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39화 (239/363)

239화 전쟁의 기미

존 브레넌이 급히 전할 말이 있다며 워싱턴 동쪽에 정박하고 있는 유진의 요트로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왔다.

평소와 다르게 상당히 굳어 있는 얼굴은 그가 가진 정보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러시아군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다고 하더군요.”

생각했던 대로 존 브레넌은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저도 소식은 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했었죠?”

“아무래도 전쟁이 터질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단순한 위력 시위로 그칠 가능성은 없습니까?”

“랭글리 쪽 분석으로는 이미 결정이 난 모양입니다.”

존 브레넌은 여전히 CIA와 긴밀한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는 단순히 떠도는 이야기나 여기저기 알려진 이야기 정도라면 굳이 찾아와 보고할 이유는 없었다.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금융 투자자인 유진에게 전쟁의 시발을 남들보다 빠르게 입수할 수 있다는 것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일 유진이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터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오늘의 정보만으로도 존 브레넌의 연봉은 물론이고, 그가 이끌고 있는 정보기관 ABC의 1년 예산 혹은 그 이상의 값어치는 충분히 해냈다 볼 수 있다.

“빠르면 연말, 늦어도 봄에는 우크라이나로 들어갈 모양새입니다.”

“걱정이네요. 많은 사람이 다치겠군요.”

“우크라이나의 전력으로는 러시아의 침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빠른 시일 내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하리라는 예측입니다.”

아직 세상은 진정한 러시아군의 위력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냉전 시대 소련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양대 초강국의 지위를 수십 년 동안이나 지키고 있었지만, 실제로 소련이 제대로 된 적성국과의 전투를 펼쳐 승리한 적은 거의 없다.

위대한 붉은 군대는 오직 자국인과 위성국들의 가련한 인민들을 핍박하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물며 냉전 이후 망가질 대로 망가져 비리투성이가 되어 버린 작금의 러시아군은 그 위상에 걸맞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볼 수 없다.

“전쟁이 빠르게 끝난다면 희생자가 적겠군요.”

물론 유진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전쟁의 향방은 결국 미국의 지원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러시아가 더 이상 서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니까요. 아마도 직접적 지원은 삼갈 테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은 넘치게 할 것 같습니다.”

“복잡하군요. 결국엔 전쟁이 길어지고, 수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말겠어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최선일 텐데요.”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 보입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 강력한 것 같습니다.”

“역시 건강 문제겠죠?”

“네. 더 늦기 전에 확실한 성과를 올리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벌어진 전쟁의 원인에는 무척 다양한 요인이 결합되어 작용했겠지만,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에게 과거 소련의 영광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인기를 끌어 20여 년 동안 정권을 잡고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과거 동유럽 전역을 위성국으로 삼고, 아시아의 절반을 차지하던 거대한 제국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 때문에 제대로 결단을 내릴 수 없게 되기 전에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속되는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떨어지고 있는 지지도를 반등시킬 기회로 삼으려는 정치적 목적도 갖고 있다.

언제나처럼 한 사람의 야망으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 끔찍한 일이 다시 한번 벌어지려 하고 있다.

물론 유진은 이 전쟁을 막을 능력도, 막을 의지도 없다.

때로 벌어져야 할 일은 벌어져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의 추이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

뒤늦게 뉴욕에서 날아온 요안나에게 브레넌에게 들은 정보를 전해 주며 당장 취해야 할 조처를 지시했다.

“역시 전쟁과 오일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지요.”

“그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어.”

“그런가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유럽이나 미국으로서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거야. 그렇다고 해서 미국과 러시아가 물리적 충돌을 일으킬 수는 없고, 결국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지. 당장 러시아의 해외 자산을 정지시킬 가능성이 있어. 러시아의 대외 수출이 멈추게 되겠지.”

“아! 그렇군요.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의 수출이 경제의 주축이니 그것으로 큰 타격을 받겠군요. 확실히 미국이 취할 방법으로 가장 유력하네요.”

요안나가 작은 탄성을 흘렸다.

“유럽이 문제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석유와 가스가 아니라면 산업이 돌아가기 어렵고, 당장 난방도 힘들어지니까.”

“그렇게 되면 에너지 수급처를 러시아에서 중동으로 바꿀 수밖에 없겠군요. 사우디가 어떻게 나오는지가 문제네요.”

“사우디로서도 유가가 오르는 게 좋을 테지.”

“미국 정부에서 그냥 두고 볼까요? 그렇지 않아도 세계 각국이 너무 많은 보조금을 풀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유가까지 급등한다면 인플레이션이 더욱 가속화될 거예요.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인기에도 직결되는 문제인데요.”

확실히 우려할 만한 요소였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정부에서 딱히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유가 급등이 미국 경제에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미국보다 훨씬 더 고통받게 될 나라가 있으니까.”

“아! 중국이로군요.”

“맞아. 유가가 오르면 중국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중국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민들의 결속과 인플레이션 두 가지이다.

중국 공산당의 최대 위기라 할 수 있는 천안문 사태의 근본적 원인도 인플레이션과 취업난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중국 정부는 중국 국민들이 결집할 수 있는 SNS 등에 대한 통제에 심혈을 기울여 왔고, 인플레이션 억제에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만일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 돌아서고 지금까지 풀린 통화와 유가로 인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중국으로서는 뼈아픈 시련을 맞이하게 되겠군요.”

요안나는 유진의 도움이 없었어도 스스로의 힘만으로 세계적인 투자기관을 이룩할 정도의 뛰어난 분석력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유진이 꺼내 놓은 몇 가지 힌트만으로 그녀는 이미 앞으로 발생할 일들에 대해 그다지 틀리지 않는 예측을 도출해 냈다.

“사우디로서도 굳이 유가를 낮춰야 할 이유는 없을 거야. 무하마드 왕세자는 이미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내놓았고,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상태이니 특히 좋아라 하겠지.”

“확실히 그렇군요. 미국에서 압력을 넣는다고 해도 들어줄 리 만무하겠어요. 그렇다면 전쟁이 발생하면 유가 상승이 뒤따르는 것은 틀림없네요. 얼마까지 가느냐가 문제로군요.”

“적어도 50%, 많으면 두 배까지 예상해야지.”

“인플레이션에 상당한 영향이 오겠군요.”

한 가지 정보는 다시 다른 여건에 맞물려 수많은 예측을 가능하게 만든다.

“루블화에도 문제가 생기겠어요.”

당연한 일이겠지만, 러시아에 대한 세계적 제제가 들어가면 루블화의 폭락은 예견된 수순이다.

세계 통화 시장은 유가 증권이나 채권 시장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시장이다.

환율의 변동과 관련해 하루나 이틀, 혹은 겨우 한두 시간 먼저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요안나라면 이것 하나만으로 수십억 달러 이상의 가외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다.

“러시아 국채도 그렇고…….”

“지금은 팔고, 국채가 떨어지면 구매하는 것으로 하지.”

“지난번처럼 모라토리움 선언이나 디폴트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시는군요?”

“준비 과정이 길어. 그쪽에서도 이런저런 계산을 끝내고 시작하는 걸 테지. 디폴트라도 생긴다면 상황이 상당히 고약해진다는 걸 모를 수 없어.”

러시아 국채는 한때 세계 금융 시장에 엄청난 폭탄을 터트린 적이 있다.

당시엔 세계적인 펀드인 롱텀캐피탈을 빈사로 만들고 월가를 뒤흔들 정도였지만, 지금의 러시아라면 다양한 상황을 상정해 두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루블화의 가치도 다시 계측해 봐야겠군요.”

“물론이지. 러시아가 생산하는 원유와 가스의 양, 그리고 그걸 공급받는 유럽의 상황, 러시아가 경제 제재를 받아 달러 결제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해.”

단순히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만으로는 루블화의 하락 정도만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 실제 세계에서는 아주 다양한 조건들이 서로 상호 반응을 통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번에도 러시아의 루블화는 한때 폭락에 가깝게 떨어지지만, 러시아 정부가 자국이 공급하는 원유와 가스에 대한 지불을 루블화로 받겠다 나오며 제자리를 찾아갈 것을 아직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관련 기업들을 정리해 봐야겠어요.”

전쟁이 발발하면 득을 보는 기업과 손해를 입는 기업이 생기기 마련이다.

당장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기업뿐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나라에서도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다.

석유나 가스 등 에너지 관련 기업, 곡물 가격에 관련되어서는 각국의 식품 기업, 그리고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해당 분야의 기업들에 어떠한 영향이 오게 될지에 대해 사내의 애널리스트들과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분석 평가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전쟁 발발 전 각 기업의 주식을 미리 사거나, 혹은 공매도하는 등의 방법으로 다시 커다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존 브레넌이 전해준 정보 하나로 아주 많은 사람에게 할 일이 잔뜩 생겨났다.

“그리고 식량 문제도 신경을 써야 할 거야.”

“흠……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휩싸인다면 곡물 가격에 큰 영향이 오겠군요.”

“가능하다면 곡물 선물을 최대한 모아 두지.”

물론 곡물 선물에 대한 투자는 결코 수익성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

유진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한 곡물 가격의 상승은 많은 나라로 하여금 자국의 식량에 대한 수출을 금하는 조처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것은 식량도 부족하고 돈도 없는 제삼세계 국가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리 확보해 놓은 식량을 제삼세계 여러 나라에 공여하는 것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유진의 선의를 알릴 기회가 될 것이다.

“괜히 불똥을 맞고 고생할 나라들이 한둘이 아닐 거야. 그때를 대비해 지원 방안도 고민해 봐야겠어.”

아시아의 몇몇 나라들과 아프리카 상당수 국가의 국민들이 저 멀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으로 굶주리게 되는 일은 최대한 막아 볼 생각이었다.

요안나와 유진은 앞으로 1년 동안 벌어질 일들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았다.

언제나처럼 유진은 다시 남들에 한발 앞서 중요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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