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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31화 (231/363)

231화 더 나은 재건 계획

“정부는 국민의 행복한 일상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5조 달러나, 10조 달러의 지출은 미국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규모의 지원으로 미국인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에 취임한 바이든이 처음으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정부 지출을 거론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새로운 대통령으로서의 립서비스라 생각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대체적으론 보조금의 규모를 줄이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생각해 오던 이상의 보조금이 풀릴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바이든은 단순히 말로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지출을 거론한 것은 아니다.

메시지를 발표하고 바로 다음 날부터 백악관의 참모들은 상하원의 의원들을 만나며 대통령의 새로운 지출 계획에 대해 찬성해 주기를 회유하고 다니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10조 달러라니,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이구려?”

“물론입니다. 조는 유머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일에 대해서만은 예외이지요.”

“보조금의 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솔직히 이번에는 너무 나간 것 같소. 10조 달러라니. 지난해 GDP의 절반이 넘는 규모의 재정을 어떻게 마련한다는 말이오?”

“물론 다양한 방법을 찾아봐야지요. 대기업들에 대한 증세도 생각해 봐야 하고요. 사실 지난 정권하에 시행한 감세 정책으로 대기업들이 적지 않은 이득을 본 것은 사실 아닙니까?”

참모진의 설득에도 의문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증세만으로는 어림없을 텐데? 그리고 이 정도의 돈이 풀리면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물론이지요. 우선은 국채를 발행하고, 이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회수해야 할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계획이 서 있습니다.”

“난리가 나겠군. 10조 달러의 달러를 풀어 버리면 언제고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겠어.”

미국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사실 군사력이나 거대한 시장 규모 외에도 기축통화의 발권국이라는 자체에 있을 것이다.

의원 정도의 위치라면 새로운 달러를 발행한다는 의미를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공화당은? 그쪽과 협상이 가능하겠소? 하원은 몰라도 상원 통과는 어려울 것 같은데?”

현재 미 하원은 민주당의 우세로 대통령의 요구가 채택될 가능성이 크지만, 상원의 경우는 정확히 50대 50으로 나뉘어 있다.

그 때문에 세출안 통과를 위해서는 민주당 의원 전부가 찬성한다 해도 공화당 쪽에서 적어도 한 명은 도와주어야 한다.

“이건 아직 비밀인데, 노먼 베일리가 이미 찬성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노먼? 그건 놀랄 일이로군.”

미국 중앙에 위치한 네브라스카 주의 상원의원인 노먼 베일리는 공화당 의원 중에서도 상당한 매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 정권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꽤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새 대통령의 의욕 가득한 정치적 노림수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다.

“내년에 네브라스카에 새로운 공장들과 몇몇 기업이 들어설 겁니다.”

“느닷없이?”

“뭐, 그런 조건이지요. 하하.”

“조가 그랬을 리는 없고, 자네의 옛 보스인가?”

“그건 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흐음…… 아무래도 유진이 뭔가 푸는 모양인데? 나도 조금 얻어 갈 수 있을까?”

“너무한 거 아니세요? 100명의 상원의원과 435명의 하원의원 전부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고요.”

상대의 푸념에도 의원은 물러서지 않고 재차 요구를 이어 갔다.

“하원은 그럴 필요 없지. 어차피 우리가 10석이나 이기고 있으니까. 상원도 공화당은 겨우 한 명만 넘어오면 되지 않나? 그러니까 결국 필요한 건 51명뿐이군. 자네의 옛 보스가 그 정도의 선심도 쓰기 어려울 리는 없을 텐데?”

“와우! 지금 대통령의 첫 번째 정책을 두고 거래를 하자는 건가요? 다른 사람도 아닌 민주당 상원의원께서?”

“약간의 부스러기면 되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주도 이번에 꽤 힘겹지 않은가?”

“워싱턴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지요. 여하튼 난 아무런 보장도 못 해 드립니다.”

“그래도 말은 해 볼 수 있지?”

“알았어요. 조에게 앨런 상원의원이 조건을 걸었다 전하죠.”

백악관 공보수석이 농담처럼 말했다.

그는 지난 오바마 행정부에서 커리어를 쌓고, 트럼프 시기에는 월리 아데예모와 함께 SF재단에서 일을 해 온 덕분에 워싱턴 정계에서는 SF 사단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SF 사단은 SF재단 출신으로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요직에 임명된 사람들을 말한다.

직접 SF재단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SF재단의 지원으로 연구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범 SF 사단이라는 범주로 묶어 일컫고 있었다.

현재 워싱턴 정계에서 SF 사단으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측근에 많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진과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도 그랬다.

유진은 지난해에만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풀었다. 이제 워싱턴 사람들은 유진이 마음만 먹으면 미국의 어떤 주에라도 엄청난 액수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액수라면 맥도날드의 점원을 내세운다 해도 하원의원이건 상원의원이건 충분히 당선시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워싱턴 정계는 사실 철저하게 돈에 의지해 돌아가는 곳이다.

정치인들의 활동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고, 결국 의원들도 자신에게 후원해 주는 기업, 단체, 혹은 개인 후원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누구보다 많은 돈을 풀어 내고 있는 유진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장점이다.

“이보게 제프리. 내가 지금 누굴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어쩌다 보니 상원의원이 오히려 부탁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알았어요. 노력은 해 보지요. 대신 이번 지출안에 쓸데없는 딴지는 걸지 않는 겁니다?”

“오케이! 딜!”

상원의원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공보수석은 일이 생각처럼 어렵지 않게 풀렸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보다, 정치계 내에서 전 보스의 영향력이 제 생각 이상이라는 사실에 내심 감탄했다.

그해 2월, 백악관은 ‘더 나은 재건계획’이라는 야심 찬 경제 정책을 발표했다.

코로나 긴급 법안인 ‘미국 구조 계획’, 일자리 창출 법안인 ‘미국 일자리 계획’, 그리고 육아와 노후 복지를 위한 ‘미국 가족 계획’.

이렇게 크게 세 가지 법안을 통해 모두 10조 달러에 이르는 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중산층을 부활시키겠다는 발표였다.

이중 ‘미국 구조 계획’은 모두 4조 달러 규모로 모든 미국 시민에게 2,000달러의 긴급 구호 자금을 지급하고, 코로나가 안정될 때까지 매주 350달러의 실업급여를 지급하며, 중소기업과 지방자치 단체에 거액의 보조금을 주겠다는 사상 초유의 지출안이다.

더불어 ‘미국 일자리 계획’은 3조 달러에 달하는 규모로 인프라를 정비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시해 오던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전기차 보조금 등으로 적어도 1,0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여기에 다시 3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가족 계획’을 통해 육아와 중산층 재건을 위한 사회 복지 지출 법안이 뒤를 이었다.

물론 백악관이 발표한 법안은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코로나로 황폐화된 시민들을 위한 거대한 규모의 보조금 지출에는 대체로 찬성을 하지만, 10조 달러는 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미국의 상원과 하원의 의원들은 각자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정신없이 계산에 들어갔다.

물론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쪽이었고, 공화당 의원들은 규모를 줄이지 않는다면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바이든으로서는 무척이나 다행스럽게도 하원은 민주당이 과반을 찬성하고 있어 통과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상원의 문턱을 넘어서기에는 난항이 보인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첫 번째 계획인 ‘미국 구조 계획’이 무사히 상하 양원을 통과했다.

놀랍게도 공화당 상원에서 무려 세 명이나 되는 찬성표가 나왔고, 하원에서도 10명 가까운 찬성이 나왔다.

“유진의 영향력이라 봐야겠지?”

상원의 투표 결과를 지켜보던 바이든이 물었다.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군요.”

재무부 부장관 월리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행이로군. 이제 겨우 첫발을 디딘 것이지만 말이야.”

“앞으로도 험난한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반응은 아주 좋습니다. 이미 시민들의 82%가 새로운 계획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지지자 중 71%가 지지한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바이든의 지출 계획은 공화당 지지자층에서조차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의 골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바이든이 도널드의 정책을 이어받았다며 흡족해하는 반응이다.

물론 사실은 각자가 2,000달러씩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컸을 것이다.

4인 가족이라면 한 번에 8,000달러라는 거금이 들어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매주 350달러의 실업급여는 화룡점정이었다.

“당분간은 정책을 힘 있게 몰아붙일 수 있습니다.”

10조 달러라는 거액을 사용하며 얻어 낸 것은 언제까지인지 기약하기는 어렵지만, 당분간은 무엇이건 할 수 있는 탄탄한 지지도였다.

하나 이런 자금 지출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바이든의 리더십은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한 정책을 충분히 준비해 두어야 한다.

“중국 쪽은 어떻게 되고 있나?”

“최대한 많은 카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301조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지정하는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슈퍼 301조는 미국과 교역하는 나라에는 악몽과도 같은 협박이고, 미국에 있어서는 핵무기 이상의 위력을 지닌 강력한 수단이다.

세계 1위의 소비 시장인 미국에 자국의 물건을 하나도 팔 수 없다는 것은 해당 국가의 경제를 파탄에 빠트릴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보복 조치이며, 더군다나 미국의 동맹국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의 제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힘을 갖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조처를 내리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나 가능하다.

“지난번 협의가 지켜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시작한 중국과의 무역 분쟁은 1년 전 중국 정부와의 협의로 우선 봉합된 상태이다.

해당 협상에서 중국 측은 더 많은 미국 제품을 수입하고 더 많은 미국 서비스를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코로나 사태로 협상의 이행은 어려워졌다.

“도널드의 덕을 볼 때도 있군.”

바이든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가 주도한 중국과의 분쟁 덕분에, 바이든은 부담 없이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에 나설 수 있었다.

협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중국 측이니, 미국은 다시 중국의 모든 수출품에 대해 거액의 관세를 붙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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