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대담한 프로젝트
“농장일을 한다고 들어가서는 얼마 안 있어 농장을 이탈해 다른 일을 찾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곤란합니다. 사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렇게 생긴 불법체류자 때문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만일 러시아에서도 이런 경우가 생기면, 무엇보다 내가 추진하는 다양한 사업에 부담이 될 겁니다.”
유진은 거듭 노동자들의 단속에 대해 강조했다. 처음부터 중국 노동자들을 고용할 생각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명백하게 해 놓지 않으면 곤란했다.
물론 지금의 약속이 실제 상황이 되어서는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모종의 이유로 노동자들은 결국 농장을 벗어나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가 세력을 형성하고야 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이탈하는 걸 막는 일 자체가 아니라, 그럴 경우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만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농장을 이탈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의 집행을 통해 통제하겠습니다.”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 장시웨이는 위쪽에서 상당한 권한을 위임받아 온 것이 틀림없다.
그만큼 이 사업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러시아 진출에 대해 여기저기 알려 놓은 보람이 있다.
“임금도 중국 동북부 최저 임금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중국의 최저임금은 도시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고, 동북부의 최저임금은 개중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정말로 해외에 진출하려는 노동자가 있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좋습니다. 앞으로 논의해야 할 조건들이 꽤 많겠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중국 측과도 시베리아 농장, 유전 진출에 대한 인력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유진의 신사업에 대해 한국 언론에서 대대적인 보도에 나섰다.
[한국 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삼영상사는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 연해주 연역에 초대형 농장을 건설하는 개발 산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들의 연해주 진출은 이미 10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16개 기업이 연해주에 진출, 모두 6만 헥타르에 달하는 농지를 확보하고 밀과 콩 등의 작물을 재배해 한국과 중국 등지로 수출하여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번 삼영상사의 연해주 농장은 열 곳에 달하는 지역에 모두 20만 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농지를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서울시의 세 배 크기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한국석유공사에서 연해주의 유전 개발 사업에 진출한다는 소식 또한 전해졌다.
유전 개발에 성공할 경우,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원유를 수입할 수 있어 경제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명진상사는 블라디보스토크 동쪽 슬라뱐카 시에 곡물 수송 화물선이 선적할 수 있는 대형 항구 건설 사업에 나설 계획이라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는 곡물 선적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상업 터미널이 부족하기에 지금까지 곡물 선적을 인력으로 해야 했다.
슬라뱐카 시에 새로운 터미널이 완공되면 연해주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의 곡물 수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진상사의 농장과 한국석유공사의 원유 시추 사업, 그리고 슬라뱐카 시에 건설될 항구 등 이번 사업에는 모두 15조 원에 달하는 투자가 수반될 예정이며, 모든 투자금은 SS파트너스가 조달하기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에 3,000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해 온 SS파트너스는 이로써 다양한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프로젝트에도 투자를 이어갈 것을 천명했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강유진 회장의 한국 내 투자 기업인 SS파트너스는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거액의 자본을 조달해 왔으며, 코로나로 인해 야기된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한국 경제가 큰 위험을 겪지 않고 안정된 성장을 이어가는 데에 높은 기여를 해 왔다.
또한, 이번 투자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한국 사이의 경제 협력을 이루어 내 동아시아 긴장 완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이제 특별한 요청이 없어도 유진과 관련된 기사에는 늘 유진에 대한 찬사를 넣고는 한다.
사실 한국의 언론들은 늘 그래 왔었다. 권력자에 대해 알아서 용비어천가를 쓰고, 거대 재벌그룹 사주 일가에 대해서는 찬양 일색의 기사를 올려 주는 습관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재자나 대기업에 대해 비판의 논조를 보인 기자들은 모두 해고되거나 구속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제 언론사들은 누구에게 허리를 숙여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5조 원이라니, 정말 엄청난 액수군요.”
김환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쪽에서 책정한 액수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데, 언론사들이 서로 뻥튀기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군요.”
“뭐. 상관없는 일이지.”
사실 농장과 항구 건설, 그리고 원유 시추 등에 예상되는 총비용은 10조 원에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유진은 그 예상 비용 가운데서도 겨우 10%조차 사용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듯이 한, 중, 러의 경제 협력이나 동아시아의 긴장 완화 따위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 가까운 곳에 대형 농장들을 건설해 중국 노동자들을 다수 러시아로 입국시키고, 동시에 국경에 가까운 곳에서 대량의 원유를 찾아내는 것으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긴장을 높일 생각이다.
물론 단순히 적당한 수준의 유전이 발견되는 것에서 그친다면 유진이 러시아와 중국 측에 말한 대로 한중러 삼국 경제에 적당한 도움이 되고,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유진이 노리고 있는 유전의 규모가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에 있다.
1,000억 배럴에 달하는 추정 매장량은 무려 사우디아라비아 전체 매장량의 4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만성적인 에너지 수급에 허덕여 오던 중국으로서는 눈이 돌아갈 만큼 탐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 것이다.
지난 삶에서 중국은 이 유전을 노리고 기어이 러시아의 국경을 넘고야 말았다.
전 세계를 미증유의 위기로 몰아넣은 중러 유전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원래라면 중국의 자본이 투자된 싱가폴 국적의 석유 개발 회사에서 앞으로 5년 뒤쯤 발견하게 될 유전이고, 유전의 규모를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곳은 러시아가 아닌 중국 정부였다.
정보를 입수한 중국 정부는 석유 개발 회사에 유전 규모에 대해 함구할 것을 명령하고, 이 유전을 탐내 차근차근 집어삼킬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자국 노동자들을 러시아에 보내 세력을 형성하게 했는데, 노동자라고는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대개가 중국 인민군 출신으로 처음부터 소요를 일으킬 목적으로 투입된 이들이었다.
일정 규모를 넘어선 중국 노동자들은 유전에서 조금 떨어진 중소 도시에서 소란을 일으켰고, 당연하게도 러시아 측에서 무력으로 진압에 나서며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에 중국 정부는 자국민의 사망을 핑계로 국경 너머로 인민군을 투입하고, 그렇게 긴장이 격화되며 국경 분쟁이 시작되어 전쟁이 시작된다.
중국은 분쟁의 원인이 원유 매장량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오랜 시간 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비밀이란 오래가기 힘든 법,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에서도 매장량의 규모에 대해 파악하고 만다.
그리고 당연히 중국이 국경 분쟁을 일으킨 원인이 유전 때문임을 알아차렸고, 러시아는 중국인 노동자들과 싱가폴 시추 회사 임원들을 국가 반역 행위로 구속하고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러자 중국은 다시 러시아의 행위를 비난하며 이때다 싶게 더 많은 군사력을 투입한다.
이후 지난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로 가장 참혹한 전투가 중러 국경에서 벌어진다.
수많은 젊은 피들이 죽어 나갔지만, 중국도 러시아도 결사 항전을 부르짖으며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새로 발견된 유전의 가치는 천문학적이고, 중국으로서는 연해주 일부를 획득하는 것으로 숙원인 동해로의 진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세계 경제가 얼어붙어 버렸다.
이 전쟁으로 최소 수십 조 달러 이상의 경제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분석이 아직도 유진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진이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일이 진행될 것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은 유진으로서도 막을 수도, 막을 생각도 없다.
국경 바로 옆에, 그것도 원래는 자국의 영토였다고 생각하는 곳에 대규모의 유전이 나타나면 그걸 탐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언제 발견되어도 중국으로서는 그걸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시점의 문제이다. 5년 뒤는 너무 늦다.
유진으로서는 가능하다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문제가 발생하기를 원했다.
러시아가 아직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진행하고 있을 때, 그리고 중국이 충분한 전력을 모으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편이 유진에게 유리하다.
유전을 둘러싼 전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는 만신창이가 될 것이고, 유진은 훨씬 더 수월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유진이 오직 혼자만이 알고 있는 전쟁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사이, 세계의 경제는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10조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 지출 계획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상하 양원을 통과했다.
물론 백악관 관련 인사들이 쉬지도 못하고 뛰어다닌 결과이기도 하지만, 유진이 공화당의 몇몇 정치인을 포섭하는 것으로 이미 승부는 갈려 있었다.
미국 GDP의 절반에 달하는 10조 달러의 보조금이 풀리며 미국 경제에 통화량을 마구 뿌려 대니, 당연하게도 주가와 부동산이 미칠 듯한 기세로 오르고 있다.
뉴욕과 LA 등 주요 도시의 집세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식당을 비롯한 생활 물가도 따라 올라간다.
하지만 아직 미국 시민들은 지속적인 보조금 덕분에 큰 어려움은 겪지 않고 있다.
사실 일부 실업자들은 실업급여와 보조금으로 일하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있을 정도였다.
한편 코로나 봉쇄로 고통을 겪어오던 자영업자들도 사업체당 10만 달러, 한국 돈으로 1억 원이 넘는 보조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유진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투자한 모든 분야에서 미칠듯한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슬라 주가 총액이 1조 8천억 달러를 넘어섰어요.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요안나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동안 부지런히 테슬라 주식을 매집해 온 결과, 유진은 테슬라 한 종목만으로 대략 6천억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수익을 올렸다.
더군다나 애플은 이미 2조 달러를 넘어 3조 달러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미국의 주요 IT 기업에 대한 투자만으로 유진은 이미 나라 몇 개쯤은 사고도 남을 금액을 벌어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