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시위와 소요
“러시아 국채가 상당 부분 회복됐고, 루블화는 전쟁 전보다 오히려 50%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권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결의된 이후,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급락했다. 심지어 국채는 부도 직전까지 이르렀다.
특히 러시아 해외 자산 동결 조치와 국제 금융 통신망 겸 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에서 축출되자 6월에는 정기이자까지 지급하기 어려워지며 디폴트 위기에 직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자국의 가스와 석유에 대한 결제를 루블화로 받겠다고 나서며, 루블화의 가치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로서는 사실상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시베리아에서 거대한 규모의 유전이 새롭게 발견됨에 따라 러시아 경제에 대한 의구심은 많이 가라앉았다.
석유와 가스가 국가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러시아 경제 특성상,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유전의 발견이 러시아 경제를 부흥시킬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한 상태였다.
7월로 들어서며 러시아 부채는 이제 정상가의 70%까지 회복했고, 루블화는 최근 10년 이래 최고가를 연일 경신하고 있었다.
“지시하신 대로 국채와 루블화의 청산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투자로만 적어도 600억 달러의 수익이 예상됩니다.”
요안나는 이제 수백억 달러의 이익 정도에는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 수익은 오직 요안나의 자산관리 회사에서 벌어들인 돈에 국한한 것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 주요 경제국에 진출한 투자 회사에서도 이제 천문학적인 숫자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요안나 밑에서 다년간 훈련을 받은 딜러들과 애널리스트들 중 능력이 입증된 사람들을 선별했다.
그들을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룩셈부르크, 더블린 등의 서유럽 주요 금융 허브들, 그리고 서울, 싱가폴, 홍콩, 동경 등지의 아시아 금융 허브에 파견하고 투자 회사들을 설립해, 뉴욕과 비슷한 정보를 바탕으로 각기 투자에 나서는 중이었다.
아직까지는 뉴욕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그래도 벌써 각국의 수위권 투자 회사에 해당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서도 각기 적지 않은 수익을 벌어들여, 다시 새로운 투자에 재투자 될 예정이다.
아마 한두 해만 더 지나면 이 투자 회사들이 해당국의 최대 투자 기관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쪽 수익은 정리되는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아마 이번 주 이내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근 유진은 이 각각의 투자사들에 러시아에 금융에 대한 투자를 정리할 것을 지시했다. 이제 정말 긴박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중국 국내 상황이 점점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 닥터 나탈리가 보고하겠습니다.”
존 브래넌이 함께 찾아온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국제적인 인플레이션과 미국의 중국산 제품 수출 제재의 여파로 중국 내 경제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안경을 썼지만, 매서운 눈매를 감출 수 없는 30대 후반의 여인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중국 내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존 브래넌이 스카우트한 중앙 정보국 출신의 정보 분석관은 동아시아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90여 년 전 증조부 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4대째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미국인이다.
하버드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이미 20대 중반에 동아시아 지역에 해박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교수직과 관료직 사이에 고민하다가, 이쪽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CIA의 리쿠르트를 받아들여 벌써 10년이 넘게 중국의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에 대해 분석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학계에 있을 때만큼의 명성은 결코 얻을 수 없겠지만, 외부에서는 접하기 힘든 고급 자료들을 마음껏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직장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할 만큼, 워커홀릭인 그녀는 이 일을 사랑했다.
그녀의 남편 또한 CIA에 근무하고 있는 애널리스트이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두 명의 블랙-아시안 혼혈 아이들의 사진을 주머니에 넣어 두고 시시때때로 꺼내 볼 만큼 가정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모범적이고 애국심으로 가득한 미국 시민인 나탈리 장을 스카우트하는 것은 한때 그녀의 상관이었던 존 브래넌으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CIA에서는 접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정보와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으로 그녀를 빼돌릴 수 있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에 관해서는 최고의 인재를 얻었지만, 덕분에 랭글리의 수뇌부에게는 눈총을 사야 했다며 투덜거리던 존 브래넌의 웃음이 떠오른다.
물론 랭글리의 수뇌부라 해도, 대개 한때는 존 브래넌의 부하직원들이었다.
결국 그들이 퇴직하면 다시 존 브래넌의 아래로 들어올 예정인지라 가벼운 식사 대접 한 번으로 좋게 끝낼 수 있다고 한다.
존 브래넌을 영입한 것은 유진에게 있어서는 최상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가 지닌 인맥은 미국 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친 정보 네트워크의 핵심 부분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글로벌 정보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중국의 현재 상황은 그야말로 일척건곤(一擲乾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지난 90년대 이후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언제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입니다.”
중국 전문가답게 나탈리는 대화 중간중간 사자성어나 관용어를 섞어 쓰기도 했다.
“제2의 천안문이라면,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당시보다도 오히려 더 위험한 수준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거죠?”
“지금의 중국 사회가 당시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중국은 국민의 대부분이 저임금 노동자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최상류층에서, 한 달에 겨우 수십 달러의 수입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극빈곤층에 이르기까지 아주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경제가 발전했으니, 당연한 결과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계층 간의 알력이 30여 년 동안 누적되어 왔습니다. 이미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고랑이 존재합니다.”
존 브래넌이 그녀를 데려와 브리핑을 맡긴 것은, 나탈리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뛰어난 분석가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설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상황을 이 모든 계층이 정권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분석을 통해 드러납니다. 극빈층의 경우는 지난 20여 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하류층은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렵습니다. 심지어 중산층까지도 실직의 위협과 시장에서 식재료 구매가 어려운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합니다. 상층부로 올라가면 주식 시장과 부동산 버블의 붕괴로 인한 자산 가치의 하락으로 인해 분노가 쌓였습니다. 최상부. 그러니까, 자산 1억 달러 이상의 부자들의 경우는 정치인들의 입맛에 따라 자신의 재산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 질린 상태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최상부 부자들의 분노와 공포가 가장 크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언제쯤 그런 불만이 외부로 터져나갈 것 같은가요?”
“이미 어느 정도 시작되었다 볼 수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부동산 가격 붕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광서에서는 또다시 코로나 봉쇄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났고요. 사실 이런 시위가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은 아니지만, 점차 그 강도가 거세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점점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이미 주요 도시는 물론이고 지방급 도시에서도 인민군이 치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권에서 어떤 활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올해 안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날 겁니다. 아마 그때는 정부 측도 정권을 유지하려고 생명을 걸어야 할 겁니다. 물론 정부 측이 승리한다면 적어도 수만에서 수십만…… 어쩌면 백만 단위의 피가 흐를 수도 있겠고요.”
미국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의 여파는 상당히 심각했다. 그리고 그동안 누적되어 온 중국 내부의 사회 구조의 모순, 마지막으로 유진이 개입한 덕분에 잔뜩 부풀어 올랐다가 터져 버린 증권 시장과 부동산 시장 버블의 여파가 모든 계층의 자산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역시 중국 인민을 움직이려면 자산 가치를 붕괴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나탈리는 그렇게 한동안 중국의 상황을 브리핑하고 돌아갔고, 남아 있던 존 브래넌이 다시 러시아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시베리아 농장에서 소요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상황인가요?”
시베리아 농장에서는 이미 한국인 직원은 전부 철수해 있어, 현지 상황에 대해서는 존의 정보망을 통해 들어야 했다.
“키로프스키 동쪽의 제8 농장입니다. 중국인 노동자들과 러시아 작업 반장 사이에 알력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키로프스키는 삼영상사에서 개발 중인 여러 개의 농장 중 유전 지대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한 농장이다. 유전에서부터는 대략 150km쯤 떨어진 곳이다. 중국 측에서도 나름 머리를 쓰는 모양이다.
“농장에는 현재 800여 명의 중국인 노동자와 70명 정도의 러시아 관리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러시아인과 중국인 사이에 어떤 알력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러시아 관리직들이 꽤나 고압적이었지만, 중국인들이 잘 참아 내고 있었지요. 하지면 최근 들어 중국인들이 러시아 관리직의 난폭한 대우에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드디어 터져 버린 거지요.”
“지금은 일도 없는데, 딱히 알력이 생길 게 있나요?”
“외견상으로는 지금까지 갈등이 누적되어 오다가 오히려 일이 없어지니 더욱 표출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군요.”
유진은 존 브래넌의 말을 금세 이해했다.
“명분 쌓기이겠죠?”
중국 정부에서는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었고, 분란을 조장하여 명분을 얻을 생각이었다.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희생자가 필요할 것이다.
“네. 당장 오늘 일어난 소요에서도 피해자는 대부분 중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생했습니다. 10대 1이 넘는 비율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리고 제 생각이지만 어쩌면 러시아 관리직에서도 고의적으로 그렇게 과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러시아 정부 측 의사는 아닐 테고요?”
“물론이지요. 반대로 중국 정보부의 작전일 가능성이 큽니다. 약간의 비용만 들이면 중국인 노동자를 고의로 괴롭히고, 심각한 정도의 부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심각한 정도라고요?”
“중국인 노동자 다섯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실명 상태이고, 둘은 머리를 크게 다친 모양입니다.”
“곤란하네요. 다른 지역은 어떤가요?”
“대개 비슷한 수준의 갈등 상황이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곧 대규모 소요로 이어질 겁니다.”
1만 명에 달하는 중국 노동자가 근무 중이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군사 훈련을 받은 군인이라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 중국 군인들이 노동자의 탈을 쓰고 잠입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마음먹고 소요를 일으키면 눈 깜빡할 사이에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