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09화 (209/363)

209화 이 시대의 현인

“감염병의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것 같습니다. 증시는 물론이고 다양한 경제적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하락 중인 오일 가격은 더욱 가속도를 더할 것으로 보입니다.”

증시뿐 아니라 원유나 식량 같은 원자재, 그리고 변동기에는 항상 강세를 보여온 골드 같은 상품에 대한 투자도 이어 갔다.

감염병으로 인해 적지 않은 산업 시설의 가동이 단기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중단될 수 있으니 원자재 가격은 하락할 것에 베팅했고, 골드와 실버에 대해서는 상승에 베팅한다.

2020년 2월로 들어서며 세계 각국에서 중국에서 발생한 새로운 질병에 대해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백악관은 자신의 탄핵안이 올라온 상원과의 기 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미국인들에게 아주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월가의 근황은 어떤가?”

“이번 감염병으로 인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이 생길 것으로 예측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아요. 우리의 베팅을 따라온 곳이 몇 곳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하게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어요.”

2003년에는 사스가, 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그리고 2015년엔 메르스가 유행하는 등 2000년 이후로 몇 번이나 세계적인 감염병이 발생했었지만, 그때마다 세계 증시는 그렇게까지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었다.

금융계에서는 이번에도 그와 비슷하게 지나가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 모든 투자에서 기록적인 성과를 보여 온 유진이 경기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는 소식은 금세 월가에 퍼져 나갔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수많은 투자자는 이번에야말로 유진이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월가에는 언제나 대단한 투자자가 나타나 다른 사람들과 반대되는 도박으로 얻은 엄청난 이익을 자랑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투자자들은 항상 어김없이 결국 그 위험한 투자 때문에 파산하고야 만다는 것이 증명되고는 했다.

그 때문에 월가에서는 유진 역시 언제고 그런 베팅 때문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진의 이번 투자에 무턱대고 따라오는 이는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수많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감염병 사태 또한 약간의 영향력만을 남기고 가라앉을 것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예상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월 중순이 되자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며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했다.

감염병의 확산 속도가 모두의 예상보다 너무 빨랐고, 세계 곳곳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각국의 증시는 하락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리고 낙폭의 속도는 점점 더 가팔라졌다.

“나스닥에서는 장이 열리자마자 서킷브레이크가 발생했어요. 모두가 패닉에 빠져 있어요. 코로나의 영향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군요.”

요안나는 기록적인 수익을 보이는 그래프가 띄워져 있는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며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이제 정체불명의 감염병 대신 코로나-19라는 이름을 얻은 질병의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증시는 연일 무섭게 하락하고, 유진의 자산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증시 선물과 옵션에서 매일 기록적인 수익이 쌓이고 있었고, 마스크를 쓴 직원들은 악착같이 그런 수익을 한 푼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눈이 붉어진 채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루에 수백억 달러의 수익이 생겨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으니 한시도 집중을 흐트러트릴 수 없었다.

“지금 보유 중인 대형주들의 가치 하락분을 고려하면 국내 증시에서만 3,000억 달러의 수익이 발생했어요.”

이 믿을 수 없는 수익은 모두의 기대와 반대로 베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달 사이 나스닥 지수는 30%나 떨어져 기록적인 폭락을 기록했고, 블룸버그는 한 달 사이 전 세계 증시가 25조 6천100억 달러가량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그에 비하면 유진이 벌어들인 돈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끔찍한 일이에요. 이런 하락이 언제까지 갈지 걱정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요안나의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슬슬 모든 포지션을 정리하도록 하지.”

그리고 유진은 다시 한번 모두가 놀랄 결정을 내렸다.

“이 정도에서 하락이 멈출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요안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커. 연준에서 기준금리를 0%로 낮추겠다 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큰 영향은 없어 보이는데요?”

“이제부터 영향이 발생하게 될 테니까.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경제 침체를 두려워하고 있으니 다양한 방법으로 경제 부양에 나설 거야. 그렇게 되면 시중에 너무 많은 돈이 풀리게 되겠지.”

유진은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세계 증시에 엄청난 버블이 생기게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베팅을 해 보자고.”

“알았어요. 당장 시나리오를 만들어 볼게요.”

요안나에게는 아주 유능한 직원들이 잔뜩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진의 예측을 토대로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보고서를 내놓았다.

“경기 부양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어느 정도의 자금을 푸는지가 관건이겠어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대답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여전히 각국 지도자들은 이 사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지 못했다.

“트럼프는 아마도 엄청난 돈을 풀 거 같아요.”

당장 이 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러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증시는 크게 상승할 거라고 봐.”

“그렇겠지요.”

결정이 내려졌으니 모두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존의 포지션을 전부 정리하고, 그동안 벌어들인 자금까지 합해 다시 레버리지를 사용하니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자금이 세계 각국의 증시에 투자되었다.

이번에는 파생상품뿐 아니라 개별 증권에 대한 투자도 늘리기로 했다.

앞으로 2년 동안 이어질 기록적인 증시의 성장을 고려하면 충분히 해 볼 만한 투자였다.

3월 말, G20 정상들은 세계 금융의 정상화를 위해 4조 8,000억 달러를 시장에 투입하겠다고 결의했다.

시장의 모두가 기다리던 결정이었다. 증시는 곧바로 반등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보스가 맞았네요. 덕분에 큰 손해 없이 포지션을 바꿀 수 있었어요.”

가장 빠르게 포지션을 전환한 것은 역시 유진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하락장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사람은 그였고, 상승장으로의 전환에 가장 정확하게 대비한 사람 또한 그였다.

월스트리트에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들이 모여 있었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는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기보다는 그 시점에서의 시황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하락장에 대비하고 있는 동안 상승에 베팅한 것은 그만큼 큰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네요.”

미 증시뿐 아니라 전 세계 증시가 거침없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유진이 기다려 온 것은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인 하락이 아니라, 이 거대한 거품이다.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의 경제활동이 사실상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었고, 여기에 경제 불황까지 겹치면 국민들의 주머니가 비게 된다.

정부로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돈을 풀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월가의 대단한 투자자들 대부분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

워런 버핏을 비롯한 전설적인 투자자들은 코로나의 영향 때문에 증시가 앞으로도 30% 이상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번에는 오히려 개미들이 더욱 열렬하게 투자에 나섰고, 오랜만에 그들이 승리를 맛보고 있었다.

“골드만삭스의 로버트가 울먹이며 전화를 해 왔어요. 이렇게 될 줄 몰랐다네요. 하하!”

요안나의 전 직장인 골드만삭스에서 함께 일하던 로버트는 그동안 요안나의 스카우트 제의를 계속 거절해 왔다고 한다.

지금이야 유진이 틀림없이 월스트리트 제일의 투자자이지만, 그런 위험한 투자는 언제고 한 번은 크게 혼이 나고 말 거라며 오히려 요안나에게 다시 골드만삭스로 돌아오라 제의하기도 했다.

“내가 오라고 했을 때 왔다면, 이번에 정말 크게 벌었을 텐데 말이지요.”

요안나를 비롯한 임원급 인사들에게 책정될 성과급만 해도 천문학적 수준이 될 것이다.

벌써 지난달에만 요안나 한 명이 1억 달러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요안나의 팀원 중에는 수십만 달러의 기본급은 그저 용돈 수준으로 보일 만한 성과급을 벌어들이는 트레이더가 즐비했다.

한 시즌에 굴리는 자금이 조 단위를 오가고, 수익이 천억 달러 단위인데 그런 자금을 벌어들이는 팀원들에 대한 대우 또한 걸맞아야 하는 게 당연했다.

만일 로버트가 요안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이번 랠리에서 그 또한 평생을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물론 로버트의 두려움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야. 나 같아도 위험한 직장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특히 골드만삭스 같은 곳에 다니고 있다면 말이지.”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음. 그러니까 그게 조금 이상해요. 사실 늘 궁금해 오던 게 있어요.”

“뭔데?”

“보스를 옆에서 지켜보면 상당히 신중하고, 좀처럼 위험한 곳에는 발을 디디려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내가 그랬던가?”

“네. 다투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좋은 것을 나누기 좋아하고, 위험한 것은 최대한 회피하는 모습을 보아 왔어요.”

때론 그 자신보다 곁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요안나나 모니카 같은 측근들이야말로 어쩌면 유진보다 유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투자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과감하단 말이에요. 저조차도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투자를 과격하게 결정하고는 하시잖아요?”

“뭐.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

“그렇다고 특별히 대단한 예상을 갖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전부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를 취합해서 내리는 결정이지요. 단지 그 결과가 남들과 다를 뿐이에요.”

요안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유진은 언제나 그랬다.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당선처럼 남들과 같은 정보를 가지고 모두와 반대의 베팅을 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사태에 대해서 다른 누구와도 다른 예측을 내렸다.

“로버트가 그러더군요. 지금 시대의 진정한 현인은 아마도 보스일 거라고요.”

“현인이라니. 너무 엄청난 말 아니야?”

“아뇨. 조금도 모자라지 않아요. 그건 곁에서 지켜본 내가 가장 잘 알아요.”

요안나는 어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로버트는 옮길 생각이 있다던가?”

“음. 아닌 것 같아요. 이미 한 차례의 레이스가 끝나고 나서 옮겨 가면 왠지 찌꺼기만 처리할 거 같다던데요?”

요안나가 웃으며 말했다. 유진이 알기로 로버트는 무척이나 명석한 사내이다. 하지만 똑똑하다는 것이 꼭 현명하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로버트는 이번에도 잘못된 선택을 했다.

레이스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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