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44화 (244/363)

244화 백악관의 입장

“중국이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로군요?”

“이미 러시아와 중국은 국경 문제로 오랜 갈등을 빚어 오고 있습니다. 물론 현 상황에서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행로를 보여 오고 있지만, 큰 이익이 걸린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지요.”

유진이 끄덕이자 월리가 말을 이었다.

“사실 이미 30여 년 전부터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매년 적어도 10개 이상의 서로 다른 기관에서 작성한 새로운 리서치 보고서가 백악관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두 주 사이에 10개의 보고서가 올라왔고요.”

최근 2주란 것은 연해주의 유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뒤라는 의미이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유전의 규모가 밝혀지기도 전, 단지 유전이 발견되었다는 정보만으로 이미 전쟁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정보기관의 보고서라는 게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기관에서 비슷한 보고를 올렸다는 말에 백악관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800억 배럴이라면 누구라도 탐을 낼 만한 양입니다. 굳이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가 아니라 다른 어디에서라도 마찬가지이지요.”

틀림없는 말이다. 800억 배럴에 달하는 원유 매장량은 서로 간의 사이가 좋은 나라 사이에서도 전쟁의 유혹을 떠올릴 만큼 커다란 이익을 보장한다.

“중국으로서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 겁니다. 러시아의 현 상황이 동과 서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할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것은 상당히 명확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전선을 포기하겠지요.”

“물론입니다. 그쪽에서 얻어 낼 수 있는 것보다 동쪽에서 잃을 게 훨씬 더 크니까요. 그리고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끝내면서 우리 쪽에 경제를 풀어달라는 요구를 해 올 겁니다.”

“물론 백악관에서는 들어주겠지요?”

“그 이상을 해 줄 용의도 있습니다.”

월리는 다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러시아에 지원을 해 줘 중국의 야욕을 분쇄시키겠다는 의지이다.

“중국이 지금 전쟁을 할 여력이 되려나 모르겠군요?”

“사실 중국 국내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코로나의 여파가 아주 깊은 상처를 만들었으니까요.”

“최근 1년 사이 중국의 물가가 상당히 올라갔습니다. 역대 최고라고 하더군요.”

유진은 짐짓 자신과 관계없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중국의 인플레이션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이는 유진 자신과 바로 앞에 있는 월리 아데예모일 것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원래였다면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줄었을 터이지만, 중국 내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기 위해 백악관은 중국의 수출 물량에 대한 제제를 완전히 풀어놓았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가 끝나며, 미국인들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소비를 마음껏 하겠다는 양 마구 돈을 써 대기 시작했고, 미국에 가장 많은 소비재를 공급하는 중국이 혜택을 보았다.

덕분에 중국은 봉쇄로 인해 내수 시장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수출에 있어서는 오히려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렇게 풀린 자금은 다시 부동산으로 향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은 모두가 버블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터질 듯 터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부풀어 오르는 기현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 방역에 대해 아주 엄격한 통제 조치를 해 온 덕분에 코로나 감염자 수를 줄이는 데에는 성공한 모양이지만, 내수에 너무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나마 수출 물량 덕분에 경기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입니다.”

백악관에서는 중국의 수출품에 대한 제재를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명분은 충분했다. 2020년에 체결한 무역 협정에 따르면 중국은 더욱 많은 미국 상품을 수입하고, 미국의 서비스에 시장을 개방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죽어 버린 내수 시장에서 중국은 협정 내용을 조금도 지키지 못했고, 통신에 대한 검열이 정권 유지에 필수적인 만큼 미국의 인터넷 기업들에 대한 시장 개방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다음 주에 의회에서 새로운 제재 방안이 통과될 겁니다. 중국의 수출품 5,000억 달러에 대해 새롭게 과세가 실현될 겁니다.”

중국에 대한 제재는 의회를 통과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정파를 초월해서 중국에 대한 좀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미 미국의 정치권에 폭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에 역사상 최대폭의 보복관세가 발효될 것이다.

당연히 중국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시장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그동안 자국 경제를 지탱해 오던 최후의 보루에 불가역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사실 중국이 자국 상품을 미국에 팔아치우면서, 미국의 서비스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건 불공정하지요.”

“물론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윗은 그렇다 쳐도 구글까지 막는 것은 너무 나갔지요.”

이래저래 명분은 충분하다. 중국으로서는 보복관세에 대해 부당하다고 WTO에 제소하고 나서겠지만, 언제 미국이 WTO의 제소 따위에 신경이나 쓴 적이 있던가?

만일 WTO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오히려 WTO를 나가겠다고 위협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이 가진 큰 힘의 배경에는 물론 그 강대한 군사력도 있지만, 실제로는 세계 제1의 소비국가라는 사실이 더 큰 영향을 발휘한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막힌 나라는 결과적으로 참담한 경제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악의 빈국으로 전락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거대한 소비시장이라는 위치가 지니는 힘은 한편으로 달러가 기축통화로 존재하게 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미국은 세계 제1의 소비시장이라는 위치를 고수해야만 한다. 그것도 여느 나라에 비해 압도적인 차이로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걸 이룩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국내총생산 자체를 다른 나라보다 월등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 미국의 턱밑까지 쫓아온 상황이다.

만일 중국의 중산층 규모가 확대되어 중국 소비시장의 규모가 미국에 필적하게 되면, 미국의 위치는 크게 흔들릴 것이다.

중국의 인민폐가 미국의 달러가 가진 지위의 30%만 빼앗아간다 해도,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치에 적지 않은 피해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미국이 국채 발행을 통해 매년 조 단위에 달하는 적자를 내고도 운영될 수 있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이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중국의 성장을 누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중국이 시베리아의 유전을 차지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묘한 문제였다. 연해주의 유전으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긴장이 유발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나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유전을 빼앗아가는 데 성공한다면 중국의 경제 성장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유진이 겪었던 미래에서는 그랬다. 중국은 러시아의 유전을 공격해 완전히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절반 이상의 지역을 빼앗았고, 러시아보다 월등한 기술력으로 훨씬 더 많은 원유를 뽑아먹었다.

그 결과 중국은 서아시아에 의존해야 했던 석유의 상당 부분을 연해주에서 나오는 석유로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아주 큰 도움을 받게 된다.

이 시점에서 미국은 중국의 그런 야욕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고,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거기다 미국은 한편으로 러시아가 유전을 안전하게 차지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도 그냥 놓아 둘 수만은 없었다.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에 커다란 위험을 불러오는 골칫덩어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런 러시아에게 수백억 배럴짜리 유전이 돌아가는 것은 미국으로선 결코 반가울 수만은 없다.

물론 유진에게 있어서도 러시아나 중국이 유전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것은 좋기만 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 유전이 발견되지 않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유진으로선 먼저 이 유전을 발견하고, 권리를 보유한 채로 러시아와 중국이 이전투구를 벌이다가 힘을 소모하는 쪽이 최선이었다.

“우선은 무역 제재가 시행되고, 뒤를 이어 중국 반도체에 대한 추가 제재가 들어갈 겁니다. 유럽연합과 동아시아 삼국이 함께하는 반중국 경제블록이 구성될 거고요.”

이미 지난 1년여 동안 백악관에서는 중국의 약진을 저지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해 놓았다. 지금까진 그걸 실행하기 적당한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뿐이다.

“미국도 인플레이션이 과도해지고 있습니다. 긴축이 필요하지요.”

“아주 적절한 시기로군요.”

하필이면 이 시점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고, 뒤를 이어 유전이 발견되었다.

중국으로서는 러시아의 국경을 넘기에 지금보다 적절한 시기가 없을 정도이다.

이 시점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제재를 발표한다면, 중국으로서는 자국 내의 불만을 외부로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러시아와의 전쟁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내부적으로도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중국을 자극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는 반응이지요.”

“그럴 수밖에요. 중국이나 러시아나 핵탄두를 쌓아 두고 있으니까요.”

위험한 도박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냥 모르는 척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은 두 나라가 절대 핵을 사용할 수 없다는 가정하에 시나리오를 가동해야 했다.

만일 어느 한쪽이라도 핵 버튼을 누른다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유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의 정상들을 진정시킬 사람은 유진뿐입니다.”

월리가 진지한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

백악관에서는 이미 러시아와 중국 지도부가 유진을 통해 적지 않은 수익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투자는 모두 투명하고 적법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 비밀이랄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유진이 양국의 지도부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야지요.”

바이든이 백악관에 들어선 그날부터 함께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

전쟁이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막아서는 위험하고 막중한 임무가 유진에게 놓여 있었다.

월리가 돌아가고 바로 다음 날, 백악관은 대중국 경제 제재에 대한 법안을 발표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품 중 7,000억 달러 규모의 품목에 대해 고액의 보복과세가 적용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고, 이는 중국 수출품의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민주당에서는 바로 환영의 표시를 보였고, 공화당 측에서도 바이든이 트럼프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기업 100여 곳에 대해 투자를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중국의 주요 기업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중국 경제에 갑자기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내수 시장의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고는 해도, 역시 중국 경제의 기둥은 수출이다. 그리고 그중 대미 수출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 정부의 즉각적인 비난이 튀어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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