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고통의 터널
“지난 1년 동안 총자산이 80%가 늘었어요.”
2021년을 마감하는 결산의 자리에서 요안나는 뿌듯하게 실적을 보고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기 부양 덕분에 주식 시장은 1년 전보다 60% 이상 상승했다.
특히 글로벌 1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들의 주가 상승이 두드러졌고, 덕분에 주식에 투자한 많은 미국인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공격적 투자를 위주로 하는 헤지펀드나 투자은행들은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300%나 400%가량 성장한 곳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유진의 경우는 규모가 너무 큰 탓에 오히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리지 못한 셈이다.
만일 소규모의 자본이었다면, 이런 호황장에서 1,000%의 수익률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제법 정리가 끝나 가고 있어요. 주식 대부분은 현금이나 채권으로 옮겼어요.”
요안나가 이끄는 자산 관리사는 이미 하반기로 들어서며 그간의 투자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7월 이후로도 주가는 30% 이상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유진의 자산은 차분하게 주식에서 현금으로 전환되어 왔다.
평상시였다면 그렇게 많은 주식을 처분하는 것은 주가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많은 돈이 시중에 풀렸고, 또 주가의 활황을 놓치지 않으려는 세력의 힘이 충분하게 컸기 때문에 예정했던 대로 보유 주식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의 주요 기업들 지분은 10%, 그리고 의약업과 헬스케어 관련 기업들의 지분은 15%를 유지하고 있어요.”
보유 주식을 털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최소한도의 지분은 보유하고 있기로 했다.
글로벌 100대 기업에 대한 지분은 곧 그만큼의 영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시하신 대로 의약업과 헬스케어 관련 기업들의 지분은 기존의 지분을 유지하고 있어요. 정유 기업들은 지분을 늘리고 있고요.”
코로나로 인한 주식 시장의 상승세가 꺾인 뒤에도 의약업 분야와 석유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오히려 더욱 치고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유진이 정유 업체의 지분을 늘리는 것은 수익 때문만은 아니다.
서방의 석유 메이저로는 엑슨모빌, 로열 더치 쉘, BP, 쉐브론, 토탈에너지스, 코노코필립스, 에니 등이 꼽힌다.
한때 세계 경제를 좌우하던 이들 메이저 정유 업계의 주가는 지금은 한참 떨어져, 일곱 곳 모두를 합해도 메이저 IT기업 한 곳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러나 유진에게 중요한 것은 주식 매매로 얻어지는 수익이 아니다.
슈퍼 메이저 석유 업체의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으로 석유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유진은 이들 메이저 정유 업계의 지분을 절반 이상 획득할 계획이다.
겨우 몇천억 달러, 레버리지를 사용한다면 천억 달러 정도로 석유 메이저 전체의 수장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손에 쥘 수 있으니 지금에 와서 굳이 지분을 청산할 필요는 없었다.
“이해 최고의 종목은 역시 테슬라였네요. 테슬라 주식 매도만으로 7,000억 달러의 수익을 거뒀어요.”
테슬라 주식은 보유하고 있던 전부를 처분해 버렸다. 여전히 테슬라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기에 주식을 전부 털고 나서도 주가는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하락세가 두드러질 몇몇 기업들은 지분 대부분을 처분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경우는 여전히 가치가 있기에 최대 주주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이제 버블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처분했어도, 고액의 연봉을 받는 엘리트 트레이더들은 여전히 주식을 사고팔며 수익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아직 외부에는 발표하지 않은 비밀 병기, 블랙볼트 사의 인공지능 또한 부지런히 수익을 올리고 있다.
“다음 달부터는 하락장에 베팅이지요?”
“그래. 이제 다들 버블이 꺼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터질 건 터져 줘야지.”
“하락장은 얼마나 갈까요?”
“앞으로 1년 이상. 어쩌면 2년이나 그보다 길 수도 있지.”
“모두에게 어려운 시기가 오겠군요.”
물론 유진에게는 아니다. 지난 100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천재들은 하락장에서도 충분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주 다양한 기법들을 고안해 내었다.
심지어 대폭락의 시기에도 앞날을 예측하고 놀랄 만한 성과를 내 온 투자자들의 전설이 남아 있다.
금융계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의 트레이더나 애널리스트들조차 생소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능한 직원들이 다시 이 하락장에서 유진의 지시에 따라 수익을 올려 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뉴욕으로 돌아와 다시 바쁜 일상을 시작한 유진에게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다.
국가경제위원회의 브라이언 디즈 위원장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용건을 꺼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가는 거로군요.”
이미 이 시점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갈등이 몰고 올 참혹한 전쟁은 진위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라는 사실을 대부분 주지하고 있었다.
브라이언이 꺼내 놓는 말은 일개 사업가에게는 해서는 안 될 국가 기밀 같은 것도 아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주 많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막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브라이언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초강대국이라고는 해도, 미국은 지구상 존재하는 여러 나라 중 하나일 뿐 마음대로 다른 나라에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제국은 아니다.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소국이라 해도 미국이 무언가를 강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미국의 입김이 가장 잘 먹히는 곳은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 대만 정도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 세 나라는 국가 정상은 물론이고 국민들조차도 미국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을 반기고 있었고, 행여라도 미국과 미국인들의 반감을 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미국과 국경을 마주한 캐나다나 멕시코,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정상들은 때로 자국의 이익과 국민의 자존심을 위해 미국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것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하지만 유독 동아시아 3국만은 미국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행동을 뼛속부터 거부하고 있다.
당연히 러시아나 중국같이 미국과 함께 초강대국의 위치를 과신하는 국가들은 미국의 영향력에서부터 자유로웠다.
“백악관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어떤 지원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무기 공여조차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려 전쟁이 확산하는 것을 꺼리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미국인은 자국이 더 이상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백악관에서 인도적인 의도로라도 전쟁에 참여하고 싶어 해도, 국민들의 반대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경제 제재 정도가 전부겠군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전쟁 발발 후의 영향은 충분히 고려된 것이지요?”
“지금의 경제 상황으로 보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는 유가이지요.”
“중국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브라이언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바이든의 취임식 당일 있었던 백악관에서의 회동 이래로 유진은 바이든과 한배를 탔음을 명확히 했다.
미국의 경제 상황을 통해 중국에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중국의 고속 성장을 막는다는 프로젝트는 당시 자리에 있던 브라이언 디즈와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만이 공유하는 비밀이다.
“그렇다면 유가의 상승을 방관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중국 상황에서 유가의 폭등은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울 겁니다.”
브라이언 디즈의 방문은 단순히 유진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알리려는 목적이 아니다.
백악관과 유진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적어도 150달러까지는 밀어 봅시다.”
유진은 이미 브라이언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모든 상품이 그러하듯 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산량과 소비량이다.
러시아에서 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선다면 당연히 생산량이 줄어든다.
그리고 유진은 사우디의 왕세자와 아주 긴밀한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의 생산량을 늘리지 않게 설득하고, 혹은 오히려 감산까지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편으로 유진의 재력은 선물 시장과 현물 시장 전부에 영향을 미쳐, 소비시장에서의 가격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150달러 전까지 정부는 어떤 스탠스도 취하지 않을 겁니다.”
유가의 폭등 상황에서 미국은 비축한 석유를 푼다거나, 산유국에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목표를 지닌 지금은 당분간 유가의 고공 행진을 방관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동향이 심상치 않더군요.”
브라이언이 방문한 것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경제에 영향을 행사해서 그들의 고성장을 막고, 과거 플라자 합의 이후의 일본처럼 저성장 궤도에 오르게 만들려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의 안정에 위협이 되어 온 중국의 추락을 정치적 발판으로 삼아 2기로 안정적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물론 그 와중에 아주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유진은 이 거대한 계획의 플레이어이면서, 조 바이든의 2기를 뒷받침해 줄 역할 또한 함께 맡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유독 중국만 폐쇄적인 방역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부담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더군요.”
“그렇죠. 조금씩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이고,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봉쇄 정책 때문에 수출 물량이 줄어 노동자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중국 내 인플레이션의 원인에는 미국은 물론이고 유진의 영향도 있다.
원래라면 없었을 대규모의 투자가 중국 내에 이루어졌고, 그를 통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동산은 당연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버블이 잔뜩 끼어 있는 형국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나면 얼마 뒤에 FED에서 긴축정책을 발표할 겁니다.”
“힘든 시간이 되겠군요.”
“미국인들에게나 세계 모든 나라 시민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시간이 올 겁니다.”
브라이언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인플레이션과 긴축은 중국과 상관없이 예견된 일이다. 단지 중국을 끼워 넣으며 조금 더 어려워졌을 뿐이다.
브라이언은 유진이 힘겨운 시기에 변함없이 바이든을 지지하겠다는 대답을 듣고 돌아갔다.
이제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브라이언이 돌아가고 며칠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모두들 예견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충격은 컸다.
당장 러시아 루블화가 추락하고, 러시아 채권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진에게 있어서는 이제부터 과소평가된 상품을 싸게 거둬들일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