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97화 (197/363)

197화 나눔과 공헌

“솔직히 저와 이이 둘만의 힘으로는 어려웠을 거예요. 우선 이방카 트럼프라는 브랜드도 그렇지만, 처음부터 수십 개 도시에 공격적으로 매장을 열고, 완벽한 공급망을 만들어 내고, 그런 일들이 전부 회장님의 처음 지시였잖아요? 그런 걸 제외하면 사실 우리 둘이서 전부 해냈다고 감히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만일 회장님이 아니셨다면 계속해서 브랜드를 억지로 끌고 가려 했었을 테고, 결국은 미중 간의 분쟁 와중에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겠지요.”

“그러니까…… 죄송하지만 이번에도 저희에게 좋은 길을 제시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유진은 그렇게 부부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조금 놀랐다.

두 사람은 서로가 눈빛을 교환한 것만으로 벌써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다. 인생의 동반자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우선 두 분의 돈은 충분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한동안은 여유를 갖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렇다면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는 게 낫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물론 여전히 애착은 있으시겠지만, 두 분은 아직 젊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은 충분하시잖아요?”

유진이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자 두 부부는 다시 생기 있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번 패션 사업에 도전하라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사실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의 한계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만으로 시작하기에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 저도 이대로 패션 사업을 완전히 접는 것은 마땅치 않아서요. 만일 두 분께서 재충전이 끝나고도 함께 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새로운 시작을 함께할 수도 있겠지요.”

유진은 유아라와 이현욱 두 사람의 잠재력이 지금까지 중국에서 이루어 온 이방카 패션 그 이상의 결과를 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번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를 넘기는 대가로 새로운 의류 사업을 시작할 때에 도움을 받기로 한 것도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터이지만, 그러고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보스와 함께 일할 수 있다면, 무조건 하겠습니다.”

“솔직히 같은 사업을 두 번 성공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다음번에도 이 정도로 확장시킬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보스와 함께라면 없던 자신감도 돌아오는 것 같네요.”

부부는 이번에도 눈빛 한 번 교환하는 것만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물론 다음번에는 지난번과 다른 조건이 되어야 할 겁니다. 두 분도 약간의 투자를 해야 하고, 지분은 처음부터 픽스하도록 하지요.”

“투자라면 얼마든지 하지요. 이젠 우리도 지갑이 두둑해졌잖아요?”

“아! 물론 보스 앞에서 지갑 이야기를 하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요. 하하.”

사실 두 사람은 애지중지 키워 놓은 사업을 넘기는 것에 큰 아쉬움을 갖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각자에게 떨어질 액수가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한 양가감정 속에 유진이 다시 제안을 해 오니, 부담은 덜어 내고 마음껏 이날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지분 협상이라든지, 자본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도록 하죠. 우선은 이번 일을 마무리하는 것에 신경을 써 주세요. 사 가는 쪽에서도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워 놓은 장기 계획 중에 오픈할 수 있는 것은 오픈하도록 하지요.”

유진에게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를 사 갈 사람들은 최소한 1년 동안은 성장세를 유지해 주기를 원했다.

“물론이지요. 마무리는 확실하게 해야죠.”

부부의 행복한 얼굴을 보니 유진도 마음이 편해진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사이라 해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어느 일방이 손해 보지 않게 하는 것이 유진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다.

다시 한번 삶의 기회를 얻은 뒤부터, 단순하게 많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이미 미래의 지식을 잔뜩 알고 있는 유진에게 부의 축적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만일 그저 많은 돈을 벌겠다고 생각했으면, 지금처럼 많은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진은 그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다.

적어도 그가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하는 상대와는 항상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단순히 상대를 어디엔가 써먹으려는 목적에서는 아니다.

그러한 관계에서 유진 스스로가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욱 클 것이다.

그렇게 유진의 사람이 늘어나면서, 유진이 챙겨 주어야 할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날 만나기로 한 아데예모 또한 그 일원이었다.

유진이 거액의 자금을 후원해 조직한 싱크탱크인 SF 재단 (지속 가능한 미래 재단, Sustainable Future foundation)을 책임진 월리 아데예모는 최근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다른 수익 사업과 달리 SF 재단은 당장의 쓰임새가 아닌 장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조직되고 있었고, 아주 많은 미국의 중요 인사들과 관계되어 있기에 서두르지 않고 아데예모의 지휘 아래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SF 재단은 특성상 미국 여러 도시에 연구실을 마련해 두었지만, 헤드쿼터는 뉴욕, 맨해튼에 있었다. 유진의 다른 건물들처럼 역시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5번가였다.

그 때문에 점심 무렵이면 아데예모가 슬금슬금 걸어서 유진의 사무실을 찾아오고는 한다.

“지난번에 요청하신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다리고 계셨을 것 같아 가지고 왔습니다.”

아데예모는 두툼한 서류철을 들고 방문했다. 사실 이런 것은 얼마든지 메일로 보내도 될 터이지만, 굳이 직접 찾아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중임을 역임한 월리 아데예모는 블랙록과의 치열한 영입전 끝에 결국 유진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유진이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블랙록에서 월리 아데예모에게 제시한 자리는 래리 핑크 회장의 비서실장이었고, 유진이 내놓은 자리는 연간 10억 달러의 예산을 책임지는 싱크탱크의 책임자였다.

그러니 야망을 지닌 월리 아데예모로서는 아무리 대단한 월가의 대표 주자라 해도 래리의 개인 비서 노릇을 하는 것보다 미래의 미국 정책을 이끌어 갈 싱크탱크를 지휘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SF재단의 설립 목적은 다양한 견해를 지닌 석학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연구 기반을 제공하고, 미래의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데에 있다.

물론 사실 이건 부수적인 목적이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미국 정치계와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을 포섭해서, 그들에게 적당한 선물을 안겨 주는 것이다.

당장에 월리 아데예모 같이 지난 정권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직함을 주고, 연구비라는 구실로 풍부한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미래에 그들이 다시 요직에 오를 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한편으로는 현직의 사람들에게도 퇴직 후에 동등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이미 SF 재단은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이고, 전전대인 부시 행정부의 요직에 있던 수많은 전직 관료들을 연구원으로 초빙해 그들이 현직에서 받던 이상의 연봉을 지원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연구비라는 미명이 있기에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

한편 연구 과제는 그들이 직접 정한 것으로 하고, 정해진 기간 내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그들의 의무는 끝난다.

하지만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는 전직 관료들은 대부분이 무척 열정적으로 연구에 임했고, 벌써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하나씩 내어놓고 있다는 사실에 유진은 조금 놀라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세계의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초강대국인 미국의 최고위층 인사들이 단순하게 연구비만 받아 내며 의미 없는 보고서나 내놓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남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하고, 훨씬 더 정열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그런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잠시 현역에서 떠나 있다고 해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낼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을 리 없다.

“피터 루스터가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흠…… 그렇군요. 사회에 대한 공헌이 필요하고, 결국은 그만한 자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거로군요.”

유진이 대충 서류를 넘기며 개요만 읽어 보고 입을 열었다.

선거 대책 전문가인 피터 루스에게 요구한 것은 유진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이었고, 피터 루스는 결론적으로 세계 제일의 부자인 유진에게는 자신의 부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회에 돌려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 것 같더군요. 제 생각에도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아데예모가 직접 가지고 온 것은 이에 대해 그도 생각하는 바가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점심 식사는 하셨습니까?”

시간을 보니 주문한 요리들이 도착할 때가 다 되었다. 일은 잠시 미뤄두어야 할 것 같다.

“아직입니다. 어쩌다 보니 식사 시간을 놓쳤습니다.”

아데예모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잘 되었군요. 마침 저도 식전인데, 함께하실까요?”

“오늘도 한국 음식인가요?”

아데예모와는 몇 번 함께 한국 음식을 나누어 먹었더니, 이제는 자기가 먼저 한국 요리를 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 한국 요리에 뭐가 있는지, 어떤 게 맛있는지 스스로 선택할 정도는 되지 않아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한국 음식에 정통한 사람을 찾아오고는 했다.

“맞아요. 오늘은 한국 요리 중에서 아주 멋진 걸 준비했어요.”

아데예모가 찾아올 것을 예상해서가 아니라, 최근 들어 사무실 내에 조용하게 한국 요리에 대한 붐이 일어나고 있던 탓에 거의 매일 다양한 한국 요리를 주문해 오피스의 직원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있었다.

물론 모든 직원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소수의 직원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마침 유진은 미국 내에 한국 음식을 전파하는 몇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사무실 내에서 직원들의 평가를 바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요리를 주문하셨을지 기대가 되는군요.”

“음. 솔직히 말해 이번에는 자신 없다면 포기하셔도 됩니다.”

“또 그 매운 요리입니까?”

아데예모가 눈을 크게 치켜뜨며 물었다.

지난번 매운 볶음면으로 한 번 데이고 나서는 맵다는 소리라면 화들짝 놀라는 그였다.

이는 비단 아데예모 한 사람의 일은 아니다. 몇몇 멕시코계나 다른 아시아계 직원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딱 한 입만에 눈물을 글썽이며 포기했었다.

워낙에 스파이시한 음식을 좋아하기에 매운 것에 자신 있다던 아데예모 또한 딱 두 입까지가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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