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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11화 (211/363)

211화 롤오버 - 오일을 사면 39달러를 드립니다

“10달러, 9달러, 8달러……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야? 가격이 왜 이래?”

2020년 4월, 오일 선물 트레이더들 사이에서는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주까지 20달러 선을 오가던 5월물 오일 선물 가격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롤오버 물량은 많은데, 받아 줄 사람이 없어!”

“미친 거 같아! 이제 4달러야! 4달러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사실 모두 어느 정도의 가격 하락은 예상하고 있었다.

다음날인 21일이 5월물의 만기일이었고, 이는 곧 4월 21일 매수 포지션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은 5월 1일 원유를 수령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물 투자자의 대부분은 실제로 원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원유를 받아 보관할 장소도, 운반할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통은 이런 만기 물량을 실제로 원유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구매해서 시장 물량을 해소한다.

하지만 지금은 유가 증산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원유 저장 시설이 가득차 버린 상태이고, 싸다고 해서 사 놓아도 비용만 들어갈 뿐이라 투기 물량을 받아 주지 않고 있었다.

“이런…… 1달러 미만이야!”

“마이너스? 미친 거 아니야?”

오일 선물 시장에서는 일대 패닉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루 사이에 20달러짜리 기름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져 버렸다.

“팔아! 어떻게든 팔아!”

매수 포지션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포지션을 청산하려 했지만, 초유의 사태에 아무도 받아 주려는 사람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더욱 큰 폭락이 이어졌다.

“마이너스 5달러…… 6달러…….”

“맙소사! 마이너스 20달러를 넘어서고 있어!”

“30달러까지 내려갔어!”

“팔아! 제발 팔아 버려! 제길! 무슨 일이야! 이게!”

“39달러…… 오!”

그날 WTI 오일 선물 가격은 사상 유례가 없던 마이너스 39달러를 기록했다.

오일을 사면 배럴당 39달러를 주겠다는 의미였다.

“맙소사! 정말로 마이너스 가격이 나왔잖아?”

“하루 사이에 대체 얼마가 떨어진 거야? 거의 60달러잖아?”

물론, 바닥을 친 것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대기하고 있던 누군가는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오늘은 우리 팀이 생기고 최고의 수익이 발생한 하루입니다.”

그날 선물 시장이 마감하고 난 뒤, 유진의 오일 선물 팀은 자축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유지해 오던 숏 포지션을 정리하고, 추가로 대량의 롱 포지션을 점하는 것으로 기록적인 수익이 발생했다.

“정말로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는…….”

“뭐야? 아직도 보스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솔직히 WTI 마이너스는 너무했잖아?”

“그렇긴 하지. 구조를 짜 놓으면서도 사실 나도 반신반의했거든.”

“하하…… 미쳤다니까. 오늘 올린 수익이 지난해 전부보다 두 배는 많아.”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게 말이야. 역시…….”

“보스가 분석한 결과는 그냥 믿고 따르면 되는 거였어.”

모두들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하루 사이의 투자로 모두들 0이 여섯 개가 붙는 인센티브를 받게 되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이 고액의 보수를 받은 거야 흔한 일이지만, 이 회사에서는 그 차원이 달랐다.

더군다나 다른 투자 기관의 경우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판단을 내리며 이익과 손실을 오가는 스트레스의 연속이지만, 이곳에서는 어지간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

설혹 단기의 손실이 발생한다 해도, 위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히 따랐다면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다른 월가의 트레이더들이 이익과 손실 사이에서 허덕이는 동안, 이들은 누가 얼마나 큰 이익을 만들어 내는 가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직원들의 만족도는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진이 아무 쓸모도 없는 직원들에게 거액의 보수를 주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정보로 어떤 사람은 수십만 달러 정도나 간신히 벌어들이지만, 어떤 사람은 수천, 혹은 억 단위의 수익을 내기도 한다.

이날도 어떤 트레이더는 유가가 마이너스로 들어서는 순간 바로 포지션을 청산했고, 누군가는 좀 더 과감하게 기다리다 바닥에 가까운 자리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청산하곤 바로 롱 포지션을 구축하며 또다시 수십 달러의 상승을 고스란히 수익으로 얻어 냈다.

그만큼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한 곳이 바로 금융 투자계이다.

당연히 지금의 팀을 만들기 위해 월가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트레이더들을 스카우트해 왔고, 그만한 보수를 주며 운영하고 있다.

“다들 고생 많았고. 내일은 또 내일의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팀장이 모두에게 격려의 말을 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다들 오늘의 성과로 받게 될 거액의 보너스에 기분이 좋았다.

“이런 때 샴페인을 터트리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샴페인은 고사하고 마스크라도 벗었으면 좋겠는데요.”

축제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하나같이 한국에서 수입해 온 마스크로 얼굴을 철저하게 가리고 있었다.

가장 위에서 내려온 최우선 지침이 그것이다. 모두들 회사 내에서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닐 것.

될 수 있으면 회사와 집 말고는 다른 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

책상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비치된 소독 젤로 수시로 손을 소독할 것!

이처럼 코로나에 대비해 여러 가지 지침이 내려왔고, 이를 어기는 경우라면 상하를 막론하고 바로 퇴사라는 말에 처음에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곳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절대적이다. 더군다나 미국에서는 사람을 자르는 게 너무나도 쉽다.

“다들 신이 나서 술 마시러 가는 일은 없도록 하게. 혹시라도 걸리면 바로 퇴사니까.”

팀장도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당부했다. 여전히 너무나 과한 대책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도 회사에서는 수많은 톱니바퀴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제는 모두들 잘 알고 있다. 여기 근무하는 직원들 모두가 개개인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인재들이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면 월스트리트의 수많은 화이트칼라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들 위에서 내려온 그 지침에 납득하고 있었다.

코로나의 확산은 모두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단지 저 멀리 중국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라 생각했던 코로나는 한 번 미국에 상륙한 뒤로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보스가 내린 지침대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부 행사를 삼가는 것만으로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술은커녕 콜라 한 캔도 따지 않는 조용한 축하 행사가 끝나자, 트레이더들은 조용히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이들이 이루어 낸 업적은 투자 역사에 남을 만큼 대단한 일이었지만, 뉴욕시는 지금 거의 장례 분위기였다.

“미국에서도 뉴욕이 가장 빠르게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에요. 벌써 확진자가 20만 명이 넘었다는 말이 있어요.”

“다들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 특히 마스크는 말이야.”

“당연하죠. 만일 마스크 없이 외부에서 돌아다니는 일이 발생하면 무조건 퇴사라는 지침 덕분에 확실히 직원들이 덜 불안해하고 있어요. 직원들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도 마스크 착용하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유진은 그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모든 기업체에 마스크를 공급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마도 그 어떤 투자보다 이 일에 쏟아부은 노력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리고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에게 코로나 감염 예방을 교육하기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뉴욕주에서만 20만 명이라니. 엄청나네.”

“거의 미국 확진자의 1/3 수준이라더군요.”

그건 뉴욕이 다른 지역에 비해 의료 접근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내 실질적인 확진자 수는 발표된 것에 비해 월등히 많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뉴욕에서만 하루에도 수백 명이 사망하고 있어요.”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

“보스의 말처럼 마스크라도 쓰고 다니면 나을 텐데 말이에요.”

미국 내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보건학계의 주장이 있었지만, 트럼프는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고한다는 수준의 언급으로 그쳤을 뿐이다.

더군다나 그 자신은 마스크를 사용할 생각이 없다며, 마스크 무용론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몇 년 동안 극단적으로 분열되어온 미국 내 여론은 대통령의 이런 마스크에 대한 무시로 다시 한번 커다란 갈등을 만들어 내었다.

이미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에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사회는 10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도널드한테 무언가 시도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요안나는 유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군가의 조언을 듣는 사람이 아니니까.”

유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이방카와 쿠슈너를 통해 질병청의 권고에 따르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말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국민의 보건보다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듯했다.

“대체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이에요. 참! 그래서 오늘만 대략 79억 달러 상당의 이익이 생겼어요. 대부분은 오일 선물에서 발생한 수익이고요.”

잠시 세계의 안위에 대한 걱정을 내비치던 요안나였지만, 결국 벌어들인 돈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오일 선물 시장에서의 수익은 전부 그대로 롱 포지션으로 돌려.”

“하락장은 이걸로 끝이라는 거죠?”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 다시는 그렇게 어이없는 가격은 나오지 않을 거야.”

“제가 생각해도 그럴 거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감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유가 상승이 가능할까 싶어요.”

요안나는 유진의 판단을 가장 확신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각에서의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다.

유진에게는 무조건 자신의 말을 따르는 사람보다 자신의 판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줄 사람이 훨씬 더 소중하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산유국에서 무언가 조처를 내놓을 거야. 이대로라면 모두가 공멸하게 될 걸 모르지는 않을 테니.”

“알았어요. 그러면 방향을 그쪽으로 잡을게요.”

“그리고 재단에서 코로나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모색 중이야.”

“그렇다면 거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야겠군요.”

“어. 급한 건 아니니까 다음 달까지 내놓을 수 있는 자원을 생각해 봐.”

미래를 알고 있다면 돈을 버는 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단순히 몇몇 이벤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유진은 자신이 부자가 된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 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에 훨씬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자선 행위 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해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자선 자금 정도는 그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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