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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42화 (242/363)

242화 천억 배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의 경제 사정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다.

코로나 보조금으로 인해 60% 이상 상승한 세계 각국의 주가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었고, 암호화폐도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또한, 세계 식량의 주요 공급 국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휩싸이면서 식량을 포함한 각종 원자재 가격 또한 상승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의 30%를 담당하고 있었고, 유럽은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오히려 자국의 목을 조르는 형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든 터질 듯하던 버블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기다렸다는 듯 확실하게 터져 버렸고, 예고되어 있던 비극이었음에도 각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 사태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특히 언제나 그렇듯 미국 같은 강대국보다 취약한 경제 구조를 지닌 신흥국들에 더욱 직격타가 되고 있다.

한 발표에 따르면 신흥국 중 60여 개에 달하는 국가들이 디폴트 위기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무서울 정도로 돈이 늘어나고 있어…….”

반면, 유성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암호화폐 그래프를 바라보며 놀라고 있었다.

겨우 두 달 만에 비트코인은 3만 달러까지 후퇴했다. 정점인 12만 달러에서 1/4로 쪼그라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숏 포지션에 투자한 유성은 무려 원금의 4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수백 개 법인의 명의로 다시 세계 각국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거행되는 이번 투자로 유진 형제는 지금까지 암호화폐로 벌어들인 수익만큼을 다시 벌어들일 수 있었다.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데, 우리는 두 배나 부자가 되고 있구나.”

돈을 버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워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암호화폐 시장은 사실상 유성 자신이 이룩해 낸 금자탑과 같은 것이다.

한데 그 당사자가 오히려 시장의 붕괴로 인해 더 큰 돈을 번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란 게 어쩔 수 없어. 다들 암호화폐가 아무런 실체도 없는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뛰어들었던 거지.”

“그렇기는 하지.”

유성도 암호화폐에 몰린 거대한 규모의 자산이 허망한 기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시각각으로 자산이 불어나고 있는 것은 실물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경제가 무너지며 더 바빠진 것 같아요.”

요안나는 요사이 거의 사무실을 빠져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버블이 무너지면서 주가는 무서운 속도로 폭락하고 있었고, 요안나의 팀은 다시 무시무시한 속도로 돈을 긁어모았다.

“전부터 생각해 온 거지만, 이렇게 몇 년만 더 지나면 전 세계의 부를 전부 다 보스의 주머니에 넣을 것 같아요.”

요안나의 표정도 조금은 유성의 그것과 비슷했다. 짧은 시간 동안 폭등하는 것이나 반대로 폭락하는 것이나, 미래를 준비한 사람들에게는 동등하게 엄청난 수익을 올릴 기회였다.

요안나의 말처럼 이런 식의 수익이 계속된다면 정말로 유진이 세계의 모든 부를 독차지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전 세계 증권시장의 총 가치는 110조 달러, 그리고 국채 시장은 120조 달러, 파생상품 시장의 규모는 대략 800조 달러에 달한다.

아직은 유진의 부가 전 세계 부의 규모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상승 속도로 계속 이어 나간다면 언젠간 그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유진은 더 이상 부 자체에 대해서는 큰 욕망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자신이 이룬 부를 통해 이룩할 수 있는 결과가 중요할 뿐이다.

달러로 환산되는 자산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걸 사용해 무얼 해낼 수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생각보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고, 러시아에 대한 세계의 비난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었다.

무고한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이 그런 비난의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 내면에는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각국의 사정이 있었다.

그러는 와중, 유진이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그것은 지금의 사태를 크게 바꾸어 버릴 만한 일이기도 했다.

5월 초순, 한국석유공사가 연해주에서 새로운 유전을 찾아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지금까지 볼 수 없던 거대한 규모의 유전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동북쪽 30km 지점에서 발견된 것이다.

묘한 위치였다. 중국의 국경에서 현장까지의 거리가 겨우 1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석유공사에서 유전을 찾아내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장은 외부에 발표하지 않고 구체적인 매장량 확인에 들어가 있는데, 알렉세이 표도르프가 어떻게 알아차리고 찾아왔다.

“매장량이 상당하다면서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물론 발견 초기라 아직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다 해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던데요?”

“이거 못 당하겠군요. 맞아요. 적어도 수백억 배럴은 될 것으로 보인다는군요.”

현장은 온통 한국인들뿐이지만, 러시아 측에서 도청이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직원들을 포섭한 것인지 이미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백억 단위가 넘어가면 꽤 문제가 됩니다.”

알렉세이는 무척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더군요.”

“마치 세상의 모든 부가 당신에게 몰려드는 것만 같군요.”

그가 조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랬다면 이번 탐사 계획 이전에 제대로 된 계약서를 썼겠죠. 이건 전적으로 러시아의 국운에 행운의 여신이 윙크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군요.”

“제 위쪽에서도 계약을 파기하고, 자체적으로 개발할 생각은 없습니다. 비록 서방 세계가 우리 조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러시아인은 신의를 지킬 줄 압니다.”

알렉세이가 상당히 뻔뻔한 거짓말을 꺼내 놓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강해지면서, 러시아도 서방 기업가들에 대해 가시적 압박에 들어섰다.

적지 않은 서방 기업가들이 자의로, 혹은 타의로 러시아를 떠나는 중이다.

물론 알렉세이의 말이 전부 거짓뿐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러시아라 해도 유진의 유전을 빼앗는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클 것이다.

“듣기론 원유 채굴이 용이할 것으로 보여 경제성이 아주 훌륭하다고 하더군요. 300억 배럴이면 카자흐스탄 전체 매장량이고, 세계적으로는 대략 10위권의 엄청난 양이지 않습니까?”

알렉세이는 자신이 유전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감출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만큼 이 안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서방 각국의 러시아 경제 제재 때문에 한국 석유공사에서 바로 생산에 나서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군요. 아무래도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상당히 보지 않습니까?”

알렉세이는 마치 러시아에 대한 각국의 경제 제재가 미국의 눈치 때문이라는 듯 말했다.

“그런 문제가 있기는 하지요. 그래도 그 정도 규모의 개발 사업이라면 약간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시작할 이유는 충분할 겁니다.”

유진이 자신 소유의 사기업이 아닌 한국의 석유공사에 자금을 대고 러시아 유전 개발에 뛰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으로서 러시아에서 유전 개발에 성공했다면, 각국의 눈치를 꽤 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발 주체가 석유공사인 탓에, 유진은 세간의 비난으로부터 한 발자국 멀어질 수 있었다.

유전을 개발하건, 뒤로 물러서건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 정부의 정치적 결단에 달렸다.

물론 실질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쪽이야 유진이지만,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유진 덕분에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미국과 가까워지지 않았던가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비호감을 사면서까지 개발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알렉세이는 노골적으로 유전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뒤에 있는 대통령의 욕심이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규모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전쟁이 몇 년씩이나 길어지지도 않을 테고요. 그때까지 외부에 발표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 그랬군요.”

알렉세이는 왠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모쪼록 이번 발견이 러시아와 한국 양국의 경제에 아주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첫 만남은 그렇게 변죽만 울리고 끝이 났다. 그러나 알렉세이가 돌아가고 얼마 되지 않아, 유진은 한국 언론사의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한국석유공사가 시베리아에서 초대형 유전을 발견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유전은 적어도 400억 배럴에 달하는 매장량이 있다고 한다. 400억 배럴은 한국이 무려 4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이번 발견으로 해당 유전의 개발권을 보유한 석유공사는 적어도 수백조 원에 달하는 기대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만일 알렉세이의 그 웃음이 아니었다면, 유진은 이 기사의 출처를 석유공사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용만 가지고 본다면 석유공사의 상부에서 자신들의 업적을 뽐내기 위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기사였다.

물론 여전히 이 기사의 출처가 알렉세이라는 확신은 없다. 어쩌면 알렉세이는 그저 유진보다 조금 더 빠르게 해당 기사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 기사 작성한 기자한테 정보 출처가 어딘지 확인해 봐.”

유진은 바로 김환에게 연락을 넣었다. 여전히 알렉세이의 짓이라기에는 찜찜한 내용이 가득했다.

석유공사가 시추에 나선 것은 맞지만 유전의 지분은 유진이 소유한 해외 법인에 있었고, 석유공사는 일정한 개발 수익을 얻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기사를 내놓는 것은 이제 와 석유공사 측 파이가 적다는 항의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어쩌면 쓸데없는 욕심을 내는 인간이 있는 모양이다.

“7백억 배럴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며칠 사이에 해당 유전의 잠재적 규모가 바뀌었다.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관련자 모두가 매일매일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알렉세이가 후다닥 달려왔다.

“규모가 너무 큽니다. 이래서야 한국 정부에도 결코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알렉세이는 전보다 노골적으로 새로운 유전에 대한 욕심을 표명했다.

러시아는 자국에서 발견된 새로운 유전을 다시 서방 세계에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한국 측에서도 아주 의욕적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제대로 개발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대기업들도 참여해 시베리아에 대규모 화학단지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흠…… 그건 꽤 구미가 당기는 말씀이로군요.”

유진은 이미 러시아가 오래전부터 그러한 공업단지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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