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밀약
“그래서 중국의 성장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거지?”
바이든이 다시 한번 묻는다. 사실 그도 충분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 것은 그가 리더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드러냈다.
진정한 리더는 한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그보다 많은 전문가가 내놓는 분석과 전략을 취합해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다는 것은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이다.
하지만 많은 리더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며, 스스로가 이끄는 집단을 수렁으로 몰고 가고는 한다.
“중국은 어떤 의미에서건 냉전 시대의 소비에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국가입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인구 때문이지요. 러시아는 넓은 국토와 충분한 지하자원, 그리고 드넓은 평원을 지니고도 인구가 부족한 탓에 성장에 있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15억이라는 대륙 규모의 인구를 토대로 외부와의 경제 교류가 막힌다 해도 내수 시장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킬 여력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제 성장에서 얻어지는 막대한 자본이 군사력을 확충하고, 중국에게 부족한 각종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국은 물론 세계 전역으로 힘을 투사할 것입니다.”
브라이언 디즈는 사실상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이 해 왔던 일들을 말했다.
강대국이 되기 위한 요건의 ABC는 수억에 달하는 국민을 바탕으로 한 넓은 시장, 그 시장을 통해 창출되는 자본에 기인한 막강한 군사력, 그리고 자본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외에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중국은 미국이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따라가려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중국은 미국이라는 선생님을 충실하게 따라 하는 훌륭한 제자와도 같다.
하나 일반적인 사승(師承) 관계에서와 달리, 세계 최강국의 자리는 선생이 제자에게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거나 물려줄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중국의 성장은 과거 냉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이언이 사견이라며 말했지만, 월리도,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참여하지 않은 수많은 미국의 지식인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정말 가능성 있는 이야기인가?”
바이든은 유진의 말대로 보조금 지급을 빌미로 통화 공급을 늘리고, 다시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중국에 얼마만 한 타격을 줄 수 있을지 확신을 얻고 싶어 했다.
“어떻게 전략을 짜느냐에 따라 다를 겁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중국은 여타의 국가들처럼 충분한 보조금 정책을 펼치지 않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원인이 자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목적이 큽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지난해 주요 경제 대국 중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국 정부가 잘해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내재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중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인플레이션에 취약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더군다나 부동산 문제라든지, 경기 둔화 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은 중국 경제의 터지지 않은 뇌관입니다. 중국의 놀라운 성장의 배경에는 GDP의 30%에 달하는 부동산 버블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방 정부가 엄청난 액수의 부채를 감추고도 지역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국가 소유의 땅을 부동산 개발사에 팔아넘기며 생긴 자금 때문이기도 하지요. 국민 소득의 30%에서 40% 정도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중국의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 엄청난 충격이 올 겁니다.”
아데예모와 브라이언이 바이든을 위해 중국의 취약한 부분을 알려 주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중국 경제 성장이 무섭기는 하지만, 공략할 여지는 충분하다는 거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너무 크기 때문에 중국의 경제를 무너트리는 것이 몰고 올 후폭풍도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중국을 공격한다면, 단순히 중국 경제를 망가트리는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현재의 수준, 혹은 그 미만으로 안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두 경제 전문가들은 잠깐 사이 나온 주제에 대해서도 금세 맥락을 파악하고, 대략적인 전략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맞는 말입니다. 중국 경제가 급격하게 망가지면, 세계는 20년 전으로 후퇴하고 말 겁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국가 주도의 경제 체제가 이어지도록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제대로 된 자본주의가 중국에 안착해야 합니다.”
“맞는 말이야. 지금 중국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반쪽짜리에 불과하지.”
“진정한 자본주의 경제가 확립되면 뉴욕의 금융가에서 훨씬 더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폐쇄적 정책들을 걷어 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국내에서는 자국 물건을 마음대로 팔아치우는 불공정이 시정되어야 하죠.”
“궁극적으로는 중국 은행에 의한 관치를 자본 시장으로 돌려야 합니다.”
바이든을 비롯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단순히 중국을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라, 중국 경제를 미국에 종속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를 자본주의 경제로 체질 변화시키고, 월가의 자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당분간은 보조금 공급을 늘려 통화를 팽창시켜 국내 성장을 견인하고, 코로나가 진정되기 시작하면 금리 인상을 통해 세계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넣어 그 와중에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제제재가 필요할 겁니다.”
“결과적으로 도널드의 행적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거로군.”
바이든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는 철저하게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지만, 길게 본다면 그런 방향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매듭을 짓는 거지요.”
세상일은 너무도 복잡해서, 반드시 모든 일에 의도와 결과가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다.
때로 어리석은 지도자의 행동이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현명한 지도자의 선한 의지가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겠지만, 여전히 미래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다.
“문제는 긴축에 들어설 때의 지지율입니다.”
월리가 아주 중요한 문제를 거론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논의되는 것은 한두 해 수준이 아니라 장기적 전략이 필요한 거대한 플랜이다.
그걸 완수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4년 뒤 다가올 선거에서의 승리가 필수적이다.
“그때 가서 혹시라도 도널드에게 백악관을 빼앗긴다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도널드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라면 중국과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대국 중국과 전쟁까지 벌이는 것 따위가 아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과 중국의 전면전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 것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어쩌면 지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상으로 끔찍한 파멸이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상식이 부족한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 개시를 외칠 수도 있고, 이는 곧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모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고도 남지.”
바이든이 이 화두를 던진 유진을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그인 만큼 해결 방안도 내놓아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음 선거에서 조를 적극 지지하겠습니다. 대단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저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꽤 되더군요.”
유진은 새로운 대통령이 원하는 대답을 선선히 내놓았다.
바이든이 그에게 조언을 청해 왔을 때, 그리고 그에 대해 중국 문제를 거론했을 때부터 이미 그런 대답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유진, 당신은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 왔소.”
바이든이 조금 서운한 듯 말했다. 만일 유진이 지금의 인기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바이든을 밀어주었다면 선거는 훨씬 더 쉬워졌을 것이다.
적어도 유진의 자선 재단에서 지원하는 프리밀을 받아 가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를 찍었을 테니까.
지금 미국에서 유진이 제공하는 공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은 적게 보아도 수천만 명에 달한다.
만일 유진이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지지했다면, 그래서 유진 덕분에 굶주림을 면한 사람 중 단 10%만 생각을 바꾸었다면, 선거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당신의 입장은 이해가 가오.”
서운함과는 별개로, 바이든이 지난 4년 동안 유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유진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충분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미국 내 미디어는 적어도 전체 미디어의 30% 이상이다.
또한, 코로나 불황의 와중에 적지 않은 언론사들이 유진의 적극적인 홍보비 지출과 출자로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런 미디어들이 선거 기간동안 공정하게, 혹은 짐짓 바이든을 편들어 준 것도 사실이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하지만 다음번에는 곤란하오. 이미 우리는 한배를 탄 사이요.”
같은 배.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중국의 팽창과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 자칫하면 다음 선거에서 불리할 수도 있는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가 이런 정책의 결정을 통해 유진이 다시 얼마나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넉넉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유진 같은 위치에서 백악관의 다음 4년 동안의 행보를 알고 있다는 것은 마치 게임의 공략집을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다.
수조 달러 규모의 자본으로 미 행정부의 정책에 한발 앞서 투자에 나선다면, 다른 경쟁자들과 상대도 되지 않는 성과를 올릴 것이다.
물론 백악관과 다른 경제 주체 사이에 이런 식의 협력 관계가 이루어진 것은 이날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또 이런 일이 비단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나라이든 정권의 최상위 지도자와 특정 경제인 사이에 밀약은 당연했다.
유진이 다른 밀약자들과 다른 것은, 그걸 확정적인 수익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자리의 누구도 유진이 설마 선의와 애국심만으로 그런 제안을 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단기간에 이뤄질 미국 내 폭발적 통화팽창과 그 뒤에 이어질 세계 경기의 불황 중에 유진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거머쥘 것이 틀림없다.
거기에는 중국 경제에 대한 영향력도 포함된다. 이 장대한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유진은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중국 경제, 그리고 나아가 세계 경제 전반에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강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물론이지요. 대통령 각하.”
유진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바이든도 기분 좋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