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일대일로
“미얀마 개발 산업에는 투자를 전혀 진행하지 않는 모양이로군요.”
유진이 장시웨이에게 넌지시 묻는다.
중국이 정력적으로 진행 중인 일대일로라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일환인 미얀마 건설 사업은 그 규모만큼이나 떨어지는 떡고물도 적지 않으니, 당연히 참여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투의 말이었다.
중국은 미얀마에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는 대신 인도양에 항구를 건설해 영구 임차하고, 한편으론 중국 국경에서 미얀마 남서부의 해안에 이르는 철도를 통해 인도양으로의 진출을 꾀하려 하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중국 서부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멀리 광저우나 선전으로 가지 않고, 미얀마를 넘어 바로 인도양에 선적되어 유럽 등지로 훨씬 빠르게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이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목표일 뿐이다.
실상은 미얀마의 항구를 중국 해군의 군항으로 사용하고, 철도를 통해 항구에 물자를 쉽게 옮기게 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원조와 빚이라는 무기로 미얀마를 중국의 항속적인 피지배 상태로 만들려는 목적도 있었다.
중국은 이렇게 철도와 항만 건설 외에도 40여 개의 미얀마 건설 프로젝트에 모두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투자를 진행 중이다.
계획대로 되면 중국은 복잡한 남중국해 말고도 인도양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얀마로서는 사실상 중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런 지원이 없다면 동남아시아에서도 최빈국 신세를 영영 면하기 어려운 점 또한 사실이다.
미얀마 정부도 당연히 중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것은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중국 외 다른 국가의 대규모 지원을 바라기도 어렵다.
이래저래 미얀마로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의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투자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미얀마 한 나라에 투자되는 자금만 무려 1,000억 달러다. 여기서 떨어질 고물이 얼마나 클지는 해당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한 사람 외에는 누구도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유진은 지난번 삶에서 그 프로젝트와 약간의 연관이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의 좋지 않은 추억을 뒤로한 유진이 미국으로 와 두 번째로 맡은 프로젝트가 바로 이 건설 계획의 일부였다.
이 건설 사업의 시행은 당연히 중국의 건설 업체들이 맡게 되었는데, 워낙 대형 공사인 까닭에 미국 유명 건설 회사에서 중요한 부분의 설계와 감리를 맡아 일정 부분 관여해야 했었고, 마침 아시아 지역 전문가로 손꼽히던 유진도 해당 업무에 투입되어 자본을 투자한 중국 건설 업체와 미얀마 현지 관리들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었었다.
거기서 유진은 이 미얀마 개발 계획에 무지막지한 돈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돈이 중간에서 사라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무려 수십 곳에 달하는 중국의 건설회사들과 미얀마 현지의 수많은 가짜 건설 회사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관련자가 연관된 초대형 공사였다.
일이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검은돈이 오갔고,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의 건설업자들도 놀랄 만큼 부실한 자재들이 사용되었다.
자국 내에서도 형편없는 자재를 사용해 아파트가 통째로 넘어지거나 다리가 무너지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던 중국 건설업체로서는 우습게만 보이는 미얀마 현지의 건설에 최저 품질의, 그러니까 간신히 형체만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자재를 사용하는 것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물론 유진이 소속된 항구의 주요 부분은 향후 군항으로 사용될 예정이어서인지 사정이 훨씬 나았지만, 다른 프로젝트들은 인부들조차 만들어 놓은 부분에 올라서 있기를 꺼릴 정도였다.
그렇게 절약된 비용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적어도 300억 달러는 만들었을 거야. 하하! 우리 쪽 말고 제일 위에서 말이지.”
그때 만나게 된 중국 측 건설회사 사장은 술을 매우 좋아하고, 떠들썩하게 노는 것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는 술이 잔뜩 들어가면 이번 건설로 자기가 얼마나 큰 돈을 벌었는지 자랑하기 일쑤였는데, 때로는 자신보다 위쪽에 어마어마한 돈을 상납하고 있다는 말도 거침없이 내뱉고는 했다.
그의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1천억 달러의 자금 중 적어도 30%는 최고위층에서 받아 챙긴다는 말이다.
거기다 건설사에서 또 일부를 빼돌리고, 미얀마 관리들 몫까지 빠지고 나면 실질적으로는 예정된 금액의 20%에서 30% 정도만이 프로젝트에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이 프로젝트에 관련이 되고, 투자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한몫 제대로 챙길 기회였다.
“그쪽은 다른 기관이 맡고 있어서요. 우리 쪽은 대신 파키스탄 쪽 사업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강대국 지도자의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한 곳일 수만은 없다.
특히나 중국의 지도자 정도라면 장시웨이는 그의 여러 관리인 중 하나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쉽겠군요.”
“뭐, 파키스탄 사업도 규모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미얀마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국 주변 국가는 물론이고, 인도양 건너 스리랑카나 멀리 아프리카까지 거의 전 세계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지금 넘쳐나는 중국의 자본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며, 한편으로는 해당 사업을 통해 전 세계에 중국의 위상을 높이고, 건설 경기 부흥을 통해 중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었다.
당연히 그 많은 국가에 엄청난 액수의 자본이 사용될 것이고, 그에 해당하는 무지막지한 검은돈이 흘러넘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검은돈의 종착지는 물론 예상 가능했지만, 반드시 한 사람에게 흘러 들어간다고 볼 수는 없다.
아직 중국 내부에서는 집단 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최고의 권력 기구이자 최고 의사결정 기관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7명이 바로 그 최상위층이다.
당연히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대 사업도 지도자들의 위상에 따라 나누어 먹고 있다 예측할 수 있다.
장시웨이는 그 7명의 상무위원 중 한 명인 기율검사위원회의 예 서기 파벌에 속해 있는 모양이다. 그 예 서기는 최고 지도자의 최측근이고.
유진은 미얀마 건설은 예 서기가 속하지 않는 다른 파벌의 몫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말을 꺼낸 것이었다.
“미얀마 프로젝트는 왕 총리 파벌의 몫입니다.”
이미 유진과 한배를 탔다고 생각하는 장시웨이는 그 정도의 기밀은 얼마든지 말해 준다.
“그렇군요. 사실 그렇지 않나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외로군요. 미얀마 쪽 프로젝트가 가장 규모 있는 게 아닌가요?”
국무원 왕 총리는 사실상 현 지도자에 이어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사람이다.
실질적으로는 2인자라 보아도 틀리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내정된 것이지 그가 무조건적으로 그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오랜 집단지도체제는 삐걱거리고 있었고, 왕 총리는 이제 실세라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왕 총리가 제일 큰 덩어리를 독식하는 것은 외부에서 보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최소한의 몫은 챙겨 줘야 하니까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장시웨이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그 역시 미얀마 프로젝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규모가 클수록 떨어지는 게 많은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대부분이 원래의 주인에게 상납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돈을 굴리는 집사들 또한 아주 짭짤한 재미를 보게 될 것이다.
“제가 최근에 세계 빈곤 퇴치를 위한 자선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때문에 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빈곤을 구조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학자들을 세계 곳곳에 파견해 놓았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역시 미얀마나 파키스탄 같은 곳의 빈곤이 심각하지요. 해서 그쪽 지역에서 활동하는 데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나 해서 여쭤보았습니다.”
“인도적 활동에 대한 지원이야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지요. 미얀마든 파키스탄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중국 정부도 세계의 굶주린 인민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발 벗고 나설 겁니다.”
“이거 고마운 말씀이네요. 인도적 활동에 나선 학자들이 현지에서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처럼 난처한 것도 없거든요.”
“그렇죠. 아무래도 그쪽은 생활 수준이 낮아 곤란한 일이 많을 겁니다.”
“참! 그런데 이번에 미얀마에 다녀온 학자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얀마 건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따로 목적이 있었다.
“미얀마 항만 개발에 참여한 건설 업체에서 미얀마 현지의 몇몇 업체들에 용역을 주고 있는데, 그중 몇 곳 정도가 선양에서 온 사람들이 차린 곳이라고 하더군요. 현지 관료들과 굉장한 친분을 유지하면서 중국 건설사의 알짜 사업을 따오고 있다고 합니다.”
유진의 말에 장시웨이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중국 내부의 정치 파벌은 재미있게도 여전히 지역별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각 지역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든 인물이 중앙 정치계로 나아가면서, 해당 지역에서 쌓아 둔 인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양이라는 말이지요?”
“예. 물론 선양 지역에도 좋은 건설사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 추운 지역 사람들이 미얀마에서 현지 건설업체를 만들고 차명으로 경영하고 있다니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하. 원래 우리 중국 사람들은 기후를 따지지 않고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리지 않고 달려가니까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장시웨이의 이마에는 땀이 슬쩍 맺히고 있었다.
사실 유진에게 한 말처럼 중국 건설업자들이 일대일로 사업에서 콩고물을 얻어 내기 위해 여기저기 퍼져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선양의 건설업자들이 미얀마에서 차명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아니,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꽤 컸다.
선양은 전통적으로 국가안전부 임 부장 부친의 지역이다.
당연하지만 지역의 내로라하는 건설업자들은 필연적으로 지역의 파벌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선양 출신 건설업자라면 역시 임 부장과 관련이 높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곳 출신 건설업자들이 왕 총리의 지역에서 알짜배기 사업을 나누어 먹고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큰 문제가 되고도 남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임 부장이 왕 총리에게 뒷돈을 받고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기율검사위원회의 예 서기와 국가안전부 임 부장은 현 지도자의 총애를 놓고 다투는 사이이다.
두 사람 모두 지도자 파벌의 중심인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데 임 부장, 나아가 국가안전부가 은연중에 왕 총리에게 큰 떡고물을 받아먹고 있다는 것은 아주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그저 우연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질 가능성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