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책임 없는 권한
“연해주 유전 문제로 꽤나 시끄럽습니다. 한동안 우리나라도 산유국 반열에 드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아져서였죠.”
정례 화상 회의에서 한국의 김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산유국이라니. 한국인들의 석유에 대한 애착. 아니, 집착은 사실 유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 쇼크로 대한민국은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렸었고, 지금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기름을 수입하는 국가이다.
석유 자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너무나도 절실하게 알고 있었고, 그런 나라치고는 석유를 거의 생산하지 못하는 불운한 나라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한국 회사가 시베리아에서 유전을 퍼 올린다 해도, 한국이 산유국이 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남의 나라에서 퍼 올리는 기름을 가지고 산유국 소리까지 나온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더군다나 유전의 권리를 지닌 것은 한국이 아닌 제3국의 개발사이다. 석유 공사는 그저 유전 탐사를 대행했을 뿐이다.
“그래도 여당 측에서 꾸준하게 언론 플레이를 해 왔으니까요. 마치 모든 공이 석유 공사의 것이고, 석유를 퍼 올리면 석유 공사에서 소유권을 가진다는 식으로 말을 했죠. 하지만 실체가 슬슬 알려지며 그동안 해 왔던 언론 플레이에 대해 욕을 먹고 있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다른 목적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연말의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다 써 봐야 하니…….
“결국 자기 무덤을 판 셈이네.”
“야당에서 전 석유 공사 사장을 청문회로 불러내서 꽤 매섭게 몰아붙이는 중이에요. 어디서 들었는지 계약서에 적힌 유전의 규모가 언론에 발표된 사실도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석유 공사의 모든 직원들이 여당의 지지자는 아닐 터이니,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언론에 제보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여론의 관심은 제7광구 쪽으로 향하고 있어요.”
“아…….”
제주해분(濟州海盆) 일대에 설정된 자원 탐사 구역인 제7광구는 상당한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한·중·일 모두가 이 구역의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개발에 큰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연해주의 유전과 제7광구의 유전을 모두 개발하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제3위 산유국이라는 기사까지 났을 정도니까요.”
언제부터인지 제7광구에 숨겨져 있는 석유 매장량의 규모가 1,000억 배럴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지금에 와서는 소문을 넘어 정설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었고.
하지만 매장량이란 것이 실제 파낼 수 있는 양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 1,000억 배럴 이야기가 나오는 연해주의 새로운 유전도 실제로는 얼마나 퍼 올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발견한 측에서는 늘 최대치를 말해 기대감을 부풀려, 자산 가치를 높이려 들 뿐이었으니까.
“연해주건 제7광구건 실제로 한국 소유가 아니라고 꼬집는 기사가 있기는 하지만,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 하지 않던가요?”
“어쩔 수 없지. 자네 말처럼 원래 그런 걸 말이야.”
“그러니까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보스 때문이에요.”
“나? 내가 뭘?”
“강 회장이 손을 대서 실패한 사업이 하나도 없다. 이번에도 또 엄청난 수익을 올릴 거다. 이건 그냥 예측 수준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보스는 거의 종교와 같다고요.”
“나 원.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기대가 결국 나 때문이라는 거지?”
“때때로 아쉽다니까요. 보스가 국적을 바꾸지 않았다면 아마 종신 대통령이라도 해먹을 수 있었을 걸요? 보스가 대선에 나선다면 90%는 찍어 줄 거예요. 그리고 연임을 위해 헌법 개정을 말해도 얼싸 좋다고 찬성할 거고요.”
“끔찍하네.”
유진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정세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한, 앞으로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은커녕 평범하게 상원 의원이나 총리 같은 역할을 떠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공식적인 위치에 서게 되면 그에 걸맞은 기대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기대는 몰라도 책임은 유진이 결코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책임을 질 줄 모르는 무책임한 인간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당한 책임이라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치인은 때로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단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있다.
책임 없는 권한, 혹은 책임 없는 통치. 이것이야말로 유진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였다.
* * *
[중국 남부의 대도시인 광저우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계속되는 봉쇄에 대해 항의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벌써 2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봉쇄로 일자리도 잃었고, 마트에는 식료품도 찾아볼 수 없다며, 이제는 봉쇄를 끝내야 할 시기가 왔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편 광저우 시정부는 이날의 시위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5만 명의 무장 경찰을 투입해 시위의 과열과 폭력행위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고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거실에서 CNN의 뉴스를 보고 있으니 온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다.
물론 그 혼란에 자신이 기여한 바가 적잖아 컸지만, 사실 유진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결국은 벌어졌을 일들이었다.
바리스타는 아니지만, 제법 센스있는 직원이 내려준 커피의 짙은 향을 음미하던 그때, 존 브래넌과 나탈리가 찾아왔다.
“방금 CNN을 봤는데, 중국 내부의 긴장이 상당히 고조되어 가고 있다더군요. 언제 폭력 사태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하네요.”
“사실 폭력 사태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 어제만 다섯 곳에서 적지 않은 폭력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미 사망자도 나온 상태이고요. 중국 내부의 갈등은 상당한 속도로 사회를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제2의 천안문은 이제 가정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지난번처럼 희생자의 숫자를 고려하지 않고 무제한 무력 진압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나름 유화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입니다.”
중국 내부의 갈등 상황이 연일 고조되며, 나탈리 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보고를 올렸다.
“나탈리의 생각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유화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시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결국 책임자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현 중국 정부의 집권층은 권력에의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결국 무력 진압만이 남아 있다는 말이로군요.”
“……네. 그렇게 흘러갈 것으로 보입니다.”
나탈리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녀는 단지 중국 내부의 사회 문제뿐 아니라 중국 정권 최고위층 지도자들의 심리 상태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서방 사회에서는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접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의 분석에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사실 중국의 최고위층 권력자들의 집권 의지에 대해서는 유진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고생 많았어요. 계속 분석 부탁할게요. 나탈리를 영입한 게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 달부터는 연봉을 이 정도로 올려 드리지요.”
유진이 메모장에 0이 여섯 개가 붙어 있는 숫자를 적어 주며 말하자, 나탈리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겨우 몇 달 만에 보수가 처음 약속받은 액수의 두 배로 올라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유진의 신조이다. 그리고 유진은 CIA나 다른 정부 기관에서는 결코 제안할 수 없는 대가를 내어 줄 능력이 된다.
무엇보다 가족은 물론이고, 노령의 부모까지 봉양해야 하는 그녀는 경제적으로 썩 여유 있는 편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유진은 그렇게 선심을 쓸 수 있었다.
나탈리는 유진이 건넨 메모지를 꼭 쥐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 나섰다.
“어떤가요? 꽤 능력 있는 사람이죠?”
존 브래넌은 나탈리를 상당히 신뢰하는 듯했다.
“적어도 중국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그녀 만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동아시아 전역을 맡길 만한 사람인가요?”
“물론이지요. 사실은 언젠가 제 역할을 대신할 사람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을 데려올 수 있어 다행이로군요.”
“맞습니다. 들어 보니 그녀가 빠지고 나서 꽤 힘들어졌다고 불평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하하.”
“그건 좀 곤란하네요. 미국 정부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려면 분석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필요할 텐데요.”
“뭐. 시스템이 중요하니까요. 아무리 분석이 제대로 되어 있어도, 막상 그걸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으면 분석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존 브래넌은 지난 정부에서 자신의 옛 동료들이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이 꽤나 실력 있고, 믿을 만한 사람들인 덕분에 훨씬 상황이 나아진 모양이다.
“그렇다면 존이 원하는 대로 키워 보도록 하죠.”
사실 존 브래넌의 요청이 없더라도, 그녀를 영입할 생각은 있었다. 그녀가 지닌 능력이나 잠재력을 가장 잘 알고 있던 것은 유진 그 자신이다.
나탈리는 원래였다면 앞으로 10년 정도 더 경험을 쌓은 뒤 자신이 종사하는 조직의 수장에 임명될 운명이었다.
그즈음 미국의 가장 중대한 적은 러시아도 중동의 제국들도 아니었다. 이미 경제력은 물론이고 군사적인 면에서나, 외교적인 면에서나 미국에 버금가는 중국이야말로, 미국이 그때까지 마주한 사상 최악의 적이 될 것이다.
인구수 16억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경제력 면에서 미국을 압도하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는 중국이 야욕을 드러내면서, 미국은 그때까지의 평화적인 대립 구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부에도 중국에 가장 정통한 사람이 필요했다.
동양계 여자로는 두 번째로 CIA의 수장에 올라선 나탈리는 자신의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해 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는 평범한 시민이었던 유진으로서는 그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정권이 두어 번 바뀐 뒤에도 그녀가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능력이 충분했음을 인정하기에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 * *
“전국에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솔직히 군대를 투입하지 않고서는 더는 막아 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오늘만 해도 벌써 광저우는 물론이고 싼야 등 여섯 지역에서 과격한 폭력 행위가 일어났습니다. 현재 집계된 사망자는 서른 명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기자들을 단속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틀어막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도 BBC와 뉴스포트의 기자 두 명으로부터 카메라를 압수했지만, 벌써 전화기로 몇몇 장면을 전송한 뒤였습니다.”
“역시 인터넷이 가장 문제로군. SNS를 막고, 만리장성으로 막아도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지금 모든 SNS를 막고,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벅차다는 결론입니다. 적어도 이번 주 내로 전국적으로 천만 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질 겁니다. 무장 경찰만으로는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베이징의 중난하이에서는 인민들의 시위 문제로 끊임없이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15억 인구의 대국답게, 무서운 규모의 시위가 벌어질 것이 예상되었다.
이를 막으려면 다시 군대로 도시를 점령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끝이 나면 좋겠지만, 결국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연해주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결국 중국 중앙 정부는 동북에서 일어날 전쟁에만 희망을 걸고 있었다.
전쟁은 모든 실책을 무마할 수 있는 커다란 무기이다.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영웅이 될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