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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21화 (221/363)

221화 수천 년의 의심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군요.”

처음에는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장시웨이는 금세 평정심을 회복하고 눈가에 주름까지 만들며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이야기 들은 값도 지불해야 할 것 같군요.”

장시웨이는 벌써 유진이 그런 말을 꺼낸 의도를 알아차렸다. 남들이라면 그저 흘려들었을 만한 말이지만, 그에게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물론 장시웨이에게는 그럴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그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걸 말하는 화자이다.

장시웨이는 유진이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시점에 뉴욕에서 LA까지 찾아온 장시웨이에게 세계 제일의 부자가 그저 의미 없는 뜬소문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의 말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다 여기는 쪽이 훨씬 더 올바른 판단이다.

또 한 가지 근거는 장시웨이도 유진이 전 CIA 국장이던 존 브래넌을 영입해 나름의 정보망을 구축해 놓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존 브레넌을 비롯해 적지 않은 정보기관 출신이 유진 아래에서 일하는 것은 비밀도 아니고, 그것이 불법도 아니다.

정권이 바뀌면 정보기관을 비롯한 다양한 계통의 유능한 인재들이 기관을 나와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산주의 국가나 독재자의 서슬 퍼런 철권통치를 일삼는 나라도 아닌 자유를 최선의 가치로 삼는 나라이니, 정보기관이나 군 출신 인사들이 어디서 무얼 하건 간섭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더구나 존 브래넌은 단순히 한때 CIA 국장으로 근무한 수많은 전직자 중 하나가 아니라, 젊은 시절 대부분을 그 계통에서 보낸 전설적인 인물이다.

더군다나 CIA의 명성은 미국 내보다 중국에 더 크게 알려져 있다.

중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 또한 사실상 CIA를 흉내 내어 만들어졌고, 기관의 권력자들이 CIA의 찬양론자로 가득하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장시웨이는 이러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유진이 선양 출신 건설업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에는 틀림없이 어떤 명백한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확신했다.

더군다나 미얀마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물론 명목상으론 학자들이 인도적 목적으로 위험 지역에서 근무하는 데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라 말했지만, 그게 어디까지나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이었다면 장시웨이가 그 복마전 같은 곳에서 이 정도로 성장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재미있게 들어 주셨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쥔산 군의 신변 문제로 주신 도움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로군요. 예 서기께서 다음번에는 정말로 크게 감사를 표하실 겁니다.”

장시웨이는 이미 유진에게 들은 이 정보가 얼마나 유용할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유진의 말에 숨겨진 비밀이 사실이라면, 그의 주인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가 될 것이다.

지도자 몰래 왕 총리에게 대가를 받고 있다면, 지도자로서는 임 부장을 수상쩍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정치계는 늘 그랬다. 단순히 현대의 공산정권에서뿐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에서 최고 권력자의 작은 의심 하나만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던 이가 한순간에 역적으로 내몰리는 일은 너무나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러하듯, 정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 권력자의 의심을 피하는 것이다.

임 부장이 지도자의 의심을 사면, 당연히 예 서기에게 힘이 실릴 것이다.

미국에서 사고를 친 아들을 도와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까지 기뻐하시니 이 사소한 유머를 꺼낸 보람이 있군요.”

여전히 유진은 사소하기만 한 이야기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장시웨이가 이 사소한 정보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임 부장이 왕 총리에게서 뒷돈을 받아먹는 이상의 일들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유진이 미얀마 프로젝트의 일부분에 불과한 항구 건설 업무로 만났던 중국 건설업자의 말에 따르자면 그랬다.

술을 좋아하고, 술만 들어가면 자기 과시를 즐기는 사람이었던 그 사장은 한국 출신으로 세계적 건설업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유진을 마음에 들어 했었다.

그 때문인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중국의 정경 유착에 대해 서슴없이 떠벌리고는 했다.

아마도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지를 자랑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깊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무얼 말해서는 안 되는지는 알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당시에는 그저 엄청난 거액이 미얀마 현지에서 다시 중국의 정권으로 흘러간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사실 그 정도야 누구나 눈치채고 있던 일이기에 그다지 귀담아 두지 않았다.

한데 그로부터 10여 년쯤 흐른 뒤에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제야 이 일과 관련된 내막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 * *

당시 유진은 미국의 회사에서 나름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었고, 건설사 사장은 어느덧 국제적인 그룹의 대표에까지 올라 있었다.

그때에도 제법 수완이 있던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생각처럼 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 전역에서 대형 리조트와 호텔 등을 운영하는 큰 기업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니까 선양에서 왔다는 녀석들이 기율위에 잡혀간 게 시작이었지.”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는 국가안전부 임 부장의 낙마에 얽힌 비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놓았다.

이미 10년이 넘게 흐른 뒤였고, 관련자들 대부분이 낙마한 뒤라 그다지 거리낄 것이 없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그만큼이나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에 얽힌 비사들도 하나씩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기에 크게 비밀이랄 것도 없었다.

“기율위 서기가 제대로 잡은 거지. 국가안전부와 왕 총리 사이의 협정 말이야. 그게 시작이었어. 마치 흙 속에 묻혀 있던 진주 목걸이가 올라오듯이 그 줄을 따라 하나하나 잡혀 들어가기 시작했지. 전부 구파의 요인들이었어. 명분은 충분했지. 동아시아에 중국의 미래를 위해 건설 중인 계획에 빌붙어 엄청난 액수를 착복했다는 거 말이야. 하마터면 나도 연루될 뻔했잖아? 흐흐.”

다행히도 그 사장은 미국 측과 협조하는 업무를 맡아서, 원하는 만큼 착복은 못 했던 모양이다. 당시 유진이 좀 많이 까탈스럽게 굴기는 했었다.

“다 자네 덕분이야. 그때 내가 남들 하는 것처럼 챙겼다면 내 목도 날아갔겠지. 흐흐.”

비록 유진의 의도가 그 때문은 아니었지만, 사장은 제 목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게 유진의 덕분이라 생각했던 듯했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랜만에 만난 유진에게 그 비싼 술들을 아낌없이 대접했다.

“근데 실상은 조금 달랐어. 단순히 해외 원조 건설 계획에 빌붙어 꿀을 빠는 수준이 아니었어. 그 프로젝트로 빼돌린 돈으로 세력을 구축해서 왕 총리를 차기 지도자로 앉히려는 목적이 있던 모양이야. 그 와중에 임 부장이랑 왕 총리가 손을 잡았던 거고. 왕 총리로서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지. 해외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부 국가안전부가 처리하고 있거든. 필요한 자금이 많은 만큼 대범하게 빼돌리려면 국가안전부의 눈을 피할 도리가 없었지. 그래서 차라리 함께하자고 제안했었나 보더라고.”

“국가안전부 부장이면 서기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렇게 위험한 짓에 동참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혹시 누명은 아닌가요?”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아니야. 사실 당시 분위기가 그랬지. 이대로라면 중국이 독재국가가 된다고. 내부적으로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었을 거야. 하지만 서기의 권력은 무척 단단했고, 반대하는 이들은 갈수록 실권을 빼앗기고 있었지.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서기의 복심이라던 임 부장이 끼어든 듯해.”

당시의 중국 정치 지형은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금하는 정교한 제도를 운용해 왔다.

하지만 당시의 지도자 체제에서 수십 년을 이어온 집단 지도체제는 어느 사이엔가 종언을 고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세 개의 계파가 서로 공산당 내의 요직을 나눠 가지며 견제와 균형이라는 규칙을 지켜 왔지만, 자신이 정권을 잡은 10년여 동안 지도자는 정권의 요직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로 채웠다.

지도자의 파벌이 아닌 이들은 한직으로 밀려났고, 본래대로라면 후임 지도자가 되었을 왕 총리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왕 총리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파벌의 권력자들이 점점 자신들이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들로서는 수십 년의 합의를 깨려는 지도자의 행위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한편 임 부장은 자신이 지도자의 후계자로 꼽히고 있다지만, 그 지도자의 임기가 언제까지인지 정해지지 않은 탓에 실제로 자신이 정권을 물려받는 데 수십 년이 걸릴지, 아니면 영원히 불가능할지 알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대로 기약 없는 차세대를 바라느니, 왕 총리에게 그다음 자리를 확약받은 모양이다.

어찌 보면 일종의 쿠데타 계획이었다. 하지만 임 부장의 라이벌인 예 서기의 기율검사위원회가 꼬리를 잡아 냈고, 결국 그들의 계획은 수많은 희생자만 만들고 끝나고 말았다.

* * *

여기까지가 미래의 유진이 알고 있는 몇몇 선양 건설업자들에 얽힌 이야기이다.

원래라면 앞으로 1년쯤 뒤에 시작될 서슬 퍼런 숙청의 비사이기도 하다.

어쩌면 예 서기 쪽에서도 벌써 눈치를 채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유진이 알고 있던 시기와 비교하면 그들이 꼬리를 잡고 나서도 1년이나 두고 보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의 와중이라 현재 중국의 정치권은 내부 문제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다음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선물을 들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장 선생의 선물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유진은 다음번 그가 들고 올 선물이 장시웨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가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유진이 장시웨이에게 전한 이야기는 모종의 루트를 타고 예 서기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예 서기는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진이 한 이야기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진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아래에 있는 존 브래넌의 명성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예 서기는 언제나처럼 조심스럽게 이 사실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마침내 아주 커다란 금맥을 발견할 수 있을 터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도 없다. 유진이 알려 주지 않아도 상대 세력을 철저하게 숙청하는 데 성공하고, 지도자의 깊은 신임을 받게 될 사람이다.

이제 지난번 삶과 다른 것은 유진에 대한 고마움이 될 것이다.

단순히 라이벌을 추궁할 기회를 넘어, 지도자에게 반기를 든 무리를 한 번에 소탕할 기회를 손에 넣을 기회가 어디 흔한 일이던가?

이번만큼은 크게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유진의 정보로 한숨을 내쉬게 될 사람은 장시웨이나 예 서기를 넘어 중국의 최고 권력자까지 미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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