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22화 (222/363)

222화 사이드 이펙트

“요 며칠 베이징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장시웨이에게 약간의 힌트를 주고 얼마 뒤, 유진은 존 브래넌과 독대하고 있었다.

다른 산하 기관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뉴욕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ABC의 수장인 존 브래넌이 굳이 대륙을 횡단해 날아온 것은 그가 보고하려는 내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난하이(中南海)가 아주 시끄럽다고 합니다.”

중난하이. 한국말로 하면 중남해는 북경의 중심지에 위치한 옛 청나라 황실의 별장 지역이다.

청이 멸망하고 공산당이 집권한 뒤로는 공산당의 핵심 권력 기관인 국무원과 공산당 중앙위원회 등의 집무실이 들어선 곳이며, 현직 주요 지도부와 관련인들의 거주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현 공산당 최고위층을 위한 특별 구역이라 볼 수 있다.

모 주석부터 주은래, 등소평 등 최고 지도자들과 가족이 거주하던 곳인지라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으로, 사실상 중국의 새로운 황성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 보니 중난하이는 중국공산당 최고위층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중난하이가 시끄럽다는 의미야 말할 것도 없이 중국 최고위층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왕 총리의 측근들이 대거 기율위에 잡혀갔다고 합니다. 왕 총리와 저우 위원장을 제외한 대부분이 연금된 듯하고, 두 사람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합니다.”

“임 부장은 어떻게 되었나요?”

“제일 먼저 구금된 사람들 목록에 속해 있는 것 같습니다.”

존 브래넌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확인한 사람은 물론 존 브래넌 휘하의 직원들이니, 당연하게도 사태의 전말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굉장한 피바람이 불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로 현 주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부 숙청되리라 생각됩니다.”

“다음 임기도 무사히 이어 가겠군요.”

“반대파는커녕 건설적인 비판의 목소리조차 나오기 힘들게 될 겁니다.”

“후임 인선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유진은 이제 새롭게 예 서기의 정적이 될 지도자의 또다른 충복들을 알아내려 했다.

“아직은 불명입니다. 워낙 큰 자리들이 많이 나와 경쟁이 심하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시점에서 충분한 정보를 얻어 내기는 어려웠다.

존 브래넌의 ABC는 국가 정보기관을 제외한 사기업으로서는 아마도 유례가 없는 수준의 세계적 정보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계는 명확하다. 여느 국가 정보기관처럼 각국의 대사관을 통해 심도 있는 정보를 얻어 낼 수도 없고, 목숨을 걸고 불법적인 행동에 나설 수도 없다.

사기업의 한계는 명확했고, 정보 수집의 방법 역시 대개는 존 브래넌이 영입한 전직 정보원 출신들의 인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중국 중앙정치 권력 내부의 실황을 고스란히 입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때에 따라서는 ABC가 여느 국가기관 못지않을 정도로 빠르게 정보를 입수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존 브래넌이라는 인물의 공이 크다.

“우리 쪽에는 어떤 영향이 있겠습니까?”

“지금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현 주석 파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 만큼 부수적 피해는 없을 겁니다.”

유진은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고,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도 아니다.

당연히 그의 관점은 그 자신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만 쏠려 있었다.

“랭리에서 상당히 주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백악관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미국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탓에 랭리에 보고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존 브래넌이 말하는 랭리는 CIA 본부가 있는 곳으로, 이번 사태에 대해 CIA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런 결정도 내려진 게 없답니까?”

“아무래도 선거가 코앞이니, 바다 건너의 정치 투쟁에 신경을 쓸 여력은 없겠지요.”

이때 즈음의 대세는 확실하게 민주당으로 넘어가 있었다. 모두가 내년에는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을 비워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도널드는 이번에도 자기가 승리할 거라 믿고 있는 모양입니다.”

존 브래넌이 슬쩍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당연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언제나 자기의 승리를 확신해 왔다.

특히 지난번 선거에서 다양한 어그로로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승리를 거머쥔 것이 그의 자만심을 더욱 키워 버렸다.

지금도 지지율 분석으로는 자신이 형편없는 차이로 지게 될 것으로 나오고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결과는 다를 거라 믿고 있는 듯했다.

“에고가 강한 사람이니 당연하겠죠.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겁니다.”

“여하튼 이번 중국 사태에 대해 미국에서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할 겁니다. 어쩌면 중국에서도 그걸 예상하고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여하튼 현 정권 입장에서는 큰 문제 없이 정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어 기쁘겠군요.”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먼저 해치워 버리는 게 당연한 순리다.

“우리 쪽 분석으로 적어도 수백억 달러의 정치 자금이 이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천억 단위에 이를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반대파의 숙청 이후 그들이 모아 놓은 해외의 비자금을 회수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대개의 권위주의 국가들이 그러하듯, 권력층의 비자금은 그 규모 면에서 일반인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주석 일파들은 한동안 즐거운 시간이 되겠군요.”

물론 그 무시무시한 규모의 비자금이 단순히 개개인의 일탈이고, 한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만 보아선 안 된다.

비자금의 용도는 사실 대개는 자신의 파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파벌에 속한 수많은 인사에게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조직이 유지되기 어렵다.

대개의 독재자는 적어도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씀씀이를 아끼지 않는다.

자신을 지지해 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넉넉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지 못한다면 그 정권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랭리에서도 관련된 자금의 흐름을 쫓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 숨겨진 거액의 자금이 일시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흔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계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는 CIA에서는 그런 흔적을 추적해 현 지도자 일파의 추가 자금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당장 그걸로 어떤 제약을 가한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단지 언젠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정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때 확보한 정보들이 쓰이게 마련이다.

미국은 항상 그런 식으로 행동해 왔다. 미국 정부가 가진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상대 국가수반이 해외, 특히 미국과 서방 세계에 숨겨둔 다양한 비자금을 동결하는 방법을 충분한 명분을 내세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존 브래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인맥은 역시 미국 내에 있다 할 것이다.

여전히 CIA 내부에는 존에 대해 존경심을 버리지 않는 많은 이들이 포진해 있었다.

덕분에 유진은 존을 통해 기존에는 알기 어려웠던 내부의 일들을 제법 많이 주워들을 수 있었고, 그들이 지금의 백악관에 대해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백악관에서 결심한다면 당장이라도 중국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만…… 그런 보고가 올라가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도널드라면 자신의 선거 승리를 위해 당장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도 남을 것이다.

당장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보좌하던 군 출신 인사들이 도널드가 생각 없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태를 몇 번이나 막아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도널드에게 다른 사람들이 흘리는 피는 그저 자신의 위업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는 일면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 중국 정권 최고위층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트럼프의 이목을 끌지 못한 듯했다.

이미 여론 조사 결과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에 비해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20%까지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의 힐러리와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큰 차이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승리에 대한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고는 해도, 트럼프는 마지막 순간까지 확실한 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번에 남부 지역으로 유세를 가게 되었네. 함께 자리를 해 주었으면 좋겠군.”

유진 또한 트럼프가 사용하고 싶어 하는 패 중 하나였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사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에 대해 공격적인 폐쇄정책을 펼치며 확진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안 트럼프는 자신은 마스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하고,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지역 패쇄를 하는 정책에 반발하는 공화당 의원에 힘을 실어 주는 행동이나 했으니,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더군다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코로나를 음모로 치부하고, 미국 시민 사회를 더욱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미국 사회에서 반사 이득을 보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 바로 유진이다.

유진은 벌써 1천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를 미국 각 지역 사회의 생존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해 왔다.

코로나로 인해 생존의 벼랑에 몰린 빈민층과 대량 실업 사태로 인해 빈민으로 밀려나 버린 중산층 수천만 명이 유진의 도움으로 굶주림을 면하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유진은 다시 수십억 달러를 사용해 자신의 선행을 널리 알리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유진의 이름을 알리는 광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코로나에서 생존하는 방법이나, 올바른 마스크 사용법 같은 정보를 담은 광고를 내보내거나, 지역 사회에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돕자는 공익 광고를 미국 전역의 신문에 잔뜩 실으며 거액의 광고비를 집행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줄어든 광고 지면을 팔아넘기게 된 수많은 언론이 어떤 식으로든 유진의 선행을 자발적으로 홍보해 준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니카의 홍보팀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유진이 집행하는 광고비 덕분에 파산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지역 신문사가 적어도 세 자리는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아낌없는 투자로 이제 한적한 시골 구석의 레드넥 농부들까지도 유진의 이름은 잘 알고, 호의를 보내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에게 적대적인 모습은 나타내지 않았다.

여기에는 유진이 트럼프 정권의 초기부터 도널드와 친분을 드러낸 것도 한몫할 것이다.

유진으로서는 도널드에게 투자한 대가는 이미 충분하게 받아 냈다.

무엇보다도 초기 자본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적대적으로 나설 세력의 준동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새로운 대통령의 막역지우라는 소문은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패였다.

그리고 남부 농업지대와 북부 공업지역의 극렬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적어도 미움을 받지는 않고 있다는 점은 도널드를 통해 얻어 낸 부수적인 효과이다.

그리고 다시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유진은 트럼프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