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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47화 (247/363)

247화 연해주를 집어삼키는 암운

유진은 러시아에서 농장을 건설 중인 삼영상사와 항구 건설에 나선 명진상사에 현지 상황을 주의깊게 살피도록 지시를 내렸다.

두 회사 모두 SS파트너스의 지분이 절대적이라 실질적으로 자회사나 다름없는 회사들이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김환을 통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현재 중국인 노동자의 숫자가 얼마나 되지?”

“대략 1만5천 명 정도입니다.”

20만 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농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노동력의 공급처는 대부분 국경을 넘어온 중국인들이었다.

“한국에서 파견된 인원은?”

“각각 수십 명 수준입니다. 소수의 감독, 기술직 외에는 대부분 러시아 현지인이나 중국인 관리자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의 상태는 어떤가?”

“다들 열심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걱정을 꽤 했었는데, 요령도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한다는 모양입니다. 오히려 소수의 러시아 노동자들이나 관리직이 문제이지요. 그리고 현지 공무원들이 상당히 고압적이라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고압적이라?”

“툭하면 들러서 트집을 잡는다는 모양이더군요. 듣도 보도 못한 환경 영향 평가라든지, 물길 문제라든지, 하루라도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는 모양입니다.”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농장이 아니라 유전 때문이다.

유진이 쉽사리 유전의 개발권을 넘겨주지 않으니 이런저런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800억 배럴로 알려진 유전의 잠재적 채굴량 때문에 러시아는 상당히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번 퍼 올리기 시작하면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인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기업들에게 해 왔듯이 강제로 빼앗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결국 그렇게 소극적인 훼방이나 놓고 있다고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몇 가지 특이 사항이 있다는군요.”

“특이 사항?”

“네. 중국인 노동자들 상당수가 단순한 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일정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호오!”

놀란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유진으로서야 이미 예상하던 일들이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니 유전이 발견된 이후가 아니라 농장 건설 초기에 투입된 인력부터 그렇다고 한다.

유전 발견 이후로는 러시아 측에서 더 이상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아 추가로 유입되는 노동자는 없다고 한다. 아마 러시아 측에서도 중국 측 반응에 유의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러시아 공무원들의 방해가 심하면, 당분간은 쉬도록 하지.”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건 또 뭐야. 고용 중인 노동자에게는 전부 유급 휴가를 주도록 해. 그리고 한국인은 전부 철수하도록 하고. 건설 중인 농장 업무는 당분간은 러시아 현지인에 맡기도록 하고. 어차피 건설 작업이 멈춘다면 할 것이라고는 인부들 식사 배급 정도 아니겠어?”

“알겠습니다. 그편이 나을 수도 있겠군요.”

일반적이라면 현지 공무원들의 방해가 생겨 공정이 지연될 경우 어떤 공사이건 지연되는 만큼 심각한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특히 이번처럼 수만 명에 달하는 인력을 고용하는 경우라면 매일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비용 때문에라도 원하는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진에게야 그깟 수십억 원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어차피 농장 건설 사업을 하는 게 당장에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는 목표 때문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의 불량한 태도로 한국인 직원들을 철수시킬 핑계가 생겼으니 잘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로부터 며칠 사이에 삼영상사와 명진상사의 관리직들은 러시아와 중국인 관리직원들에게 노동자들의 관리를 맡기고 바로 철수했다.

“중국 인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존 브래넌의 보고가 올라왔다. 한국 직원들은 전부 철수했지만, 존의 정보팀은 달리 소스가 있는 모양이다.

“정식으로 고용되지 않은 인부들이 늘어나는 모양입니다. 아마 국경을 넘어온 인민해방군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중국 노동자와 러시아 노동자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중국 북부 출신이라 러시아 측 노동자들에 힘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드디어 결심이 선 모양이다. 유진이 개발한 연해주의 농장은 이제 시베리아에 엄청난 불씨를 일으킬 발화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농장과 항구 건설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알렉세이 표도르프가 이때다 싶었는지 바로 연락을 취해 왔다.

“농장이든 항구든 유전이든 쉽게 풀리지는 않는군요. 이래서야 울고 싶을 정도예요.”

“이거 죄송스럽군요. 그렇지 않아도 해당 공무원들을 질책하고 책임자를 해임하도록 했습니다.”

전형적인 굿캅 배드캅 정책이라도 쓰려는 모양이다. 여하튼 자국 내에서 사업을 하는 게 절대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지난번에 말씀하신 내용은 사실 굉장히 호의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알렉세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잔뜩 지으며 말했다.

유진은 시베리아 유전의 개발 대가로 러시아 대통령이 지정하는 기업에게 유전 개발 사업 지분 20%와 추가로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50억 달러의 현금을 지불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었다.

무려 1천억 달러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주겠다는 말이다.

“그거참 아쉽군요.”

유진도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 위해 무척 노력해야 했다. 물론 유진도 이미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대통령으로선 상당히 끌렸을 제안이다. 연해주의 유전은 그 가치만으로 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거기에 대한 지분 20%와 현금 천억 달러를 합하면 아무리 작아도 3, 4천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자리에서 내려가도 남은 생애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약속한 돈을 받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를 욕심 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당장에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생각처럼 잘 풀리고 있지 않았다.

단숨에 키예프를 점령하고 전쟁을 끝낼 것같이 보였는데, 어쩌다 보니 전선이 길게 이어져 고착화되고, 희생자만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위대한 대 러시아 제국의 향수를 국민들에게 선사하며 인기를 회복하려던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지는 각국의 비난과 경제 제재는 이미 각오한 것이지만,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러시아 경제는 아마 이 한 해 동안 적지 않은 후퇴를 하게 될 것이다.

비록 빈곤과 굶주림에 익숙한 러시아 사람들이지만, 언제까지 그 고통을 감내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시베리아 유전 소식은 오히려 악재에 가까웠다.

원래였다면 수백억 배럴의 유전은 엄청난 희소식이 되었을 것이고, 대통령의 인기에도 도움이 되었을 터이다.

하지만 개발 주체가 외국, 그것도 한국과 미국이라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러하듯, 자국 자원 개발의 주체가 타국 기업이라는 것은 내부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많은 나라의 새로운 정권이 외국의 개발권을 강제로 환수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고, 의도와는 반대로 국가 경제를 참혹하게 만들고 만다. 이란이 그랬고, 베네수엘라가 그러했다.

러시아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국민들은 시베리아 유전을 외국 기업으로부터 되찾아오기를 원한다.

하나 그걸 강제로 찾아온다면 미국과 전면전을 하자는 의미와 다름없다. 이미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경제 봉쇄로 수십 년을 고통받고 있다.

러시아의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우크라이나와의 전쟁보다 연해주의 유전 문제가 러시아 국민과 정치권 인사들에게 더 큰 화제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유진이 제공하겠다는 수천억 달러를 냉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틀림없는 이득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시베리아 유전의 개발권을 내어 주는 것까지 확정 짓는다면 러시아 국민들은 더 참지 못하고 거리로 뛰어나올 것이 분명했다.

러시아가 농장을 괴롭히는 치졸한 방법까지 사용하고, 해당 공무원들을 처벌한다는 뻔한 연극을 펼치는 것도 그들로서는 딱히 해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이 문제의 해법은 처음부터 유진이 쥐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제안을 해 드리고 싶지만, 더는 도리가 없군요.”

유진이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로서도 적당한 대가 없이 여기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실 거라 믿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렇기에 가즈프롬의 지분 30%를 제시하는 겁니다.”

알렉세이는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협상을 끝내야 했다.

“가즈프롬이라…….”

유진은 그다지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즈프롬의 현재 가치만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시베리아 원유 채굴권을 갖게 되면 아마도 세계 최상위권의 유전개발업체로 발돋움할 겁니다. 적어도 아람코보다 크게 작다고 하지는 못할 겁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생산량의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는 아람코의 시가총액은 2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

만일 시베리아 유전의 개발권을 온전히 가즈프롬이 취한다면 사실 그 정도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절반 이상, 그러니까 최하 1조 5,000억 달러 정도가 내부적인 추산 금액이다. 유진의 지분은 그중 1/3 수준이다.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의 억지에 가깝다. 하지만 그 정도 규모의 유전이라면 어느 나라라도 탐을 낼 것이라는 가정하에 다른 나라라고 이보다 크게 인심을 쓰지 않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또한 점진적으로 국유화의 과정을 통해 결국은 외부 자본을 전부 쫓아내고 국영 기업으로 바꾸었다는 선례를 생각하면, 오히려 관대하다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러시아의 제안은 억지라 볼 수도 있고, 반대로 관대하다 볼 수도 있는 애매한 지점에 있었다. 결국은 시간의 문제였다.

“대통령 각하께서 유진 회장님의 공헌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32%까지 양보하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1/3에 조금 못 미치는 32%를 말하는 것은 다시 1, 2% 정도 더 양보할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우선은 연해주에서 철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유진은 협상을 받아들이는 대신, 일방적으로 철수를 통보했다. 중국 측의 움직임이 점점 더 수상해지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온 차였다.

이미 필요한 무대는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무대 장치의 제작진이 남아 있다가 화를 입을 필요는 없었다.

“33%입니다. 정말 마지막입니다.”

“난 훨씬 더 전향적인 조건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유진이 웃으며 말했고, 알렉세이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일그러졌다.

단 1%에 수백억 달러가 오가는 협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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