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27화 (227/363)

227화 선거의 승자

요안나와 데이비드는 한동안 캘리포니아에 머물며 조금은 여유 있는 시간을 즐겼다.

두 사람 모두 유진의 저택 근처에 비슷한 규모의 자택을 보유하고 있어, 각자 자신의 저택에서 오랜만에 조용한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탓에 두 사람을 주빈으로 하는 파티를 주최할 수 없다는 정도일 것이다.

데이비드도 요안나도 매력 있는 젊은이였고, 각각 세계 수위권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기에 할리우드에서도 꽤 인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뉴욕에서 가끔 들를 때면 그 둘과 인연을 맺기 위해 할리우드는 물론이고 저 멀리 실리콘밸리에서까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방문객이 이어지고는 했었다.

“이번 방문은 좀 심심하겠어.”

“그렇기는 하지만, 어쩌면 코로나 덕분에 손님들을 만나지 않아 오히려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맞는 말이에요. 평소라면 이곳 가득 사람들로 꽉 차서 쉴 새 없이 인사를 나누어야 했잖아요?”

데이비드가 넓디넓은 저택의 정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두 사람 모두 얼굴에 여유가 가득하다. 요안나와 데이비드를 굳이 이곳으로 부른 것은 둘에게 조금이나마 여유로운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두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이미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것 없을 정도이니, 그 어떤 선물보다 잠시라도 업무에서 떨어져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더 큰 선물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휘하의 수많은 직원을 지휘하기 바쁜 둘에게 코로나로 삭막해진 뉴욕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다.

거기다 하루가 다르게 수십억, 수백억 달러가 오르내리는 자산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으니 마음 편히 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유진이 상사로서 먼저 여가를 주지 않는다면, 둘은 이날도 여전히 그 삭막하기 그지없는 뉴욕에서 숫자만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유진의 부름에 기꺼이 날아온 두 사람은 하루에 한 번 정도 모여 함께 식사하는 정도의 사교 활동 외에는 시간 대부분을 빈둥거리며 두 사람의 인생에 드물 정도로 여유롭게 보내는 중이다.

그건 이미 두 사람이 각기 자신이 맡은 회사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완성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날은 모두가 함께 데이비드의 저택에 모여 느지막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마치고 LA가 내려다보이는 정원에 둘러앉아 있었다.

“잠시만요.”

잡담을 이어 가던 요안나가 잠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며 무언가를 확인한다.

“이런…… 테슬라가 또 신고가를 달성했네요. 액면분할 이후 잠시 꺾인 거 같더니, 금세 회복하는군요.”

“그렇군요. 확실히 테슬라의 폭등이 제일 무섭네요.”

데이비드도 따라서 스마트폰을 확인해 본다.

두 사람 모두 여유로운 시간이라 해서 시장의 흐름에 관심을 완전히 놓고 있진 않았다.

잡담을 나누면서도, 잠시 책을 읽으면서도 시시때때로 누군가 보내오는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을 보면, 두 사람에게 휴가가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렇게까지 시장의 반응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은 유진뿐이다.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유진은 어지간해서는 일과 시간 외에는 시장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이렇지는 않았다. 아마도 대략 조 단위의 자산이 오가기 전까지는 요안나나 데이비드처럼 그도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이 투자하는 다양한 자산의 현황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러니까 그의 자산이 이미 일국의 경제 수준을 넘어선 이후에 가서는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기존에 알던 미래와 다른 상황이 생긴다 해도 그건 아마 유진이 일으킨 무언가의 결과일 테니 굳이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어지간한 손해가 발생한다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여유가 생긴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유진에게 있어 유의미한 손실이 생기려면, 적어도 전 세계 경제에 끔찍한 충격을 줄 만한 사태가 벌어져야 했기에 웬만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테슬라는 코로나 쇼크로 주식 시장이 폭락했을 때에 비해 거의 다섯 배에 가깝게 폭등하고 있어요. 애플이나 아마존, 그리고 넷플릭스와 페이스북은 두 배,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80% 가까이 올랐고요. 확실히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폭발하고 있군요. 보스가 말한 것처럼 무섭게 올라가고 있어요.”

요안나는 어느샌가 일 모드로 전환해 버렸다.

아무래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여유로운 휴가 같은 것보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더욱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성공에 이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내년 상반기, 어쩌면 하반기까지 이런 폭등은 계속될 거야. 그때까지는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크게 한 몫 볼 수 있겠지.”

“걱정이네요.”

요안나는 벌써 주식 시장 폭등이 몰고 올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비정상적으로 폭등하면, 틀림없이 반등이 올 테죠.”

“물론이지. 버블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니까.”

“버블이라…… 맞아요. 버블. 코로나로 인한 버블이에요.”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로 인한 국민의 궁핍을 해소하기 위한 보조금을 마구 풀어 대고 있는 탓에,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통화가 시장에 풀렸다.

그리고 그런 통화는 다시 돌고 돌아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연준이 기준금리를 바닥까지 낮춰 버린 탓에 풀린 돈보다 더 많은 통화가 돌고 있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경기의 부양을 위해 두 번에 걸쳐 금리를 낮춰 제로 금리 시대로 돌입했다.

그 결과적 은행에서 대출하는 데에 부담이 없어지며 다시 천문학적 대출이 발생했고, 그 돈은 또다시 증시와 부동산으로 쏠리고 있었다.

“증시, 유가, 골드…… 모든 자산의 가치가 뛰어오르고 있으니 내년까지는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겠군요.”

데이비드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요안나는 그의 눈가에 어딘지 조금은 불안함이 서려 있는 듯하다고 느꼈다.

사실 불안한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버블의 끝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이미 몇 번이나 겪어 왔다.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일이 벌어지겠어요.”

요안나는 버블이 아닌, 버블이 터지고 난 뒤의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버블이 언제 터질지, 그리고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지.”

유진은 2년만 지나도 세계 각국이 코로나 버블의 후유증에 허덕대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와도 그걸 공유할 생각은 없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지는 힘은 그걸 얼마나 소수가 알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미래는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당분간. 그러니까 1년가량은 이 버블이 이어지고, 그 뒤에 터질 가능성이 크다는 말씀이죠?”

“아마 그렇게 될 거야.”

이 시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버블의 붕괴를 앞당기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조찬회는 언제나처럼 각자 맡은 투자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회의로 변질하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버블이 터지기 전에 충분히 준비해 놓아야겠군요.”

버블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주가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이 하루하루 삭제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미국인들은 늘 저축보다 주식을 훨씬 더 선호해 왔다. 버블의 붕괴는 곧 미국인들의 자산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트럼프는 운이 좋군요.”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대화는 어쩌다가 도널드 트럼프에 관한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되는 건가? 맞는 말이네요.”

데이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안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버블 붕괴의 책임을 바이든한테 떠넘길 수 있으니, 내년 이후로는 아주 신이 나서 떠들겠군요.”

며칠 전 미국 대선이 끝났다. 모두가 생각했던 것처럼 바이든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과연 이 선거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놀라운 사실은 코로나를 방치해 미국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든 트럼프의 득표율이 바이든과 겨우 5%밖에 차이나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요안나가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꽤 놀랐어요. 트럼프의 선전이 대단했어요. 정말……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니까요.”

“특히 막판에 그렇게까지 어그로를 끌었는데 말이죠. 앤서니 파우치한테 멍청이라고 하질 않나,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과학적 방역을 할 거라고 하는데도 그를 지지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놀랍게도 그게 미국의 현실이었다. 도널드는 마지막까지 코로나 방역 대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훼방을 놓았다.

보건당국에서 코로나 대책의 중임을 맡은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 앤서니 파우치를 비난하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에 대해 살해 위협까지 하고 나서는 바람에 연방 요원들만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새로운 대통령이 된 바이든은 이 위대한 전염병 권위자에 대해 계속 자리에 머물러 줄 것을 요청했고, 이제 앤서니 파우치는 정권의 방해 없이 미국의 코로나 대책을 제대로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트럼프 지지자들은 과학 방역의 의의를 부정하고, 정부의 방역 대책이 미국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만일 보스의 말처럼 내년에 버블이 터지면 바이든으로서는 무척 억울하겠군요.”

누구라도 자신의 재산이 줄어드는 것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산 대부분을 주식에 묻어 둔 미국인들은 주가가 하락하면 즉시 그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린다.

지난 백 년 동안 주가 하락을 방치한 대통령이 인기를 얻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건 주가 하락 시점의 리더가 그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은 억울한 일이겠지만, 세상일이란 대개가 그런 것이지.”

“그렇기는 해요. 뭐.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는 않죠. 1년 남았으면 시간은 충분하니, 적어도 우리와 우리 고객의 손실은 최소화할 수 있겠군요.”

요안나도 데이비드도 둘 다 현실주의자이다. 미국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건,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더군다나 요안나는 여전히 외국인이고, 데이비드 또한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만큼이나 이민 2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미국 사회의 다른 많은 유색인 이민자들처럼,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자라나며 받아 온 차별에 기인한 뿌리 깊은 분노 또한 고스란히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애증은 그들이 간헐적으로 주류 사회에 대한 반발을 지닐 수밖에 없게 만든다.

틀림없이 미국인이지만, 여전히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데이비드를 현실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데이비드뿐 아니라 대개의 동양계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런 이유 탓에 한국인, 그리고 동양인의 지위를 하루가 다르게 높여 가는 유진에 대한 지지 또한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만일 유진이 선거에 나선다면 적어도 동양계 대부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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