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공작(工作)
“연해주 합병 계획은 아직까지 아무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국제정보국(国际情报局) 국장이 보고를 시작했다.
중국의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는 모두 30여 개의 국(局)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국제정보국은 대외 정보 활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연해주 침공 계획 중 러시아 내부에서의 활동도 국제정보국의 책임하에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모두 열다섯 번의 충돌이 있었고, 그 와중에 무고한 중국의 인민 80여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물론 그 무고한 희생이 국제정보국의 공작에 기인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중 사망자가 17명, 그리고 심각한 부상자는 32명입니다.”
“그 정도로 되겠나?”
하지만 상부에서는 그 정도도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러시아 측 협력자들에게 폭력의 강도를 높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마 근시일 중으로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희생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외적인 명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국민들의 마음 속에 상대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켜,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서도록 하려는 의도가 크다.
미국도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벌어진 사건을 의도적으로 확대해서 자국민들의 전쟁 참여 의사를 드높인 바 있다. 또 미국 군부는 쿠바를 침공하기 위해 노스우드 작전을 입안한 적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노스우드 작전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케네디가 거부하면서 거짓 테러로 전쟁이 유발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중국 정부에서는 미국이 걸어온 길을 가장 잘 본받는 훌륭한 학생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려면 더 거창한 희생이 필요할 거야.”
“물론입니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라도 피가 거꾸로 솟구칠 만한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위대한 결전에는 위대한 피가 강처럼 흘러야 하는 법이지.”
누구에게 위대한 건지 직접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한결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한 번만 제대로 된 희생자가 나오고 나면 바로 전선을 구축하겠습니다.”
전쟁의 주역을 맡게 될 인민해방군 북부전구의 사령관 먀오쉬중이 힘있게 발언했다.
중국 동북부의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산둥성과 내몽골 자치구를 관할하는 북부전구는 세계 정상급의 전력을 갖춘 러시아, 그리고 북한과 국경을 접한다. 한국 및 일본과의 전쟁을 상정하는 만큼 인민해방군 최고의 전력을 갖추고 있다 할 수 있다.
“현재 79집단군은 언제라도 북방으로 진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인민해방군 최정예의 79집단군은 랴오양 시에 주둔하고 있다.
“현재 모두 3,240명의 인민해방군 전사들이 연해주 해방을 위해 잠입해 있습니다.”
정치위원 상장 왕오안이 사령관의 말이 끝나자 바로 발언했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기세였다. 북부전구의 사령관과 정치위원이라는 자리에 앉은 이상 그럴 수밖에 없는 관계이기는 하다.
구 소비에트를 포함한 공산 세계의 군대에는 공산당 당원이 군을 감시하는 정치 장교로서 해당 부대의 지휘관과 같은 계급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군에 명령을 내릴 때는 지휘관과 정치장교 둘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하도록 해서 군인에 의한 정권 탈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시스템이었다.
언뜻 공산국가는 군에 의해 지배되는 군사주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공산주의 국가야말로 철저하게 문민통치의 철칙이 지켜지고, 군인은 어떤 경우에도 사회 문제에 중립을 지키게 되어 있다. 군 장성 출신이 국가 원수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정치계에 나서는 사람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정치인이면서 군인인 자가 정권의 요직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그마저도 군인 출신이 아니라, 반대로 공산당의 당원으로서 정치 장교로 복무하는 사람일 때가 훨씬 더 많다. 마오쩌뚱 또한 소비에트의 정치 장교였고, 덩샤오핑 또한 항일전쟁 동안 공산당의 팔로군(八路軍)에서 정치 장교를 역임했었다.
“연해주에 침투한 인민해방군 전사들은 언제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연해주 정벌의 선봉에 설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인민해방군 북부전구의 사령관과 정치위원은 서로 다른 것을 노리고 있었다. 사령관은 명백하게 전쟁 영웅의 자리를 원했고, 정치위원은 이번 기회를 통해 중앙 정부의 요직에 오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렇듯 연해주 침략에는 아주 많은 이들의 다양한 욕망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피를 강물처럼 흘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 피는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어떤 노동자의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 * *
“연해주에서 연일 중국인 노동자들의 소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러시아인 관리자들이 중국인 노동자를 폭행하거나, 심각한 모욕을 가하기 때문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철저하게 비폭력적인 항의를 고수한다는 점입니다.”
“사망자가 여럿 나오는 상황에서 비폭력을 고수하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요?”
“맞습니다. 확고한 목적을 지닌 조직이 아니라면 그러기 쉽지 않지요. 더군다나 이주 노동자들이란 특별한 구심점을 갖기 어려운 집단이니까요.”
“그렇다면 역시 중국인 노동자들을 일반적인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겠군요?”
“그렇습니다. 소요가 벌어지고 있는 열두 곳의 농장에 모두 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폭력적인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 상황입니다. 결국 그들 사이에 특별한 구심점이 있다고 봐야 하고, 그들의 목적 또한 의심해야 합니다.”
“러시아 측 반응은 어떤가요? 그래도 FSB의 방첩 능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백악관에서도 여러 정보원들을 불러 러시아와 중국 상황에 대해 매일같이 브리핑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갈등까지 심해지면 전 세계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정확히 예측하고, 다양한 대응책을 준비해 두어야 했다.
“사실 현재의 FSB는 과거 소련의 정보 기관 수준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의 독재 체재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정적이나 경제인에 대한 감시, 납치, 암살 등에는 여전히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대민 치안 유지나, 대외 첩보 활동에 있어서는 기준치 미만이라는 것이 우리 쪽 분석입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느 정도 그 실력이 드러나기도 했고요. 물론 폭력을 수반한 공작에 한해서는 오히려 소비에트 시절보다 훨씬 더 과감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랭글리에서 나온 러시아 전문가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금 연해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 측의 공작에 대해 제대로 된 첩보를 입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백악관 안보수석 보좌관이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저희 쪽 분석으로는 그렇습니다. 이번 소요의 원인은 철저하게 러시아 관리직들의 폭력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폭력을 행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건 명백합니다. 아무래도 중국의 대외공작부의 소행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정도라면 FSB에서도 사람을 파견해 진상을 파악하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데, 현지의 경찰에게만 맡기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다는 뜻이죠.”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군요.”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대외 정보부의 인력 대부분이 그쪽으로 투입되고, 내부적으로는 길어지고 있는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 감시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지금 러시아는 동부 시베리아의 문제가 아니라도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며 지지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국방 장관 숙청설이 신문에까지 나오고, 대통령의 치매설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그렇다면 당분간은 중국의 의도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군요?”
“예. 중국인민해방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조만간 큰일이 터질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전문가도 비슷한 의견을 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FSB나 하다못해 러시아 대사관에라도 어느 정도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 정확한 분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와의 정보 교류는 당장은 보류하도록 하지.”
비서실장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어떤 쪽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네.”
“알겠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은 무척이나 정치적이고 미묘한 문제라는 사실에 모두가 동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런 행위가 몰고 올 파급에 관해서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만 했고, 그 책임이 어느 선까지 올라가게 될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지금 다시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꽤 심각합니다. 사망자가 수십명 단위로 생겼다는군요.”
회의의 중간에 소식이 전해져 왔다.
“현지 경찰이 출동해 소요를 벌인 중국인 노동자들을 체포하고 있답니다. 총기까지 사용된 모양입니다. 아마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총기의 사용 주체는?”
“러시아 경찰입니다.”
“여전히 중국인 측의 폭력은 없고?”
“그렇습니다. 폭력이 없는데도 총격을 가해 소요를 진압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확실히 이상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전 세계에 동부 시베리아에서 벌어진 중국인 노동자 학살 사건이 전해졌다.
중국 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한 러시아 경찰의 과격 진압으로 수십 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는 보고였다.
하지만 기사에는 다시 수천 명에 달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 연해주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날, 늦은 시각 중국 정부는 러시아 측의 비인도적인 행위에 대해 비난의 성명을 발표했다.
해당 사태에 대한 엄격한 진상 파악과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그리고 러시아 경찰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 러시아 정부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소요를 일으킨 중국인 노동자 측에 있음을 천명했다.
러시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불법적인 소요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프리모리예 주지사의 성명에 이어, 연방 정부에서는 국가 근위대를 파견해 중국인 노동자의 소요를 진압하겠다는 입장 발표가 이어졌다.
당장 중국 내부의 민심이 불길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국의 모든 언론사들은 하루 종일 해당 사태에 대한 심층 보고를 시작했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인 노동자 가족들의 인터뷰가 시청자들의 눈물을 끌어냈고, 비분강개한 시민들이 도시 곳곳으로 쏟아져 나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에 민감한 각 지역 정부에서도 이러한 시위에 대해서는 질서 유지만을 보조할 뿐, 조금도 통제하지 않았다.
중국이 원하던 대로 연해주에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