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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46화 (246/363)

246화 B3W & CHIPS

“드디어 B3W 계획이 선포되었네요.”

오늘 자 월스트리트 저널을 손에 든 요안나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에 제동을 건 미국은 다시 G7과 함께 개발 도상국의 인프라 개발을 지원하는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 B3W) 계획을 발표했다.

2035년까지 총 40조 달러에 달하는 자금으로 도로, 교량, 공항, 항만, 발전소 등의 사회 간접 자본(SOC)을 건설하고, 인권, 성평등, 부패 방지, 대출 기반의 금융 등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거창한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저개발국의 국민 평균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한편, 전 세계적으로 경기도 성장시킬 수 있다는 부과 효과까지 예상한다는 주장이다.

사실 B3W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계획이다.

고성장과 무역 흑자를 통해 쌓여 가는 외화를 저개발국에 투자하는 것으로 외교적인 이익과 함께 국내 경기의 부흥을 노리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그동안 적지 않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일례로 스리랑카는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부채를 갚을 수 없어 결국 중국이 건설한 함반토타 항구를 거의 영구적으로 중국에 임차해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중국의 경제 공여는 해당국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집권 세력의 주머니를 부풀리고, 국가의 기반 시설과 토지, 나아가서는 경제 기반까지 중국 기업들에 넘겨주고야 마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 선진국이 내놓은 B3W 계획이 저개발국의 실질적인 성장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결국 협의가 끝난 모양이네.”

이미 오래전부터 해당 계획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놀랄 것도 없다. 대통령이 중국의 성장에 제동을 걸 생각을 염두에 두었을 때부터 계획된 일이다.

그리고 유진에게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그러니까 그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미 수십 년쯤 전에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미 정부의 대중국 정책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유진의 개입이 없었더라도 이 프로젝트는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의 개입으로 일이 좀 더 수월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원래라면 지난해쯤에 이루어졌을 협약이다. 하지만 유진의 조언에 따라 한 해가 미루어졌다.

좀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건설 업체들의 매출이 최대 40%까지 늘어날 거예요.”

요안나가 즐거워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글로벌 건설 업체들의 주식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의 백미는 중국의 예에서 그러했듯, 매년 수조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지출이 동반되는 초대형 건설 경기이다.

물론 중국과는 다르게 수여 대상 국가의 토종 기업을 키워 저성장 국가의 성장을 견인한다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이루어지겠지만…….

저개발국의 토종 기업이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할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

결국 선진국의 건설 업체에서 설계와 감리, 건설을 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와중에 자금을 내놓은 G7 국가의 경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게 될 테고.

그리고 그런 대형 프로젝트를 책임질 만한 대형 건설사들은, 중국 건설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글로벌 100대 기업들이다.

“지난해 글로벌 건설 기업들의 총 매출은 7조 달러 수준이에요. 그중 사회 기반 시설 부문이 2조 5,000억 달러이고요. 그러니까 이 분야로 한정하면 두 배의 시장, 그리고 중국 건설 업체를 제외하면 최고 140%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돈이 많다는 것과 미래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는 장점이 시너지를 발휘하기 시작하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재산 증식이 가능하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 건설 경기가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유진은 헐값으로 건설 업체들의 지분을 모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돌아가기만 하면 이쪽 분야에서만 다시 천문학적인 수익이 예상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개발국의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보너스지.’

바이든 행정부는 명백하게 중국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직접적인 공격으로 볼 수는 없다. 진짜는 지금부터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바이든 행정부는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과 국가 과학 기술 역량 제고를 위해 2,800억 달러 규모의 연방 보조금을 마련한다는 내용의 CHIPS 법안을 발표했다.

외적으로는 자국의 첨단 사업에 다양한 지원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법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관련 수출을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법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도체 제작 설비와 고성능 반도체 등이 중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 나아가 단순히 미국 내 기업체들의 상품뿐 아니라 동맹국들에게도 비슷한 요구를 할 것을 명시하고 있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겨냥하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항해 한국과 대만, 그리고 일본에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체제를 만들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소위 CHIP4라 불리는 이 협력 체제는, 중국을 반도체 산업으로부터 격리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미국의 노골적인 반중 드라이브는 다시 한번 중국의 반발을 불러왔다.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반도체 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여기고 있던 중국 정부로서는 대미 무역 장벽에 못지않은 엄청난 타격이었다.

그날부터 중국은 바로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상품의 중국 수출에 대해서도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 천명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 옥수수나 대두에 대한 관세는 중국 인민들을 고달프게 할 뿐이었다.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소비국가인 중국은 자국 국민들의 식탁에 오를 양돈산업에 엄청난 양의 대두를 소비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났다. 일반적으로 고기를 뜻하는 로우(육肉)는 중국에서는 돼지고기를 의미한다.

다른 종류의 고기에는 해당 짐승의 이름을 붙여 우육과 양육 따위로 부르는 것에 비교된다. 그만큼 돼지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도 이 돼지고기의 가격에 대해서는 유달리 신경을 썼다.

돼지고기의 시장 가격이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지지도와 직결된다는 것은 그저 농담의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었다.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하면 바로 눈에 띌 정도로 민심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민심마저 좌지우지할 돼지고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사료로 사용되는 옥수수 가격이다.

결국 중국 정부로서는 미국의 보호 무역 장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국민의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뼈아픈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드디어 중국도 버블이 터져나가는군요.”

요안나는 중국 주요 도시의 부동산 정체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었다.

“북경과 상하이, 그리고 선전 등지에서 부동산 폭락 사태로 소요가 일어나고 있다는군요. 인플레이션은 너무 과도한데, 수출은 막혀 버리고……. 이래저래 내외적인 문제가 쌓이고 있어요.”

“그동안 너무 많은 문제를 외면해 왔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지요. 더군다나 아직도 봉쇄 정책을 포기하지 못해 국민들의 여론이 점점 끓는 모양이에요. 내년 초까지 어떤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정말 곤란해질 것 같아요. 그나마 중국 쪽 투자를 거의 청산해 다행이네요.”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에 있어서 중국의 내재적인 문제들은 그저 투자 가치를 결정 짓는 요인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중국 내부의 상황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원래였다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시간을 두고 벌어졌을 일들이, 마치 정교하게 짜 놓은 프로그램처럼 한꺼번에 터지면서 불러일으킨 참사였다.

가장 큰 문제는 당장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것이다.

중국 경제를 지탱해 오던 공장들이 멈춰서기 시작하면, 지금까지의 관제 경제에 커다란 위기가 닥쳐올 게 뻔했다.

더군다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로 국제 유가가 정신없이 솟구치더니, 기어이 전쟁 전의 두 배를 넘어서 버렸다.

국내 소비를 위한 석유의 절대적인 양을 수입에 의존해야만 하는 중국으로서는 또 하나의 커다란 위기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수출에는 벽이 생기고, 수입에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

“미국과 협상을 통해 활로를 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은 인민들의 요구를 억누르기 어렵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상하이 봉쇄가 이 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베이징시 한복판의 중난하이에서는 최고 대책 회의가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과 협상을 위해서는 우리 쪽에서 양보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무엇 하나도 들어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SNS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반도체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기 개발을 멈출 수도 없고요. 단순하게 양보 수준이 아니라 굴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돼지고기 가격이 1근에 15원을 돌파했습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봉쇄정책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민들은 언제라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입니다.”

“봉쇄정책을 포기한다면 당장이라도 길거리로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전에는 절대 불가합니다.”

중국이 봉쇄 정책을 이어 가는 데에는 코로나를 막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컸다.

중국의 중앙 정부는 국민들의 시위와 통신을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이미 천안문 사태로 정권이 무너질 뻔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겹쳐 있는 상황에서 인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면 끔찍한 재앙이 벌어질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무력 진압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런 무력 진압이 정권에 유리할 수는 없다.

미국의 강경한 대중 정책 때문에 회의는 끝도 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미국 측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정권의 장악력을 감소시킬 뿐이다.

“연해주의 유전이 꼭 필요합니다. 인민들도 그걸 차지하면 만족할 겁니다.”

기어이 강경한 의견이 나오고야 말았다.

내부적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것은 역대 수많은 정권에서 사용해오던 비법이다. 그리고 대개는 잘 들어맞았다.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고전 중입니다. 이제 모두가 러시아의 군사력이 그동안 얼마나 과대평가되어 왔는지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민군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주장을 들고나온 사람은 인민해방군 북부전구 정치위원 상장 왕오안이었다.

“아직은 섣불리 움직일 때가 아니에요. 우리 인민군의 능력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정치적 사항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신중론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인가 큰 줄기는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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