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부동산 버블
“물론 아직은 시기가 아닙니다. 이번 정책이 중국에 영향을 주기를 기다려야죠.”
10조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보조금을 내놓기로 한 것은 단순히 미국 내 경기 부양의 목적만이 아니다.
전 세계에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중국이 휘말려야 했다.
자칫하면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끔찍한 후유증에 직면할 수도 있는 위태로운 계획이다.
만일 계획대로 적절한 시기에 인플레이션을 잡아 내지 못한다면 미국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집어삼킬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공황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의 과실은 너무나도 달콤하다.
미국은 다시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고, 중국은 G2니 세계 패권이니 하는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본처럼 되면 좋은데…….”
미국의 지도자로서 볼 때 일본처럼 편안한 동맹국이 또 없다.
한때는 미국 GDP의 70% 수준까지 따라오며 다음 세대의 경제 맹주는 일본이라 자랑하다가, 프라자 합의 한 번으로 고분고분하게 자국의 경제를 미국에 종속시켜 버렸다.
“전쟁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합니다.”
“알고 있어. 그건 안 되지.”
일본이 미국에 그렇게까지 고분고분할 수 있는 데에는 패전국이라는 원죄가 가장 큰 몫을 한다.
중국의 경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렇게 종속적인 관계로 가기 어렵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적어도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이 되어서는 안 돼.”
“물론입니다. 그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이 될 겁니다.”
“군사 대결로 이어지는 길은 절대로 피해야 해.”
“실현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 중에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 가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경쟁을 이어 가며 갈등과 위기를 조장하는 세계는 백악관의 누구도 원치 않았다.
그러니 최대한 군사적 갈등을 제외하고, 다양한 압박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유진이 한 가지 경고를 해 왔습니다.”
“어떤 경고?”
“러시아를 주시해야 한다더군요.”
“러시아?”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와중에 뜻밖의 국가를 이야기하자, 바이든이 의문을 나타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긴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라고요.”
“그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 아니던가?”
“코로나 때문에 그쪽도 문제가 심각하니까, 외부로 눈길을 돌리기 위해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예상입니다.”
“그건…… 그렇군.”
확실히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었다.
“만일 인플레이션의 와중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모종의 사태라도 벌어지면 곤란할 겁니다.”
“흐음…….”
“물론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의 말이니 좀 더 염두에 둬야겠군. 그리고…….”
“러시아 문제도 이번 계획의 변수로 가정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월리를 통해 유진의 전언을 들은 바이든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만일 러시아가 문제를 일으키면 이 장대한 계획에 어떤 영향이 생길지 미리 파악해 놓아야 했다.
“빌어먹을 녀석들.”
새로운 대통령은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 대상은 러시아의 대통령일 수도 있고, 중국의 주석일 수도 있다. 아니면 거대한 똥을 남겨놓은 전임자일 수도 있고 말이다.
3월이 가기 전에 대통령의 계획 중 두 번째인 ‘미국 일자리 계획’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무려 7조 달러의 거액이 국내에 풀릴 예정이다.
이번 계획은 지난번의 보조금 지급과 달리 도로를 보수하고, 대중교통이나 철도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함과 동시에 신재생 에너지에 무게를 두어 적지 않은 기업들에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난 1년여 동안 상승세를 이어 오던 미국 기업들의 주가가 더욱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모두들 더 가격이 오를까 무서워 주식을 사들이기에 바빴다.
한편 이런 통화량의 증가는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잠시 주춤하던 부동산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 메인 타운의 부동산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슬슬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처분하고, 리츠 회사를 상장시켜 지분을 팔아 버리도록 하지.”
그리고 시장의 방향과 반대로, 유진은 보유하던 부동산의 처분에 나섰다.
이미 그는 여러 자회사를 통해 맨해튼에 적지 않은 상업용 빌딩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LA나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등지에도 적지 않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다양한 산하 기업들이 입주해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중이다.
아마도 현시점에서 미국내 가장 많은 상업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유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투자가 아니라 실사용 용도이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같은 부동산 개발업자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유진은 미국 내 수천 개의 기업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그중 발전성이 높은 기업들에 화끈한 지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렴하면서도 쾌적한 오피스의 지원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의 절정이 다가오면서, 유진은 그걸 팔아 자금을 마련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어차피 팔고 나도 그 자리를 그대로 임대해 사용하면 그만이고, 부동산의 절정이 지나고 나면 가격이 절반 이상으로 떨어질 테니 필요하다면 그때 다시 사들이면 된다.
“부동산 가격이 지금이 정점이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직은 더 있어야지. 앞으로 30%는 더 오를 것 같아.”
주식과 달리 부동산은 정점에서 보유 물량을 전부 털어 버리는 게 절대 쉽지 않았다.
특히 한 채에 십억 달러를 넘어서는 빌딩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부동산을 리츠 회사로 돌리고, 리츠 회사를 상장하거나 여러 묶음의 증서로 만들어 파는 일은 훨씬 더 쉽다. 그러니 지금쯤 엑시트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 부동산 열풍이 다시 거세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얼마나 가려나?”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바이든이 불러일으킨 인플레이션은 바다를 건너 중국에도 미치고 있었다.
이미 부동산 버블이 정권의 뇌관임을 인지하고 있던 중국 정부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막아서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부동산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지난 10여 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던 중국 인민들의 욕구를 완전하게 누를 수는 없었다.
중국의 중산층들은 하루마다 새롭게 최고가를 기록하는 아파트 가격에 너도나도 돈을 쥐고 뛰어들었고, 중국의 건설업체들도 정신없이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찍어 내며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중국의 부동산 거래는 보통 거래가의 30%를 지불하고, 나머지는 모기지로 3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갚아 나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이 과도하게 오른 상황에서는 30%의 선금조차도 일반적인 서민들에게는 부담되는 비용이다.
그 때문에 서민들은 정상적인 금융기관이 아닌, 사채까지 동원해 선금을 마련해 아파트 구매에 나서고 있었다.
오늘 산 아파트가 다음 달이면 20%, 30%까지 오르는 일이 생기고 있으니 사채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미 이 시점에서 북경이나 상하이 등지의 부동산은 아시아 다른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중국 남부의 경제 거점인 선전시의 아파트 가격이 서울이나 도쿄의 가격을 앞지른 지 오래였다.
선전시 전체 아파트 평균 가격은 한국 돈으로 환산해서 평당 5,000만 원에 달했고,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의 경우 평당 8억 원이 넘는 곳도 생겨났다.
100평짜리 아파트 한 채가 무려 800억 원에 팔린 것이다. 이미 뉴욕의 맨해튼에 근접하거나 추월한 수준이다. 중국의 임금 수준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부동산 버블이 주요 도시뿐 아니라 주변 도시로까지 번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북경,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 주요 도시의 위성 도시 부동산 가격도 서울에 육박할 정도로 버블이 심화되고 있었다.
“그럼 중국 쪽은 이번 하반기에 들어서며 정리를 시작하지.”
그리고 그런 부동산 버블에는 유진의 투자도 한몫했다.
직접 투자가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우회된 유진의 자금이 중국의 부동산에 직간접적으로 투자되어 있는 상태이다.
“중국 부동산 버블이 그때쯤 터질 거라 생각하시는 거로군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 사실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잖아?”
“그렇기는 해요. 다른 나라들도 최근 부동산이 급격하게 오르기는 했지만, 중국만큼은 아니니까요.”
중국의 중산층이 부동산에 눈을 뜨고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한 번도 버블이 터지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런 탓에 최근 부동산의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더욱 탐욕스럽게 투자를 이어 가고 있었다.
부동산을 거주 목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보다 투자, 혹은 투기 목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다양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었다.
가방에 돈을 가득 담아 부동산 개발사로 찾아가 한 번에 수십 개의 아파트를 사 버리거나, 아파트 보유자들끼리 일정 가격 미만으로 절대 내놓지 말자고 담합을 하는 등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 부동산을 구매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동산을 통해 손쉽게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러움과 함께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갔다.
일당 독재 체제라고는 하지만 15억에 달하는 인민들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공산당으로서는 그러한 불만을 누르기 위해 다양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은 2선 도시에 더 많은 아파트를 공급해, 부동산 구매욕을 해소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이 또한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할 뿐이다.
“버블이 터지면…… 끔찍할 겁니다.”
이미 2008년 미국에서 벌어진 모기지 사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요안나는 앞으로 다가올 참상이 눈에 보이는 듯 말했다.
“끔찍하겠지. 브레이크 없는 욕망은 파멸을 부를 뿐이니까.”
“어디든 마찬가지이지요. 욕망 앞에서 자제심을 갖기 어려운 것은 말이에요.”
매일같이 최고가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어디가 정점인지 모른 채로 청산을 하려는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가격이 오를 때면 모두가 내일의 가격을 꿈꾼다.
그렇게 내일, 또 내일을 기약하다가 마침내 버블은 터져 버리고, 가격을 아무리 낮추어도 아무도 사지 않는 악몽의 순간이 다가온다.
“올 하반기에 들어서기 전에 중국 측 부동산은 전부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들어간 다른 투자도 적당한 수준에서 정리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가고 있다. 유진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스톱워치가 멈추는 순간 전 세계의 경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충격을 맞이할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책임이 유진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일들이고, 유진은 그저 그러한 흐름에 약간의 증폭제를 섞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