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동북아의 삼각지대
중국 정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부동산 버블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부동산에 자금이 몰리는 것을 막으려 노력해 왔다.
부동산 버블이 터졌을 때의 치명적 결과를 생각한다면 방비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하나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5억 인민들의 일확천금에 대한 욕망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실 어느 나라이건 부동산 버블에 대해서는 당국의 대책이 늘 있어 왔다.
그리고 국민들은 항상 그러한 대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산 열기에 올라타 결국 버블이 터지고 나서야 눈물을 보이고는 한다.
어느 나라이든 예외는 없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버블이 그러했고,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불러온 미국이 그러했다.
중국이라고 크게 다를 수는 없다. 정부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버블을 막는 방법은 그게 터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현실에는 수많은 중국 내 권력자들의 욕심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은행에서의 대출이 필수적이고, 중앙정부 및 각 지방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은행에서 손쉽게 대출을 받아 상승이 확정적인 부동산에 누구보다 빠르게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현재 중국 부동산의 가치는 실제 이상으로 고평가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이 정점인지는 모르겠군요.”
장시웨이는 중국의 부동산에 거품이 끼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지금부터 손을 떼야 한다는 말에는 부정적이었다.
“물론이지요. 아직 정점에 다다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거품이 붕괴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맞습니다. 언젠가 터지기는 할 겁니다. 우리 쪽에서는 적어도 2년은 갈 거로 보고 있고요.”
중국 내부의 경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곳은 역시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정부 부처들일 것이다.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중국이니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국가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정점에서, 버블이 터지기 직전에 청산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청화대 출신의 똑똑한 인재들이 사태를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계산대로라면 충분한 이득을 내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현시점에서 아시아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역시 중국의 청화 대학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현 중국 지도자의 출신 학교이기도 했기에, 청화대 출신 인사들이 현 내각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15억 인구 중 천재 소리를 듣는 엘리트들만 모여 있는 청화 대학 출신 연구원들이 국가 경제 부처의 데이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라면 유진도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리고 장시웨이는 유진의 권유보다는 자국 연구원들의 보고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있는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진은 처음부터 장시웨이가 자신의 권유를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버블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욕심 많은 사람들이라면 정점에서의 엑시트를 꿈꾸지, 절대 어깨에서 빠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투자하고 있는 양이 꽤 되시지요?”
“아마도 1조 위안 수준은 될 겁니다.”
“흠…… 그 정도 물량이 시장에 풀리면 조금 곤란한데…….”
유진이 직간접적으로 투자하는 액수가 너무 크다 보니, 그걸 청산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당연하다. 어쩌면 오히려 부동산 버블 붕괴를 가속할 수 있었다.
유진이 중국 부동산에서 발을 빼는 시점을 장시웨이와 논의하려는 것 역시 그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사업을 하다 먼저 빠져나와 거품의 붕괴를 일으키면 상대의 미움을 사기 마련이니, 충분한 기간을 두고 알려 주고, 적당한 수준의 협의가 필요하다.
“차라리 우리 쪽에서 인수하기로 하지요.”
장시웨이가 역으로 제안을 해 왔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량이 적지 않은데?”
“괜찮습니다. 아직은 더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군요.”
장시웨이는 벌써 손을 털어 버리려는 유진이 오히려 납득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버블이 터지기 직전에 청산하면 지금보다 수십 %의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장시웨이의 계산은 그리 틀리지 않다.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에서 버블의 생명을 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국가이기 때문이다.
언제 버블이 터질지, 혹은 생명을 연장할지를 결정짓는 주체가 시장이 아니라 정부라는 것이다.
적어도 장시웨이와 그에게 돈을 맡겨 놓은 상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더군다나 최악의 경우 정권 최상위층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국영기업이나 페이퍼 컴퍼니 등에 비싼 가격으로 떠넘겨 청산시키는 방법 따위로 손실을 무마할 수도 있다.
장시웨이는 결국 어떠한 경우에도 손해를 보지 않을 방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유진이 털어 내려는 부동산을 자신들이 인수하고, 그 와중에 추가 수익을 얻으려는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계산을 맞춰 보도록 하지요.”
“실무진에게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유진도 장시웨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유진은 큰 부담 없이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었고, 장시웨이는 유진에게 넘겨받은 부동산으로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참. 최근에 러시아 쪽에 투자를 결정하셨다고 하더군요.”
거래가 끝나자 장시웨이가 지나가는 듯 물어 왔다.
“석유나 가스 같은 자원 개발에는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요? 대체 에너지 쪽에 훨씬 더 관심이 많지 않으셨나요?”
단순히 근황을 묻는다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표정이다.
“원유나 가스, 그리고 식량 같은 주요 자원들은 아마 100년이 지난 뒤에도 인류의 생명줄이 될 겁니다. 솔직히 대체 에너지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요. 언제고 핵융합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에는 원유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 수는 없지요.”
“맞는 말입니다. 원유가 가장 큰 문제에요.”
“식량도 마찬가지지요. 기후 문제로 앞으로 식량이 가지는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겁니다.”
“중국 인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장시웨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을 떠나왔다고는 해도 한국의 경제나 미래에 대해 완전히 관심을 버릴 수는 없더군요.”
“솔직히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미국에도 수많은 중국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 중 누구 한 명이라도 고국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진의 고국에 대한 애정은 정말로 공감이 가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극동 시베리아에 더 많은 농지를 개척하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식량 생산이 필요해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 쪽에서도 시베리아의 농지에는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어쩐지 장시웨이가 말을 꺼낸 진짜 이유가 그 때문인 듯했다.
“솔직히 시베리아의 개발을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인민이 국경을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 측 인사가 들었다면 기겁할 소리이다. 이미 동부 시베리아에는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넘어와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해 놓고,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인적 자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 정부로서는 중국인들이 시베리아를 점령하는 것은 절대로 원하지 않는 일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지역의 노동력을 수입해 오기에는 여러 가지 난관이 많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시베리아는 극한의 추위가 가장 큰 문제이고,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하는 곳은 대부분 열대 지방이다.
그 때문에 동남아 노동자를 끌어들여 시베리아를 개척하려 해도 쉽지가 않다.
결국은 충분한 노동력을 보유한 중국과 협력하는 방법뿐인데, 그 결과가 시베리아의 중국화로 결말지어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가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새롭게 건설되는 농장에 중국 인민들이 공헌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군요.”
장시웨이는 유진이 러시아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힘을 행사해서 중국 노동자의 시베리아 진출에 도움을 주길 원했다.
“동북부 인민들은 남부에 비해 경제력이 낮아, 더 낮은 임금으로 힘든 일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춥고 거친 환경에 익숙해서 시베리아에서 일하는 것에도 불만 없습니다.”
장시웨이의 제안은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또한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다.
“저로서도 상당히 좋은 방법 같군요. 어떤 의미에선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기조를 뿌리내릴 큰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요.”
한국의 자본으로 러시아의 영토에서 중국의 노동력이 드넓은 식량 자원을 개척한다는 것은 잘만 되면 한국, 러시아, 중국 3개국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엔 넘어야 할 아주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우선 러시아 측에서 비자를 내줘야 하죠.”
그보다는 중국의 노동자들이 시베리아에 영구적인 세력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장시웨이는 알면서도 거론하지 않는다.
“아마도 러시아 정부에서는 중국 인민들이 농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거주의 제한이라…… 아마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 측 관리직원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고요.”
“물론이지요.”
처음부터 작정하고 날아온 모양인지, 장시웨이는 유진이 꺼내 놓는 말들에 즉각 즉각 대답했다.
“그 외에도 아마 러시아 측에서 요구하는 조건들이 더 있을 겁니다.”
“어지간한 문제라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장시웨이의 위쪽에서도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에 거대한 농장을 개척한다면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이고, 그걸 제대로 공급할 만한 곳은 중국뿐이다.
그렇게 되면 한 번 자리 잡은 중국인들 때문에라도 시베리아는 중국의 영향권 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게 중국 정부에서 궁극적으로 노리는 목표이다.
한때는 중국의 땅이었던 연해주, 그리고 시베리아에 중국의 가장 큰 자원인 중국인을 유입시켜, 결과적으로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려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 정부의 숙원이었다.
지금까지는 중러 관계 때문에 쉽사리 개발에 진척이 없었지만, 유진이라는 중간자의 등장으로 그동안의 숙원을 풀 수 있게 되었다.
“만일 노동자들이 농장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프로젝트 자체에 아주 큰 문제가 생기게 될 겁니다. 우리 쪽으로서도 꽤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유진은 그 사이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