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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43화 (243/363)

243화 Size Does Matter

시베리아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를 개발하여 시베리아를 개척하는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러시아의 오랜 염원이다.

하지만 기술력도 자본도 부족한 탓에 늘 페이퍼 플랜으로만 존재해 왔다.

“멋진 계획이로군요. 한국 기술로 만들어진 화학단지라면 우리 정부 측에서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알렉세이가 반갑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이 정도로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유진과 알렉세이는 다시 한동안 서로 이런저런 조건들을 내어놓았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결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이지요.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미래에 공헌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알렉세이와의 회담은 다시 평행선을 달리며 끝났다. 어차피 넘겨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줄 거라면 최대한 많은 것을 남겨 먹고 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유전의 권리를 끝까지 고수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베리아의 유전은 규모가 너무 컸다. 예상되는 매장량만으로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유국에 맞먹는 정도이다.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일개 개인이 소유권을 주장하기에는 터무니없을 만큼 커다란 유전이다.

더군다나 위치도 절묘하게 승냥이 같은 두 강대국의 국경에 위치해 있다. 그걸 주워 먹었다가는 탈이 날 것이 명백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행여라도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돌을 맞고 있을 이유는 없다.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을 유발할 생각인 유진으로서야 더욱 그러했다.

“연해주에서 발견된 유전의 규모가 생각 외로 거대한 모양입니다. 입수한 소식으로는 700억 배럴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답니다.”

“연해주란 말이지?”

“네. 국경에 바로 붙어 있습니다.”

중국 정부 내부에서도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유전에 대한 정보를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수할 수 있었다.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흘러나오는 정보가 넘쳐나고 있었으니까.

“700억 배럴이면 우리나라에서 채굴 가능한 매장량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현재 추세라면 대략 40년 이상 석유를 수입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양이고요. 그런 대규모 유전이 국경 바로 30km의 거리에 있습니다.”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다면 그 여파와 승리 가능성은 어떻게 되나?”

“물론 우리 측이 승리할 겁니다. 지금의 러시아는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핵이야.”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핵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정보에 중국 최고 지도부 내에서 긴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래. 그렇겠지.”

“더군다나 이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는 형편없는 전투력을 입증했습니다. 결단만 내리신다면 전쟁 발발 후 하루면 유전까지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선을 100km만 더 넓혀 고착화하면 영구적으로 유전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큰 걸 빼앗긴다면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핵의 사용을 염두에 두어야 해.”

“물론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언제라도 핵투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최고 지도부는 연일 연해주의 유전에 대해 심각한 논의에 들어갔다.

단순하게 이웃사촌이 유전을 발견한 것이 배가 아팠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연해주는 자신들의 땅이었다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 결정을 내리긴 어려워.”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지어지지 않은 상태이니 지금이 최고의 기회입니다. 러시아는 결코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탐이 난다고는 해도 쉽게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저희 공사 직원 한 명이 그런 모양입니다. 세계적인 유전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쁜 탓에 공명심에 기자에게 제보했다고 합니다.”

석유공사 사장이 약간은 머쓱한 표정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공사인 때문인지 현 사장은 정치인 출신이다.

사실 경영인 출신 사장들이 사장에 있을 때도 정권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정치인 출신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공명심이라니요. 계약서상에 모든 상황은 서로 합의되기 전에는 절대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을 텐데요?”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사과만으로 끝날 일입니까? 이게 외부로 노출되면서 러시아와의 계약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말로 몰랐다는 말입니까?”

김환은 사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저희야 아주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해당 직원이 너무 어리고 물정을 모르는 탓에…….”

“해당 직원이라…… 정말 단순히 말단 직원의 공명심 때문이라는 말이지요?”

김환이 물끄러미 석유공사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석유공사의 성과를 빠르게 알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요? 그쪽에서는 상사한테 보고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언론에 자료를 배포한다는 말이지요? 대체 공사의 기강이 얼마나 엉망이라는 말입니까?”

김환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기강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일탈이라…….”

김환의 위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석유공사 사장은 커지는 목소리에 점점 더 위축되고 있었다.

이미 한국 3대 대기업의 최대 주주이며, 국내 경제계는 물론이고 정치계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SS파트너스의 뒤에 누가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당연한 모습이다.

“말단 직원의 일탈이라 주장하시는데, 사실은 사장님 치적 쌓기를 하려고 그런 거 아닙니까? 들어 보니 다시 정치권으로 복귀하시려 한다면서요? 세계적인 유전의 개발을 책임졌다는 공적이라면 한자리 꿰차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셨나 보죠?”

김환은 마치 상대의 눈을 뚫어보겠다는 듯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그런 것 아닙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절대!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화들짝 놀란 공사 사장이 두 손을 내저으며 부인했다.

“뭐, 좋습니다. 정말로 유출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책임자인 사장님께서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러시아와의 계약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는 석유공사의 책임을 물을 겁니다. 손해 보는 금액 전부를 감당하셔야 할 겁니다.”

이어지는 김환의 말에 사장의 얼굴을 새파래지고 있었다. 무언가 대응을 하려는 듯했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생각조차 나지 않는 얼굴이다.

“그리고 그때 가서는 지금처럼 괜히 말단 직원 탓으로 떠넘기고 하는 일은 하나도 소용없을 겁니다. 저희를 너무 우습게 아셨군요. 그럼 이만.”

김환은 자기가 할 말만 끝내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사장실을 나설 때까지 석유공사 사장은 공포에 떨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사 사장의 지시였던 모양입니다.”

김환이 자신이 알아본 내용을 유진에게 보고했다.

“2선 의원으로 있다가 낙선하고 빈둥거리던 걸 거기에 꽂아 준 모양입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반드시 국회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가득한 모양입니다.”

“그래? 잘 되었군.”

김환의 보고에 유진은 지긋이 웃음을 비추었다.

“잘된 건가요? 그런 얼토당토않은 놈 때문에 개발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내가 처리하면 될 일이고. 그 사장 덕분에 결국 우리도 정부에 꼬투리를 하나 잡은 것 아닌가?”

“아! 그렇군요.”

사실 굉장히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사건임이 틀림없다. 고작 석유공사 사장 한 명의 머리를 날리는 문제 이상이다.

적어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으니, 당연히 누군가가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석유공사 사장으로 모자라다면, 그자를 그 자리에 꽂아 준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공사 사장 정도의 자리를 꽂아 줄 사람은 제일 위에 있는 사람밖에 없다.

“여하튼 앞으로는 더 이상 언론에 내부 사정이 노출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뭐. 별 소용 없을 거야.”

유진은 러시아나 중국, 미국 같은 강대국의 정보기관의 힘을 잘 알고 있다. 내부에서 단속한다고 해서 정보가 누설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그럴까요?”

“그건 신경 쓸 거 없고, 슬슬 VIP한테 접대나 받아 보게.”

“접대를 받으라…… 하하. 이거 황송하네요.”

“이번 건은 아주 톡톡하게 대가를 받아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환도 유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동안 유진은 국내 경제에 커다란 공헌을 해 왔지만, 지금까지 그에 대한 대가 따위를 요구한 적은 없다.

심지어 지금의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배경에도 유진이 있었지만, 정치적으로건 사적으로건 대면 요구조차 해 본 적 없다.

그런 유진이 말을 꺼낸 만큼, 더군다나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할 엄청난 실책이 있기도 했으니 그동안의 지지에 대한 대가를 단단히 치러야 할 것이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유전의 소유권이 유진에게 있다 들었습니다.”

“이거 빨리도 찾아오셨군요. 월리.”

연해주에서 발견된 유전에 대한 사항은 백악관에서까지 초미의 관심을 갖게 만드는 큰 사태였다.

“하필이면 그곳이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해서 문제가 크군요.”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은 유진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직접 문제를 들고 찾아왔다.

“무슨 정보라도 있습니까?”

“중국 최고 위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빠르네요.”

“800억 배럴이면 누구라도 신경을 쓸 문제이지 않습니까?”

새롭게 밝혀진 매장량 규모가 하루 만에 상대측에도 업데이트된 모양이다. 아무래도 석유공사의 보안은 강대국 정보기관에게 그저 맛집 수준인 모양이다.

미국 정부에서 알고 있다면, 중국 정부에도 들어갔을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어쩐지 손을 대시는 것마다 세계적인 이슈가 되시는군요. 여하튼 축하드려야겠죠?”

월리는 축하라기보다는 조금 찜찜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축하가 아니라 위로가 필요하군요. 러시아와 중국 정부 사이에서 축구공이 되지 않을까 무섭네요. 하하.”

“마치 이렇게 흘러갈 것을 알고 계셨던 같습니다.”

“사실 유전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리고 그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예감했습니다. 역시 규모가 너무 큰 게 문제이죠. 중국이 가만 있지 못하리라 생각이 들더군요.”

“걱정이군요.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국과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곤란한데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월리는 어째서인지 슬쩍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렇죠. 세계적인 강대국 두 곳이 전쟁을 벌이면 전 세계가 위기에 빠질 겁니다.”

유진도 월리의 미소에 숨겨진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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