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블랙볼트
“수많은 실업자가 생길 거예요. 이쪽 분야에서 가장 많을 테죠. 아이비리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인재들 가운데 절반은 자기가 원하는 직장을 찾지 못할 거고요.”
요안나는 인공지능이 초래할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걸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금융계이고, 이곳 월스트리트에서는 벌써 인원 감축이 크게 일어나는 중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 골드만 삭스 CEO는 골드만 삭스는 정보기술(IT) 회사라고 거듭 말해 오고 있다.
실제로 골드만 삭스에서 고용하고 있는 IT 관련 직원은 페이스북에서 근무하는 IT 관련 직원 숫자보다 많다고 한다.
하나 그만큼 대단한 규모의 IT 직원들을 고용한 것 이상으로 일자리는 대폭 줄어들었다.
골드만삭스에서 도입한 인공지능 캔쇼는 기존에 600명이 처리할 업무를 단 두 명이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숙련된 전문 애널리스트가 1주일 동안 해야 할 분석 업무를 단 5분 만에 끝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공지능의 채용이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이어져 온 컴퓨터 하드웨어 분야의 놀라운 발전 속도를 능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에서만 앞으로 10년 동안 2/3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미국인들 중 절반 정도는 일자리를 잃게 될 거예요.”
요안나는 진하게 탄 커피를 홀짝거리며 계속해서 암울한 예측을 이야기했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단순한 노동은 로봇이 대신할 테고, 머리를 쓰는 일은 AI를 이길 수 없으니까.”
“일자리가 줄어들고, 서민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은 결국 소비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지요. 궁극적으로는 기업에도 손해가 될 거예요.”
요안나의 두려움은 여기 있었다.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세계 경제 규모의 위축을 의미하고, 이는 곧 금융투자 업계의 손실로 돌아온다.
결과적으로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업체들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일에 엄청난 액수를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어느 기업에서라도 이러한 발전에 제동을 걸거나, 반대되는 길을 갈 수도 없고 말이에요.”
골드만삭스와 함께 투자은행계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JP모건 또한 자사를 금융회사이며 동시에 IT 기술 기업이라 천명할 정도이고, 수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피델리티 또한 비슷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골드만삭스에서 1만 명의 인력을 감축하면 그만큼 이익이 늘어나고, 경쟁력이 향상된다.
다른 경쟁사로서는 더 많은 직원을 운용하며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골드만삭스와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제 IT 기술에 대한 투자는 금융업계에서도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사항이라는 의미이다.
“결국에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우리뿐일지도 모르겠네요.”
심각한 표정을 짓던 요안나가 얼굴을 활짝 펴며 말했다.
“보스의 선구안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네요. 블랙볼트의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인공지능 투자보다 월등한 것으로 판명되었어요. 다른 인공지능을 채용한 은행들은 절대로 우리의 수익을 따라올 수 없을 거예요. 더군다나 우리한텐 보스가 있잖아요?”
인공지능 투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알고리즘을 벗어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혹은 9.11 테러처럼 현실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하면 주가나 다른 금융 상품의 가격은 짧은 시간 사이에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투자를 시행한다.
하지만 이런 커다란 사태에 대해서는 학습을 위한 데이터 자체가 너무 적다.
더군다나 이런 사태를 수습하는 것은 단순하게 숫자를 계산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책 결정자에서부터 연준 같은 중앙은행 혹은 외국의 정부 기관이나 은행 등 다양한 경제주체와의 협상이 필요하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이런 사태에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을 수도 없고, 때에 따라서는 손실의 규모가 그때까지 벌어 온 규모를 훨씬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아직 인공지능을 통한 금융투자가 전통적인 투자에 비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요안나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보스가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중국 증시의 폭락,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같은 사태를 전부 예견한 유진이 통찰력과 블랙볼트의 투자 관리 능력과 결합되면 그 어떤 금융기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을 쟁취할 수 있다.
“지금도 월스트리트의 그 어떤 기업보다 훨씬 더 큰 수익을 내고 있는데, 여기 블랙볼트까지 합류했으니 월가를 완전히 손에 넣는 것도 시간문제겠어요.”
“그렇지. 블랙볼트에서 만들어 낸 인공지능이 여기까지 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거짓말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요? 보스는.”
요안나가 아니더라도 유진의 겸양을 믿어 줄 사람은 적어도 이 오피스 안에서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유진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고, 그걸 바로 곁에서 보아 온 측근들은 그들의 보스에 대해 이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너무 완벽하게 신뢰하지는 마. 나라고 언제나 정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유진이야말로 이곳에서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해 가장 회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유진이 알고 있는 미래는 그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점점 더 바뀌어 가고 있다.
그리고 틀림없이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그가 알고 있는 미래와 전혀 닮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게 당장 몇 년 뒤가 될지, 아니면 몇십 년 뒤의 일일지는 유진 자신조차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유진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는 순간이 반드시 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블랙볼트를 손에 넣은 것은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의 통찰력을 넘어설 수 없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인간이 예측해 내지 못할 위기를 훨씬 더 빠르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유진은 알고 있다.
지금부터 10여 년 뒤에 발생하게 될 그 유례없는 세계적 금융 위기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미래의 블랙볼트, 그러니까 버전 3 정도 된다.
그리고 블랙볼트를 채용하고 있던 몇몇 투자기관은 그 금융위기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분기점이었을 것이다. 블랙볼트의 유례없는 성공 이후로 사람들은 적어도 투자 분야에 있어서는 더 이상 인공지능에 비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마치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세돌과 커제를 이긴 이후 인간 기사들이 인공지능과의 경쟁을 포기한 것처럼, 투자는 전적으로 수많은 인공지능의 전문 분야가 되어 버린다.
기관 투자자들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조차 인공지능이 선택해 추천해 주는 종목을 골라 투자를 하다가, 나중에는 인공지능 펀드에 돈을 맡겨 버리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즈음이면 인간이 투자하는 것은 마치 복권을 구입하는 것처럼 가능성 희박한 도박과 비슷한 유희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피터 헤이웍스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도 양반은 못 되는군.”
요안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블랙볼트의 주인이 방문했다는 소리에 유진이 웃으며 한국말로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이제는 제법 한국말에 능숙한 요안나이지만, 그런 종류의 관용어까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음…… 귀족은 되지 못한다는 말쯤 될까?”
“네?”
“하인들은 부르면 바로 달려오잖아? 하지만 귀족은 부른다고 바로 나타나는 법이 없지. 그러니까 우리가 블랙볼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순간 피터가 등장한 것이 귀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야.”
유진은 열심히 자신이 말한 의미를 설명하려 노력해 본다.
“흐음…… 역시 너무 어렵네요.”
아무리 명석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이 속하지 않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요안나가 유진의 말을 곱씹는 사이,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의 젊은 사내가 터덜거리며 방으로 들어섰다.
바로 유진이 아끼는 블랙볼트의 CEO인 피터 헤이웍스다.
블랙볼트는 몇 해 전에 창업한 AI 전문 스타트업이다. 스탠포드를 중퇴한 피터 헤이웍스라는 남자가 세운 회사로, 유진이 투자를 결행할 때까지 지인이나 선배들을 통해 180만 달러 수준의 투자를 유치해 몇 년 동안 힘겹게 회사를 유지해 가고 있었다.
유진은 캘리포니아의 VC를 통해 기존에 투자한 사람들의 지분을 전부 10배수로 인수하고, 추가로 5,000만 달러를 넣어 블랙볼트의 지분 49%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정으로 추가 투자는 캘리포니아의 VC에서 우선권을 갖는다는 점도 명확하게 했다.
앞으로 블랙볼트에서 필요한 자금은 전부 유진이 부담하겠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창업자인 피터 헤이웍스의 지분은 점차 희석되겠지만, 그의 의결권을 보장해 주기로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피터 헤이웍스는 언제까지고 블랙볼트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을 것이고, 유진은 캘리포니아의 VC를 통해 블랙볼트의 지분을 원하는 만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블랙볼트가 차지하게 될 영향력과 가치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헐값에 좋은 투자를 한 셈이다.
“뉴욕 생활은 어떤가? 피터.”
앞으로 10년 안으로 구글, 아마존 등과 나란히 하게 될 블랙볼트의 창업자인 헤이웍스는 지금 뉴욕에 머무는 중이다.
단지 그 한 사람만 온 것이 아니라, 블랙볼트 자체가 팰로앨토에서 뉴욕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사실상 헤이웍스 원맨 기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창업자인 헤이웍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블랙볼트이지만, 그 외에도 스탠포드 출신의 능력 있는 개발자가 다수 포진해 있다.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들이 뉴욕으로의 이주를 결심하게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엄청나게 큰 나라이고, 뉴욕과 캘리포니아 사이의 대륙을 가로질러 생활의 터전을 옮기는 것에 대해, 듣기로는 개발진의 30% 정도가 스톡옵션과 거액의 연봉을 포기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볼 때마다 숨이 막혀 와요. 여행을 오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살기에는 너무 갑갑한 도시에요”
피터 헤이웍스는 바로 불만을 터트렸다.
“자네의 집에서는 바로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지 않던가? 갑갑하게 느껴질 이유는 없을 텐데?”
“맞아요. 하지만 건물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통 빌딩의 숲이지요. 센트럴파크 주위를 떠나면 하늘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유진은 피터와 그의 팀원들 모두에게 센트럴파크 인근에 있는 고가의 저택을 제공했다.
이제 겨우 창업 3년 차에 불과한 신생 기업의 개발자들에게 제공하기에는 과하다고 할 만한 정도지만, 이들이 앞으로 해낼 과업을 생각하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사무실에서도 센트럴파크가 보이지 않아?”
“집과 사무실만을 오가며 살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캘리포니아가 그리운 모양이로군.”
유진은 볼멘소리를 내뱉고 있는 피터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