫하며 되묻는다.

“사실 외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군요. 브랜드 자체가 문제이니 말이지요.”

“이방카 트럼프…….”

“혹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기 때문인가요?”

사업을 주도하는 쪽은 아내인 유아라였지만, 남편인 이현욱이 먼저 알아차린다.

“그렇습니다. 현재 미국 내에서 점점 중국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노동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요. 조만간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 정부에서도 어떤 조치를 취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중국 내 이방카 트럼프의 인기는 크게 위협받게 될 겁니다.”

“아!”

유아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유진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과 분쟁이 생기면 중국 국민들이 보이콧을 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두 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어쩌면 물리적인 충돌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지난번 조어도 사태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과거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몇 개의 무인도와 암초섬에 대한 영유권을 사이에 둔 분쟁은 양국 국민에게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고, 중국 각지에서는 반일 시위가 일어나 일본어로 된 간판이 걸려 있는 가게를 습격하거나 일본산 자동차를 태워 버리는 등의 과격한 행위가 잇달았었다.

“하지만…… 사실 중국 인민들은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유아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중국에 오래 있어서인지, 그녀는 중국 국민이라 하는 대신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중국에서 오래 일하는 한국인의 경우 몇몇 단어 사용이 한국과 달라지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한국말에 영어를 끼워 쓰는 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럽다.

“맞습니다. 이미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일반인들은 중앙의 정치와 자신을 구별하는 것을 삶의 지혜로 알아 오고 있어요.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상당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상품의 구매를 거부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감정과는 꽤 달라요.”

이현욱이 유아라의 말에 동조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상 중국인들은 국가에 대해 크게 애착을 지니고 있지 않아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항상 현시점에서 살아남는 것, 그리고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 내는 것이죠. 더군다나 중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집회와 시위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공산당 외의 어떤 사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그 시위라는 것도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의지라고 보면 됩니다.”

유아라에 비해 훨씬 더 짧은 시간을 중국에서 보낸 이현욱이지만, 그 역시 중국 사회에 대해서 부인 못지않은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미중 간의 분쟁이 발생한다 해도, 중앙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방카 트럼프 패션에 대한 폭력적인 사태나 가시적인 불매 운동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대통령 딸의 이름을 훼손시키는 짓은 할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정말로 미국과 완전히 척을 질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이현욱의 의견은 무척이나 합리적이었다. 아무리 기세가 치솟고 있는 중국이라 해도, 미국과 완전히 적대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도 여전히 중국 정부에서 여러 방면으로 트럼프 일가에게 선을 대어 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진이기에 더욱 그의 의견을 받아들일 만했다.

“중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본이나 미국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작하는 일은 없다는 말씀은 꽤 실정에 부합한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언제까지고 트럼프 일가의 사업을 방해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럴까요?”

“중국 정부, 정확히 말하면 정권의 제일 상층부에서는 미국에서 먼저 제재에 나서지 않더라도 미국과 반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요.”

유진의 말에 두 사람은 설마 그런 일이 있겠냐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빈부격차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반발도 늘어나고 있지요.”

“맞아요. 세계적인 대부호들과 하루 몇천 원의 급여로 만족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대립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내재적 불만이 쌓이면 결국 중국 정부에도, 그리고 정권의 최상부에도 큰 부담이 될 겁니다. 더군다나 이제는 중국 경제가 지금까지처럼 고도의 발전을 이루기도 어려운 형편이고요. 결국엔 중산층 미만의 서민들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희망을 잃게 될 겁니다.”

유진의 말에 유아라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흐음…… 확실히 예전에 비해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불만들이 정권을 향하게 되는 것은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절대로 바라지 않는 일이지요. 당장 89년도의 일만 보더라도 그런 사태를 얼마나 우려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이 위로 향하는 것보다 외부로 향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지금까지 반일 감정이나 반한 감정들을 이용해 왔고요. 하지만 일본과 한국만으로는 분출되는 불만을 충분히 해소하기 어렵습니다.”

2000년 이후로 몇 번이나 있어 온 중국의 반일 시위, 그리고 한국에 대한 불만을 조성하는 것은 중국 시민 사회의 자발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개인들이 사용하는 메시지마저 검열할 정도로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시위나 언론의 목소리는 전부 정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유진은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일본이나 한국을 국민들의 불만의 방향을 돌리는 역할로 사용해 온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도.

“그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 일부러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조장할 것으로 생각하시는 건가요?”

막상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중국 정부의 노림수가 따로 있다는 사실은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내부적인 불만은 원인을 해소하기보다 외부의 적에게 돌리는 쪽이 훨씬 쉽고 효과적이지요. 트럼프 행정부라고 다를 것 없어요. 노동자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드는 것보다 이민자를 쫓아내고,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런 쉬운 정책 방향은 한국에서도, 또 선진국이라는 유럽 여러 나라의 우파 정당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장님의 말씀이라면 틀림없겠지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원하는 곳에 넘기는 것이 낫겠네요.”

비로소 두 부부는 납득이 가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두 사람은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를 중국에서 선도적인 패스트패션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잠도 아껴 가며 노력해 왔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레 이런 결정을 듣게 되었으니 날벼락을 맞은 기분일 것이다.

“물론 아쉬움이 많으시겠지요. 하지만 때로는 물러설 시기를 아는 게 더욱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는 두 가지 옵션을 드리려고 합니다.”

“옵션이라면?”

“어떤 옵션인가요?”

이제 그들이 지금까지 이루어 낸 성과에 대한 보상을 논의할 시간이 왔다.

“약속대로 두 분의 지분 14%는 당장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유아라와 이현욱 부부는 처음부터 스톡옵션을 책정받아 회사의 성적이 적정 수준에 이르면 적지 않은 지분을 저렴한 가격에 매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계약상의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기에, 두 사람에게는 자칫하면 자신들의 권리를 날려 버릴 위험한 순간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두 분이 지금까지 이룬 결과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유진은 자신이 투자하는 어떤 기업에도 정당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그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제대로 된 원칙을 지키는 것이 후일을 생각하면 훨씬 더 큰 이익을 가져올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두 분은 그 지분을 매수자에게 우리와 동등한 가치로 팔 수 있는 권리를 지니게 되셨습니다. 아마도 대략 11억 달러 정도 되겠군요.”

유진의 말에 두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물론 이방카 트럼프 패션 그룹이 이대로 순항해서 상장에 성공했다면 이보다 훨씬 더 큰돈이 될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게 물 건너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수 시점까지의 퇴직금으로 대략 그 10% 정도가 책정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이방카 패션 그룹의 경영인으로서 당분간 책임지셔도 괜찮고요.”

“저희가 계속이요?”

유안나가 눈을 반짝거린다. 아무리 큰돈이 들어온다 해도 자신이 일군 첫 번째 성공을 그대로 놓아 버리기는 아쉬운 모양이다.

“마침 그쪽에서도 두 분을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적어도 2년 동안은 회사를 맡아 주셨으면 하더군요. 아마 지금까지 받아 온 연봉 이상을 보장받게 될 겁니다. 물론 퇴직금은 더욱 늘어나겠지요.”

“음…….”

다시 두 부부는 한동안 눈빛을 교환했다.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우리 두 사람이 중국에서 이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던 것은 생각해 보면 전부 회장님이 제시해 주신 비전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한참 만에 유아라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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