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24화 (224/363)

224화 책략의 달인

도널드는 입맛을 다시며 유진에게 슈퍼팩을 뜯어내려던 생각을 접었다.

하지만 유진과의 통화가 영 영양가 없던 것은 아니다.

유진은 트럼프에게 이번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선거를 대비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던 트럼프로서는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의견이었다.

귀찮기만 한 코로나를 바이든에게 넘기고, 다음 선거에서 그걸 빌미로 되찾아온단 말이지?

“CDC(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 불러. 코로나의 장기 예측에 대한 자료 가지고 오라고 해.”

도널드는 유진의 말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대체 코로나가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당장 현실만 보아도 내년 초까지는 진정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빠르면 내년까지는 잡을 수 있다는 말이로군.”

“백신이 최대한 빨리 나올 경우에 그렇습니다. 지금 연구에 적지 않은 자금이 투입되었으니 빠르면 올해 말부터는 접종이 시작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도널드가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으로 이번 사태가 확실하게 잡힌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변이 바이러스에도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변이 바이러스? 그건 또 뭐야?”

이미 몇 번이나 보고를 들었지만,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귓가로 흘려 버리는 탓에 전혀 새로운 말을 들었다는 듯 되묻는다.

“기존의 바이러스가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변이 바이러스의 경우 기존 백신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

조금 전과는 또 다른 표정이다.

“만일 변이 바이러스가 새로 개발된 백신으로 해결되지 않고 확산되기 시작한다면…….”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인류는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공존이라…… 그러니까 잡을 수 없다는 말이지?”

“어쩌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호오…….”

트럼프의 얼굴에 생기가 돋았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백신의 빠른 개발을 도와 더 이상의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국장은 백신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확산을 막아 내는 것이라고 벌써 몇 번이나 강조해 왔다.

이번에도 물론 자기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국장은 최선을 다해 의무를 다하려 노력했다.

“알겠네. 나가 보게.”

물론 이번에도 대통령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째서 저런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인지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 * *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TV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에 대한 뉴스를 보던 모니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날도 도널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수많은 이들 앞에 나서며 코로나는 별것 아니라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너무 많은 검사를 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사실 그냥 자연스럽게 넘기면 다른 인플루엔자처럼 한때의 유행병으로 지나갈 수 있는데 말이죠.]

트럼프는 자신이 방역당국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말 뭘 하는 거죠? 대통령이라는 자각은 있는 걸까요? 대체 미국이 어째서 이런 나라가 되어 버린 걸까요?”

도널드 트럼프 이전의 미국과 이후의 미국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전의 세계인들은 명백하게 미국을 최고 선진국으로 믿었고, 수십억 인류가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만도 못한 미개하고 신뢰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자국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추락에 슬퍼하고 있었고, 전형적인 미국 지식인 계층인 모니카 또한 사랑하는 아메리카가 코로나 사태에서 세계 최악의 성적을 보여 주는 현 상황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이들이 소외되어 왔던 거지.”

“소외라고요?”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연대하기보다,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들 말이야.”

유진이 스쳐 지나가듯 한 한마디에, 모니카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도 지금의 미국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부른다.

혐오와 증오의 연쇄는 너무나도 빠르게 퍼져 나갔고,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이 혐오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었다.

코로나는 그저 그런 거대한 혐오의 물결을 가속해 줄 촉매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그날 TV를 보고 있던 모두가 트럼프의 행동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에 열광한 수많은 지지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열광하며 거리로 뛰어나왔다.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든 분노한 시민들이 여기저기서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역 폐쇄를 강행한 지역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위대들과 경찰이 부딪쳤다.

뉴스에서 연일 하루에 수만에 달하는 새로운 확진자가 추가되었다고 보도하는 그 순간에도, 수많은 시민이 ‘마스크는 우리의 자유를 억압한다, 코로나는 거짓이다.’ 따위의 자신들만의 주장을 외치고 있었다.

자신의 지난 삶에서도 미국 사회가 이렇게 코로나에 대한 대책으로 극단적으로 나뉘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유진이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그런 모습이 훨씬 더 심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트럼프의 행보는 더욱 과격해지고 있었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위협하는 대재앙을 막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방역당국의 노력을 방해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아마도 유진과의 통화 이후에 더욱 그런 태도가 강해진 것 같다.

어쩌면 유진의 충고대로 이번 선거를 포기하고, 다음 선거를 조준하기로 한 모양이다.

트럼프는 다음 행정부가 실패하게 말들 생각이었고, 지금 상황에서 그를 위한 최선은 역시 방역 정책의 실패였다.

코로나가 더욱더 미국을 집어삼키고, 시민들의 삶이 어려워지면 모든 책임은 트럼프가 아니라 그걸 해결해야 할 역할을 맡은 바이든에게 넘어갈 것이다.

9월, 저명한 언론인인 밥 우드워드는 도널드 트럼프가 코로나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이미 팬데믹 이전 보고받아 알고 있었지만, 선거를 위해 은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바이러스가 노인뿐 아니라 젊은 층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국가적 패닉이 오는 것을 두려워해 축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트럼프 자신이 직접 말하는 녹음이 공개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질문을 받은 도널드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 밥 우드워드가 내가 말한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그 자신이 방역당국에 가서 알렸어야지 않아?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이 공개되었으니 부정하긴 어려웠던 트럼프는 대신 그걸 밝힌 언론인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저렴한 대응이었다. 방역당국을 지휘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자신이라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사실 이 정도의 사안이 다른 행정부에서 드러났다면 당장에 청문회가 열리고, 식물정부가 되어 버렸을 상황이다.

하나 도널드 트럼프가 그동안 저지른 과업이 너무나 대단했던 때문에, 이것조차 그저 해프닝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이런 도널드의 지지자들은 단순히 저학력 노동자 층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방역당국의 노력을 방해하는 세력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었다.

그달 미 연방 법원은 펜실베이니아주의 셧다운에 대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법 당국에도 트럼프의 지지자, 혹은 적어도 트럼프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다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는 이 사태에 적극 지지하며 나섰다.

뒤를 이어 법무부 장관까지 셧다운을 통한 시민 통제는 미국 역사상 노예제 다음으로 가장 큰 시민의 자유권 침해라는 의견을 밝혔다.

“꼭 대통령뿐 아니라 측근들 모두가 방역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정말 그런 것 같군.”

“대체 그럴 이유가 뭐가 있는 건가요?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과연 그럴까? 도널드가 저럴수록 오히려 지지자들이 결속하고 있잖아.”

“말도 안 돼요. 아무리 지지자들이 결속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선거는 원래 마지막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물론 유진은 이미 트럼프의 노림수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미국 국민은 중국에서 온 전염병 따위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이 이 참담한 시기에 고통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난 미국 시민들을 위해 3조 달러의 긴급 예산을 마련해 구제에 나설 생각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저소득 가구에게 매달 1,000달러의 구제금이 지원되어야 합니다. 아메리카의 국력은 그걸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습니다.”

도널드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기회를 잡는 데에는 그 누구보다 기민한 사람이다. 나이가 들었다 해도 그 영민한 두뇌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도널드는 터무니없는 액수를 들먹이며 전 국민에게 거액의 구호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수표를 던졌다.

“민주당은 지금 선거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미국 시민들의 생명을 구제하기 위해 당장 실행에 나서야 할 겁니다.”

이미 예정된 1조 달러의 구호금만으로도 의회에서 수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뜬금없이 3조 달러를 거론하고 나선 트럼프의 행동은 명백하게 지금의 논의마저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많은 언론과 학자들이 트럼프의 행동을 비난하고 나섰지만, 트럼프 지지자들과 당장에 고통받고 있는 서민들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금융 위기 때 미국 정부는 월가의 몇몇 은행에 1조 달러가 넘는 액수를 퍼 주었습니다. 지금 3억 명의 미국 시민에게 3조 달러의 구제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긴급한 목숨 줄입니다. 마스크를 쓰라든지,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는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시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오늘을 넘길 1,000달러입니다.”

트럼프는 연일 의회와 민주당, 그리고 바이든을 비난하고 나섰다.

작금의 사태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당사자가 자신의 책임은 쏙 빼놓고 느닷없이 꺼내든 3조 달러의 긴급 자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의회에 책임을 묻는다.

물론 상식적으로 그런 큰 액수를 당장 조달할 수 없다는 것은 대다수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융 위기 당시의 1조 달러와 비교하며 나서는 트럼프의 말에 동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져서, 지도자가 내놓는 정책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판단하기 불가능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공약보다 어떤 말을 하고, 누구를 비난하는지에 대중이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명확한 숫자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1조 달러, 3조 달러, 3억 명의 미국 시민이라는 말은 모두의 뇌리에 쏙쏙 들어오는 단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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