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적재적소
코로나 사태는 생각보다 훨씬 더 길어지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종일 낯설기만 한 단어인 팬데믹이 몰고 온 비극적인 사태에 대한 보도를 늘어놓는다.
미국에서만 수백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벌써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뉴욕에서는 사망한 시체들을 보관할 곳이 없어 방치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렸다.
덕분에 유진의 지출은 예상보다 훌쩍 늘어나고 있었다.
“올 상반기에만 벌써 100억 달러의 기금을 전부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그 두 배 정도의 예산이 잡혀 있고요.”
유진의 자선 재단을 책임진 브라이언 크리스토퍼 디즈가 꽤 어색한 얼굴로 보고했다.
그의 책무라는 것이 남의 돈을 마구 써 대는 것이기에 지출의 규모가 천문학적이 되어 버린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해에만 300억 달러, 한화로 30조 원이 훌쩍 넘는 자금을 써 버리겠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군다나 그가 말하는 자금은 푸드뱅크에 들어가는 일반 자선 기금을 제외한 금액이다.
크리스토퍼 디즈는 지금까지의 자선 활동과 사뭇 다른 장대한 계획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해에 그곳에 사용된 비용만 300억 달러에 달한다는 말이다.
“필요하다면 더 써도 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어떻게 사용되는지겠지요?”
“물론이지요. 최대한 필요로 하는 곳에 필요한 만큼의 자원을 사용하겠습니다.”
여기서 필요로 하는 곳이란 말은 유진의 자선이 얼마만큼 제대로 알려질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
유진이 크리스토퍼 디즈에게 요청한 건 자선사업의 의미를 단순하게 돈을 쓰는 데에 멈추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진이 원하는 자선사업은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삶이 무너지는 와중에 있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집행되는 도움은 단순히 그 붕괴를 지연시키는 것을 넘어 그들이 새롭게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단순히 고통스러운 삶을 연장하는 방식의 도움은 그들에게도, 그리고 유진에게도 궁극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
유진은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반드시 난관을 극복하고 일어서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단순히 당장의 굶주림을 면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까지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물론 그런 경우 단순한 기부에 비해 개개인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월등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장의 굶주림을 피하기 위한 지원금이 100달러라면, 자립을 위한 지원에는 그 열 배, 백 배의 자원이 들어간다.
어떤 면에서는 큰돈을 들이고 훨씬 더 적은 사람에게만 혜택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진은 그 길을 택했다. 유진의 자발적인 의사로 시작한 활동이니 그 자산을 어떻게 사용하건 그건 전적으로 유진 마음이다.
그가 사용할 자선액이 막대하다고는 해도, 미국의 서민층 숫자를 고려하면 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는 액수는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다.
겨우 한 명당 수십 달러나 수백 달러 수준의 지원이 가능할 뿐이다.
유진은 혜택의 범위를 줄이는 대신, 소수의 인원에게 화끈한 지원을 해 주는 걸 선택했다.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지 유진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혜택을 본 사람들은 약 100만 명입니다.”
100억 달러를 사용해 100만 명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한 명당 10,000달러의 비용을 사용했다는 말이다.
겨우 6개월에 10,000달러라면 1년에 2만 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평범한 자선이라 보기에는 액수가 너무 크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디즈는 이걸 매년 200만 명 수준까지 늘릴 생각이다.
대부분은 가정환경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서민층의 청소년들, 그리고 사고나 불운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사업을 운영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처럼 약간의 도움만으로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란 아마도 당장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어려운 최하층의 사람들에 집행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원을 받는다 해도 어떤 발전을 이루어 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크리스토퍼 디즈의 팀은 과감하게 가장 어려운 부류를 제외하고, 중산층 이상이라도 좀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지원하기 위한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단순한 자금 지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원 대상에 대한 모니터링 기능을 하면서 그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워 줄 수 있는 하나의 서클을 만들어 내려는 계획이었다.
“500만 명 중에 향상심이 있는 10%만 자활에 성공해도 충분합니다.”
유진의 요구는 그랬다. 매년 수십만에서 백만 단위의 미국 시민이 유진의 도움으로 사회적 계층을 뛰어오르는 것.
당연히 그들은 유진의 적극적 지지자가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속한 각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생각이다.
그리하여 길게 보았을 때 많은 사람이 이 새로운 자선 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을 사회적 상승의 중대한 기회로 생각하게 만들려 했다.
“지원자 선별을 위한 프로그램에 적지 않은 자원이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번 분기에만 거의 3억 달러가 사용되었습니다.”
지원을 위한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은 결국 그 스스로가 지금의 삶에서 한 단계 높은 곳으로 갈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향상심이 있는 지원자의 선별을 위해 다수의 심리학자를 고용해 자선 대상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사용되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프로그램의 초창기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말했듯이 필요 자금은 우리가 고려해야 할 최우선 순위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집행 규모가 워낙 천문학적이다보니…… 하하.”
백악관에서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예산을 집행해 오던 브라이언 디즈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유진의 투자는 과감했다.
그건 그만큼 유진이 이 사업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유진이 투자로 벌어들이는 돈을 생각하면 1년에 1천억 달러쯤의 비용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이해에만 예상 수익이 1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년 수익이 그 정도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세계 주식시장의 규모는 대략 100조 달러, 세계 파생상품 시장의 규모는 800조 달러라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고도로 복잡해진 현대의 금융 시스템은 실물 경제에 비해 월등히 큰 규모의 금융투자시장을 창출해 내고 있다.
매년 엄청난 액수가 이런 금융 시장에서 오가고 있고, 유진은 그중 일부이지만 확정적인 결과를 알고 있다.
더군다나 현대의 금융 시장은 단순히 상승뿐 아니라 하락을 예측하는 것으로도 상승장과 동등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공매도나 옵션 같은 상품 덕분이다.
게다가 이건 단지 금융상품만 따진 것이다. 유진은 앞으로 구글이나 애플 수준으로 성장할 수많은 기업에 절대적 지분을 투자해 놓았다.
앞으로 몇 년 뒤면 그런 기업들이 매년 몇 개씩 상장하며 수천억 달러의 수익을 안겨 줄 것이다.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아마도 모든 사업 분야에서 꾸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유진은 그렇게 축척된 자금을 단순히 끌어안고 있을 생각은 없다.
돈은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유진은 그걸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이미 오래전부터 모색해 왔다.
“최근에 지원받은 사람들로부터 감사의 인사가 쇄도하고 있어요.”
모니카가 상자 가득 쌓인 우편물을 보여 주며 말했다. 대부분 코로나 시기에 어떤 식으로든 유진의 지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굶주림을 면했거나, 혹은 의료 지원을 받았거나, 때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지원을 받은 모든 이들이 유진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정말 성심성의껏 손으로 쓴 편지로라도 유진에게 감사를 표해 왔다.
물론 그렇게나 많은 편지를 유진이 일일이 읽어 볼 수야 없는 일이다.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각각 사무실을 따로 만들어 그런 편지들을 읽어 요약하고 답장을 보내는 직원들을 따로 고용할 정도이다.
물론 세상이 세상인지라 각 사무실에서는 편지를 개봉하기 전에 위험이 없는지 바이오, 캐미컬 양 측면에서 확인하는 절차부터 거치고 있다.
이날 모니카가 가지고 온 상자는 그렇게 돌아온 감사의 편지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내용에 면에서라든지, 형식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보내어진 것들이다.
이런 편지들은 다시 모니카의 팀원들이 여유 시간에 짬짬이 검토하여 보고, 그중 꼭 필요한 경우라면 유진에게 보고를 올린다.
“특히 배우나 영화 관련 인사들에 대한 지원이 효과가 좋았던 거 같아요. 벌써 SNS 등지에 유진에 대한 감사의 피드가 잔뜩 올라와 있어요.”
“다행이로군. 그렇게 게시물을 올릴 정도라면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말이겠지?”
“대개는 그래요. 확진되서 고생하고 있을 때 적절한 지원을 받아 살아날 수 있었다는 글이 수백 개가 넘어요. 보스는 공식적으로 수백 명의 배우를 살린 은인이라고요.”
유진이 할리우드에 적지 않은 자원을 사용한 것이 그 때문이다.
2000년 대로 넘어오며 SNS는 미국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정신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유진이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초기에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사람들은 이제 공식적인 언론 보도보다 SNS에 올린 출처 모를 한 페이지의 글에 더 크게 공감한다.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낯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난 세기의 언론가들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런 SNS를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할리우드의 배우들이다.
물론 그들의 아름다운 외모가 그들이 지닌 가장 큰 자산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외모가 중요해진 시대에, 가장 뛰어난 외모를 지닌 인플루언서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 할리우드이다.
“에이미 굿윈이라는 신인 배우가 올린 글이 특히 화제가 되고 있어요.”
“에이미 굿윈?”
모니카의 말에 유진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네. 혹시 알고 있는 이름인가요?”
“글쎄? 워낙 흔한 이름이라서.”
“그렇죠? 아직 그렇게 눈에 띄는 활동은 하지 못한 배우에요. 그런데 비주얼이 꽤 좋더군요. 더군다나 이번에 코로나에 확진되면서부터 올린 피드들이 계속 화제가 되고 있어요.”
“어떻게?”
“코로나 때의 망가진 몰골하고, 완치된 이후의 모습의 차이에서 오는 갭 때문인 듯해요.”
유진이 흥미를 보였다. SNS에서 어떤 것이 화제가 되고 퍼져 나가게 될지는 유진도 알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