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사상 초유의 베팅
CIA 국장으로 오랜 시간 일해 온 존 오웬 브레넌이 대표로 있는 ABC(America Business Center)는 그 이름에 걸맞게 기업의 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 분석해 필요로 하는 기업에 제공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100여 국에 오피스를 열고, 수천 명에 달하는 현지 직원을 고용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어떤 면에선 유진이 직접 운영하는 기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당연히 그만큼 들어가는 자금도 적지 않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해 준다.
ABC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은 역시 요안나와 윌리엄이 운용하는 투자사들이다.
주식, 채권, 현물, 선물 등의 투자상품들은 관련된 정보를 남들보다 얼마나 빠르게 입수하는가에 따라 이익과 손해가 갈린다.
운용하는 자산이 조 단위를 훌쩍 넘어 버린 현 상황에선 아주 작은 차이, 그러니까 겨우 0.몇 퍼센트의 손실이나 이익이 수십억 달러의 손익으로 나타나게 된다.
유진이 미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계는 있다.
디테일하게 몇 년 몇 월 며칠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까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러니 유진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략적인 전략을 정해 주는 수준이다.
당분간 유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니 상승에 베팅하고, 콜옵션 위주로 투자하는 게 좋겠다는 정도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요안나와 윌리엄의 운용사에 근무하는 트레이더들은 위에서 내려온 방향을 기준으로 삼고, 그때그때의 시황과 추가되는 정보를 취합해 최선의 투자에 임한다.
바로 이때 ABC에서 보내온 해당 상품에 대한 정보가 각 트레이너들이 판단을 내리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러니 설혹 ABC에서 1년에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쓴다 해도, 유진에게는 기꺼이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더군다나 정보의 신뢰도 면에서나 속도 면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떤 의미로든 국가 예산을 훌쩍 넘어서는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유진으로서는 필수불가결한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위험한 질병인가요?”
존 브래넌의 보고서를 읽으며 유진이 물었다.
존이 직접 찾아와 보고하는 경우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만큼 존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방정부뿐 아니라 중앙정부에서도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2003년 중국을 공포에 떨게 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인 사스(SARS)의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11월에는 내몽골에서 흑사병 환자가 발생해 국민들이 페스트 공포에 휩싸인 상황이라 만일 새로운 바이러스성 폐렴이라면 확산 전 초기에 진압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사스와 비슷한 경우라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 분석해야 하겠군요.”
“이미 뉴욕 대학에 분석 요청을 넣었습니다.”
유진의 근거지가 뉴욕인만큼 미국 내 유수의 대학인 뉴욕대에는 적지 않은 기부금을 시시때때로 내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감염병이 중국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될 경우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분석이 필요하겠어요.”
“물론입니다. 경제적, 사회적 영향을 전부 예측하는 보고서를 최대한 빨리 올리겠습니다.”
중국의 무한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병에 대한 예측 보고서가 유진에게 올라온 것은 여전히 중국 내 어떤 언론에서도 해당 질병에 대한 보도가 올라오기 전의 일이었다.
2019년 11월 29일 처음으로 발생이 보고되고 며칠 뒤에나 처음으로 중국의 언론에서도 짧게 감염병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하지만 세계의 대부분은 이 질병에 대해 그리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있었다.
중국의 보건 당국을 제외하면 오직 유진의 오피스에서만 새로운 질병이 확산될 경우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었다.
“사스 수준으로 전염성이 높다면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며칠 뒤부터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곳에 모여 중국에서 발생한 감염병의 확산과 영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앞날을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와 주기적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003년의 사스, 2009년의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의 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의 질병이 지속적으로 유행하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단기적인 영향은 있었지만, 홍콩 독감이나 스페인 독감처럼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질병이 인류의 삶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기껏해야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에 달하는 환자와 수백 명 수준의 사망자를 예상했다.
“이미 몇 번의 감염병 유행으로 중국 정부에서도 빠른 조처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감염병의 경우 초기 조치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아직 미국에서는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미국 정부에서도 적절한 대응을 하리라 여겨집니다.”
학자들은 중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전부 틀렸다. 우한 보건당국이 해당 질병에 관해 보고한 것은 감염자가 나타나고 두 주가 지난 뒤의 일이었고, 역학조사는 한 달 뒤, 그리고 중국 질병관리본부가 비상조치를 선언한 것은 40일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사태를 조기 진화시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사태를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심지어 우한시에서 발생한 감염병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던 의사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기소하는 것이 더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한국 언론에서 중국 내의 새로운 감염병에 대해 보도한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이나 지난 뒤였다.
“생각보다 감염 속도가 빠른 것 같습니다. 우한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하는군요.”
여전히 유진의 오피스로는 중국 현지의 상황이 가장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우한 내의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정부의 언론 통제 등에 대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나 이 새로운 질병이 얼마나 확산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감염병 사태가 국제 경제에 어느 정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감염자가 수십만 명 수준으로 늘어나면, 각국의 증시는 6개월 동안 10% 정도의 하락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1월 중순이 되어서야 중국 정부는 처음으로 해당 질병이 사람 간 감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유진의 오피스에서는 벌써 해당 질병이 완전히 사람 간의 감염병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어쩌면 미국까지 퍼져나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미국 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워싱턴에서 잠시 주말을 보내러 온 이방카와 쿠슈너에게도 그때까지 확보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어차피 미국 질병청에서도 어느 정도 정보를 제공했을 것이지만, 유진은 굳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감출 생각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 올 한 해 동안 경기 후퇴가 일어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답니다.”
“음…….”
쿠슈너는 얼굴을 찌푸렸다. 결코 듣기 좋은 소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해 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재선을 노리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결코 반가운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정말로 경기 후퇴가 발생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선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은 명백했다.
“질병청에서도 보고가 있겠지만, 사전 대책을 마련하는 쪽이 좋을 겁니다.”
“그렇게 너무 겁을 주면 곤란합니다, 하하. 중국 정부에서 잘 처리할 거로 생각하고 있어요.”
쿠슈너는 이 의제를 국정의 중요한 사항으로 끌어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물론 유진 또한 그럴 것으로 예상했다. 하필이면 이런 사람들이 미국의 정권을 잡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다.
쿠슈너와 이방카 부부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에 약간이나마 힌트를 주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재임 내내 다양한 문제로 어그로를 끌어 오던 트럼프는 이해에도 1월부터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한 탄핵소추에 직면해 있었다.
트럼프는 당장 자신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방어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것만으로 모든 여력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경제가 침체하는 것에 베팅하도록 하지.”
세계적으로는 엄청난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유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투자의 기회였다.
“감염병의 확산은 피할 수 없겠어. 트럼프 행정부도 제대로 된 대응은 못 할 것 같아.”
“슬픈 일이네요.”
쿠슈너의 태도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요안나 또한 어느 정도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밖에는.”
“미국 증시를 비롯한 전 세계 증시가 전부 하락하는 것에 베팅하면 되겠군요.”
“그래야겠지.”
1월 중으로 이미 예상 시나리오가 나왔고, 적절한 투자 계획이 섰다.
“미국 증시와 중국 증시 하락에 최대한 많은 돈을 넣어 볼게요.”
요안나도 유진 못지않게, 아니 어떤 면에선 유진보다 훨씬 더 과감한 베팅을 즐기는 여자였다.
유진의 지난 삶에서 요안나는 지금처럼 유진의 미래 지식 없이도 자신의 힘만으로 월스트리트에서 수위를 다투는 투자 기업을 만들어 냈었다.
그리고 지금의 요안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유진의 안목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1월 하순으로 들어서며 요안나의 팀원들은 미국 증시 하락에 다양한 방법으로 베팅을 시작했다.
선물, 지수, 옵션, 보험을 가리지 않고 적지 않은 레버리지를 사용해 도박에 나섰다.
“지금까지 해 온 투자 중 최대의 베팅이에요.”
“두려운가?”
“조금은요. 하하……. 10%만 올라가도 파산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무너지면 뉴욕이 무너져요.”
요안나가 주도하는 베팅에는 수천억 달러의 자산이 사용되었고, 레버리지를 생각하면 1조 달러가 넘는 액수였다.
1조 달러 규모의 부도는 월스트리트뿐 아니라 미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만큼 큰 사건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승리한다면…… 아니, 틀림없이 승리하겠지만요.”
요안나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벌어놓은 이상의 수익이 생기겠군요. 오늘은 아무래도 맨정신으로는 잠이 들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한 번에 1조 달러가 넘는 금액이 걸린 베팅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있기 어려운 도박이다.
그리고 유진은 이번에도 완벽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모든 직원에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출근하도록 지시해.”
유진은 자신의 소중한 인적 자원들이 이번 사태에서 한 명이라도 허무하게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마스크요? 아! 감염병 예방에는 가장 효과적이겠군요.”
“어쩌면 벌써 뉴욕에서도 전염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요. 중요한 업무 중에 그런 병 때문에 지장 받으면 안 되겠지요.”
1조 달러짜리 베팅만큼이나 화급하게 유진의 지시가 전 직원들에게 전달되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출근 금지. 가장 선진적인 예방책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