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다가오는 위험
“5조 달러는 무리지만, 적어도 3조 달러는 책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높아진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어느 정도의 과감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지난 경제 위기에서 월가에 지원한 금액을 거론하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과감한 행보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초반의 정책이 앞으로의 4년, 그리고 8년을 좌우할 겁니다.”
이 자리에는 재무부 부장관인 월리 아데예모와 미국 경제 정책을 조정하는 국가경제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발탁된 브라이언 디즈도 함께 있었다.
지난 오바마 행정부에서 수석 경제고문과 예산관리국 부국장 등의 중요한 자리를 역임한 브라이언 디즈는 이번 바이든 행정부에선 전보다 훨씬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브라이언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유진과 함께 일을 해 온 사이다.
브라이언은 유진의 자선 사업 총괄을 맡아 코로나 사태에서 미국 사회에 필요한 자원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물론 브라이언도 바이든의 제안을 받고 무척 고심했었지만, 유진의 격려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바이든이 백악관을 차지한 당일 유진을 초대하며 이 두 사람을 참석시킨 것은 유진에 대한 배려일 터이다.
“5조 달러이든, 3조 달러이든 끔찍하게 큰 숫자임은 틀림없지.”
바이든이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미국 시민들은 이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날 뽑았을 거요. 하지만 나로서도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구려, 유진.”
대통령이 된 바이든이 유진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사실 유진에게도 조금은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보좌관이나 각료들 말고도 다양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보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숙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 이렇게 백악관 입성 당일부터 외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물론 지금의 유진은 세상 그 누구라도 조언은 물론이고 도움을 청할 만한 상대이기는 하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점 외에도, 그의 투자는 어김없이 들어맞아 왔다.
그리고 유진의 투자 성공은 언제나 남보다 빠른 정보를 입수해서가 아니라, 남들과 같은 시기에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정보를 토대로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한 결과라는 것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세계는 이미 충분한 정보로 넘쳐나고 있지만, 같은 정보를 가지고 남들과 다른 분석을 내어놓으며 그걸 이익까지 연결시키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리고 현시점에 그런 희귀한 현인 중 유진보다 앞에 이름을 올릴 사람은 없다.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정하시든 그건 대통령의 권한입니다.”
“물론 그렇지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바로 나고.”
“어떤 정책을 선택해도 비난을 받는다면, 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선택을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유진은 조금 엉뚱한 소리를 한다.
“좀 더 먼 곳이라니?”
“미국에는 당장의 코로나 문제나, 코로나 이후의 경기 침체 따위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흠…….”
아직 유진의 말에 담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바이든은 아데예모와 브라이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도 아직 감도 잡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대체 어떤 위협을 말하는 겐가?”
어쩔 수 없이 바이든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언제까지 이 나라가 세계를 주도하는 자리를 지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죠.”
유진의 말에 바이든은 물론이고 다른 두 사람도 잠시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면한 국내 경제 상황을 논의하는 와중에 제기한 문제는 얼핏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전 미국 시민이 된 지 이제 겨우 몇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 자리의 누구에게도 못지않을 겁니다. 미국이 번영해야 제 자신의 안위도 보장될 수 있으니까요.”
유진은 천천히 말을 이어 갔고, 세 사람은 조용히 듣기 시작한다.
“사실 저뿐 아니라 많은 금융 투자자들, 그리고 기업가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할 겁니다.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굳건해야, 개개인의 부와 번영도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죠. 미국이 흔들리면 미국의 기업들이, 그리고 은행들이 흔들릴 겁니다.”
“음…….”
“단기적인 인플레나 방역 실패로 인한 고난 따위는 사실 길게 보았을 때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저력은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고난들을 극복해 낼 테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위험은 여기 미국 내가 아니라 외부에 있습니다. 미국의 지위가 흔들리면, 내부의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중국을 말하는 거로군요.”
유진이 여기까지 말하자 브라이언이 바로 대답을 내놓는다. 뒤이어 아데예모도, 바이든도 고개를 끄덕인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위기는 이미 10년 전에 시작되었다.
“2000년도에는 미국이 세계 GDP의 1/3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뒤인 작년엔 1/4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지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중국 경제의 성장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2000년 중국 GDP는 간신히 1조 달러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15조 달러 가까운 수준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유진은 이미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을 정보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는 말을 이어 갔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언제까지 지금의 성장이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중국의 GDP가 미국을 넘어서는 날이 오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 또한 명백하고요.”
아직 세계 누구도 중국 내부의 정치 상황과 코로나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이 자국의 경제 성장을 누르고 결과적으로 지금까지와 같은 고속 성장이 불가능해지리라는 것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점차 가속하는 중국 경제의 성장이 결과적으로 중국 내부가 아닌 외부로 힘을 투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경제의 성장에 따라 점차 커지는 서민층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중앙정부는 외부에 힘을 투사하는 것으로 자국민의 결속을 꾀하고,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사용할 겁니다.”
내부의 문제를 외부에 적을 만들어 해결하는 것은 비단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서구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이런 방법을 더욱 열심히 사용해 왔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자국민들이 내부 문제에서 외부로 시야를 돌리게 하기 위한 정책, 그리고 넘쳐나는 자금으로 더욱 많은 전비를 사용하게 되는 일련의 흐름은 결국 하나의 결과로 귀결될 것입니다.”
유진이 말하는 의미를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고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 분쟁을 일으키고야 말 것이다.
사실 아직 경제 상황이 좋지 않던 건국 초기부터 중국은 주변국들과 쉬지 않고 분쟁을 일으켰었다. 그것도 혈맹이라 할 수 있는 같은 공산국가와 말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현대의 중국은 과거의 굶주리는 10억의 인구를 부양하는 허약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자, 아시아에서는 독보적인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초강대국이다.
그런 강대국이 일으키는 분쟁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리고 단순한 지역의 문제로만 끝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의 견제를 위해서라도 GDP를 늘려야 한다는 말인가요?”
이때 즈음 모두가 유진의 말에 숨겨진 의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플레나 통화팽창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을 틈타 미국의 경제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미국을 지탱하는 두 힘은 단연 경제력과 군사력이 아닌가요?”
“경제 성장을 위해 더 많은 통화를 푼다면, 그 후유증은 어떻게 합니까?”
아데예모가 이의를 제기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가 문제입니다. 짧은 시간에 과도한 통화가 공급되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물론 그 대가를 치르는 당사자는 미국 국민과…….”
아데예모는 뒷말을 흐렸지만, 바이든도 유진도 모든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아마도 바이든이 재선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가 될 것이 분명하다.
통화팽창은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과도한 인플레이션은 실질 소득의 감소를 불러온다.
시민들의 불만이 그러한 사태를 불러일으킨 당사자에 향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지금 당장 코로나 방역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적지 않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도 급한 일입니다. 전임자 때문에 망가져 버린 미국의 위상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브라이언 디즈도 거들고 나선다.
이제 겨우 취임 첫날인 새로운 대통령 앞에는 끔찍할 만큼 많은 난관이 산적해 있었다.
“그런 모든 문제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사안에 불과합니다. 중국 경제의 부상은 이미 충분한 걱정을 해야 할 만큼 당면한 현안입니다.”
유진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히려 보조금 규모를 늘리고 그를 통해 통화를 늘려 인플레를 조장해야 한다는 말이로군요.”
바이든이 확인하듯 묻는다.
“그 뒷수습은 방기하라는 말이오?”
“아니요. 뒷수습을 잘해야겠지요. 하지만 달러 공급으로 인한 인플레는 오직 미국에만 영향을 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뒷수습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해야 하는 거죠. 그게 오히려 백미 아니겠습니까?”
유진의 말에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전 세계가 책임을 진다…….”
조 바이든은 유진의 의도를 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보조금 지급의 규모를 늘리면, 언제고 인플레이션을 누르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금리를 인상하면 세계적으로 불황이 야기될 테고, 그렇다면 아마도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은 신흥 공업 국가들…… 그중에서도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전문가인 브라이언 디즈가 바로 해석을 해 주었다.
“국내의 보조금 지급 규모가 커지면 그걸 전 세계가 책임져야 하고, 특히 중국이 가장 괴로울 거다?”
바이든은 브라이언의 해석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거기다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한다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이 덧붙였다.
현 재무부 장관은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연준과 재무부가 함께 준비한다면 충격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미국에서 언제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는 미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충격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
“복잡하군.”
조 바이든은 다른 두 사람과 달리 경제인이 아니다. 법률가로 시작해 평생을 정치인으로 보내온 바이든에게 이렇게 짧은 이야기로 미래의 일을 유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중국 경제에 타격을 주고, 미국이 주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지?”
“물론 미국 내에도 적지 않은 고통이 따를 겁니다. 하지만 그 단계가 끝나고 나면, 오히려 다시 고속 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준비가 충분하다면 말이지요.”
“중국의 경우라면…… 한 번 성장의 기세가 꺾이면, 다시는 지금과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일본이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지요.”
아데예모와 브라이언 디즈가 각기 생각나는 바를 꺼내놓는다.
“프라자 합의로 일본의 고속 성장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중국 차례입니다.”
논의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아데예모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